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측은지심은 불이익을 감수하는 데서 출발하는가
불의는 참아도 불이익은 참을 수 없다는 우스개가 우스개로 끝나지 않는 것임을 각박해져가는 현실 속의 삶에서 많이 절감하지요. 지난 8월 쯤에 시작한 공사가 아직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고 마지막 단계를 남겨두고 있는데 아마도 11월 초순은 지나야 마무리될 것 같습니다.
어제 저녁 무렵 초인종이 울리길래 나가봤더니 말쑥한 청년 - 당연히 미국청년이죠 - 이 서 있었습니다. 이웃에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데 소개를 한다면서 명함과 리플렛을 건넵니다. 보통 관심없다고 말하면서 일언지하에 거절하는데요, 다저녁에 초인종 누르는 것은 엄연히 실례거든요.
이번엔 호의적인 태도로 명함을 받아들고 몇명이나 회사에 있냐고 물어봤습니다. 4-5명이 있고 프로젝트매니징을 하고 나머지는 하청 준다고 하네요. 떳떳하게 이야기하며 자기네 포토플리오를 보여줍니다. 이게 정상이지 생각하면서 그래 피플은 아메리칸들이냐고 하니 대부분 우크라이나 등, 슬라빅이다라네요. 멕시칸들 모두 어디로 가고 주변에 우크라이나 사람 천지냐, 나도 집 고치는 중인데 사람들은 좋더라 하지만 마감 수준이 별로다 라며 문간에 수리하고 페인트칠한 부분을 발로 가리켰죠. 쳐다보더니 자기가 보기에도 별로였는지 어느 회사냐고 묻습니다. 그 회사는 너처럼 서브컨트랙트한다고 밝히지 않고 거짓말로 자기네 회사에서 다 한다고 했었다. 매니징도 엉망인데 퀄리티는 더 엉망이다 그래서 어느 회사인지 밝히기는 어렵다며 보냈습니다.
사람들은 좋았다. 동시에 마감이 엉망이다. 매니징은 원청인데 하청의 기술이 별로인데 사람들은 좋았다.
여기서 딜레마에 빠집니다. 나는 바보인가, 나는 화가 나지 않는가, 나는 돈을 썼지만 정당한 서비스를 받지 못했으며 정당한 수준의 돈을 받지 못하고 노동을 제공한 사람들에 연민을 느낀다. 다시, 나는 바보인가.
아래 링크는 저희 집에 일하러 오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에 대해 쓴 글입니다.
https://dprime.kr/g2/bbs/board.php?bo_table=comm&wr_id=24716310
알고봤더니 저 노동자 모두 언어의 울타리에 갖혀 같은 우크라이나 동포에게 저렴한 품팔이를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철거담당 알렉스는 일이 끝나 다시 오지 않는데 철거하면서 일부 파손된 부분을 원청인 쌤에게 복구할 것을 요구한 상태입니다. 원청 담당자인 쌤이 해결해야하지요.
페인트 담당 알렉스하고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학교 입학했다는 6살배기 딸래미 주라고 한국과자도 줘보내고 아이 읽히라고 집에 있던 파핀북스 대여섯권도 함께 들려보냈습니다. 마스킹테이프작업하는 날 왔던 아가씨가 예상했던 대로 부인 맞더군요. 너 한 서른 됐냐 물었더니 딱 서른이랍니다. 결혼해서 아이를 24살에 가졌다는 이야기이고, 전쟁 통에 미국에 온 지 10달 밖에 되지 않았답니다. 그러면서 각 종 면허증을 보여주더군요. 대단하다고, 전쟁은 슬픈 일이지만 미국은 너와 네 가족에게 또 다른 기회를 줄 것이라고 이야기해줬습니다.
페인트가 엉망이라 클레임을 할 때마다 밤 어두울 때까지 일하는 통에 먹을거리 내어주며 이야기하다 보니 그가 보여준 정성으로 부족한 기술이 덮어지더군요. 100프로 만족은 아니지만 큰 문제없이 마무리하려고 애를 쓰는 모습으로도 충분했습니다. 기술은.... 한참을 더 노력해야 되겠지만 남의 나라에 온 지 10개월 밖에 안됐는데 이 정도면 '아빠로서' 존경할 만합니다.
그러니까 저 바보죠. 사람이 보이니 불이익이 감수됩니다. 음식에 책에 과자까지 쥐어보내기까지 하면서 그들이 잘되길 바랍니다. 맨 땅에 맨 몸으로 버티며 살아가야 하는데 일거리를 거듭 맡아야 기술도 늘것이고 아이도 멕일 수 있겠죠. 처음부터 베테랑 기술자가 될 순 없고요.
알렉스가 재작업했던 부분은 그가 데려온 마크라는 어시스트가 대충처리한 부분들인데요. 알렉스와 마크의 관계와 달리 데크 작업은 또 요상한 관계입니다. 올렉이 하청을 받아 슬라빅을 부려 일을 합니다. 올렉은 거의 얼굴을 보이지 않고 슬라빅과 또 다른 한명이 거의 모든 일을 합니다. 알렉스나 올렉이나 같은 처지이지만 올렉은 푸르고 깊은 눈과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지고 '말'만 합니다. 궂은 일은 슬라빅이 다 하죠. 슬라빅은 하청계약자도 아닌 인부로 보입니다. 억척스러운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순박한 그에게 저는 할 말을 잃습니다.
두 달이 넘어가면서 무감각해집니다. 비가 와서 못하고 배달이 잘못돼서 반송과 재주문 때문에 지연되고 하면서 깔끔한 일처리가 되질 못합니다.
가만히 생각합니다. 화가나면, 손해나면 그래서 어쩔 것이냐고요. 화가 나지 않아서 화가 나는 것은 더욱 이상하고. 다만 마음 편할 정도로 불이익을 감당할 수 있는 여유가 있음에 자족해야지 않냐고 전쟁터에서 쫒겨온 사람들에게 무엇을 더 바라겠냐고, 일거리를 줄 처지가 된 게 다행스러운 것 아니냐 하며 생각을 정리합니다.
불이익을 감당한다는 것이 측은지심이라면 기꺼이 발심(發心)하겠노라고.
- Krishnamur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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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적으로 가까워지면 공적으로 까다롭기가 힘든가 봅니다.
어느정도 공사구분은 되야 하는데 쉽지 않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