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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토막과학사] 각기병과 일본식 카레라이스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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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3-01-18 12:08:37

롯데월드 헬게이트를 뚫고 하루종일 돌아다녔더니 죽겠습니다. 맥주 한잔 하면서 밀린 디피 글 읽고있는데, 저 아래에 movie매니아 님이 "일본은 왜 카레가 유명하죠?? " 라는 글을 올리셨더라고요.


예전에 회사 블로그에 푼돈 받고 썼던 칼럼 비스무리한 글조각 중, 카레라이스의 유래에 대한 내용이 있어서 옮겨와 봅니다.


디피에는 고수분들이 많아서 좀 우스우실지도 모르겠지만, 용기 내어서 한번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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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오늘은 먹는 이야기로 시작해 보죠. 노란색에 야채와 고기 덩어리가 들어가 있고 매콤한 음식이 뭔지 물어본다면, 십중팔구 다들 카레라고 대답하시겠죠? 그만큼 맛있고 친숙한 음식이니까요. 카레 안 좋아하시는 분들은 거의 없으실 겁니다.

 


[먹음직한 카레라이스. 보기만 해도 츄릅추릅~]


그럼 살짝 질문을 바꿔서. 카레가 어느 나라 음식이라고 물어보면 어떨까요? 대개는 인도라고 대답하실 겁니다. 맞죠. 인도요리. 노라조도 ‘카레’ 라는 노래에서 ‘타지마할~ 나마스떼~~~’ 이러잖습니까.


그런데 정통 인도카레를 한번이라도 드셔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사실 우리가 먹는 형태의 카레는 오리지널의 그것과는 형태가 많이 다릅니다. 향만 비슷하다 뿐이지 다른 음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오늘은 모두가 좋아하는 음식인 카레라이스의 역사를 한번 파보겠습니다. 그런데 뜬금없이 웬 카레 이야기냐. 드디어 소재 고갈이냐. -- 그건 아니고요. 카레라이스 하고 비타민 B1의 역사하고는 깊은 관련이 있거든요.



각기병이라는 병이 있어요. 영어로는 Beriberi라고 하는데, 스리랑카 말로 ‘못해, 못해’ 라는 뜻입니다. 팔과 다리에 신경염이 생겨 통증이 심해지고 완전히 부어오르는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팔다리를 구부릴 수 없어서 생긴 병명이죠. 초기에는 입맛이 없고 팔다리에 힘이 없는 가벼운 증상만 나타나지만 시간이 지나면 근육이 마비되어서 걸음도 못 걷게 됩니다. 원인은 다 짐작하시겠죠. 비타민 B1 의 결핍입니다. 사실 먹는 것만 제대로 먹으면 걸릴 일이 없는 병입니다만, 옛날에는 그렇지 못했으니 꽤나 심각한 병이었죠.

 

[일본의 각기병 환자. 무릎을 굽힐 수 없어요]

 


비타민 B1은 보리나 쌀, 콩 같은 곡물이나 돼지고기 같은 음식에 많이 들어있어서 각기병은 역사적으로 그리 흔한 병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쌀을 주식으로 하는 동남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이야기가 달랐죠. 재미있는 사실은 주로 발병하는 계층이 잘 사는 부자들이었다는 점입니다. 특히 일본에서 발병 빈도가 높았는데, 일본에서는 각기병을 ‘부자병’ 이나 ‘에도병’(에도는 당시 엄청난 대도시였죠)이라고 부르기도 했답니다. 쌀에 비타민 B1이 들어있는 부분은 쌀눈과 껍질 부분인데, 부자들은 도정한 백미를 즐겨 먹어서 자연스럽게 비타민 B1의 섭취가 부족했던 거죠. 반면 거친 현미나 보리밥을 주식으로 했던 하층민들이 각기병에 걸리는 일은 드물었습니다. 그런데 메이지 유신 이후 도정 기술이 발달하고 쌀 공급이 급증하면서 강아지나 송아지나 백미를 먹을 수 있게 되고, 그 결과 일본의 각기병 환자는 더 늘어나게 되었죠.


당시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계기로 서양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군사 부문도 예외가 아니어서 당시 최강이던 영국 해군을 완전히 모방하고 있었어요. 군함도 수입하고 조직과 전술 체계 역시 영국과 프랑스의 것을 많이 받아들였죠. 그런데 입맛만은 쉽게 바꿀 수 없는지라 식단은 여전히 쌀밥과 미소시루(된장국), 짱아찌 같은 것들로 이루어졌습니다. 쌀밥은 당연히 백미였고요. 그러다 보니 일본 해군의 각기병 환자는 매우 많아서 해군 전체 인원의 30% 정도는 항상 각기병에 걸려있었다고 해요. 게다가 당시에는 쌀만 군대에서 조달하고 나머지 부식비는 계급에 따라 현찰로 지급했었는데, 대개 가난한 집 출신들이 많았던 하급 수병들은 그 돈을 아껴서 집에 부치고 자기는 고봉밥만 와구와구 퍼먹는 사례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환자는 더욱 늘어났죠. 대항해 시대의 괴혈병 만큼이나 각기병은 일본 해군에게 있어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항상 이런 위기상황에는 인재가 나타나는 법. 여기서 등장하는 인물이 다카기 가네히로라는 양반입니다. 영국인 의사에게 의학을 배운 다음 일본 해군 최초의 군의관 유학생이 되어 영국에서 의학을 베운 해외파 엘리트였죠. 1879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가네히로는 해군 의무국 부장 자리를 꿰차고 앉아 각기병의 원인을 파고들기 시작합니다. 당시 각기병의 원인에는 ‘세균설’, ‘풍토병설’ 등등이 있었는데, 여러모로 조사한 결과 이상한 점을 발견합니다. 계급이 낮을수록 빈도가 높고 기항지에서는 발병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죠. 서양에서는 각기병이 거의 없다는 점도 주목을 끌었습니다. 가네히로는 각기병 원인이 쌀을 주식으로 하기 때문에 단백질 섭취가 부족해 생긴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죠. 폴란드 화학자인 풍크가 현미에서 최초로 각기병 예방 물질을 분리하고 비타민이라 이름붙인 것은 1911년이나 되어서이니, 당시로서는 각기병이 비타민 B1의 결핍증이라는 것을 알 도리가 없었습니다.
 

 


 [다카기 가네히로. 각기병의 퇴치에 앞장서다]


그는 새로운 가설로 ‘질소(단백질)부족설’을 내세우고 해군 식단의 개편에 착수합니다. 일단 부식비를 현찰로 지급하던걸 현물로 지급하도록 바꾸었고, 이와 더불어 식단을 완벽하게 양식으로 바꿀 것을 건의합니다. 그런데 그게 쉽나요. 그의 주장을 미심쩍어 하는 경향도 있었고 음식을 서양식으로 바꾼다는 데 대한 정서적인 반발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결국 해군 상층부는 장기간 항해에 양식 식단을 시험해 보기로 결정합니다.

 

1884년 2월 연습함 츠쿠바가 일본을 떠나게 됩니다. 식단은 쌀과 육류, 생선, 비스켓, 보리빵, 연유 등등이었습니다. 뉴질랜드와 칠레, 하와이를 걸쳐 9개월간의 항해를 마치고 귀환했을 때 각기병 환자는 15명 밖에 없었는데, 동일한 코스로 1882년 항해했던 연습함 류조가 169명의 환자를 냈던 것에 비하면 굉장한 성과였죠(게다가 류조에서는 사망자가 23명이나 되었어요.). 이를 계기로 일본 해군의 양식 식단 도입이 결정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돈과 사기저하라는 현실적인 문제가 불거집니다. 쌀밥을 빵으로 완전 대체하자니 비용도 엄청나게 늘어나고, 게다가 매일같이 쌀밥만 먹던 수병들에게 빵과 스튜 같은 것만 먹이니 사기가 떨어지는 것이 당연하죠. 츠쿠바의 항해 때는 밥 때만 되면 배 주변에 빵이 둥둥 떠다닐 정도였다니 거부감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하실 겁니다.


결국 보리빵 대신 쌀에 보리를 섞는 걸로 타협을 하고, 다른 양식도 일본인의 입맛에 맞게 약간씩 변형되었습니다. 당시 비교적 반응이 좋았던 메뉴 중 하나는 영국군 스타일의 비프스튜였는데, 이건 오리지널 비프스튜가 아닌 카레 가루가 섞인 비프스튜였어요. 오래 저장한 재료의 군내를 없애기 위해 카레 향신료 가루를 살짝 넣기 시작한 것이 인도 주둔 영국군을 시작으로 유행한 건데, 일본 해군에서도 이 메뉴를 도입한 거죠. 빵에 찍어먹는 대신 쌀밥에 얹어먹기 좋도록 점도를 좀 더 걸쭉하게 한 것이 우리가 먹는 카레라이스의 유래입니다. 이를 계기로 각기병 환자는 획기적으로 줄어들게 되고, 1890년에 들어서는 매주 토요일에 카레라이스가 배식되는 것이 전통으로 자리잡게 되죠. 당시 일본 민간에서도 싼맛에 양식을 즐길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해군 기지를 중심으로 카레라이스가 널리 퍼져나가게 됩니다. 당시 함께 유행했던 음식 중 하나는 포크 커틀릿의 일본식 변형인 돈까스.


 

 



[일본 해상자위대의 식사 풍경. 식판이 단촐하네요]

 


덕분에 일본의 해군 기지가 있던 요코스카나 사세보 같은 고장에는 전통을 자랑하는 ‘해군카레’가 지역 명물로 인기를 끌고 있고, 현대의 일본자위대 역시 휴일 전날인 금요일에 카레라이스를 배식한다고 하네요. 각 함 별로 전해져 내려오는 카레 비법을 겨루는 대회도 정
기적으로 개최된답니다.

 

 



[상품화되어 팔리고 있는 즉석 해군카레. 일본인의 상술은 역시 대단]

 

 

 

오늘 저녁 메뉴로 감자와 당근이 큼직하게 담긴 카레라이스 어떠세요?

 

 

 

ps. 덧붙이자면, 당시 각기병 문제를 해결한 건 해군 뿐이었습니다. 육군 군의총감 이었던 모리 나가이는 각기병의 원인이 ‘세균설’ 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요. 해군 군의총감과 대판 싸우면서 까지 육군의 보리 급식을 끝까지 반대했고, 덕분에 러일전쟁 당시 일본 육군은 각기병 환자 25만명, 사망 3만명이라는 대기록을 달성합니다. 당시 해군은 이미 보리밥 급식을 시행하고 있었는데 각기병 사망자는 딱 세 명이었습니다. 쓸데없는 똥고집이 어떤 결과를 불러오는지 보여주는 화끈한 사례.

 


참고자료
Wikipedia Japan 다음 각 항목 :  カレ?, カレ?ライス, 海軍カレ?

쓰지하라 야스오, 음식 그 상식을 뒤엎는 역사(창해)
이사무의 Soft한 해군사 블로그

 

 

여기서부턴 부록

 

재미있는 사이트 하나 소개할게요. 일본 자위대의 음식 레시피를 공개하고 있는 자위대 ‘공식’ 사이트입니다. 그 중에서도 카레는 특별 취급이군요.

 

http://www.mod.go.jp/msdf/formal/family/recipe/archive/currey.html

 

조금 더 서비스. 1908년 일본 해군 요리기술집에 실린 오리지널 해군카레의 레시피 번역입니다.

 

1. 쌀을 준비해 둔다
2. 고기(소고기 또는 닭고기), 양파, 당근, 감자를 주사위모양으로 자른다
3. 우지를 두른 팬에 밀가루를 볶은 다음, 갈색이 되면 카레 가루를 넣고 수프를 첨가해 농도를 맞춘다
4. 고기와 야채를 볶아 3에 넣고 약한 불로 끓인다. 감자는 양파와 당근이 다 익을 때쯤 넣는다.
5. 1의 쌀을 스프로 밥을 해 접시에 담는다
6. 4를 소금으로 간해 5에 얹어 배식한다
7. 배식시에는 처트니 등의 채소 절임을 곁들인다
(수프에 대해서는 별 언급이 없는데, 닭뼈나 소뼈를 이용해 국물을 낸 간이 부용이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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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13-01-05 22:13:25

팟캐스트 '남경태의 타박타박 세계사'의 한 코너를 보는거 같네요.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전 카레하면 이치로가 우선 생각나더라고요.

몸 컨디션 변화를 적게 하기 위해 매일 카레를 먹었다는 이치로.

뭐 요즘은 카레 대신에 소면으로 한다죠.

2013-01-05 22:14:55

오히려 한국카레가 인도카레에 더 가깝다고 들었는데

2013-01-05 22:16:21

..오 이런 정보를 풀어주시다니, 고맙습니다.. 홋가이도쪽은 내용물은 흡사한데 카레탕같은 것을 - 그러니까 국물이 평소에 일본에서 접하는 카레라이스에 비해 많은 - 팔더군요..

2013-01-05 22:22:51

쏙 들어 오는 읽을거리네요.
2013-01-05 22:38:11

재밌네요. 카레는 역시 오뚜기카레!

WR
1
2013-01-05 22:39:45

호옷. 졸필인데 좋게 읽어주시니 감사합니다. ㅎㅎ

2013-01-05 22:58:57

오뚜기 카레가 생각나서 올려봅니다.

7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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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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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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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추억의 인물들..

2013-01-05 23:34:27

http://pjj9901.blog.me/120143116561

2013-01-05 23:01:42

카레는 당일의 뜨거운 카레보다 차갑게 식었지만 걸죽해지도 끈적한 맛도 늘어난 다음날카레가 더 맛있어요 자칫 똥먹는 기분이 들때도 있지만 밥에 비비지 않고 밥한술에 카레똥 한무더기 얹어 먹으면 최고

2013-01-05 23:20:14
2013-01-05 23:28:45

가끔보면 지저분하게 잘 싼 똥은 카레보다 맛있어 보일 때가 있어요 또 굉장히 터프하게 만든 카레는 똥덩이 보다 못해 보일때도 있겠구요.
물론 저는 똥을 먹진 않습니다

2013-01-05 23:50:41

간만에 긴글 재미있게 읽았습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2013-01-06 01:41:59

와우!! 역시 디피는 배움의 보고입니다.
정말 또 하나 큰 것을 배웠네요.
감사합니다!!

2013-01-06 01:46:26

제가 전에 본 글은 당시 일본의 사대주의의 모습이 많이 보였었는데 이렇게 보니 또 그냥 그렇군요.

2013-01-08 11:28:08

멋진글~~ 뒤늣게 와서 보게됩니다. ^^*

2013-01-18 12:21:28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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