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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우묵배미의 사랑 재개봉&필소토크(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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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8-11-03 17:4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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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세태 풍자극이나 세태를 반영시킨 서민극을 좋아한다. 1960년대 제작된 일련의 김승호 주연의 서민극들이나 박완서가 써내려갔던 다수의 세태 문학, 많이들 좋아하는 김운경 드라마의 사람 냄새 가득한 서민들의 삶 등 매 시기마다 나오는 세태 문학 정서의 작품은 늘 취향에 맞았다. 박영한의 작품이자 장선우의 작품이기도 한 [우묵배미의 사랑]도 그 중 한편이다. 국산 영화로 좁히자면 배창호 감독의 [꼬방동네 사람들]같은 작품과 더불어 손꼽아 선호하고 있는 사실주의 서민극이다.

 
2017년에 한국영상자료원에서 [꼬방동네 사람들]에 이어 [우묵배미의 사랑]까지 복원시켜 블루레이가 출시됐을 때 두 작품 다 출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구매했다. 아직은 dvd로도 충분하기 때문에 값비싼 블루레이 구매에는 소극적인 편인데 굳이 블루레이로까지 볼 필요는 없는 두 작품을 작품에 대한 애정으로 장만했다. [꼬방동네 사람들]블루레이는 알라딘 중고 매물에서 건졌지만 [우묵배미의 사랑]블루레이는 새 제품으로 제 값 다 주고 산 타이틀이었다. 두 작품 다 블루레이 출시 소식에 아주 기뻤고 발매일을 기다렸다. 새 제품으로건 헌 제품으로건 필히 구입할 목록에 쟁여 둔 작품들이었다. 특히 [우묵배미의 사랑]블루레이는 박중훈과 장선우가 코멘터리 녹음에 참여한 소식을 들었기 때문에 복원판 출시가 더욱이 반가웠다.
 
세태를 반영시킨 서민극은 우리 삶과 함께 간다. 시대마다 그 시기를 다룬 세태 풍자극이나 세태 문학은 누군가에 의해 꼭 묘사됐으며 영상 산업의 발전과 함께 갔다. 텔레비전 드라마로도 숱하게 만들어졌고 지금도 제작되고 있는 것이 세태를 반영시킨 정겨운 서민극이다. 세태 문학 역시도 오리지널 각본의 토양이 부족했던 20~30년 전만 해도 텔레비전에서건 영화계에서건 나오는 족족 영상화 됐었다. 박영한의 왕룽 연작 중 한편인 중편 [우묵배미의 사랑]도 한 시절 분위기를 타고 영화화 됐던 작품이다. 개봉 당시 흥행에 실패한 이유는 그 무렵에는 흔히 볼 수 있었던 서민극이자 박영한의 세태 문학 각색물이라는 기시감 때문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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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 박영한의 작품은 각색물로 인기가 좋았다. 이 시기에 영상화 됐던게 [왕룽일가][우묵배미의 사랑][우리는 중산층][머나먼 쏭바강]이다. 배트남 전쟁을 소재로 한 시대극 [머나먼 쏭바강]은 [여명의 눈동자]이후 대작 제작 열풍에 취해서 시도된 sbs의 야심찬 기획이었고 [우묵배미의 사랑]과 [우리는 중산층]은 1989년 방영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끈 kbs2드라마 [왕룽일가]의 영향으로 발빠르게 각색됐던 작품들이다. 두 작품은 드라마 [왕룽일가]의 성공으로 박영한의 동명 원작이 출간되자마자 바로 각색 작업에 들어갔다.
 
[우묵배미의 사랑]은 1989년 7월에 민음사를 통해서 출간됐는데 영화는 1990년 3월 31일에 개봉했다. 1991년 8월부터 방영된 16부작 미니시리즈 [우리는 중산층]의 동명 원작은 1990년 12월에 세계사에서 발간됐다. [우묵배미의 사랑]과 [우리는 중산층]은 드라마 [왕룽일가]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아 각색이 시도된 서민극이었다. 드라마로 [왕룽의 대지]란 속편까지 나온 [왕룽일가]나 이제는 고전으로 자리 잡은 [우묵배미의 사랑]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우리는 중산층]도 좋은 작품이다. [왕룽일가]는 유선방송 재방송으로 띄엄띄엄 봤었고 [우리는 중산층]은 방영 이후로는 구해보기 어려워서 다시 보지 못했지만 방영 당시엔 재밌게 봤었다. 아파트 입주에 성공한 주인공 부부가 행복해 하던 마지막회 장면이 떠오른다. 이 작품 타이틀 음악이 좋아서 테이프로 녹음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원작도 절판된지 오래다.    
 
[우묵배미의 사랑]은 개봉 전 화제를 모은 것이 무색하게 개봉관에선 초라한 성적을 거둔 흥행 실패작이었다. [왕룽일가]의 성공으로 박영한의 원작이 어느 때보다도 주목 받고 있던 시기에 연장선격인 흐름으로 영화까지 제작된 분위기였고 드라마와 같은 세계관을 갖고 있는 연작 구조라 영화의 흥행에 대한 기대를 모았지만 드라마와 달리 영화는 관객들의 주목을 별로 끌지 못했다. 극장가에서의 외면과 달리 작품은 개봉 당시에도 호평을 받았고 남다른 행보를 보였던 장선우 감독 때문에라도 꾸준히 회자가 되면서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영상자료원의 복원 지원을 받아 이제는 유튜브에서 무료로도 볼 수 있고 블루레이 출시란 축복까지 얻었으니 작품성에 대한 인정은 앞으로 더 두터워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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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성이 높은 저장 매체의 도움이 영화 [우묵배미의 사랑]의 생명력을 키운 감은 있다. 오늘 날 박영한 원작의 각색물 중 가장 접근성이 좋은게 [우묵배미의 사랑]이다. 나머지 각색물은 접근성 자체를 따질 수 없게 다시보기 기능이 막혀 있다. 완성도 면에서는 드라마 [왕룽일가]나 [우리는 중산층]도 영화 [우묵배미의 사랑]못지 않게 높은데 옛날 드라마의 굴레로 다시보기가 어려워 직접적인 평가가 너무 어려워진 현실이다. 영화는 유튜브 서비스나 블루레이 같은 신 매체의 이식이 없었을 때도 비디오는 나와 있었기 때문에 찾아보려면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었다.
 
영화 [우묵배미의 사랑]은 호흡이 긴 드라마와 달리 한번에 볼 수 있는 2시간 미만의 분량 덕으로 접근하기가 간편했고 직접적인 평가에서도 유리한데 훌륭한 완성도도 갖추고 있다. 그 덕에 방영 이후 잊혀졌고 잊혀질 수 밖에 없었던 여타의 박영한 원작 각색 드라마나 서민극들과 달리 대표적 서민 멜로극으로 명줄을 늘릴 수 있게된 것 같다. 표현 수위를 강화시킬 수 있는 영화 매체의 장점도 컸다. 장선우의 수려한 연출력이 관람 연령에 제한을 둔 영화와 만나면서 사전 검열로 난도질 당하기 쉬운 그 시절 영화보다도 더 제약을 받을 수 밖에 없는 텔레비전 드라마와는 다른 질감을 부여할 수 있었다.
 
사실주의에 주력한 영화는 박영한이 원작에서 그려낸 고도성장의 그늘로 내몰린 도시 빈민의 빈궁한 삶과 경제 발전 속에 소외된 현대 서민들의 애환을 실감나게 녹여낼 수 있었다. [꽃잎]까지는 주로 소설 각색물에 눈을 돌렸던 장선우는 대체로 원작의 구성를 따르는 감독이었다. 영화 [우묵배미의 사랑]의 완성도는 좋은 원작을 제공한 박영한의 힘이 무엇보다 크며 박영한 원작을 잘 이해하고 재조립시킨 각색의 무난한 감각이 안정적으로 결합된 산물이다.
 
영화의 극 초반에 배일도 가족이 도시에서 반농반도로 설정된 가상의 마을인 우묵배미로 이사를 갈 때 대조적으로 담아낸 발전된 도시의 풍경을 볼 수 있다. 초라한 이삿짐을 가득 실은 트럭 짐칸에 차비를 아끼기 위해 불법으로 몸을 숨긴 배일도와 트럭 보조석에 젖먹이 아이를 안고 탄 새댁의 모습은 언제 봐도 쓸쓸하고 측은하다. 결국에는 도시의 삶에서 밀려난 뒷골목 인생이지만 잡초같은 생명력으로 내일의 희망에 기대는 몸부림이 서민적 애환으로 가슴 시리게 묻어난다.
 
의도된 촌스러움으로 분위기를 잡는 배경 음악 속에 잘 닦인 거리와 도로, 휘황찬란하게 세워진 고층 빌딩 등으로 겉만 번드르르하게 장식된 도시 풍경과 반농반도로 이사가는 배일도 가족의 대조된 상황은 눈부신 경제 발전 속에 뭉개지고 짓이겨진 서민들의 고된 삶을 암시적으로 보여주는듯하다. 사회 풍자극인 [성공시대]이후의 차기작으로 고문 경찰관 이야기를 그린 임철우의 이상문학상 수상작인 [붉은방]을 준비하다가 정부의 압력으로 엎어진 장선우가 차선으로 [우묵배미의 사랑]을 선택하고 각색한데에는 이런 목적이 있지 않았나 싶다. 원작에서도 드러난 바 있는 사회비판적인 은유가 극 곳곳에 깔려 있다. 도심의 화려한 조명 뒤에 느끼는 가난한 자들의 경제적 박탈감과 소외감, 급이 떨어지는 호텔은 어색해서 좌불안석이었다가 바구니에 신발을 보관해야 하는 허름한 여인숙에선 안정을 되찾는 모습 등의 대조된 모습들에서 연출의 목적을 읽을 수 있다. 원작에선 허세를 부리며 들어간 고급 바에서 어떤 술을 시켜야 할지 몰라 난감해 하는 배일도의 모습도 있고 술 맛을 돋우기 위해 내온 레몬을 기본 안주인 줄 알고 먹다가 술집 주인의 핀잔을 받는 장면도 나온다. 결혼도 못하고 살림을 차리게 된 민공례는 신혼 여행 경험도 없어 별 볼일 없는 호텔의 구조도 모른다.        
 
장선우 감독은 활동 당시 연출폭이 넓었고 작품마다 연출 색깔이 확확 바뀌었지만 사회에 대한 냉소적인 시선이나 풍자극의 응축된 정신은 실질적인 데뷔작인 [성공시대]이후 일관적이었던 것 같다. [우묵배미의 사랑]에서 경제 발전 속에 소외된 도시 빈민을 그려낸 결과는 원작의 정신과 일맥하며 원작에 없던 이사가는 장면 같은 것을 세부적으로 묘사함으로써 원작 곳곳에서 배일도가 느꼈던 소외감이나 사회적 박탈감을 함축적으로 잡아내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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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묵배미의 사랑]의 재개봉 소식에 설렜다. 지난 한국 영화의 재개봉 자체가 드물기 때문에 이 작품을 개봉관에서 다시 보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영화계에서 은퇴하다시피 한 장선우 감독까지 참여한 코멘터리가 실린 블루레이만으로도 고마울 지경인데 정식으로 개봉관을 잡고 28년만에 재개봉을 한다고 하니 감개무량이었다. 2017년 출시된 블루레이 코멘터리에 장선우와 박중훈이 참여했고 주연 배우들은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어서 정확한 재개봉 일정과 더불어 분명 잡힐 것으로 보이는 특별 간담회 상영에 대한 기대로 틈틈히 행사 진행 여부를 찾아 봤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자신의 전성기 시절 작품들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박중훈은 재개봉 홍보를 자처했기 때문에 최소 박중훈이 참석하는 간담회 상영은 재개봉 일정만 잡히면 정해질 것으로 예상됐다. 
 
관객도 관객이지만 제작진이나 배우들도 재개봉 목록에선 인기가 없는 한국 영화가, 그것도 28년 전에 나온 방화 시절의 명작이 복원 과정을 거쳐 재개봉을 한다는 것에 감회가 남다를 것이다. 간담회 현장에는 조감독과 공동 각색을 맡은 임종재 감독, 제작자 서병기도 있었다. 정한용도 왔다. 최명길이 방송국 동료 배우들에게 재개봉 축하 인사를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최명길 인맥으로 온건가 싶었다. 정한용은 영화가 다 끝나고 입장구를 통해 뒤쪽 객석으로 올라갔다.   
 
[우묵배미의 사랑]은 2017년에 블루레이가 출시됐고 유튜브에서 무료 서비스가 되고 있어서 이제는 찾아보기가 굉장히 쉬워졌지만 한국영상자료원이 화질과 음질을 복원하기 전까지는 구해보기가 굉장히 어려웠던 영화다. 2017년부터 흔해진 것이지 그 전에는 비디오 외에는 마땅한 대안도 없었다. 비디오로 아직도 간직하고 있는 작품인데 비디오테이프의 상태가 너무 떨어져서 일부 장면은 도무지 눈 뜨고 보기 어렵게 화면의 흔들림이 심하다. 블루레이로 구매했기 때문에 비디오는 없어도 그만이지만 블루레이 구입 전까지는 아꼈다.
 
한국 영화라 비디오 중고가가 비싸진 않았지만 내가 한참 비디오를 모으던 1990년대 중후반에도 [우묵배미의 사랑]은 그리 흔하게 볼 수 있는 비디오테이프는 아니었다. 중고를 발견했을 때 바로 구입했는데 화질은 처음부터 별로 좋지 않았다. 비디오 플레이어에 집어 넣자마자 비디오 헤드를 더렵혀 놔서 클리너테이프로 닦아가며 겨우 봤고 두번 정도 보고 난 뒤에는 재감상을 포기했다. 내가 두번 정도 보고 난 뒤 테이프의 수명이 다 했는지 화면 상태가 더 안 좋아졌다. 그나마 상영시간 내내 화면이 흔들린건 아니어서 소장 가치를 느끼고 보관하고 있었다. 작년에 블루레이로 다시 보기 전까지는 비디오 변환 파일로나 텔레비전 방영으로도 볼 기회가 없었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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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이 재개봉이 무산되지 않고 약속한 10월 재개봉을 지켰다. 2018년 10월 31일 개봉으로 가까스로 10월 재개봉 일정을 맞추긴 했는데 배급 규모가 재개봉이 무색하게 열악하기 그지 없다. 전국 유일의 멀티플랙스 상영관이 메가박스 코엑스점인데 그마저도 영화관이라 하기도 민망한 메가박스 코엑스점의 초소형관인 스크린관에서 틀어지고 있다. 나머지 극장들은 다 합쳐봐야 다섯관도 안 된다. 메가박스 아트나인을 멀티플랙스라 부를 순 없고 그 외의 극장들은 독립 영화관들이다. 다행이 정식 개봉 전 유료 시사회 형식으로 열린 특별 간담회로 285석 규모의 메가박스 컴포트 8관에서 1회의 상영 기회를 얻어서 희망대로 영화관다운 영화관에서 이 작품을 관람할 수 있었다.
 
한국영상자료원이 제 아무리 신경 써서 복원에 최선을 다했다 해도 옛날 영화 티는 날 수 밖에 없다. 동시 녹음 초창기의 작품이라 음질도 둔탁하고 우묵배미 마을의 밤 전경을 비추는 첫 장면도 흐릿하다. 화질과 음질은 복원에 한계를 보이는 옛날 영화의 표시가 난다. 그러나 극장의 스크린을 감당할 수준은 돼서 규모 좋은 메가박스 코엑스점의 컴포트관 상영이 절대 무리는 아니었다. 시설이 떨어지는 독립 영화관이나 홈시어터 수준의 메가박스 코엑스점의 스크린관에서 돌리기엔 아까운 복원 결과물이다. 취소되는 재개봉 희망작들이 많은 현실에서 이렇게나마 재개봉을 했고 특별 간담회가 열린 영향인지 메가박스 코엑스점에선 하루 3회씩 상영을 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그래도 이왕 재개봉하는거 접근성이 편리한 일부 멀티플랙스에서 하루 한 두회나마 상영의 기회를 얻어 관객과의 접점을 찾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재개봉 배급이 아쉽다. 그러나 배급 규모를 넓혔다 해도 관객 동원에는 비관적일 수 밖에 없는 현실이다. 첫 개봉 때처럼 재개봉도 관객들의 움직임을 이끄는데에는 실패한 것 같다. 볼 기회 자체가 적은 원인이 크기는 하지만 접근성이 좋은 메가박스 코엑스점에서 열린 특별 간담회 회차의 객석 점유율이 그리 좋은 편이 못돼서 여전히 [우묵배미의 사랑]은 28년 전이나 지금이나 개봉관에선 찬밥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우묵배미의 사랑]의 재개봉을 애타게 기다리는 관객은 그리 많지 않은 현실이다. 장선우 감독, 박중훈, 최명길, 유혜리까지 참석한 특별 간담회 회차가 마련됐는데도 매진이 안 됐고 유료 객석 점유율도 형편 없었다. 메가박스 필소토크 회차를 개봉 전 간담회가 껴져 있는 특별 상영이라고 생각했지 초대권 뿌리는 시사회 개념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는데 간담회 회차 보려고 현장에 가보니 시사회 표를 배부하는 장소가 있었다. 예매를 받기 전에 관계자용으로 빼놓은 좌석 수가 상당했는데 시사회용이기도 했나 보다. 특별 간담회 회차는 매진될 가능성이 높은데 [우묵배미의 사랑]이 받은 메가박스 코엑스 컴포트 8관의 285석은 끝까지 여유 있었다. 상영 직전에 남은 잔여석만 해도 80석이 넘었다. 시사회나 관계자용으로 빼놓은 좌석이 100석이 넘었는데 매진은 커녕 3분의 1가량 되는 공석이 나와 버렸으니 일반 유료 예매자는 사실상 100명도 안 됐다는 얘기다. 정식 개봉 이후 배부 받은 코엑스점의 스크린관 상영 회차에서도 [우묵배미의 사랑]의 좌석점유율은 형편없다.
 
특별 간담회 회차의 예매가 열린 날에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대략 12시간 동안 일반 예매로 빠져 나간 수량이 30석도 안 된다. 예매는 오전 9시경에 열렸을 것이다. 내가 그 날 오전 8시 20분대에 메가박스 어플에 접속했을 때는 예매창이 안 열렸었다. 2시간 정도 뒤에 들어가보니 예매창이 열려 있었는데 이미 중앙 뒷열을 기준으로 100석 정도가 벌어진 좌석 없이 깔끔하게 빠져 나간 상태여서 관계자용으로 미리 빼놓은 좌석임을 알 수 있었다. 잔여석이 150석대였을 때 예매를 했는데 12시간 정도에 다시 들어가 보니 잔여석이 120석대나 남아 있었다. 관람 당일, 상영 직전에도 온라인 잔여석은 80석이 넘었다. 간담회 회차로는 실패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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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담회에 대한 기대는 없었다. [우묵배미의 사랑]을 285석 규모의 윤택한 메가박스 코엑스 컴포트관에서 장선우 감독, 박중훈, 최명길, 유혜리가 참석하는 간담회 회차로 보는 것에 의미를 두었을 뿐 간담회에서 나올 흥미진진한 제작 비화에는 전혀 기대를 안 했다. 간담회 자체는 밋밋하게 진행될 것을 각오하고 움직였다. 장선우 감독, 박중훈이 참석한 블루레이 코멘터리가 기대와 달리 영화 [우묵배미의 사랑]를 이해하는데 별 도움이 되질 못했기 때문에 관객과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간담회 상영이라고 해서 배우나 감독이 할 얘기를 잔뜩 담아두고는 꼼꼼하게 준비했을 것 같지가 않았다. 그나마 기억력 좋은 박중훈 정도만이 간담회 상영이라는 것을 의식하고 성의껏 작품을 설명하고 기억을 되짚어 냈는데 그런 박중훈도 재개봉에 대한 감회를 밝히면서 자신의 지난 출연작들 중 [나의 사랑 나의 신부]의 개봉 년도를 1991년이라고 틀리게 말했다. 이걸 받아쓰기 기자들이 그대로 옮겨 기사를 작성했다.  
 
영화가 오래되기도 했지만 배우나 감독이나 작품에 대한 뚜렷한 기억이 없는듯 보였다. 장선우 감독은 간담회 상영이라는 것을 거의 의식하지 않고 아무 생각없이 참석한 것 같았고 이 작품 이후에도 많은 작품에 참여한 배우들은 희미한 기억의 혼선을 맞춰가며 씨네21 편집장인 주성철의 질문을 겨우겨우 따라가는 수준이었다. 다들 좋은 답변자는 못됐다. 작품에 대한 기억이 온전하지 못하니 촬영 비화도, 장면 분석도 쑥쓰러워 진 것이다.
 
주성철과 박중훈이 마이크를 뒤로 빼고 속닥거리다 새어 나온 얘기를 들어 보니 사전에 박중훈의 요청으로 관객 질문을 받지 않기로 한 것 같았는데 간담회 시간이 짧아서 관객 질문을 받을 여유도 없었지만 배우나 관객이나 작품에 대해 할 얘기가 너무 없어서 관객 질문을 받았다 해도 동문서답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박중훈도 이걸 알고는 민망해질 가능성이 농후한 관객 질문 시간을 빼달라고 한게 아닐까 싶었다. 블루레이 코멘터리에서 전혀 나아진게 없는 장선우 감독의 기억 상태를 보니 관객 질문은 받지 않은게 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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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와 감독 입장이 지연돼서 영화의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13분이 지나서야 간담회가 진행됐다. 간담회 시간은 50분이 채 안 됐는데 제작 비화나 작품에 대한 해석 자체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가장 많은 얘기를 한 박중훈의 설명도 기존에 씨네21 등에서 했던 회고담을 되풀이 한 것이라 새로운건 없었다. 의상을 실은 차를 도둑 맞은 일화나 너무 추워서 힘들었다는 얘기는 익히 알려진 얘기다. 박중훈의 기억으론 최명길이 너무 추우니까 덜덜 떨며 울고 있었는데 최명길 본인은 이를 기억하고 있지 못하다는게 그토록 추웠던 촬영장의 기억에서 추가된 정도다. 2시간짜리 영화에 들어가는 최소한의 필름이 1만자인데 [우묵배미의 사랑]은 5만자를 써서 충무로 기준에선 많이 썼다는 얘기도 박중훈의 입을 통해 전해졌다. 민공례의 촌스러운 의상은 제작진과 최명길이 상의해서 선별한 것이라고 하는데 당시 영화계가 의상, 분장은 배우 몫으로 돌리던 편이라 특이 사항은 아니다. 오죽 할 얘기가 없었으면 의상 얘기까지 나오나 싶었다.
 
최명길은 영화 자체에 대한 기억이 장선우 만큼이나 흐릿해서 성의껏 답변하려고 애를 쓰긴 했으나 질문이 요구하는 답변을 내놓진 못했다. 장선우는 본인 입으로도 이번 간담회 상영으로 영화를 보던 중 일이 있어서 초반만 보다가 상영관을 나갔고 간담회 시간에 맞춰서 들어왔단다. 최명길은 지난 출연작을 보기가 쑥쓰러워서 영화는 일부러 안 보고 간담회에만 참석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장선우 감독은 마지막 장면의 의미를 묻는 주성철의 질문에 마지막 장면이 어떻게 끝나는지 기억을 못해 대답하지 못했다.
 
작년에 블루레이 코멘터리를 녹음하면서 영화를 다시 한번 봤을텐데도 기억이 금세 휘발됐나 보다. 간담회가 끝나고 감담회에서 흘린 얘기들이 기사로 요약돼서 몇 줄 나왔는데 서너줄로 요악된 기사의 내용이 간담회에서 나온 이야기의 전부였다. 최명길이 낭뜨에 청룡까지 휩쓴 [장미빛 인생]이후 영화를 하지 않은건 예상대로 섭외의 문제로 하지 못한 것이고 유혜리는 알려진대로 이 작품이 배우로서 도약의 계기가 되었다고 밝혔다. 박중훈도 청춘 배우에서 성인 배우로 업계의 인정을 받게 해준 소중한 작품이라고 말했다.
 
질문 하나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장선우의 횡설수설 속에서 기억에 남는 것이 하나 있다. 사회자의 질문과 무관했던 장선우의 답변이었는데 장선우의 지난 연출 세계관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데 도움이 됐다. 충무로 활동 당시 극단적으로 성격이 갈리는 작품들을 연달아 만든 이유가 장선우 본인이 지우고 싶은 실패작이라고 치부한 [화엄경]의 소년처럼 삶의 답을 찾기 위한 수행의 방식, 혹은 구도의 여정이 아니었나 라는 식으로 말했는데 이 말을 장선우를 통해서 들으니 그의 종잡을 수 없었던 연출폭이 명확하게 설명되는 느낌이었다. 
 
극 초반에 최명길이 이대근한테 끌려 다니며 맞는 무시무시한 폭행 장면의 촬영 비화를 물었을 때 최명길이 그 장면을 찍고 다리가 풀리고 온 몸에 멍이 들어서 그날 남은 촬영을 접어야 했다고 말하는 걸 보니 들리던 얘기처럼 실제로 이대근한테 맞고 찍은 장면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방화 시절 한국 영화의 제작 방식은 참으로 겁이 없었고 무식했으며 무자비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아닌가 싶다. 사실주의를 잘못 이해하고 찍어낸 살벌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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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간담회 진행은 답답했다. 감독이나 배우들이 이 작품 이후에도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펼쳤기 때문에 기억의 두께가 눌린 것 같았다. 오래된 작품이기도 하지만 다들 바쁘게 작품 수를 쌓다보니 관객들이 느끼는 수준으로 각별하게 이 작품의 기억을 보관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이들이 간담회에 참석한 것은 시대의 명작으로 거듭난 작품에 대한 자부심과 책임감, 관객에 대한 보답, 감독, 동료 배우들과의 의리로 재개봉 기념 특별 간담회에 뜻을 보탠것 같다. 감독은 본인이 연출한 작품인데도 마지막이 어떻게 처리됐는지 기억도 못해서 질문을 물러야 했고 배우들도 29년, 28년 전 촬영 비화를 짚어내는데 안간힘을 써야 했지만 외면할 수도 있었던 간담회에 참석하는 것만으로도 [우묵배미의 사랑]이란 작품에 애정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박중훈의 주도로 주연 배우 셋과 제주도 삶에 정착한 장선우 감독이 소집되어 동창회 분위기로 [우묵배미의 사랑]를 회고한 것만으로도 이번 간담회는 국산 명작 재개봉 기획의 선례를 남겼다. 실제로 동창회 분위기였다. 객석에 임종재 감독이 와 있는 걸 보고 간담회를 하던 도중에 박중훈이 "형님!" 하며 반가워 하기도 했다. 예상대로 이번 간담회는 박중훈의 역할이 컸다. 마무리 인사를 할 때도 객석에 있는 제작자 서병기를 무대로 불러서 제작자의 존재감을 살려 줬다. 제작자 서병기는 마무리 인사를 하던 중 옆에 있는 박중훈을 보며 "박중훈씨는 이 영화에 고마워 해야 해" 라고 말하기도 했다. 장선우도 말하는 것을 보니 박중훈의 연락을 받고 간담회까지 참석한 것 같다.   
 
근데 이번 간담회에서도 [우묵배미의 사랑]을 해석할 때 꼭 나오곤 하는 갑작스러운 시점 변경의 의미를 묻는 질문이 어김없이 주어졌다. 중반 이후에 새댁의 시선에서 상황이 해석되고 전개되는 구성이 인상적이긴 한데 이게 각색에 성공한 영화의 독창적인 재해석은 아니어서 장선우가 남다른 의미로 시점 변경을 시도한 것 같지는 않다. 블루레이 코멘터리나 간담회에서나 장선우 감독이 중반 이후의 느닷없는 시점 변경의 이유를 뾰족히 설명하질 않았는데 이건 설명할 것도 없지 않나? 원래 원작이 그렇다. 6편으로 나뉜 박영한의 왕룽 연작 중 한편인 [우묵배미의 사랑]은 중편 분량의 작품이라 2시간짜리 영화로 각색하기엔 적당한 분량을 갖고 있다. 대사도 대부분 일치하고 시점 변경이 자유로운 원작의 구성도 그대로 따랐다. 영화에서 새댁의 시선으로 시점 변경이 이루어지는 지점은 원작의 흐름과도 일치한다.
 
박영한의 [우묵배미의 사랑]은 다인칭 구성으로 전개되는 작품이다. 왕룽 연작들처럼 [우묵배미의 사랑]은 우묵배미로 이사온지 얼마 안 된 나리네 아빠의 시선으로 우묵배미 마을의 풍경과 마을 사람들의 삶이 묘사된다. [우묵배미의 사랑]은 나리 아빠가 전체 이야기의 주요 화자이면서 중간중간 배일도와 새댁의 시선으로 그들 삶의 팍팍함과 민공례가 끼어든 불륜 관계를 해석한다. 영화에서 인상적인 갑작스러운 시점 변경은 다인칭 원작의 구성을 기계적으로 따른 것일 뿐 영화만의 독창적인 전개도, 참신한 시도도 아니다. 원작에 원래 있는 전개 방식을 그대로 재현한 것일 뿐 코리안 뉴웨이브를 이끈 장선우의 과감한 연출력과 묶어낼 필요는 없다.
 
장선우는 원작 있는 작품을 연출할 때 원작을 함축하거나 압축하기 보다는 생략을 택한 감독이다. 대표작 중 하나인 [경마장 가는 길]만 해도 큼직큼직한 장면들이 싹둑싹둑 잘려 나갔다. 원작을 읽고 영화를 보면 각색물의 기본인 압축의 미덕이라곤 찾아볼 수 없게 통째로 잘라먹은 구성이 많아서 흡사 삭제판을 보는듯하다. 원작 소설의 분량이 상당한 [경마장 가는 길]과 달리 [우묵배미의 사랑]은 중편이라 생략할 구성이 적었던 것인데 그래도 2시간짜리 영화에 담기엔 역부족이었는지 다인칭 구성에서 나리 아빠의 시점은 빼버린 것이다. 그 덕에 다인칭 전개의 입체성은 잃었지만 시점이 3개에서 2개로 좁혀지면서 갑작스러운 시점 변경의 선명도를 부각시킬 수 있었다.
 
영화 [우묵배미의 사랑]에서 새댁의 관점으로 전개되는 갑작스러운 시점 변경은 편의적으로 원작을 잘라 붙이는 장선우 각색물의 게으른 특징이 불러 일으킨 운좋게 얻어 걸려진 연출적 개성에 지나지 않는다. 만약 3시간짜리로 만들 수 있었다면 원작의 다인칭 시선을 모두 살리지 않았을까 싶다. [경마장 가는 길]이나 [우묵배미의 사랑]이나 원작이 나오자마자 바로 영화화가 착수돼서 각색을 숙성시킬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소설 [우묵배미의 사랑]은 1989년 7월에 발간됐고 영화는 1990년 3월 31일에 개봉했다. 이 시절 원작에 의존한 많은 영상물이 그렇듯 [우묵배미의 사랑]도 출간 직후에 바로 각색에 들어간 바람에 각색에는 수동적일 수 밖에 없었고 시간 관계상 함축시킬 여유도 없어서 생략은 편의상의 이유였을 뿐 과감한 재해석과는 거리가 멀다. 그 덕에 [우묵배미의 사랑]은 본의 아니게 원작에 충실한 문예물이 되었다.         
 
영화가 끝나고 자연스럽게 박수가 나왔다. 영화관에선 쉽게 느낄 수 없는 박수의 체험이다. 작품에 대한 예의와 감동을 관객은 박수로 보답했다. 뭉클한 순간이었다. 재개봉작 상영관에서 느낄 수 있는 긴밀한 유대감이 박수를 통해 형성됐다. [우묵배미의 사랑]은 시대를 관통하는 힘으로 우리에게 여전한 감동과 공감, 웃음과 비애를 선사한다. 이성을 넘어서서 발휘된 연출의 뚝심과 배우들의 치열한 연기가 선명하게 흡착된 사실주의 멜로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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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2018-11-02 13:05:06

공감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주성철 기자가 시점 변경 질문을 했을때, 아 이양반도 소설을 읽지 않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묵배미의사랑이 저에게도 인생영화 인지라, 어쩌다 보니 소설까지 두어번 보게 됐는데, 대사는 물론 장면

순서와 전개가 모두 소설을 그대로 쫒아간걸 알고 실망감이 들긴 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소설은 소설, 영화는 영화인지라, 영화여서 느낄 수 있는 충만감이 상당하기에 앞으로도

계속 인생영화로 남을것 같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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