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PS] 그렌라간 책자 번역에 대한 감상
안녕하세요. 이번에 그렌라간 블루레이 박스 특전인 책자(204p, 80p) 번역을 맡은 천선필입니다.
바쁘게 살다보니 어느새 6월도 다 가고 진행중이던 일들도 정리가 되어 가네요. 제게는 그렌라간 블루레이도 그 중 하나이기에, 이번에 이것저것 마무리를 지으면서 느꼈던 부분 등을 간단히 말해보려 합니다. 제가 주로 번역을 맡고 있는 소설(주로 라이트노벨)은 제가 작성하는 역자 후기란이 따로 존재합니다만 이번에는 책자의 특성상 그런 것이 없거든요. 그래서 이곳에 올리는 게 맞지 않을까 싶어 글을 씁니다.
▲ 이 샘플 사진을 보니 '드디어 나오는구나' 하는 실감이 듭니다.
1. 책자 번역을 맡게 되다.
: 이번 DP 시리즈인 '천원돌파 그렌라간'은 다른 회원분들과 마찬가지로 제게도 특별한 작품이었습니다. 속된 말로 그 시기에 덕질(...)을 하셨던 분이라면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큰 작품이죠. 하지만 일본에서는 한동안 DVD가 출시되었을 뿐, 블루레이가 나오지 않았고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다음에야 블루레이가 출시됩니다. 그리고 그 퀄리티에 많은 분들이 욕심을 내셨으리라 생각됩니다(당연히 저도 마찬가지고요).
그리고 그 블루레이가 DP 시리즈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제 주위의 팬들은 물론 다른 분들도 뜨거운 관심을 보이셨죠. 그러던 와중에 추가된 스펙으로 인한 번역자 모집 글을 보게 되었고 한참 고민하다 DP 운영자분께 메일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제가 주로 번역하는 것이 책이다 보니 책자 번역 쪽에 지원하였고 결과적으로는 그렌라간의 책자 2권을 번역하게 되었습니다.
▲ 이때까지만 해도 저는 이 책자 2권이 저를 그렇게까지 괴롭힐 줄 몰랐습니다.
2. 예상하지 못한 난관
: 여러분께서도 아시다시피 이 그렌라간 DP 시리즈는 일정에 계속 쫒기며 진행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책자 번역을 맡았을 때도 마찬가지로 일정이 매우 촉박한 상황이었습니다. 204p 책자와 80p 책자, 사실 객관적인 양만 따지면 그렇게까지 많은 양은 아닙니다. 오히려 양은 음성 쪽이 더 많을 것도 같아요. 그래서 빠르게, 일정에 부담을 주지 않게끔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작업은 큰 문제없이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본편 번역자 분께서 세워두신 가이드라인도 존재하고 있었기에 저는 어떤 용어를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없이 거기에 맞추기만 하면 되었으니까요. 그렇게 작업을 쭉쭉 진행해 나가다가 뜻밖의 난관을 만나게 됩니다.
▲ 바로 이겁니다. 스태프 분들의 이름.
사실 페이지만 따지면 저 이름 부분은 원서 기준으로 약 11p, 책자 두 권을 합친 분량의 3.8%, 약 4%에 불과합니다. 이 4%에 불과한 부분이 책자 두 권을 작업하는 시간의 절반 이상을 잡아먹었습니다.
일본 이름의 특징이 그렇습니다. 히라가나로 표기하는 경우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한자로 표기합니다. 그런데 같은 한자인데도 읽는 방법이 다를 때가 있습니다. 물론 읽는 방법에도 대표적인 예가 있고, 대부분이 그 예를 따르긴 합니다만 예외가 있을 수 있기에 일일히 조사하는 방법을 선택하였습니다.
감독이나 각본, 연출, 이렇게 굵직한 역할을 맡으신 분들은 사실 편합니다. 이미 알고 있는 이름이기도 하고 만약 낯설더라도 검색하면 금방 나오니까요. 성우도 마찬가지죠. 성우 분들 이름 번역할 때는 검색을 거의 하지 않았던 기억이 나네요. 하지만 다른 스태프 분들은... 이러한 경우에 해당되지 않는 분들이 대다수입니다.
그래도 잘못된 정보를 전달할 수는 없으니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습니다. 일본 회사의 웹페이지, 스태프 분의 SNS, DB 사이트, 서양 애니메이션 정보 사이트까지... 최대한 검색한 뒤 올바른 이름으로 표기하였습니다. 아마 이름이 실제 이름과 다르게 표기된 분은 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 이번에 도움을 많이 받은 사이트 중 하나인 Anime News Network입니다.
3. 볼만한 책자
물론 이번 그렌라간 블루레이 박스의 메인 컨텐츠는 영상 자료일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TV판, 그리고 극장판이겠죠. 그런데 책자도 매우 충실하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내용은 지금까지 운영자님께서 몇 번에 걸쳐 공개하셨으니 아마 보셨으리라 생각됩니다.
▲예전에 그렌라간을 재미있게 감상하셨던 분이라면 인터뷰를 꼭 보시고 블루레이를 감상하시길 권해드립니다.
저는 그 중에서도 제작자들의 인터뷰가 인상깊었습니다. 아무래도 이 애니메이션이 인기를 끈 이유 중 하나는 해당 시기의 분위기에 따라서 모던한 느낌을 주는 것이 아니라 투박하고, 거칠고, 말도 안 되는 것 같으면서도 마음을 뜨겁게 하는 애니메이션이었을 테니까요. 그리고 이러한 분위기는 예전 일본 애니메이션을 만들던 제작자들의 작품에서 보이는 특징이기도 합니다. 이 '천원돌파 그렌라간'은 그러한 애니메이션을 보고 감명을 받은 제작자들이 만든 작품이기에 더욱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 같습니다.
▲ 역시 남자는 돼지를 타야죠.
그러한 제작자들이 이 작품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것, 그 자체로도 볼 가치는 충분합니다. 그리고 예전 애니메이션을 많이 감상하셨거나 지식이 있으신 분께서는 이번 블루레이를 감상하시기 전에 인터뷰를 꼭 읽으시고 감상하시라고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아마 보이는 것이 많이 달라질 것 같네요. 적어도 저는 그랬습니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그런 생각이 담겨있구나', 이런 걸 찾아내는 것도 즐거울 거라 생각합니다.
4. 작업을 마친 뒤 넘기고 나서도...
이름 지옥을 넘어서(...) 작업을 마친 뒤 넘기고 나서도 이 그렌라간 책자 번역은 끝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책자 내용은 기본적으로 본편 번역자님이 번역하신 자막과 통일시켰으나 책자에만 나오는 정보도 꽤 있었고, 여러 가지로 다듬을 곳이 많았습니다. 피드백을 받고 수정하여 넘기고, 다시 피드백을 받아 수정하여 넘기는 과정이 여러 번 반복되자 지치기도 했고 저번에 글을 올리신 Johjima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작품이 싫어지기까지 하더군요. 제작 담당자분과도 책자의 내용에 대해 자주 통화를 나눈 기억이 납니다.
▲제가 그렌라간 때문에 짜증내는 날이 올거라는 것도 몰랐습니다.
5. 그래도 마무리
그래도 샘플 사진을 보니 진짜 나오는구나 싶긴 하네요. 제가 번역일을 시작하고 나서 그 결과물이 처음 시장에 나왔을 때 느꼈던 감정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습니다. 사실 전 아직 사람이 덜 된지라(...) Johjima님께서 말씀하셨던 '되돌아보니 좋았다'는 느낌은 좀 희미한 상태입니다. 하지만 다른 분들께서는 이 작품을 통해 즐겁고 행복한 느낌을 받으셨으면 합니다. 저도 이 애니메이션이 무사히 출시된 뒤에 마음놓고 감상하면서 즐거움을 느끼려 합니다.
항상 행복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스티커가 매우 마음에 들어서 새로 주문한 컴퓨터 케이스에 붙여 볼까 생각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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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렌라간을 못 본 상태로 예구했습니다. 이 책자들을 소장하고 싶어서. 고생하신 만큼 꼼꼼히 읽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