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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게]  박찬욱 감독님이 평한 샘 레이미의 [다크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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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7-02 16:50:47
[스파이더맨2]를 보고 샘 레이미의 초기작인 1990년작 [다크맨]을 분석한 박찬욱 감독님의 글을 읽어 보았습니다. 다시 읽어보니 레이미 감독이 [스파이더맨]을 만들기 위한  내공을 10여년 전부터 길러왔음이 느껴집니다.

샘 레이미의 재능과 연출 스타일을 파악할 수 있는 글이라 생각되어 긴글이지만  전문을 올립니다. 즐감 하세요 ^^


난 아무도 아니다: 다크맨 (1990), 샘 레이미 감독

* 난 아무도 아니다 My name is Nobody (1974)- 토니노 발레리 감독, 세르지오 레오네 (고문)


초저예산 16밀리 [이블 데드]로 그 영화 경력을 시작한 레이미의 4번째 작품은 놀랍게도 메이저 스튜디오인 유니버설 제작의 블록 버스터였다. 이로써 이 컬트 감독은 메인 스트림에 합류했는가? 익사당하지 않고? 적어도 이 [다크맨]에서 레이미는 어리석게 돈의 무게에 짓눌리기보다는 그것을 어린애처럼 즐겁게 가지고 논 것 같다. 그 놀이의 방식은 어른들의 흉내내기이고, 레고 블록의 해체와 재구성이고, 퍼즐의 그림 맞추기이며, 술래잡기, 닌텐도 전자 게임, 또는 윌리의 숨은 그림찾기이다. 그래서 당연히 이 영화는 제멋대로이다. 무섭다가 후련해지고, 슬퍼할 만하면 웃긴다. 경쾌한 비장미? 엄숙한 오락?

이 혼란은 무엇보다도 스타일의 혼합, 장르의 상호침투, 기성 영화의 혼성모방에 기인한다. 레이미를 한마디로 규정하라면 '패로디하는 사람'. [이블 데드]는 조지 로메로류의 좀비 영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와 EC 코믹스류의 공포 만화 ([크립쇼] 시리즈)를, [크라임웨이브]는 수많은 액션/코미디 영화의 콘벤션을, [이블 데드2]는 [이블 데드]를 각각 패로디하고 있거니와, 물론 [다크맨]도 예외는 아니다. 강산성의 공업 용수에 빠지는 바람에 제 얼굴을 잃는다는 비극은 이미 [배트맨]의 조커가 충분히 겪었던 것이고, 가면을 쓰고 숨어서  옛 애인의 변절을 훔쳐본다든가, 자기를 그렇게 만든 놈을 잔인하게 처단하는 일들은 [오페라의 유령]이 벌써 몇 번이나 리메이크되어 가면서 모범을 보인 바 있다. 미래 도시를 건설하려는 자본가와 거기서 이권을 챙겨보려는 깡패 두목 사이의 하도급 계약을 먼저 체결했던 영화는 [로보캅]이었고, 폐쇄된 공장을 부활의 근거지로 선택한 이도 로보캅이었다. 전신을 감은 붕대로 의상을 대신했던 사람은 [미이라]와 [투명인간], 괴물로 변신하는 과학자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와 [투명인간], 그리고 [더 플라이]에 나온다. 타인의 얼굴로 변해 악당을 혼내준다는 발상은 [이너 스페이스]에서 본 것이고, 빗물이 빠져나가는 하수구 구멍에 눈동자를 디졸브시키는 아이디어는 [싸이코]의 모방이다. 강철 못을 발사하는 총은 [죽음의 카운트 다운]에서, 케이블에서 매달려 철제 빔에서 빔으로 이동하는 줄타기는 [타잔]에서..... 이 명세서는 끝이 없다. 결국 [다크맨]은 역사상 가장 비싼 패로디 영화인 셈. 

이런 영화적 유희에 1,400만 달러를 투자한 유니버설에 경의를! 하고 외치려다 보니 여기에도 중요한 내력이 숨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1930년대를 풍미했던 유니버설제 (製) 공포영화의 전통. 스튜디오 전성기가 시작되었던 그 시절, 이른바 '프로덕션 아이덴티티'라고 하는, 상품 차별화 정책 또는 특정상품 집중 개발전략에 의해 유니버설은 공포 영화에 사운을 걸었었다. 그 덕분에 제임스 훼일, 토드 브라우닝, 로버트 플로리 같은 대가들이 [드라큘라], [미이라], [프랑켄슈타인], [투명인간], [모르그가의 살인]. [늑대인간] 등의 고전을 속속 발표할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당연히 여기서도 반복되고 있는 '미친 천재', '오해받은 괴물'의 테마를 영화적으로 확립한 공헌은 절대적으로 유니버설의 몫. 그로부터 60년 후, 레이미는 할아버지 세대의 은공에 [다크맨]으로 보답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여기가 메인 스트림과 컬티스트가 만나는 지점이며, 어쩌면 우리는 이것을 컬투 정신의 계보학으로 부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문제는 인공 피부 조직의 지속 시간이다. 빛에 노출된 채 100분을 지속하지 못한다는 치명적인 결점 때문에 페이튼의 연구는 실패를 거듭한다. 그러나 갱들이 습격하기 직전, 연구실의 전원을 차단하는 바람에 이 세포벽 해체의 원인이 밝혀진다. 어둠 속에서 피부는 제한 시간을 넘겨 유지된다. 세포는 감광성이었던 것. 본의 아니게 듀란 갱들은 페이튼의 교사가 된다. 나중에, 페이튼의 애인 줄리가 페이튼/다크맨의 은신처를 방문함으로써 미행하던 악당들에게 그의 은신처를 본의 아니게 폭로하듯이 말이다. 페이튼이 괴력의 소유자가 되는 것도 자기가 원해서가 아니다. 의사들이 화상의 통증을 제거하기 위해 통증 전달 신경을 절단해 버렸기 때문이다. 이로써 그는 고통을 잃고 고독감, 분노, 완력을 얻는다. 이렇듯 여기서는 영웅, 악한을 막론하고 모두들 '자기 의사와는 상관없이'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삼는가 하면, 원대한 계획을 망쳐버릴 숙적을 창조해내고 있다. 공통점이라면 어느 쪽이나 그 결과는 '다크맨의 탄생'이라는 점.

페이튼이 다크맨일 수 밖에 없는 이유는 깨끗한 피부의 마스크가 밝은 곳에서는 100분 이상 못견디는 저 게임의 규칙 때문이다. 마스크를 벗으면 화상으로 흉칙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돌아가야 하는 페이튼은 그것의 착탈 여부와 무관하게 음지 신세를 벗어날 길이 없다. 영화 [다크맨]이 지닌 비극성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다. 정상인으로서의 그에게 유예된 시간은 너무 짧고 괴물로서의 그에게 열등감은 너무 크다. 누군가의 얼굴을 닮은 마스크를 쓰기만 하면 번번이 시간을 초과하는 바람에 그것은 연기를 내며 문드러져 버리기 일쑤인데, 이때 얼굴을 가리고 고통에 몸부림치며 달아나는 그는 최초의 화상 체험을 몇 번이고 반복하는 것이 아닌가. 얼마든지 새로운 인물로 몇 번이고 탄생할 능력을 지녔으되, 그때마다 그는 100분만에 죽어야 한다. 인조 피부의 '완전 부식 Total Decay'은 바로 죽음의 은유라는 이야기. 그리고 이 죽음과 부활의 모티브는 그가 예수처럼 못박히는 최후의 결투 장면에 이르러 분명해진다 (더 나아가, 이 괴물 예수가 헬리콥터에 매달려 날아가는 모습에서 펠리니 [8 1/2]의 유명한 예수 대리석상 운반 장면을 떠올릴 수 있으리라).

마스크만 있으면 누구로라도 변신할 수 있다는 설정은, 얼굴이 바로 그 사람의 아이덴티티라는 가정에 기초하고 있는데, 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역이용하는 페이튼이야말로 사실은 이 유물론의 가장 큰 피해자이다. 얼굴을 잃은 그는 사실상 '아무도 아닌 사람'이 된 것이고, 자기의 원래 얼굴을 만들어 봤자 그것은 타인의 원래 얼굴과 아무런 차이가 아무런 차이도 없는 하나의 마스크에 불과할 뿐이다. 스스로를 '타자'로 인식하게 되었을 때의 공포! 마스크를 자기로 간주한다 하더라도 역설은 남는다. 원상을 잃었으니, 마스크는 사진을 근거해서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즉 오리지널이 복제를 낳는 것이 아니라 복제가 오리지널을 낳는다. 마침내 주체와 오리지널의 개념은 완벽하게 증발해 버린다. 레이미가 눈동자의 이미지에 그토록 집착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앞의 하수구 장면과 현미경을 들여다보는 쇼트들을 빼고도 여기에는 숱하게 많은 동공 빅 클로즈업 쇼트들이 있는데- 주로 페이튼의 분노와 광기를 표현할 때 쓰인다- 이 눈의 중요성은 자아와 외계를 연결시키는 창구라는 점과 그의 얼굴에서 유일하게 손상되지 않은 부분이라는 데 있다. 다시 말해, 그것은 오리지낼리티를 보존하고 있는 기관이다. 레이미는 참으로 적절하고도 탁월한 방법으로 그 점을 지적한다. 가스 폭발 장면을 보라. 이 대참사는 단지 페이튼의 동공이 급속하게 수축하는 단 한 커트로 요약된다.

(심지어 [킹콩]을 포함해) 괴물 공포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괴물의 육체/천사의 마음' 테마의 또 다른 변형으로서 [다크맨]은, [미녀와 야수]같이 편리한 결론에 손쉽게 도달하지 못한다. 얼굴의 왜곡에 심리의 왜곡이 뒤따르는 것이다. 얼굴의 왜곡에 심리의 왜곡이 뒤따르는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페이튼은 광폭해진다. '그녀는 내면의 날 사랑할 거야'라는 믿음은, 얼마 못가 '가면을 만들자, 내면의 내가 변하기 시작했다'라는 성찰에 의해 공격받는다. 이제 설사 줄리가 그의 망가진 얼굴을 받아들인다 하더라도 사랑은 유지될 수 없게 된다. 때문에 그는 모든 적들을 처단하고도 여자에게 돌아가지 못한다. 철근의 정글에서의 대회전, 그 복수의 밤이 지나고 아침이 밝아오자 출근길의 인파에 섞여 사라지면서 그는 말한다. "페이튼은 이제 갔소.... 난 모든 사람이면서 아무도 아니오...... 어디에 있으면서도 어디에도 없소...... 날 다크맨이라 불러주오." 미리 준비한 새마스크를 뒤집어 쓴 그가 돌아본다. 그것은 익명의 얼굴이지만 그 배우는 브루스 캠벨. 레이미의 트레이드 마크인 [이블 데드] 3부작의 주인공이다. 단골로 출연하는 동생 테오도르 레이미 (듀란의 심복 릭 역)와 함께 캠벨의 등장은 레이미의 영화적 서명이다. 얼굴은 아이덴티티니까....

아직은 끝이 아니다. 영화가 꺼졌을 때 우리는 또 하나의 무서운 농담을 실감해야 한다. 페이튼의 100분은 바로 상업 영화의 평균 상영 시간을 나타내고 있음을. 이 허구의 아이덴티티가 견딜 수 있는 한계 시간임을.

* 서울 양천 경찰서는 12일 폭력 비디오의 범죄를 모방해 비디오 가게를 턴 뒤 여주인을 가스 폭발 사고로 위장, 살해하려 한 양희모 씨에 대해 살인미수 등 혐의로...'평화 비디오' 가게에 들어가 주인 김모씨를 흉기로 위협... 김씨의 손발을 묶고 안방 장롱에... 이어 부엌에 들어가 LPG가스 레인지를 켠 뒤 고무 호스를 잘라 가스가 새어나오도록 하고...4곳에 담뱃불을 놓아 김씨를 가스 폭발로 위장 살해하려..."평소 자주 보던 비디오 장면처럼 범행을 저지르고 싶은 충동을 일으켜 이 같은 짓을 저질렀다"고.....1993년 4월 12일자 문화일보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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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04-07-03 02:27:21

아 어렵다^^^^^

2004-07-03 07:11:05

사실 다크맨은 스파이더맨에서 보여주는 현란한 카메라워크를 미리 연습한것 같은 느낌을 주더군요.
80년대 후반에 개봉한것으로 기억하는데 그당시 영화보면서 샘레이미 감독이 히치콕 감독을 너무나 좋
아하는것 같았습니다. 오마쥬라고 해야하나? ^^;;
아무튼 저에게 있어서 '다크맨'은 너무나 슬픈 히어로 영화로 기억됩니다.

WR
2004-07-03 10:12:32

히치콕은 샘 레이미뿐 아니라 박찬욱 감독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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