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정치] 인지부조화와 확증편향, 그리고 자기객관화
1957년 레온 페스팅어는 일군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다음과 같은 실험을 합니다.
1. 학생들을 둘로 나누고 순서대로 각각 어느 방에 들어가게 합니다.
2. 방에 들어온 학생에게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을 시킵니다.
3. 일을 마친 뒤 실험자들은 방의 학생에게 나가면 다음 참가자에게 일이 재미있었다고 말하라고 요청합니다. 실험자들은 한쪽 학생에게는 20달러를, 다른 학생에게는 1달러를 보상으로 제시합니다.
4. 이런 과정을 모든 참가자들에게 시행한 뒤 페스팅어는 피실험자들에게 이 실험이 얼마나 재미있었는지를 질문합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1달러를 받고 거짓말한 학생들이 20달러를 받고 거짓말한 학생들보다 이 일이 정말 재미있었다고 훨씬 더 많이 대답했습니다.
어떻게 된 것일까요?
우리의 상식이라면 20달러 받은 이들이 자신의 거짓말에 감정적으로 더욱 충실해야 할 텐데 말이죠.
레온 페스팅어의 결론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겨우 1달러의 댓가로 거짓말을 해야 하는 학생들은 결국 진짜 그 실험이 재미있다고 스스로를 납득시키므로서 1달러의 댓가를 정당화했다."
이것이 바로 인지부조화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밝혀낸 레온 페스팅어의 실험입니다.
인지부조화는 자신의 믿음(일이 지겹다)과 외부의 현실(또는 해야하는 행동-이 경우는 재미있다고 말하는 것)이 다를 경우(일관성을 잃을 경우) 외부 현실을 바꾸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이미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쉬운 인식(또는 해석-일이 지겹다고 느꼈던 것)을 바꿈으로서 자신의 심리적 체계-보편믿음을 유지하는 인간의 방어기제중 하나입니다.
페스팅어는 이후 종말론 사이비 종교에 잠입해서 그 신도들 사이에 일어나는 심리적 변화도 관찰합니다. 신도들은 교주의 말만 믿고 종말을 기다리며 열성적으로 기도합니다. 하지만 종말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종말이 오지 않았으니 교주가 잘못된 것이라는 합리적인 판단 대신 우리가 간절히 빌었으므로 신이 감동해서 종말이 오지 않았다고 자신들의 인식을 바꿉니다.
구로에 어느 초대형 이단교회가 있습니다.
그곳의 목사는 얼마전 다수의 신도들을 상대로 오랜 시간 성추행혐의로 징역16년형을 받고 지금 복역중입니다. 그 교회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우리의 합리적인 예상은 망해서 없어졌어야 할 겁니다. 하지만 현재 그 교회는 그 목사의 과거 동영상설교로 예배를 계속 하고 있습니다.
좀 더 나아가 볼까요?
그 목사는 자신의 딸을 자신의 후임으로 지명했습니다. 세습이지만 이단이기때문에 그건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갑시다. 하지만 그 목사가 자신의 딸을 지명한 이유는 좀 특별합니다.
자신의 딸이 순결하고 지금까지 남자 한 번 만나본 적이 없기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목사는 자신의 교회에서 이성교제는 절대 금지시켰으며(성폭행으로 유명한 다른 목사의 교회도 그렇습니다) 비슷한 문제가 있던 교인이나 교역자는 쫓아냈습니다. 그래서 그의 딸이 후임이 될 수 있었겠죠.
그런데 교인들에 의해 그 딸에 대한 과거가 폭로됩니다.
그녀는 과거에 남자가 있었고 낙태까지 했었다는 폭로 말이죠. 그 폭로에 그녀는 곧바로 사임합니다. 그 뒤에 어떻게 되었을까요?
다시 복귀합니다.
그 교회의 입장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 딸은 아버지에게 용서를 받았고 교회 안에서 이성교제를 공식적으로 금지시킨 적이 없었기 때문에 괜찮다.
분당에 가면 경부고속도로 바로 옆으로 하얀 대리석으로 치장한 근사한 교회가 하나 보입니다. 벽에 예수님의 얼굴을 음각으로 멋지게 새겨 넣었죠. 그 교회는 88년, 2000년, 2012년 세번에 걸쳐서 종말을 예언했습니다. 그럼에도 지금도 신자가 불어나고 돈도 넘쳐납니다. 몇해전 기독교의 한 욕심많은 목사가 대출 왕창 끌어안고 지었다가 망한 으리으리한 성전을 현찰로 한방에 경매로 인수했죠.
사회가 발전하면서 그리고 현실을 인식하기 위한 근거와 논리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변화되면서 인지부조화는 합리적 판단과 개인주의 세계관 사이에서 점점 빈번해 지고 일반화 되고 있습니다. 이제 인지부조화는 종말론 사이비나 광적인 정치세력에 머물지 않고 연예인 팬클럽에서 유사과학 신봉자들, 역사매니아나 외교까지 사방으로 뻗쳐나갑니다. 모두 자신이 믿는 세계관만이 절대적이라고 믿고 아무리 합리적이거나 객관적인 현실을 들이밀어도 그냥 내가 좋으면 그만이라며 자신의 기호를 진리로 등가시키는 일이 점점 보편화되어 갑니다.
그들은 자신의 세계관에만 유리한 정보들을 취사선택해서 수집합니다.
인터넷 세상에서 정보란 것은 그것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일단 정보란 이름을 가진 조각들은 해변가의 모래처럼 많습니다. 당신이 무엇을 믿겠다고 선택하든 당신의 믿음을 확고하게 해줄 증거들을 모아보겠다고 한 순간 당신은 순식간에 산보다 더 많은 분량을 모아낼 수 있습니다. 동시에 나의 믿음에 반대되는 근거라면 그게 아무리 과학적이며 검증되었다 할지라도 개인의 권리라는 미명하에 그것을 무시하고 스킵합니다.
얼마전 유튜브에 평평지구론을 주장하는 사람을 본적이 있습니다.
그는 지구가 거대한 유리돔에 갇혀 있는 평평한 세계이며 달은 실재하지 않는다고 인공위성도 달착륙도 모두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온갖 근거를 들이대며 수없이 영상을 찍어냅니다. 댓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주장을 부정하고 조롱하지만 그 안에는 그의 주장에 대해 진실을 말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습니다.
무엇을 주장하고 싶으신가요?
이승만 국부론, 박정희 성군론, 한일합방의 정당성, 노무현이나 박원순 타살, 박근혜나 이명박의 무죄, 수시냐 정시냐, 창조론, 평행우주, 시뮬레이션 우주론...
아무리 망상, 망언 수준의 발상이라도 오늘 하루 나무위키부터 시작해서 인터넷 블로그 몇군데 돌아다니면 당신은 마치 슈뢰딩거의 고양이 마냥 근사한 무언가의 주창자가 될 수 있습니다.
디피의 차한잔을 거니는 것은 수많은 사람들 사이로 합리적 주장과 도덕적 우월성의 옷을 입은 인지부조화와 확증편향의 존재들이 종횡질주하는 거대한 광장을 연상시킵니다. 그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네가 인지부조화며 네가 확증편향이라고 외치면서 주변에 서 있는 사람들에게 나를 믿으라고 떠들지요. 주변 사람들은 익명의 이름표를 달고 그들을 외면하거나 너무 시끄러운 소리에 광장을 떠나기도 하거나 또는 그럴듯한 주장에 귀를 기울이거나 다양한 반응을 합니다.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은 사람들이 내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상대편에게 외칩니다. 상대편은 아니라고 합니다. 비단 디피에서만이 아니죠. 이른바 커뮤니티라는 이름의 모든 인터넷 집단안에서 일어나는 공통적인 현상입니다.
토요일 광화문에서 출발한 지하철.
그 안에서 태극기를 몇개씩 들고 주변 사람들에게 문재인 빨갱이가 나라를 망친다고 외치는 할아버지를 볼 때마다 나는 저 사람과 뭐가 다른지 생각합니다.
저 사람이 문재앙 빨갱이라고 외치듯이 우리도 이명박그네라고 조롱하고 우리가 그들이 죄를 지어 감옥에 갔다고할 때 그들 역시 노무현 박원순 노회찬이 죄가 없으면 왜 죽었겠냐고 외칩니다. 우리의 민주화 투쟁만큼 그들 역시 고도성장의 주역이라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우리가 언론때문에 문재인 지지율이 떨어진다고 생각할 때 그들 역시 인터넷 sns 뉴공때문에 선거에서 졌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박근혜 51.6%당선이 선거부정이라고 믿듯 저쪽 역시 이번 총선이 부정선거라고 믿습니다. 긴급재난지원금이 우리에게는 나라와 국민을 살린 젖줄인 동시에 그들에게는 미래 한국의 재정을 파탄내는 조삼모사 병신짓입니다. 우리가 저쪽에 왜 그렇게 사니 라고 말하는 같은 시간에 그쪽 역시 니들은 우리랑 뭐가 다르냐고 손가락질 합니다.
저는 한때 그들이 자신의 목표를 위해서 거짓이나 왜곡주장을 알면서 이용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항상 합리적인 판단과 정확한 근거를 가지고 주장한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조금 생각이 다릅니다.
진리는 멀고 우리는 그저 각자의 신념과 세계관 속에서 확증편향으로 모은 주관적 근거를 가지고 대결할 뿐입니다. 종교적 신념 수준의 주장은 점점 격화되고 어느덧 가장 기본적인 것 보편가치에 대한 고려는 멀리 사라집니다.
보편가치의 소중함보다 우리편의 정당성이 우선할 때 역사의 비극이 일어납니다.
생명의 소중함보다 나의 이데올로기가 더 우선할 때 전쟁이 일어나고 학살과 차별, 린치가 일어납니다. 하지만 우리는 절대 물러서지 않죠.
원래 종교와 정치 영역에서 반대편 주장을 들을 때 우리 뇌는 그것을 자신의 신체에 대한 공격으로 인식한다고 심리학에선 말합니다. 그래서 전쟁이 있나 봅니다. 전쟁으로 무고한 생명이 다 죽어봐야 그때서야 내가 뭘 잘못했구나 하며 역사적인 반성이 일어나는 걸 우린 무수히 보았죠.
가급적 안쓰려고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정치에 관련된 글을 쓸 때 몇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어떤 사안에 대해서 저쪽 주장과 근거도 반드시 언급할 것,
조직이나 세력을 대표하지 않는 한 개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말 것,
신념과 객관적 판단을 반드시 구별할 것 등등...
이 모든 것은 결국 한가지 가치로 귀결됩니다.
자기객관화 라는 가치로 말이죠.
제가 교회를 떠나서 가장 감사하는 일중 하나는 교회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시야가 더 확장되어 세상에 대해서도 그런 시야를 많이 적용하려고 합니다.
일베나 태극기, 페미, 길거리 부정선거 홍보패널, 문재인 탄핵서명, 더 나아가 커뮤니티 테라포밍 세력이나 댓글세력(저는 이들에 대해 남들보다는 좀 더 알고 있는 바가 많습니다), 젊은 보수들까지 이른바 민주개혁세력(이라고 우리 스스로 칭하는)의 반대쪽이라고 지정할 만한 이들에 대해서도 혐오나 판단보다는 그 원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합니다.
여기 계신 분들이 대부분 느끼시겠지만 나이가 먹을 수록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옳은 줄 알았던 것 안에 부정이 있었을 때, 또 혐오하고 비난했던 것 안에 진실이 있었을 때 뒤늦게서야 그 냉혹한 현실 앞에서 부끄러웠던 적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의 정치적 스탠드와는 별개로 세상사를 일도양단하듯 구별짓는 태도는 피하려고 합니다.
물론 저쪽의 너무 선을 넘는 표현들은 거르려고 하죠.
그것은 사안의 옳고 그름과는 또 다른 문제니까요.
그것은 글을 읽어주거나 말을 들어주는 독자, 청자에 대한 예의 문제지요.
이 부분에서 경솔하고 무례한데 그것을 굳이 들어줘야 한다는 의무감은 제 자신의 존엄성 유지를 위해서도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그런 표현이 나오는 이유도 일견 이해합니다.
댓글세력이 혐오적 용어(문재앙, 대깨문, 홍어)나 도발적 어휘(교이쿠니?여기 문재앙 신자 하나!) 를 먼저 만들어서 퍼뜨리는 것과는 별개로 그런 용어라도 붙잡고 커뮤니티 댓글 판을 어지르는 평범한 이들을 볼 때 저는 그들의 좌절감과 절박함을 느낍니다.
그들이 수십년간 믿어왔던 건실한 가족주의적 세계관, 힘센 아버지와 자비로운 어머니 아래서 땀흘려 일군 이 나라의 발전이 북한과 친하려고 하는 운동권 세력에게(그들은 운동권이 자기들이 열심히 일하던 7,80년에 대학가서 편하게 놀면서 잘난채 했던 애들로 기억합니다) 송두리째 빼앗긴, 그리고 이제 ai와 sns, 스마트폰, 전기차 순식간에 모든 게 바뀐 2020년에 도무지 설자리를 찾기 힘든, 그런 세계관의 붕괴 속에서 민주화 싫어요 산업화 좋아요 그런 주문이라도 매달리고 싶은 그들의 절박함....
저는 어쩌면 그들의 지금이 우리의 20~30년 뒤 모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항상 합니다.
지금 20, 30대가 40~50대가 되는 그날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요?
그런 생각을 하면 차마 태극기 부대에게 함부로 욕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들도 작년 서초동 집회때 한구석을 초라하게 차지하고서 트로트를 불러대던 태극기 맞불집회를 그건 그거대로 인정했던 건 아니었을까. 그게 꼭 우리가 그들보다 도덕적이고 신사적이어서 그래서 그냥 촛불의 물결로 밀어버리지 않은 것만은 아닌 건 아닐까.
제글을 읽으신 분들은 항상 느낄 겁니다.
제가 당신들 입장이라면... 이런 표현들을요.
솔직히 그런 표현을 쓰는 거 우리 편에게 힘을 주려고 하는 거 맞습니다.
그럼에도 또 한편으로는 그만큼 최소한 당신들이 우리 입장 생각하는 것보다 당신들 입장을 더 생각해 봤다는 증거로 여겨졌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많이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 존경하던 신학교수님 말씀이 생각납니다.
세상 어떤 개같은 설교도 설교의 가치가 있다.
아무리 말도 안되는 논리 속에서도 최소한 반면교사의 배울거리는 찾을 수 있습니다.
과거 이상돈 교수나 인명진 목사같은 보수의 글은 최소한 읽을 부분이 어느 정도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문열이 노사모를 보고 홍위병이라고 했던 말 역시 정말 그렇지 않은가 우리 자신을 돌아볼 때마다 생각납니다. 광우병 집회때 당신들이 촛불 좀비라고 했던 것, 지금 마트에 깔린 미국산 소고기를 보면서 그때 그 표현도 일견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지금 백신관련 논란 역시 우리가 k방역의 국뽕속에서 놓친 무언가가 있지 않은가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그건 그 자체로 충분히 건설적인 토론이 될 것입니다.
항상 선이 있습니다.
게시판에 글을 쓴다는 것은 정치적 반대편 지지자들 뿐 아니라 무수한 중간자들도 대상에 포함시키는 행위라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커뮤니티라는 것은 어디나 역사가 있고 거기에는 오랫동안 그 커뮤니티에 추억과 경험을 묻어왔던 이른바 고인물들이 있다는 것, 그들과 그 주변의 기본적 사용자들에 대한 존중이 없이 소리를 지르고 이 사이트는 어떻다 저떻다 해버리는 순간 그것은 토론 이전에 인간관계에 관한 문제가 되어버립니다.
글라디에이터를 보기 위해 디비디와 5.1채널 스피커, 야마하 앰프를 샀던 그날 부터 이 사이트를 거의 매일 들어왔던 사람으로서 운영자님이 정치종교게시물 때문에 얼마나 노심초사했는지 계속 지켜봐 왔습니다. 그것은 대부분 소수의 극단적 주장을 극단적 자세로 펼치시던 분에게서 시작되지만 어느 순간 다수의 조롱과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감정적 모욕, 그래서 게시판 전체의 분란으로 확장되는 일은 저의 경험상 거의 한달에 한번 정도는 꾸준히 있어왔던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숱하게 반복되는 상처의 남발을 저쪽 댓글세력과 그에 동조하는 일베테라포밍 선발대, 또 그들의 고의적이거나 미숙한 혐오적 표현 남발을 탓하기 전에 우리 자신의 도덕적 우월감과 숫적 우세에 대한 확신, 필요 이상의 정치에 대한 감정이입이나 자존심 관련한 감정 몰입에도 있지 않은지 항상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아래는 저와 같은 스탠스를 갖고 계신 회원분들께 드리는 말씀입니다.
저는 제가 민주당 지지자인게 자랑스럽습니다.
그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중 한가지는 우리쪽 정치인들의 표현이 항상 점잖은 것도 큽니다. 우리쪽에는 과거 민경욱이나 이동관, 더 올라가 박희태처럼 상대방 지지자들에게 상처와 모멸감을 주는 걸로 기억되는, 그래서 우리쪽에는 통쾌한 그런 대변인이나 정치인들이 별로 기억나지 않습니다(물론 반대편 분들중에 그런 대변인에게 입은 상처가 기억나실분도 계실지 모르겠군요. 저는 어디까지나 우리 진영에 갇힌 자일테니까요).
김대중이나 노무현, 문재인, 이낙연, 모두 아무리 기분나빠도 신사적이고 점잖은 어휘로 대응했습니다(이번 임대아파트 건에 관한 청와대 대변인의 성명만 보더라도 이건 뭐 거의 호구수준으로 보일 정도니).
전 그게 우리쪽의 진정한 힘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합니다.
물론 저쪽의 혐오스럽고 모멸적인 언어(그것도 많은 경우 계산되고 전략적으로 사용되는)를 점잖게 대하는 건 참 힘든 일이죠. 그럼에도 우리가 존경하는 모든 우리쪽 정치인들은 그런 말들에 같은 수준의 언어로 대응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그런 언어에 경도되어 갖고 있는 정치철학을 후퇴시키거나 포기, 타협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가 민주당을 지지하는 것은 우리의 표현이 세련되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승리해온 역사적 이유에 대한 믿음과 철학이 투철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거친 표현으로 대응하지 않아도 우리는 지거나 물러서거나 오염되지 않습니다. 그것이 중도가 민주당에게 그래도 표를 던지는 가장 원초적인 이유중 하나일 것입니다.
이제 디피도 20살이 넘었습니다.
디비디는 없어졌고 세상은 ott시대입니다. 많은 회원분들이 자식을 군대에 보내고 결혼시킨다고 말씀하실 정도로 나이가 드셨습니다. 지금 이팔청춘처럼 아무대나 들이받고 상소리하기에는 우리 외모가 그런 걸 허락하지 않습니다. 군대 병장월급 100만원 이야기가 나오고 기본소득제 논의가 나올 정도로 이 사회 역시 생존이 위협받고 그 정도는 아닙니다.
항상 잊지 말아주세요.
나는 지금 인지부조화나 확증편향에 매몰되어 있지 않은가.
나는 정말 충분히 내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보고 있는가.
외부의 어떤 표현에도 의연히 나의 철학과 태도를 유지할 정도로 나는 성숙한가.
그러면 조금은 나은 dp를 보실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나는 미소지었지
이토록 가시가 많으니 곧 장미가 피겠구나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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