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번개후기] 디피 운영자와의 만남. 최종회
드디어 마지막 후기를 올리게 되어 무척 뿌듯합니다.
오늘 새벽에 네 번째, 오늘 밤에 다섯 번째 후기를 올리려다가 네 번째와 다섯 번째를 나누지 말고 같이 정리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참석자들이 따지러 갔다가 마음을 푼 이유, 그리고 운영자님이 완고했던 이유 그럼에도 조금은 마음을 돌린 이유가 평결제 등의 운영제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과 운영자의 대응 또 결국 다양성과 커뮤니티 정체성이라는, 제가 생각하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와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이고 그 모두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정리하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입니다.
그럼 마지막 후기와 제 생각을 정리해본 것을 이제부터 풀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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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평결제 (2) - 징계가 공정하게 이뤄지지 못하다는 의견에 대해/ 운영자는 기존 고인물 회원들을 정리하려고 하는가/ 평결제는 운영자의 부담을 회원들에게 떠넘기는 것인가
바로 전 후기에서 언급했듯이, 처음엔 회원들 힘으로 알바들을 몰아낼 수 있는 제도라 여겨져 반겼던 평결제가 되려 우리편(?) 익숙한 회원들에게 일방적으로 징계를 내리는 역설적인 상황을 만들면서 강한 회의감과 거부감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쫓겨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분란을 일으키려는 자들은 규칙의 맹점을 요령있게 피해가며 영악하게 활동하지만 주류의견과 함께 하는 회원들은 그들의 행태에 분노하여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다가 우수수 유의 주의 경고를 받는 모양새가 되자 운영자는 기존 오래된 회원을 반기지 않나보다, 어떻게든 커뮤니티 규모를 키우는데 고인물처럼 폐쇄적이고 신규유입에 배타적인 기존회원들이 방해가 되니 이런 상태를 방치하여 그들을 쫓아내려나보다 라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인데요.
이렇게까지 운영자와 회원들사이가 벌어지기 전에는 각종 민원에 시달리는 운영자의 입장을 잘 알고 되도록 익스큐즈해주려는 분위기였던 것을 감안하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면 평결제 이후 운영자는 일이 줄었나하면 그게 아니라네요. 평결제는 회원들의 힘으로 서로를 제제 또는 견제하는 것이니 운영자의 개입이 줄어드는 만큼 보다 운영부하가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되었고 그 점도 회원들이 평결제를 반겼던 이유 중 하나였는데요.
실상은 달랐습니다. 운영자는 일이 더 늘었다고 합니다. 이유는 평결제로 제재받는 사람들이 게시판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그리고 오래된 회원들이다 보니 취지는 운영자의 개입을 최소화한다는 것에서 시작했으나 운영자가 개입하지 않으면 활발히 활동하던 회원들이 남아나지 않는 상황이 된거에요. 운영자도 사람인지라 평결제에 따라 징계를 하려고 들여다봤는데 게시판에서 평판좋거나 오랫동안 봐왔던 회원이면 주의를 줄것은 유의를, 경고를 줄것을 주의나 유의를 주게 된다고요. 그렇게 일일히 또 한 번 손을 두게 되니 서로 편하자고 만든 평결제 이전보다 일이 더 많아지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된거죠. 기존회원들을 쫓아내려면 오히려 운영자는 평결제의 판단에 기계적으로 맡기면 되는데 그렇지 않으니 오히려 기존회원들은 차별이 아니라 우대를 받고 있는 셈이었습니다.
그러면 기대와 달리 운영자 일도 줄여주지 못하고 회원들한테 인심도 잃는 평결제를 도대체 왜 하느냐는 의문이 당연히 들고 그래서 질문을 했는데요. 그 답이 바로 세번째 후기에 썼던 내용입니다. 평결제를 통해 적어도 욕설과 막말은 서로 조심하게 되면서 페이지뷰도 증가하고 예전보다 다양한 의견을 표출하는데 부담이 적어져서 게시판에 읽을 만한 글도 늘어나고 문자마약상님같은 분들의 좋은 글을 읽고 찾아오는 신규유입자들도 예전에 비할 바 없이 늘었다고 하고요. 여러가지 지표들에서 디피가 긍정적인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다른 분들은 모르겠지만 저는 여기서 무릎을 쳤습니다. 아, 그렇다면 전 납득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현재 운영자와 회원간 갈등은 지금이 과도기여서 그런 걸 수도 있겠다, 제도를 통해 다양성이 자랄 토양을 만들려는 시도 중인데 회원들이 체감할 정도로 긍정적인 면은 아직은 잘 다가오지 않는 반면 과도기적 갈등은 더 강렬하게 체감되는 거니까, 우리가 예전부터 그리도 하던 걱정(매체도 변화하고 신규유입없이 나이들어가는 고정회원들만 있다가 디피 망하는 거 아닌가)이 있었는데 지금은 골치가 아파보여도 추세적으로 규모와 다양성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니 답답하지만 참아볼 가치가 있다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운영자님 울컥함 -_-;;;
그전까지 제 후기 댓글에서도 고구마먹은 듯 답답함을 토로하던 회원분들처럼 저희도 운영자도 서로 평행선같은 이견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팽팽히 맞서가며 서로 속터지다가 첫 이해의 물꼬가 터진 셈이었으니까요. 그래도 저희는 여러 명이고 게시판 주류의견을 대표하는 셈이었으니 외롭지 않았는데 운영자님은 혼자 수많은 적대적인 불만과 항의에 꽤 오랜 시간동안 시달려 왔으니 처음 받아본 이해와 공감에 면도날 하나 안들어갈 것같이 깐깐하게 굴던 얼굴표정과 태도가 풀어지며 벌겋게 눈물이 핑도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턴 그러면 우리가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로 자연스레 논의주제를 옮길 수 있었습니다.
3. 해결책 (1) - 상호차단
꼴보기 싫은 닉네임들을 아예 게시판에서 지워버릴 수 있다면!
실제 디피에서 운영되고 있는 제도입니다. 차단한 회원은 블러처리 정도가 아니라 게시판 글목록에서 완전히 보이지 않는 거죠.
그런데 상호차단은 이보다 '한 발짝 더 나가는'(제가 이 말을 싫어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ㅜ.ㅜ) 겁니다. 내가 차단한 회원글은 당연하고 나를 차단한 회원글도 볼 수 없게 되는 겁니다.
어떻습니까? 이거다 싶으신가요? 상호차단에 대한 얘기는 모두들 알고계시는 스토킹건과도 관련되어 언급된 얘기인데요. 참석자들은 다른 건 몰라도 모 회원이 모 회원을 몇년간 스토킹하고 있는 것만이라도 못하게 해달라고 건의했습니다. 시스템적으로 차단이 안되는거냐고, 그런 식으로 사람을 괴롭히는 걸 방치해선 안된다고 강하게 말했지요. 운영자님은 여러 차례 경고와 주의를 주어 감정적인 댓글을 달거나 하면 글을 못쓰거나 댓글을 못달게 하는 식으로 하고 있다. 그런데 상호차단을 그 두 사람에 한정해서는 하는 것은 시스템적 낭비이고 하려면 모두 하거나 안하려면 아예 안하고 지금처럼 건건이 주의를 주는 수 밖에 없다고 하시더군요.
저희도 처음엔 혹했습니다. 그런데 곧 짜게 식었어요. 운영자님이 좌중을 둘러보시면서 상호차단을 하게 되면 여기 나온 분들은 모두 한 사람당 이삼백명씩한테 차단을 당하게 될만한 사람들이라고 하시더군요. -_-;;; 주제는 다르지만 각자 주장이 강한 사람들인만큼, 그리고 오래 활동해온 만큼 알게 모르게 비토세력들이 많은 사람들이라서요. 그것은 꼭 참석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게시판에서 평판도 좋고 호감도 많이 사는, 이름만 대면 알만한 닉네임들도 오래 활동한 만큼 모두가 좋아하는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라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상호차단제도를 시행하면 알바들을 고립시키는 효과에 덤으로 우리 스스로도 고립될 가능성이 커지는 거죠. 알바들 꼴보기 싫어 로그인해서 들어와보면 나도 차단하고 나를 차단한 사람들이 많으니 게시판에 보이는 다른 회원들의 글이 거의 없어지는 사태가 발생하는 겁니다.
그런 결과까지 감수하며 상호차단제도를 시행해야 하는가에는 의구심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디피에 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보기 위해서거든요. 그건 나와 맞는 사람일수도 있지만 나와는 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이 존재할테고 그 끄트머리 언저리 어딘가에 분탕종자 알바들이 있겠지만 빈대잡자고 초가삼간 태워먹는 우를 범할 수는 없는 것아니겠습니까?
또 상호차단제는 서버에 부하를 크게 준다고 합니다. 회원당 허용차단수가 많을수록 더 많은 부하가 걸린다고. 그것은 커뮤니티의 본질에도 반하는 만큼 만약 시행하려면 3~5명 정도를 차단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 운영자님의 의견이었고 3명 정도가 최적인 것 같다는 걸로 운영자가 결론을 내리려는 듯한 찰나....
우리는 짐짓 신중론을 내세워 운영자님을 말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지금 당장 그런 중요한 문제를 결정해선 안된다. 여기 사람들이 모든 회원들을 대표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중요한 문제를 이처럼 감정적으로 격앙된 때에 결정하면 나중에 후회할 가능성이 많다고 하면서요.
이처럼 우아한 핑계를 대고 저희는 빠져나왔습니다. 디피에 왔는데 볼 글 하나없이 텅빈 게시판을 보고 싶지는 않고요. 나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눈으로 확인하고 싶지도 않거든요. 다른 회원분들은 어찌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3. 해결책 (2) - 운영자의 적극적인 개입
그렇다면 남은 해결책은 운영자가 독단적으로 적극 개입하여 알바분탕종자들을 몰아내는 방식입니다. 어쩌면 운영자님에게 격한 말을 쏟아내며 항의하는 회원들 상당수가 가장 바라는 방식일 것입니다. 우리가 운영자를 믿고 그의 처분에 많은 것을 맡기는 겁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문제는 있습니다. 운영자의 결정이 내 입맛에 맞으면 괜찮은데 아닐 경우를 생각해보셨습니까? 운영자는 신이 아니고, 회원들의 생각은 각기 다르니 모두가 동의하는 기준이란 존재할 수 없고 따라서 운영자의 독단적인 결정에 따른 처분에 필연적으로 불만족하는 회원들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운영자의 적극개입을 주장하시는 분들은 불만족하는 사람이 바로 자신일 가능성에 대해서도 생각하고 계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민주주의는 어렵습니다. 문통이 시원하게 칼을 휘둘러 검찰개혁이니 적폐청산을 해줬으면 모두가 내심 바라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 그런 주장은 허용될 수 없다는데 모두가 동의하시잖아요. 왜냐하면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정권이 들어섰을 때 바로 내가 그 칼의 희생자가 될 것이기에.
게시판 민주주의도 마찬가지도 어렵습니다. 진짜 박터지게 짜증나고 어려워요.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되면 도대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현실에서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문제들처럼 뭐하나 뾰족하게 해결할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그저 꾸역꾸역 의견을 교환하고 서로 공감대를 넓히고 인내하기도 하고 참여도 하면서 나아갈 수 밖에 없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세상에 뭐 하나 속시원한게 없는데 스트레스 풀러오는 게시판에서마저 우리는 현실의 다른 면과 마주할 수 밖에 없는 겁니다.
4. 갈등을 일으키는 근본적인 원인(1) - 다양성과 커뮤니티 정체성의 충돌 : 다양성에 대한 문제제기
참석자 중에 게시판 다양성 근본주의자라 할 만한 사람은 운영자님과 분도님 두 분 정도고 나머지는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언정 알바와 분탕종자들에 대해 강한 대처를 주문하는 분들이었습니다. 오랫동안 많은 얘기를 나눴지만 의견차이를 좁히기는 어려웠습니다. 후기를 읽으신 회원분들이 역시나로군, 너무나도 완고하게 기존입장을 고수하는 운영자가 실망스럽다 못해 분노를 토로하시는 것이 이해가 안되는 바 아닙니다만 그래도 참석자들은 대부분 운영자와 반대입장에 서있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뾰족한 해결책도 없고 서로의 입장에서 크게 바뀐 것도 없다는 것을 확인했음에도 납득하고 마음을 풀고 어느 정도 홀가분하게 귀가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 문제가 너무나도 어렵다는 데 인식을 같이 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운영자님이 일이 더 늘어났다는,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상황에서 욕은 욕대로 먹고 오해는 오해대로 받으며 원칙을 고수할 수 밖에 없는 처지가 안타까웠고, 불만을 잔뜩 안고 왔던 참석자들도 막상 꺼내놓고 보니 바라는 게시판상은 있었지만 현재 게시판 운영제도 이상의 뾰족한 해결책을 내놓지도 못했습니다. 그저 서로의 입장을 말하기를 목이 쉬도록 반복에 반복을 하다가 헤어졌을 뿐인데 이상하게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풀렸습니다. 문제는 있지만 해결책은 없기 때문에, 아니 해결책이 없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운영자도 우리도 여기서 더 나아갈 방법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데서 한풀 꺾였다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다양성 다양성 다 좋다. 그런데 다양성이 다 좋기만 한 것이냐, 좋은 다양성과 나쁜 다양성이 있지 않느냐. 여기에 아주 원론적인 반론이 들어왔습니다. 좋은 다양성 나쁜 다양성은 무슨 기준으로 나누느냐, 기준이 사람마다 다른데 그걸 무슨 수로 구별하느냐.
저는 답했습니다. 우리가 세월호 희생자들을 어묵에 비유하거나 5.18희생자들을 담은 관을 택배에 비유하는 것까지 다양성이란 이름으로 포용해야 하는 것이냐, 예전과 달리 게시판에 어느 순간 일베에서 볼 법한 내용까지 펌글로 가져오고 예전같으면 상상도 못할 추천수를 받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었고 많은 회원들은 그러한 행태에 분노하는 것이다. 다양성이란 이름 아래 저질 가짜뉴스까지 보호해줘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건 너무도 안이한 도피 아니냐.
운영자님은 그런 형편없는 의견들도 서로의 논박을 통해 걸러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셨습니다. 회원들간에 서로 다른 의견들이 충돌하며 옥석을 가리는 것. 그것만이 게시판 민주주의를 희생하지 않고 다양한 의견이 오가도록 하는 길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4. 갈등을 일으키는 근본적인 원인(2) - 다양성과 커뮤니티 정체성의 충돌 : 그렇다면 커뮤니티 정체성은 어디로?
호프집에서의 논쟁은 이 정도에서 정리하고 밤이 늦어 파하는 길에 운영자님과 나눈 대화 한 토막을 소개합니다.
운영자: 디피가 알바를 투입하고 그럴 정도로 규모가 크거나 커뮤니티 순위가 높지 않다. 순위를 따지면 저 아래 어디 보이지도 않는데 있을까 말까?
나: 봉테일도 있고 승환옹도 있다. 디피가 규모는 작지만 연령대로 보나 사회적 위치로 보나 사회에서 허리를 담당하는 여론주도층들 커뮤니티라 규모가 작다고 해도 충분히 여론조작작업을 하려는 자들에겐 먹잇감이 될 만한 곳이니 무시하시면 안된다.
그리고 여기는 사이트 특성상 영화와 음악과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그런 사람들은 아무래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여러가지 문제에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들보다 민감하지 않겠나.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이니 아무리 다양성을 추구한다고 한들 우리가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것이 커뮤니티색깔이고 커뮤니티 정체성이다. 그 점을 고려해달라.
운영자: !!! (.......)
이 대목에서 운영자님에게서 처음으로 아! 하는 심경의 변화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다양성을 키우고자 로열티 높은 기존회원들에게 갖은 원성을 들어가며 운영원칙을 고수하고 있었고 그래서 커뮤니티 정체성이 흐려지고 있다는 반발에 대해서도 모른척하는 태도를 취해왔던 운영자님이었잖아요. 이 때에는 무언가 이심전심 당신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제야 알겠다! 는 느낌을 받았는데 뭐 저 혼자 착각일 수도 있습니다.
디피는 광야가 아니라 정원이라고 생각합니다. 꽃도 나무도 짐승도 잡초도 쓰레기와 공존하는 황무지가 아니라 잘 가꿔진 정원이어야 하고 그것이 커뮤니티라는 이름에 걸맞는, 비슷한 생각과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고 그럴 가치가 있는 곳이 되기 위해 다양성을 추구하지만 정제된 다양성을 추구하여 정체성을 잃지 않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간 커뮤니티 정체성 논의를 기존회원들의 폐쇄성과 배타성으로 오해하셨을지도 모를 운영자님이 번개모임을 통해 조금은 다른 생각을 하게 되셨기를 바라며 커뮤니티 색깔을 지키면서도 다양성을 추구하는 방법에 대해서 회원들과 같이 고민해나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지점이 운영자님이 생각을 바꾸지 않은 것 아니냐는 회의적인 물음에 아닐지도 모른다는, 한줄기 빛을 본 것같은 제 느낌이었습니다. 아님 할 수 없고요. ㅠ.ㅠ
5. 나가며
누가 시키지도 않은 후기를 쓰면서 참 여러가지 감정을 맛보았습니다. 제 입장은 운영자와 대척점에 있음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운영자의 대변자처럼 인식되어 공격을 받거나 혹은 운영자에 대한 반론이 저에 대한 반론처럼 여겨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멋대로 짜깁기 해서 운영자를 비난하는 댓글을 보면서 욱하기도 하면서 번개모임에서도 느꼈지만, 온건하고 점잖은 항의도 많겠지만 한두명도 아닌 사람들한테 저런 적개심과 오해 가득한 주장의 화살을 받아야 하는 운영자란 자리는 진짜 힘들겠구나 새삼 생각하며 저도 모르게 운영자에 빙의되어 해명댓글을 달기도 했었습니다.
평소에는 영자님~영자님~하지만 후기의 성격이 성격인 만큼 정중하게 표현하고 싶어 써내려간 글에 '임금님 알현하고온 유림' 운운하는 댓글이 달린 것을 보고는 정말 화가 많이 나기도 했었고요.
번개모임에서도 나온 얘기지만 그간 운영자와 회원들간의 소통이 너무 뜸했던 것이 유래없는 갈등의 중요한 원인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참석자들은 운영자에게 앞으로는 이런 자리를 종종 만드시라고 제안했습니다. 워낙 오래 묵혀두고있던 것인데 그걸 한 번에 해결하려 드니 힘든 거지요. 이 제안에 운영자님도 긍정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제 생각엔 당장 내년 총선까지는 한 두달에 한 번 정도는 술판 말고, 차담회 형식같은 서로에게 부담없는 방식으로, 자주 운영자와의 만남을 가지면서 요번에 확인한 서로의 문제의식에 대해 그때는 해결책 등에서 진전된 논의를 이어가보면 어떨까 하는데요. 잦은 만남인 만큼 변화하는 게시판 상황에 맞춘 빠른 피드백을 염두에 두고 원활한 소통을 이어나갔으면 합니다. 기술적으로나 뭐로나 다방면에서 조언을 하거나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분들이 디피에는 많이 계시니 이제는 저희 말고 그런 분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말하자면 앉아서 불만만 토로하는 사람은 되지 말자는 겁니다. 주장을 강하게 하는 만큼 해결책에 대해서도 같이 고민해보려는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 온당한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말해봤자 안통할 것 같아서 나갈 수 있는데 안나갔다는 말은 죄송하지만 정말 비겁하고 오만한 핑계라고 생각합니다. 통하는지 안통하는지 부딪쳐봐야지요. 하는데 까지 해봐야지요.
그럼 긴 글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후기를 마칩니다.
트리비아 1. 운영자님이 여러 명에 둘러싸여 답변하고 해명하느라 말을 정말 많이 하셨는데 그 때문에 나중에는 목이 쉬셨어요. 헤어지는 길에 힘들지 않으셨냐고 물으니 아니라고, 하고싶었던 말이 많았는데 이번에 실컷 할 수 있어서 속이 후련하다는 말을 몇 번이고 하시더라고요. 그동안 회원들 만큼이나 운영자도 많이 답답했던 것이지요.
트리비아 2. 앙님에게 쪽지폭탄을 보낸 사람이 밝혀졌습니다! 앙님이 공장장님에게 뭔 쪽지를 열개씩 보내냐고 쪽지 좀 보내지 말라고~ 답하느라 아까운 디피지수 다 깎여나간다고~ 울부짖자 영자님이 웃으면서 쪽지보내면 차감되는 디피점수를 더 올려야겠다고. 잔인하신 분 ㄷㄷㄷ
트리비아 3. 디피깃발 들고 나가시는 분들께. 영자님에게 예의상 물어보기라도 하고 가지고 나가세요. 예전에는 물어보기라도 하더니 요즘은 말도 안하고 들고 나가더라고. 영자님에 대해 이런 저런 오해가 많은 것 같은데 영자님도 디피깃발이 모 집회에서 나부끼는 것은 바라지 않는, 그 역시 디피의 한 구성원이더이다.
트리비아 4. 앙코르님의 건강상태가 생각보다 많이 안좋아보이더군요. 그 몰골을 해가지고 한 마디 보태겠다고 꾸역꾸역 나온걸 보고 모두들 놀라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헤어지기 전에 원기옥을 불어넣어주려고 꼭 잡은 손마디가 윤기없이 거칠고 앙상해서 또 한 번 마음이 아팠지요. 아마도 눈 치우고 나무패고 돈 안받고 시골동네 허드렛일 도우러다니면서 생긴 굳은 살이겠지만 이래저래 으휴~~ 쾌유하시기를 멀리서 기도합니다.
트리비아 5. 근데 글이 너무 길다. 이래서 나누려고 했던 건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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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그 자리에 계셨던 모든 분들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