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이슬람세계는 왜 현대문명(서구문명)에 적응하지 못했던걸까?
19세기 서구문명이 지구상 다른 모든 문명을 압도했을 당시 다른 문명권에서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대응했습니다.
1. 서구문명을 무조건 따라잡기 아니면
2. 전통문화를 무조건 고수하기
동아시아의 경우 중국, 한국, 일본 모두 크게 개화파 부류와 위정척사파 부류로 나뉘었는데 결국 개화파가 승리하게 되지요.
그리고 무작정 전통을 고수하는 것은 정말 멍청하고 어리석은 일이라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특히 중국의 의화단은 서구문명을 부정하면서, 무술로도 총알을 튕겨낼 수 있다는 허황된 믿음을 갖고 있었고, 백인들, 그리고 기독교로 개종한 중국인 동포를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무자비하게 살해했습니다. 그 대가로 더 참혹하게 학살당했지만요.
아무튼 동아시아에도 상투를 자르기 전에 내 목을 먼저 처라, 예의의 나라가 어떻게 양이의 법도를 따르겠냐라며 엄청난 저항이 있었지만, 결국 서구문명을 완전히 받아들이고 흡수했습니다.
그 결과 한중일은 오늘날 정치적 제도는 다를지언정 문화나 생활양식에 있어서 서구주류 문명과 큰 차이가 없지요.
그런데 이슬람세계는 유럽 바로 옆에 붙어 있었음에도 서구문명을 수용하기보다 오히려 격렬히 거부하면서 구시대적인 교리에 함몰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개혁가들이 없던 것은 아닙니다.
오스만 제국과 이집트 등지(이집트도 당시 오스만제국의 일부였기 때문에...)에서는 19세기 당시 일본의 근대화론자들과 마찬가지로 서구의 헌정질서와 민족주의를 추구하는 이들이 존재했습니다.
19세기 중반, 일본에서 메이지 유신이 성공했을 무렵 오스만 제국에서도 나미크 케말(Namik Kemal)이라는 개혁가가 나타나 프랑스의 헌정질서와 근대국가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국가가 가족이나 종교보다 우위에 있다고 말하면서, 술탄의 전제주의는 민의로 선출된 의회에 의해 보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젊은 오스만(Young Ottomans)라는 조직을 결성하여 계몽운동에 헌신했습니다.
그런데 보수파의 강력한 반발로 인해 그는 무려 3차례나 축출되었고, 결국 1888년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비록 케말은 물러나게 되었지만 유럽열강으로부터 지속적인 압력을 받던 오스만 제국은 개혁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특히 오스만 제국의 명줄이 유지되었던 것에는 영국과 프랑스의 도움이 컸습니다.
그래서 보수파의 목소리는 약해졌고, 일종의 개화파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이 전면으로 재부상했습니다. 이에 따라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에 이르면 오스만 제국은 여러 차례에 걸쳐 개혁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오스만 제국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던 아랍인들은 이러한 개혁에 호의적이지 않았습니다. 사실 오스만 제국도 근대화의 혜택을 터키인들에게 몰빵(?)하는 경향이 있었고 오스만 제국의 엘리트들(터키인)은 피지배 계층인 아랍인들을 멸시했던 탓도 있습니다.
그 와중에 터진 게 제1차 세계대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제국은 오스만 제국의 칼리프에게 영국-프랑스에 대항하는 지하드를 촉구하였으나, 정작 오스만 제국의 <종교적 권위>는 이미 실추되었고, 반대로 영국은 아랍민족주의를 자극하여 오스만 제국에 반기를 들라고 종용했습니다. 그리고 이에 고무받은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반대로 아랍인과 이슬람을 억압하는 오스만제국에 대항하는 성전을 촉구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이슬람 세계의 칼리프였던 오스만 제국은 와해되었습니다.
그리고 새로 탄생한 터키는 Namik Kemal을 존경하던 무스타파 케말(Mustafa Kemal)이 지배하게 되었고, 그는 그의 선배의 생각대로 터키를 철저히 세속화시키면서 근대화시켰습니다.
그 이후에도 이슬람권으로 분류되는 사회에서 끊임없이 근대화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대부분의 식민지들이 독립할 당시
이집트에는 나세르를 필두로 하는 세속적인 아랍민족주의가 대두했고, 시리아와 이라크에는 소련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바트(Baath)당이 집권했습니다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도 바트당이 집권한 나라였습니다)
이들 세속주의자들은 문맹퇴치, 여성인권 신장, 국가>종교 등을 확립하고자 했습니다.
문제는 이들 세속주의자들이 반제국주의, 반서방, 친소련 진영에 있었다는 것.
그리고 이런 세속주의자들은 국민들에게 약속한 것들을 제공해주지 못했습니다. 사실 이슬람 공동체는 현대국가의 복지기능을 대부분 수행했었는데, 세속국가는 이러한 기능을 이슬람공동체로부터 빼앗는데 성공하였으나, 배분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잦은 전쟁으로 국가는 자원이 부족했고, 대부분의 자원이 군대에 몰빵됨에 따라 국민을 위한 복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국민들은 국가를 믿지 못하게 됩니다.
게다가 냉전이라는 대결구도 하에서 서방세계는 중동의 친소 세속국가들을 무너뜨리기 위해 혼신을 다했습니다.
그 결과, 1970년대말 CIA는 알카에다의 전신이 되는 무자헤딘을 지원하는 실책을 저지르기도 했죠 (소련을 엿먹이고 싶었던 당시 미국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판단일 수도 있었겠지만)
정말 복잡하고 어지러운 역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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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부터 깨야죠. 빈민층은 코란과 반미만 가르치니 답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