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게] 어제 미키 리 글에 덧붙임: 왜 JSA가 가장 중요한 영화인가
https://dvdprime.com/g2/bbs/board.php?bo_table=movie&wr_id=2438317&page=3
어제 이 글을 쓰고, 제 DP 대략 20년 생활에 가장 많은 추천과 댓글을 받았네요. 조회수는 DP 전체로도 역대급인데, 아마도 다른 사이트들로 퍼가신 분들 덕분인 듯 해요. 감사드립니다.
시계를 20년전으로 돌려보죠. 당시 회사를 때려치고, 혹은 자의반 타의반 쫓겨나고 (삼성영상사업단은 1999년 여름 해체되었고, 1999년 2월 회사가 이미 해체로 가던 시점에 퇴직한 저는 2000년 당시 다른 일을 찾고 있었습니다. 어제 글로 제가 흡사 영화관계자인것처럼 인식하시는 분이 많은데^^ 그 1999년 이후 저는 영화계 근처도 가본 적이 없고 전혀 다른 일을 합니다.)
백수로 지내던 저는 박찬욱 감독의 몇년만의 새 영화가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 과거 같이 일하던 분들의 도움으로 헐리우드 극장에서 열린 시사회 표를 어떻게든 구했습니다. 누구보다 빨리 보고 싶었으니까요.
그리고 마지막 저 장면이 나오고 영화가 끝나는 순간, 정말로 희한한 양가적 감정에 휩싸입니다.
아, 이제 나같은 극소수 영화광만이 알고 열광하던 시네필 박찬욱이 세상 모두가 알아주는 흥행 감독이 되는구나 라는 기쁨, 자랑스러움과 더불어(개봉 전 시사회였지만, 이 영화가 대박을 칠 거란 건 너무나 명확했습니다. 더구나 영화사에서 1년여 일했던 감이 살아있던 제게는 너무나 잘 보였습니다)
정말 나만 알아보고 은밀하게 사랑했던 사람을 대중에게 빼앗기는 아쉬움, 허전함 그런게 교차했던 거죠. 흡사 크리스 에반스의 이런 감정 비슷한 거겠죠.
다시 시계를 더 돌려보면 1997년 박찬욱 감독의 전작 '3인조'는 서울 5천여명의 참담한 흥행을 기록했고, 저는 그 5천여명 중의 하나였지요. 나름 대목인 금요일 저녁 시간, 저랑 같이 극장에서 그 영화를 본 사람은 열 명이 채 되지 않았고 그들 모두는 극장을 나서며 혀를 차고 나갔더랬습니다.
그들의 반응을 보는 저는 정말로 씁쓸했지만... 그의 광팬인 제가 봐도 영화는 전혀 흥행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물론 비주류적인 감성이었지만 영화적 완성도도 너무 낮았어요. 돈이 모자라서 때깔이 나오지 않았던 거죠.
(사실 삼성영상사업단에 들어가서 제일 해보고 싶었던게, 바로 박찬욱 감독의 다음 작품 투자였습니다. 제대로 된 제작환경에서 영화를 만들 수 있게 해드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극장-배급팀에서 일하면서도 늘 한국영화팀을 기웃거리며 혹시 저 안받아주시냐며 노종윤 팀장님께 들러붙곤 했었죠. 저 나름 영화광이라고 지식도 자랑하면서 ㅎㅎ)
박찬욱 감독은 이 두번째 영화의 참담한 실패 후 3년여를 백수로 지내면서 정말 아무도 찾지 않았다고 회고합니다. 훗날 '올드보이'로 깐느 영화제 대상을 받고 국민감독이 된 후 찍은 자동차 광고에서 본인이 직접 "나는 실패한 감독이었다" 라고 나레이션을 깔았을 정도죠.
박감독은 결국 자신의 장기이자 자랑인 직접 각본도 포기하고 박상연 작가의 DMZ라는 소설을 각색하여 대중적인 각본을 쓴 후 투자자를 찾지만 계속 외면당합니다. 명필림이 제작자로 나섰지만 투자자를 찾지 못했죠.
그 때 투자자로 나섰던 곳이 CJ 엔터입니다. 제일제당 영화사업부에서 막 독립하려던 CJ엔터테인먼트는 데뷔작과 2번째 작품 모두 참담한 실패를 거둔 이 평론가 출신의 무명감독에게 당시로는 엄청난 제작비를 과감하게 투입하죠. 충무로에선 다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검증이 되지 않은, 아니 이미 B급 감성만 가득한 실패한 영화광 감독으로 검증이 끝난 박찬욱의 영화에 저런 거액을 투입하는지를 도저히 납득하지 못했다고들 합니다.
그리고 박찬욱 감독은 이후 모두가 아시듯, 그리고 그날 시사회가 끝나고 제가 예상했듯 (제가 있었던 삼성영상사업단의 백조의 노래였던) '쉬리'를 넘어서는 역대 최고 흥행작의 감독이 되며 거장의 길로 들어서죠.
이것이 이미경의 결정이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건 JSA의 흥행 이후 이미경은 박찬욱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보내며 후원자로 자신을 자리매김합니다.
그렇게 흥행을 위해 자신의 작가적 욕심을 많이 자제했던 박찬욱 감독이 이미경 대표의 절대적인 지지하에 찍은 다음 작품은 "복수는 나의 것" 이었습니다.
이 영화 역시 무대인사를 찾아서 첫날 봤는데, 박감독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고 영화가 끝난 후 관객들의 반응은 3인조 당시와 똑같았습니다. 경악과 분노만 극장에 가득했죠. 하지만 저는 파안대소하며 나왔습니다. "그래 이게 내가 아는 영화광 박찬욱의 영화지! 박감독님 정말 하고싶은 거 다 했네!"
전작의 엄청난 흥행 덕분에 서울 35만이나마 들었지, 만약 이게 3인조 다음 작품이었다면 아마 5만도 힘들었을 이 "복수는 나의 것"의 흥행실패 후 또 다들 박찬욱은 끝났다고들 했습니다. 그러나 여기부터는 명확하게 이미경의 절대적 영향력 하에 박찬욱 감독은 또 엄청난 돈을 들여 복수 3부작의 두번째 영화인 올드보이를 감독합니다.
실무진은 속이 탔겠죠. 그렇게 처참하게 망했는데, JSA같이 다시 대중적인 걸로 돌아가는 것도 아닌, 똑같은 복수라는 주제로 근친상간, 혀자르기 등의 극단적인 내용이 난무하는 우울한 엔딩의 비타협적인 영화를 만들겠다고 하는데 대표는 무조건 투자를 하라고 하니...
그리고... 이후는 여러분이 다 아시는대로입니다.
그와 거의 같은 시점에 CJ는 역시 데뷔작에 처참한 흥행(과 놀랍게도 비평에서도) 참패를 겪은 어느 감독의 두번째 작품도 투자를 결정합니다. 화성살인사건을 주제로 한 이 영화 역시 무모한 투자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습니다만, 미키 리의 절대적인 지지 하에 엄청난 제작비를 투입하죠. 그리고 JSA와 같은 전례없는 성공을 거둡니다.
이후 행보는 똑같습니다. '괴물' 역시 국내에서 한 번도 시도되지 않은 거액을 투입하는 크리쳐 영화라는 점에서 실무진에서 반대가 매우 컸다고 하고, '설국열차'는 거의 회사의 재정을 흔들거리게 할 정도의 거액을 쏟아부었고, 결국 큰 적자를 냈지만 미키 리는 그의 작품에 대한 무조건적인 투자를 거두지 않았죠.
그리고 지난 일요일, 그 무조건적인 지원을 받아온 봉준호 감독은 그냥 "국민감독" 도 아닌 세계 최고의 거장의 자리에 올라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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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는 '공동경비구역 JSA' 가 정말로 중요한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작가주의, 비타협적인 감독을 외면해오던 당시의 투자관행을 과감히 깨고, 영화광의 감식안을 믿고 과감한 투자를 해서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만들어냈고, 이후 헐리우드나 일본같은 데서는 보기 힘든 작가주의 감독의 대규모 작품들이 투자, 제작되는 선례를 만들어냈거든요.
물론 CJ는 여전히 안전빵, 뻔한 공식의 흥행영화를 훨씬 더 많이 투자합니다. 정말 보고 있노라면 화가 나는 영화들도 많죠. 하지만 적어도 박찬욱과 봉준호는 CJ, 특히나 이미경의 절대적인 후원이 없었다면 절대 지금의 이 자리에 있지 못했고, 한국 영화는 여전히 변방에 머물러 있었을 거고, 이창동, 나홍진, 김지운 같은 작가들도 쉽사리 투자를 받지 못했을 겁니다. 전 정말 이건 인정해줘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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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