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부동산 잡담..
"무릎에 사서 어깨에서 팔아라."
주식을 몰라도 한번은 들어봤을만한 주식에 대한 격언입니다. 그리고 이보다 더 쉬워보이는 법칙은 없어보입니다. 약간의 욕심만 줄인다면 누구나 돈을 벌 수 있을 거 같은 황금률이죠. 하지만 주식을 시작하게 되는 개미 투자자들은 정작 어깨에서 사서 무릎에서 던지게 되는 경우가 더 흔하게 발생합니다. 가격이 올라갈 때 급한 마음에 따라들어갔다가 더 오를거란 희망에 팔지 못하고 버티고 정작 꼭대기를 지나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해야 그제서야 던질 타이밍을 살피게 됩니다. 대부분 매도시점마저 늦어 무릎 정도까지 내려와야 손절이란 걸 하게 되고요. 자연스러운 인간의 심리입니다. 이런 자연스런 심리를 거슬러야 돈을 벌게 되는 거죠. 누구나 따라할 수 있을 거 같던 저 쉬운 격언이 결국 아무나 따라할 수 없는 규칙이 되는 겁니다.
지금 부동산에 대한 불만을 살펴보면 노무현 정부때랑 묘하게 흡사합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언론에서 부동산 폭등을 얘기하고 실제로 참여정부가 지지율을 몽땅 잃은 데에는 부동산 이슈가 컸습니다. (이번 재보궐의 여당의 실패는 부동산이었다고 봅니다) 이게 늘 보수 언론이나 야당 입장에서는 짭짤하거든요. 우리의 언론은 늘 그렇듯 현장 스케치가 대부분인 기사들을 쏟아냅니다. 왜 부동산 가격이 뛰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관심도 없고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어제 얼마짜리가 오늘 얼마더란 기사가 대부분입니다. 사실 장사가 잘되기는 이런 자극적인 기사가 잘되긴 하죠. 참여정부에서는 뛰는 부동산을 잡으려 레버리지를 엄격하게 두는등 여러 정책을 내놨지만 시장은 정책을 비웃듯 집값을 견인했습니다.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을 했다는등 온갖 조롱이 쏟아졌고 힐난이 계속됐습니다. 부동산 실책(?)의 대가는 혹독했습니다. 결국 정권을 빼앗기게 되고 노무현 정부는 서민에게 등돌린 경제에 실패한 정부로 규정됩니다. 하지만 정말 그랬을까요. 그게 아니였단게 밝혀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요. 참여정부 당시 세계적인 호황으로 유동성이 확대되고 대부분의 국가의 부동산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습니다. 그야말로 돈잔치를 벌이고 개도 집을 살만큼 레버리지를 쉽게 뒀습니다. 그나마 참여정부에서는 부동산 가격을 어떻게든 붙들고 있었던 겁니다. 그러다 금융위기가 터지고 대부분의 국가가 버블이 꺼지면서 경제적으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을 때 우리가 연착륙할 수 있었던 이유는 참여정부에서 부동산 억제정책을 강하게 가져갔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과실은 엠비정부에서 따먹게 됐습니다만. 그렇게 칼춤을 추던 언론 누구도 참여정부의 공을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이미 굿판은 끝이났고 해먹을 건 다 해먹었으니까요.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전 정권에서는 어떻게든 얼어붙은 부동산 경기를 되살리려고 노력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경제부총리가 나서서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라고 부추겼지만 시장은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집값이 더 떨어질 거라고 예상했고 돈이 있어도 집을 사기보단 전세와 월세를 선호했습니다. 과반이 넘는 국민이 일년 후 집값이 더 하락할 거라고 내다봤다는 조사도 있었고요. 이런 상황에서 선듯 나서서 집을 구입하려는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아직 무릎이 아니라고 생각한 거죠. 부동산 시장이 짜게 식어버리자 건설회사에서도 아파트를 새로 올리는데 머뭇거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100만호를 지어 제공하겠다던 공공주택 사업은 1/10 수준으로 사업이 쪼그라들게 됩니다. 이게 이후 문재인정부에서 부동산 경기가 다시 살아났을 때 공급이 위축되는 효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문재인정부가 출범하면서 부동산 규제를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내놓습니다. 이른바 갭투자등 부동산 투기를 근절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였죠. 초반엔 이게 먹힙니다. 강남 재개발 아파트의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합니다. 강도높은 부동산 규제등이 발표되고 집값이 많으면 하루에 일이억씩 빠졌다는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금융위기처럼 갑자기 찾아온 코로나 상황으로 팬데믹을 맞이하면서 세계는 유래없는 유동성 확대로 이어지게 됩니다.
시장에 막대한 돈이 풀리게 됩니다.
부동산이 다시 오르기 시작합니다. 부동산이 오르기 시작하면 언론에서 먼저 대대적으로 공포마케팅을 시작합니다. 이게 선거 시즌이랑 붙으면 보수 언론은 더욱 과장된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합니다. 연일 호가를 갱신했다는 기사에 불안해진 사람들은 어떻게든 자기도 거기에 올라타길 원합니다. 불안함과 집값이 더 오를거라는 기대감이 뒤섞여 시장에 불이 붙는겁니다. 이른바 영혼까지 끌어모아 무리하게 집을 사려고 듭니다. 사려는 사람은 늘어나고 매물은 한정돼 있으니 당연히 집값은 더욱 올라가게 됩니다. 이쯤되면 정부가 어떤 시그널을 보내도 그게 시장에 먹히기 쉽지 않습니다. 집값이 오르면 집을 사는 사람이 줄고 집값이 하락하면 집을 사는 사람이 늘 거 같지만 실제로 부동산 시장은 반대로 움직입니다. 집값이 오르면 집을 사려는 사람들이 늘고 반대로 집값이 하락하기 시작하면 매수세가 줄어듭니다. 시장은 기대감에 의해 움직이니까요.
처음에는 갭투자, 임대업자등을 못살게 굴어서 집값이 상승한다고 하다가 어느새 입을 맞춘듯 언론은 공급 이야기를 하기 시작합니다. 이른바 시장이 혹은 이 정부가 서울등 주택의 공급을 막아서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거죠. 부동산, 특히 서울의 집값은 공급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공급이 줄지도 않았어요. 서울은 주택보급이 거의 100%에 다다르지만 실제로 자가를 소유한 세대는 절반에 미치지 못합니다. 서울 안에만 절반이 넘는 세대가 잠재적으론 매수를 바라고 있는 수요층이란 거죠. 그리고 서울은 경기 지역에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이 많습니다. 이들 역시 여건만 된다면 직장이 있는 서울에 집을 가지고 싶어합니다. 서울 경기를 제외하고도 서울의 주택과 건물은 투자로서 가치가 높습니다. 지방에 돈이 좀 있다는 사람들은 부동산 놀이를 서울에서 하려합니다. 강남 재건축 아파트들이나 건물등 서울에 있는 매물을 노립니다. 이들 역시 서울의 잠재적인 주택 매수자에 포함됩니다. 이들 모두를 충족시키려면 얼마나 많은 집을 지어서 공급을 해야 필요가 충족이 될까요.
실제로 이번 정부 들어 주택 공급이 줄었나 살펴볼 필요도 있습니다. 통계를 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공급이 늘었다고 하면 얘기하는 게 멸실률이죠. 보수언론등에서도 공급 얘기에 역대급 멸실이 어쩌고 얘기가 반드시 따라나옵니다. 실제로 이번 정부들어 공급이 더 늘었지만 멸실되는 물량을 빼면 기간에 따라 다른 정부와 비슷하거나 좀 줄거나 하는 수준입니다. 멸실을 계산에 넣어도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었다는 겁니다. 멸실을 얘기하며 공급이 줄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흔히 멸실이 가장 크게 발생하는 재개발을 선호한다는 건 그거대로 이상한 모순점이긴 합니다만.
부동산은 여러가지 요인이 얽혀서 움직이는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단지 공급을 늘인다고 안정되는 게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예를 들어 서울은 신혼부부 맞벌이 비율이 전국에서 제일 높습니다. 부부 합산 연소득이 1억이 넘는 세대가 다른 지역보다 두배 가까이 많습니다. 하지만 서울의 신혼부부는 전국에서 아파트에 거주하는 비율도 자가를 가지는 비율도 제일 낮아요. 소득은 높지만 전세를 더 많이 살고 있습니다. 들어갈 집이 없어서 집을 사지 않는 게 아닙니다. 주거환경이란 단지 집이 제공되나 아니냐로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이들은 아무리 널려있어도 공공임대나 시외 변두리 아파트로는 들어가려하지 않습니다. 각자 바라는 주거형태가 복잡하고 요구가 다 다르다는 겁니다.
어떤 전문가는 잠실 재개발을 들어 공급의 한계를 설명합니다. 잠실에 대단지 재개발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상당한 공급이 이뤄졌지만 10년도 지나기 전에 가격은 원래 가격을 회복하는 걸로 모자라 엄청나게 뛰었습니다. 잠실이 가지는 어메니티(amenity, 교육, 대중교통 접근성, 주거환경등등)가 사라지지 않는 이상 공급을 늘리는 건 일시적인 효과가 있을지는 몰라도 한계가 뚜렸하다는 겁니다.
더 큰 문제는 부동산 시장을 정부가 원하는대로 끌고 가기가 힘들다는 겁니다.
지난 정부에서 그랬듯 정책만으로는 부동산 경기를 부양하고 싶어도 혹은 이번 정부에서처럼 그 반대 상황을 원해도 시장은 쉽게 따라와 주지 않습니다. 다른 많은 요인들이 작용하고 있고 결국 사람들의 기대가 움직이는 방향으로 시장이 움직이기 쉽습니다. 지금 집을 사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사람조차 당장 내일 집값이 절반으로 떨어져도 이후 더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있으면 과연 집을 구입할까요? 아마도 그러지 않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시장을 관망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겠죠. 무릎되는 지점을 찾으려할 겁니다. 그래서 지금처럼 집값이 오른다고 노래를 불러대는 무책임한 언론도 집값 상승의 한 요인이고 끊임없이 집값 상승을 얘기하는 사람들 역시 (그들의 기대와는 반대로) 집값 상승에 작은 부채질 정도는 하고 있다고 봅니다.
아마도 문제의 해결은 끝내 좌절되고 말았지만 노대통령이 꿈꾸던 지방 분권화에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때 그 꿈을 꺾어놨던 세력들이 지금와서는 또 부동산 때문에 서민이 죽고 있다고 되먹지 않은 난장을 부리는 꼴을 보고 있자니 속이 좀 쓰린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길고 긴 트래픽 낭비를 하게 되는군요. 솔직히 이제 좀 지겨워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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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합니다. 언급하셨듯이 노무현 정부가 부동산 문제로 내내 비난만 받고 결국 정권을 넘겨주는 계기가 되었지만, 비난만 받았던 부동산 정책이 금융위기때 큰 파도를 피해갈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던 것처럼, 현재 엄청 욕을 먹고 있는 문재인 정부의 대출 규제강화, 재건축/재개발에 신중한 모습이 다시 시간이 흐르고 보면 큰 방향에서 잘한 결정이었다고 평가를 받을거라 예상합니다. 만약 정권이 넘어가면 그 과실은 국짐당 정권이 또 따먹겠죠?
지방 분권화에 가장 반대하고 큰 이익을 취한 야당 포함 기득권이 서민 운운하면서 비난하는걸 보면, 참 양심이 없다 싶고, 현 부동산 폭등에 분노한 서민들이 대안으로 국짐당을 뽑겠다는건 보면 참 답답합니다. 다들 과거를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것 같습니다.
Qared님 본문과 제 댓글을 보고, 이 상황에서도 정부 부동산 대책을 쉴드 치다고 비아냥 거릴 사람들이 많을텐데요. 대응하기도 이젠 저도 좀 솔직히 지겨워지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