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삼국지 명장면 중 소설이 아닌 실제로 있었던 일.txt
1. 서주대학살과 유비의 구원
- 조조가 아버지 조숭이 도겸 부하에게 살해당하자, 이에 빡쳐서 서주를 초토화시킨 사건. 무고한 백성들은 물론 가축들까지 무자비하게 도살하면서 시체로 강이 막혔다 할 정도.
- 서주의 명사들도 잔혹하게 살해되거나, 살아남은 이들은 서주를 탈출하여 촉.오의 反조조 진영을 구축하게 됨. 촉의 미축과 제갈량, 오의 장소/노숙/제갈근/보즐 등이 서주 출신 명사들.
- 조위 정통론에서 저술한 정사에서 진수가 '살육'이라 언급했을 정도 서주대학살을 비판적으로 기술.
- 이때 공손찬 밑에 있던 유비가 전해와 함께 서주를 구원했고, 이 때 미축을 비롯한 서주 명사들의 지원을 받아 도겸이 죽은 후 서주자사로 추대받게 됨. 유비가 전국구로 이름을 알리게 되는 계기.
2. 원문사극
- 유비가 여포에게 배신당해 서주를 뺏기고 여포와 원술 군대의 협공으로 위기에 봉착했을 때, 여포가 뜬금없이 유비와 기령(원술군 대장)을 '원문'이라는 곳에 초대해서 중재시킨 사건
- 여포는 150보 떨어진 곳에 극을 꽂아두고는 "내가 화살로 저 극의 가지 부분을 쏘겠다. 맞추게 되면 화해를 하고, 못 맞추면 싸워서 끝장을 보든말든 맘대로 하라"라고 제안.
- 여포는 술을 몇 잔 마시고도 놀랍게도 극의 가지부분을 정확하게 맞추고, 기령은 하는 수 없이 군대를 퇴각시켜 유비는 목숨을 건지게 됨
- 연의에선 방천화극이라는 부분만 창작. 여포의 궁술은 정사 인증의 신궁...
3. 논영회
- 유비와 조조가 천하 영웅에 대해 논하면서, 조조가 유비에게 "천하의 영웅은 사군(유비)과 이 조조 둘 뿐이오."라고 했던 일.
- 정사에선 오직 원소만 언급하지만, 연의에선 원소 다음으로 원술/유표/유장/손책/마등 등이 추가됨.(대표적으로 원술보고 '무덤 속 뼈다귀'라 했던 것). 그리고 정사에선 이 얘기에 유비가 놀라서 수저를 떨어뜨렸다고 하지만, 연의에선 유비가 좀 더 겁쟁이 연기를 하는 부분이 추가.
4. 유비를 따라간 백성들, 그리고 장비의 장판파 무력시위
- 유비가 조조에게 신야를 뺏기고 형주 강릉으로 피신할 때, 10만의 백성들이 집안의 가재도구들을 버리고 최소한의 짐만 챙겨 유비를 따라 피난길에 오름
- 일각에선 유비가 백성들을 바리케이트로 삼았다고 깎아내리지만, 서주대학살의 공포와 유비의 인망이 당대 백성들에게도 잘 알려질 정도였으니 백성들이 유비를 따라간 것이 당연.
- 무엇보다 유비에겐 하루빨리 강릉성에 입성해서 수비를 강화하는 게 이익이었기에, 일부러 백성들을 바리케이트를 삼아야 할 이유가 없음. 정사 기록에는 피난길에 소요사태가 없었다는 걸 보면 유비군 장수들이 최선을 다해 질서유지를 시켰을 것이라 추측
- 결국 조조군에게 따라잡힌 유비는 장비에게 20기의 기병을 딸려보내 후방을 맡겼고, 장비는 장판교 위에서 수천의 조조군 기병 앞에서 사자후를 내지르며 무력시위.
- 호표기는 물론 오환족 기병들조차도 장비의 사자후에 쫄아서 활도 못쏘고 우물쭈물했다 함.
- 연의에서 조조군이 물러가자 다리를 끊었다고 하는데, 이건 창작.
5. 조운의 아두 구출
- 장판 전투에서 유비가 도망치는 도중 미부인과 감부인, 아두(유선)을 잃자 조운이 단기필마로 조조군 사이로 뛰어들어, 아두를 구출해온 일.
- 연의에선 조조의 100만 대군을 뚫고 강보에 싸인 유비의 아들을 데리고 탈출했다고 나오나, 정사에선 100만 대군이 아닌 호표기 5천을 뚫고 감부인과 아두를 구출해 옴.(이건 정사가 더 쩌는데?!?! 연의처럼 무쌍을 찍으며 뚫고 왔다기보다 접전은 최대한 피하면서 왔겠지만, 그래도 대단한 건 변치 않음)
- 유비가 어린 아들을 내던지며 "못난 아이 때문에 소중한 장수를 잃을 뻔했다"라고 하는 장면은 연의의 창작.
6. 관우가 안량, 문추를 참하고 유비에게 돌아간 일
- 관우가 안량과 문추를 죽여 공을 세우고 유비에게 돌아갈 때, 조조가 보내준 일
- 연의에선 조조가 관우를 일부러 만나주지 않는 등 쪼잔한 모습을 보이나, 정사에선 조조가 "그는 자신의 주인을 따라간 것이니 뒤쫓지 말라"라며 정말 쿨하게 보내줌.
- 정사에 주석을 단 배송지도 "이는 정말 조공의 훌륭한 행동이다"라며 극찬
(배송지가 주석을 달면서 조조의 멘트 하나하나를 깠던 걸 생각해보면, 정말 이례적인 칭찬)
7. 유비가 죽을 때 제갈량에게 황제가 되라고 한 일
- 이릉대전 패배 후 유비가 죽어가면서 제갈량에게 "유선이 똑똑치 못하면 그대가 직접 제위에 올라 다스려달라"라고 하여 당대 기준으로 정말 충격적인 내용의 유언을 남김.
- 일각에선 유비가 죽기 전에 빈말로 제갈량의 충성심을 떠본 것이라 말하지만, 유비와 제갈량의 관계가 '수어지교'라고 할 정도로 신뢰가 돈독했던 걸 보면 아주 빈말을 한 건 아니라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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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삼국지 전문가 시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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