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요리를 한다는 것
제목은 거창하지만, 실은 요리 초보 입니다.
나이가 50이 넘어가니 (진짜 현실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네요.. ㅠ ㅠ) 이제 우리 부부도 먹는거에 신경을 좀 써야겠다.. 하는 생각에 가급적이면 조미료 있는 외식은 자제하고 뭔가 집에서 해먹을 수 있는 요리가 없을까? 하는 고민을 좀 했는데, 이게 참 요리라는게 어디까지가 요리고, 어디까지가 그냥 조리인지 그 경계선이 애매하긴 하더군요.
그래서 내린 결론이 우리가 먹고 싶은 재료만 가지고 (뺄 수 있는건 빼고.) 만들어서 먹는게 요리, 즉 집밥 아닌가..하는 생각에 도달았습니다.
몇년 전 부터 밥솥에 잡곡밥은 항상 모자르지 않게 해 놓는 습관은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참 밑반찬이라는 것도 그렇고 반찬집에서 사먹자니 그것도 맨날 거기서 거긴거 같고 (나물 무침, 콩자반 같은거..) 그렇다고 국을 포장해서 와서 끓여먹자니 이것도 도무지 무슨 조미료가 들어갔고, 냉동실 넣어두고 얼음 블럭 처럼 만들어놓고 나중에 잊어버리고 버리는 일이 반복되다보니 해결책이 아니구나 생각했죠.
결국 집에서 요리를 해먹어야 겠다고 생각하고 몇달 전 부터 이것 저것 만들어보기 시작합니다.
왜 요리를 제가 하냐고 궁금하실까봐 말씀 드리지만 저희 부부는 오래전 부터 맛벌이를 했고, 그나마 제가 시간이 좀 많이 남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회사를 짤린건 아니고요 ㅋ)
사실 아주 오래전에 김치찌게 한번 끓여 먹어보겠다고 온 집안을 김치국물에 돼지고기 기름으로 번벅을 해놓고 설겆이만 잔뜩 만들어놓고 정작 만들어 놓은 찌게는 맛이 없어서 못먹고 버리고 한 적도 있어서 두려움이 앞서긴 했는데.. 새상 참 좋아진게..인터넷으로 검색해 보면 진짜 모든 요리법이 나와 있더군요.
그러나 하두 여러가지 버젼이 있다보니 도무지 뭐가 정석인지도 햇갈리고, 이것 저것 생각만 많다보니 정작 포기 하고 싶은 생각도 들긴 합니다.
그래서 나름 원칙을 새우고 요리를 하다 보니 발견한 몇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1) 어지간한 소스는 고추장 + 고추가루 + 간장 + 다진 마늘 이 베이스 더군요. 오리 주물럭, 낚지볶음, 제육볶음 등등 대충 다 이걸로 소스 만들고 제어 놨다가 구으면 딱입니다. (설탕이나 올리고 당 매실청 등도 들어가긴 하는데, 저희는 당류는 빼고 먹는 원칙을 새웠더니 어지간하면 안넣고 요리할라고요)
2) 요리 하는 순서가 대충 비슷 비슷 하더군요. 볶음 요리는 파로 기름내고, 그 이후 양파 그리고 잘 안익는 야채 순서대로 넣고 볶은 다음에 소스 넣기. 소스를 뭐 넣고 끓이냐 볶느냐 에 따라 카레도 되고 짜장도 되고, 마라샹궈도 되고 된장찌게도 되고 김치찌게되고 미역국도 되고 콩나물국도 되고 하더군요 (중간에 밑간 한 고기 나 어떤 재료를 넣느냐에 따라 해물카레, 치킨카레, ** 상궈도 되고요)
3) 감자는 참 더럽게 안익는다.. 진짜 요리가 끝나는 시간이 감자가 익는 시간이더군요. 이놈의 감자 익는거 볼라고 하나 둘 씩 먹다보면 요리 끝날 때 쯤되면 감자가 다 사라질 판이였는데, 이제는 잘게 썰기도 하고 어느정도 내공이 쌓이니 한방에 딱 먹어보니 알겠더군요. ㅋ
4) 남이 만든 요리를 잘 관찰 하는것 만으로 절반의 성공인듯. = 예전에는 음식점에 가도 처가집에 가도 그냥 맛있게 먹느라고 아무 생각 없었는데, 나름 요리를 해보니, 어떤 재료가 어떻게 들어갔고, 밑간은 어떻게 했을까? 등등이 매우 요긴한 지식으로 쌓입니다. 예전에는 연어를 구을 때 그냥 잘 뒤짚고 불조절만 잘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연어에 올리브유를 발라주면 잘 부서지지 않게 맛있게 구워지는 것도 알았고요, 고등어 구을 때 부침가루와 카레 가루 (강황) 살짝 발라주면 더 맛있는 것도 관심있게 보니 알아지더군요.
5) 장보는게 진짜 피곤하다 : 보통 뭘 해먹을까? 하고 장을 보는거 보다 장을 보다보면 제철 재료가 뭐가 나오는걸 보고 이걸 가지고 뭘 만들어 먹자..하는게 더 편하다는 걸 배웠습니다. 야채는 어차피 기본적으로 항상 필요한 것들 (양파, 대파, 마늘 (다진거), 감자, 무우, 시금치, 애호박 등은 냉장고에 넣어두면 항샹상 쓰게 된다는 것, 그러나 이외 것들은 진짜 충동구매 해서 사놓으면 나중에 냉장고 어디 쳐밖혀 있다가 버리기 딱 좋은 걸 알았습니다.
6) 냉장고 관리가 진짜 고수의 길 인것 같습니다. 위에 내용하고 어느 정도 상통하는거 같긴 한데, 제가 요리를 하겠다고 맘먹고 제일 먼저 한게 냉장고 정리 였습니다. 냉동칸에 정체모를 언음식 덩어리, 야채칸에 타임캡슐에 넣어둔 것 같은 포장음식들.. 싹 다 비우고 이제 여기에는 스타크 할때 처럼 잉여자원 (재료)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효율적으로 관리하겠다. 하는 마음 가짐으로 시작 했는데, 아직도 냉장고 어디 구석에 보면 예전에 담아놨던 재료들이 있습니다. 살림의 고수이신 주부님들 보면 냉장고가 항상 깔끔하고 버릴 것이 없도록 관리 한다고 하는데..저는 아직 멀었습니다. 냉장고에 있는 야채만으로도 활용 가능한 요리를 잘 하는 것도 고수 인듯..
7) 음식물 쓰레기 봉투가 진짜 많이 필요하구나, 예전에는 몰랐는데, 집에서 음식을 해보니 무슨놈의 음식물 쓰레기가 이렇게 많이 나오는지, 일주일에 5리터 짜리 두개 가지고 모자를 판이더군요. 두 사람 먹는데도 이러는데, 세식구 네식구는 진짜 어떻게 다 관리 하시는지 허구헌날 그거 갖다 버리는 것도 일인듯 합니다 안그럼 냉동실에 칸이 모자랄 판국..- 음식물 쓰레기 분쇄기라도 사야하나요?
8) 요리 도구가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예전에 몰랐는데 중국요리 할때 쓰는 Wok 이란 거 진짜 신세계를 발견했을 때의 희열은 이루 말 할 수가 없더군요. 거기에서 모든 요리의 과정이 한방에 이뤄어 지는걸 왜 이제서야 알았는지, 심지어 찌게도 볶고 육수붓고 끓이면 끝입니다. 나중에 보관만 솥에 하고요. 그리고 1구 짜리 인덕션을 어디서 사은품으로 받아왔는데, 이걸 제가 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인덕션용 후라이팬으로 요리하니 기름도 안튀고 너무 좋습니다. 간단한 요리 (부침, 팬케이크)는 가스불로 안하고 인덕션을 쓰니 너무 좋네요.
9) 요리는 일본어 같더군요. 위에서 대충 베이스가 비슷하다고 썼는데, 이게 우리 일본어 배울때 어순이나 단어가 비슷해서 어느정도 까지는 쉽다가 나중에 조금 고급표현으로 들어가면 진짜 어렵듯, 요리라는게 정말 미묘한 차이로 맛이 확 달라진다는 걸 알았습니다. 재료의 조합, 숙성 시간, 양념의 타이밍, 미세한 차이가 맛을 결정하는데, 물론 맛이라는게 주관적이긴 하지만, 우리가 흔히 얘기하는 어머님의 손맛은 진짜 몇달 한두해 요리 했다고 해서 감히 근접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시한번 우리 어머님, 장모님을 존경할 수 밖에 없고 이새상 모든 주부님들 진짜 존경합니다.
10) 재료가 진짜 중요하다. 이건 뭐 어찌보면 가장 기초적인 얘기 같지만, 재료를 제대로 고르는 것 부터가 요리의 시작 아닌가 싶습니다. 요즘은 마트에서 어지간히 좋은 재료만 팔긴 하지만, 대체로 즉석에서 요리 하게 끔 양념하고 같이 파는 재료들이 대체로 신선도가 떨어지는 듯 하더군요. 그래서 어지간하면 불편하더라도 신선한 재료들을 사서 직접 양념해서 먹는게 건강하고 신선하게 먹는 거인듯 합니다.
11) 요리에는 나눔의 철학이 깃든듯.. 요리를 하다보면 양 조절이라는게 참 어렵다는걸 느겼습니다. 결국 짜장 소스 나 카레를 만들다 보면 2인분은 고사하고 만들다보면 (제가 손이 커서 그런지 몰라도) 7 ~8인분은 나오게 만들어 지더군요. 그렇다고 이걸 계속 먹자니 아무리 맛있는 음식도 두 세번 연달아 먹다보면 질리기 마련이라 나눠주게 될 수 밖에 없고 나눠주다보면 빈그릇만 주기 그래서 서로 서로 이것 저것 담아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가족간의 돈독해 지는 것 같아서 좋더라고요 (물론 저의 맛없는 요리 먹느라 고생 하실 수도 있지만..)
이상 그냥 주저리 주저리 시간이 남아서 써본 요리에 대한 얘기였습니다. 감히 이제 요리 좀 해보겠다고 설래발 치다가 이런 글을 써도 되는지 모르지만요..
혹시 좋은 비법 있으시면 좀 알려주십시요.
그럼 디피 회원님들 모두 행복한 식생활 되시기를.. ^^
이건 좀 전에 난생 처음 만들어 본 만든 짜장 소스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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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 만들다보면 당근이 엄청 안 익더군요.
저도 요리초보라서 그런지 카레, 볶음밥이 만들기 쉽더군요.
다진마늘과 굴소스만 넣으면 뭘 만들어도 먹을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