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커피와 명상
종교나 관습을 떠나서 거부감 없이 읽으셨으면 합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전봇대로 이 쑤시는 그랬군요라고 생각하시면 되죠^^
제사를 왜 지내야 하는 것일까, 외국에 떠나온 지 10년이 지났고 십 수년 동안 제사를 지내왔는데 외국에 왔다고 해서 제사에 대한 역할이 바뀌진 않더군요. 장 봐와서 전 부치고 산적 굽고 나물 무치고 등 평일에는 더 바쁘게 되는데 지난 세월 동안 제사의 의미에 대해 공감했기 때문에 별 이견이 없었던 아내에게 고맙게 생각합니다.
이국 땅에서 살아갈 아들에게 제사를 물려줄 생각도 해보지 않았고 아들에게 바라지도 않는데요. 시간되면 불려 와서 같이 절 하는 아들 머릿속에 뭐가 있는지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어릴 적에는 10까지 세다가 일어서거나 부스럭거리는 옆사람 소리를 신호로 보조를 맞췄던 기억이 남아 있거든요. 치르는 의식의 형식에 참여하는 몸과 형식만을 따르는 의식은 완전 따로 놀았었답니다.
아버지 여의고 제사를 지낼 때는 늘 과거 회상과 삶의 의미와 세대를 거쳐 대물림하는 어떤 것들에 대해 되새김질했는데요. 타국 일상 속에 제사는 한국의 전통을 유지하는 약간 엄숙하면서 가족적인 유대를 더할 수 있는 날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내년부터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게 좋겠다고 결론을 내리면서 생각한 것들이 왜 처음엔 제사를 지내게 되었을까, 종교를 떠나 유교적 의례인 제사, 거기 더해 유교의 틈바구니에 토착신앙과 불교가 혼합된 것이 제사에 대한 시각 아닌가 해요.
돌아가신 분이 제삿날 찾아온다던가, 제사를 빼먹으면 조상이 배를 곯는다던가, 몸이 아프거나 집에 우환이 있으면 제사를 건너뛴다던가.... 홍동백서로 시작하는 상차림은 제삿날 아웅다웅 헤게모니 말싸움의 원인이고 제사준비 등은 집안에서 권위행사의 상징으로 삼는 낡은 모습과 여성들의 명절 우울증의 주원인이기도 하죠.
남의 집 제사를 '일해라 절해라' 할 의도는 없습니다. 다만 제 대에서 다음 해부터 제사 지내기를 멈추는 데서 시작된 생각이 글로 이어진 것 뿐입니다.
이 이야기를 아내에게 하니 아내는 리얼리티 트랜서핑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읽고 있었더군요. 어떤 대상의 의지를 꺾는데 가장 많이 이용되는 것이 상대의 두려움이라는 것, 마치 제사를 지내야 하는 갖은 좋은 이유와 지내지 못한 경우의 많은 파급효과가 기본적인 두려움 - 생존에서부터 행복까지 광범위한 사례들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 - 을 자극하는 것처럼요.
트랜서핑은 '(중략) 일반적인 의미에서 트랜서핑은 성공의 물결 위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을 뜻한다.' 라는데 링크의 자기 계발서나 시크릿 류의 책에서 나오는 말들하고 비슷할 수 있지만 제가 명상을 통해 알고 있던 두려움을 다루는 방법과도 유사해서 아내의 말을 재미있게 들었습니다.
숫타니파타나 크리슈나무르티를 비롯한 많은 가르침에 따르면 두려움(다른 것들도 비슷)을 aware 하면 두려움 또는 그로 인한 부작용이 사라진다고 이해했는데요. 루퍼트 스파이라의 가르침에서 알 수 있었던 것은 밀려오는 파도처럼 끊임없이 다가온다는 것이죠. 사라지는 게 아니라 물리치거나 극복해도 다른 강도, 성격, 형태로 계속 밀려오고 그 생리를 이해하고 인식해서 그것에 영향받지 않는 마음상태를 끊임없이 유지해야 하는 것으로 받아들였는데요. 이 말이 위의 '물결 위에서 균형을 유지한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고 느꼈습니다. (이는 깨달은 자가 깨달은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계속 노력해야하는 것과도 통합니다.)
두려움의 생리를 이용해서 남의 마음을 움직이는 행태는 정말 수만 가지가 넘지만 개인이 자신 주변을 덮은 두려움의 장막을 넘어 진실을 볼 수 있는 방법은 그것을 인식하고 대처하는 이 한 가지 방법만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덧없어 보이지만 깊은 생각에 빠진 게 지금 마시고 있는 맛있는 커피 때문입니다.
블프에 커피머신을 들였습니다. 원래 란실로 실비아를 꼽아뒀었는데요. 10년 가까이 쓰다가 더 이상 제 구실을 못하던 가찌아머신을 처음 샀을 때 몇 년 동안 정말 커피를 즐겼었고 위장문제도 없었던 것이 기억났습니다.
이후 네스프레쏘머신과 핸드드립을 거치면서 역류성 식도염 때문에 얼마 전까지 네스프레쏘 작은 용량으로만 뽑아 먹고 있었는데요. 한 동안 아침마다 의식처럼 즐겼던 핸드드립도 욕심 내서 맛을 추구할라 치면 여지없이 위장이 반란을 일으켜서 네스프레쏘로 정착이 됐었고 덕분에 다양하게 상대적으로 '오버프라이스드' 커피를 마셔왔었네요.
어쨌든 란실로 실비아의 반밖에 안 되는 가격으로 가찌아 클래식 프로를 블프에 구매했고 기존의 가찌아 MDF 그라인더와 짝을 맞춰 커피생활의 즐거움이 다시 꽃피고 있습니다.
12그램 갈아서 8온즈 아메리카노 만들어 마시는데요. 예전에 12.5그램, 13그램, 14그램으로 증량하면서 맛에 빠졌다가 위장에 탈이 났던 경험을 되새기면서 ONLY 12그램만 유지하기로 했습니다.
과유불급, 트랜서핑, 두려움을 이기는 법 모두 비슷한데 실생활에서 커피 마시면서 역류성 식도염을 유발하지 않으려면 따라야 할 절제심 유지 또한 마찬가지 맥락 아닐까요?
에스프레쏘를 새로 배우는 느낌이라 분쇄도와 용량을 달리하면서 맛을 볼 텐데 위장의 반란을 aware 하며 잊지 않는 걸로^^
https://www.teamblind.com/kr/post/%EC%9D%B8%EA%B0%84-%EC%9D%98%EC%A7%80%EC%9D%98-%EB%AC%B4%EC%9D%98%EC%8B%9D%EC%A0%81-%EB%85%B8%EC%98%88%ED%99%94%EC%9D%98-%EC%9B%90%EC%9D%B8%EA%B3%BC-%ED%8E%9C%EB%93%88%EB%9F%BC-1SuL5eLJ
https://namu.wiki/w/%EB%A6%AC%EC%96%BC%EB%A6%AC%ED%8B%B0%20%ED%8A%B8%EB%9E%9C%EC%84%9C%ED%95%91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48014
- Krishnamur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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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커피 좋아하는데 역류성식도염 때문에 딱 두달 끊어봤었습니다. 카페인 들어간 일체를 끊었더니 거짓말처럼 증세가 완화 되더군요.
인간은 역시 망각의 동물인지라 지난 달부터 다시 흡입하니 역시나 역류하더군요. 대신 나름 나 자신과 합의 본게 딱 하루 한 잔! 그 안에서 절충하였습니다.
요즘 사람과의 관계에서 많이 힘들어 하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집인 공사와 계속 미뤄왔었던 개인 비즈니스를 시작하기 전 단계입니다. 역시 남은 남일 수 밖에 없다지만... 나라면 저렇게 하지 않을텐데란 갈등과 그냥 받아들여야지 하는 마음이 상충하네요. 다만 제가 시작하는 비즈니스에선 다른 사람에게 나는 저런 평간 듣지말자라며 다시 담금질 합니다.
맛 좋은 커피 한잔 나중에 부탁 드려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