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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혜종, 주먹을 날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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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6-05 09:14:56

오늘은 고려의 2대 임금 혜종(惠宗)에 대해서 써보고자 합니다.

 

그는 태조 왕건의 아들이며 943년부터 945년까지 2년 남짓 왕위에 있었습니다.

재위 기간이 짧고, 사료에 병환으로 위독한 가운데 승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므로 매우 병약한 왕이라는 이미지로 남아 있습니다.

 

실제 고려 초기를 다룬 드라마에서도 약골처럼 묘사됩니다.

 

하지만 다음의 기록을 보면 혜종이 만만치 않은 완력의 소유자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왕규(王規)가 광주원군(廣州院君)을 옹립하려고 도모하여, 일찍이 밤에 왕이 깊이 잠든 틈을 타서 그의 일당으로 하여금 침실에 잠입하게 하여 장차 대역죄를 범하고자 하였다. 왕이 이를 깨닫고 한 주먹에 그들을 때려죽인 후 주위에 명하여 끌어내게 하고는 다시 묻지 않았다.”   <고려사절요> 혜종 2(945)

 

위 기사를 보면 당시 권신인 왕규가 자객들로 하여금 왕의 침소를 덮치게 하자 혜종이 친히 주먹으로 그들을 모두 때려죽였다고 되어 있습니다.

 

자객들은 당연히 무기를 휴대하고 있었습니다. (고려사절요에 인용된 이제현의 글에 의하면 자객들은 소매 속에 칼을 감춘채로 혜종의 방에 침입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혜종은 적어도 2명 이상의 무장한 자객을 맨손으로 격살(格殺)하였다는 뜻이 됩니다.

 

왕을 시해하기 위해 선발된 인원이 상당한 무위를 갖추고 있었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서 보면 더욱 놀라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실 혜종에 대한 증언을 들어보면 병약한 사람과는 거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혜종 인덕명효선현의공대왕(惠宗仁德明孝宣顯義恭大王)의 휘는 무()이고 자는 승건(承乾)이며 태조(太祖)의 맏아들로 어머니는 장화왕후(莊和王后) 오씨(吳氏)이다. ··· 후백제(後百濟)를 칠 때 종군(從軍)하여 용맹을 떨치며 선봉에 섰으므로 공이 제일(第一)로 되었다.”   <고려사> 세가 혜종 총서

 

위 기사를 보면 태조 왕건이 후백제와 결전을 벌일 때 아들인 혜종이 종군하여 선봉에서 용맹스럽게 싸워 무려 제 1의 공을 세웠다고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무공이 뛰어났으면 이름이 이겠습니까!!!???)

 

이처럼 강인하고 용맹했던 왕은 어떤 이유로 재위 2년 만에 승하하고 말았을까요?

 

고려의 후삼국 통일 이후에도 나라의 권력은 여전히 지방 세력인 호족들에게 있었습니다.

태조 왕건은 호족들과 맺은 정략결혼, 기인제도 등을 통해 그들을 제어하려 했지만 창업 군주의 권위를 갖지 못했던 아들 혜종 대에 와서는 호족들에 의해 왕권이 크게 흔들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혜종의 모친인 장화왕후 오씨의 집안도 그리 세력이 강하지 못하여 왕권의 기반이 되어주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공공연한 살해 위협으로 인해 혜종은 밤마다 침소를 옮겨 다녀야 했고, 자객이 임금의 침전을 범해도 그 배후세력을 처벌하지 못했습니다. 호족, 권신들의 세력에 의해 왕권이 크게 위축되어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이처럼 불행한 재위기간을 보내던 혜종은 심각한 공포감, 무력감에 사로잡혀 병을 얻은 가운데 2년 만에 세상을 떠났던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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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0-06-04 15:48:55

고려나 조선이나 2대왕에 대한 오해가 심하죠. 조선 2대왕 정종도 태종의 꼭두각시로 무기력한 사람처럼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이성계의 아들들 중에서 전장에 따라다니며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이었습니다. 오히려 태종이야말로 이성계 아들들 중 유일한 문과 과거급제자였죠.

 

혜종에 대한 일화 잘 봤습니다.

WR
2020-06-04 16:16:47

태종 이방원은 추진력, 결단력이 있고 지략이 뛰어난 인물이었죠.

과거에 급제했으니 지식이야 말 할 것도 없었을거고요.

댓글 감사합니다.

2020-06-04 16:41:57

 조선의 문종도 병들고 나약한 이미지에 희생당한 임금이죠. 10년만 더살았으면 조선 역사상 세종 바로 다음의 명군으로 남았을 엄청난 능력자. 단지 살아생전에 형제 사랑이 너무 지극해서 수양대군을 너무 설치게 놔둔게 천추의 한으로 남은 임금이죠. 수양이 문종을 무시하고 까분게 아니라 문종이 너무 수양의 뒤를 봐줘서 안하무인으로 설쳤다는게 진실이죠

WR
2020-06-04 16:44:17

밀덕이라고도 하더군요.

세종 말년의 업적은 문종(세자 시절)의 업적이라고 할 수도 있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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