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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스포)관음과 예술 감상의 키메라, 가여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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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4-03-20 03:18:27


감상후기이므로 스포를 피하기가 어렵습니다. 원하지 않으시면 뒤로 가기를 눌러주세요.

 

 

돼지머리와 닭의 몸, 말대가리만 있는 증기마차 등 기괴한 볼거리가 많은 '가여운 것들'은 무엇이 '가여운' 것일까 찾아가는 감상자세를 취하면서 봤었는데요.

 

인간 자체가 '신'의 눈으로 볼 때 가엾고 신을 자처하는 인간이나 같은 인간끼리 소유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모습들이 가여워 보이려다가(처음에는 그렇게 관조하는 모습으로 감상했다가) 그런 것을 유도하듯 화면이 장면이 바뀔 때 어안렌즈로 촬영한 듯 혹은 만화경을 보듯 주변부가 어둡게 보이길래 제목은 페이크라고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관찰하고 있는 듯한 관객을 감독이 인식한다고 알려준다고나 할까요?


감독 혹은 작가는 사디스트인가?라는 의문도 들기 시작했죠.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 애쓰는 영화가 아니라 이건 상상이라고 하면서 이야기를 푸는데 그렇다면 왜 이런 상상을 같이 해야만 하는가라는 공범이 되기 싫은 저항마저도 느꼈습니다. 


벨라가 육체적 쾌락에 눈을 뜨면서 영화가 흑백에서 컬러로 바뀝니다. 구강기를 벗어나자 마자 성에 눈을 뜨지만 억압적인 교육환경에 여성은 길들여지게 되어 있고 약혼에 이르는 동안 유아적인 반항만 하던 벨라는 일탈을 넘어 가출을 선언하고 아빠'신'은 허락하게 되죠. 이야기를 이끌기 위해 비윤리적인 실험적 수술을 자행한 결과로 얻은 벨라에 대해 런던을 가동시킬 전력으로 자극을 해도 성적인 흥분을 일으키기 어려운(짧게 줄여 거세된) 아빠는 넓은 부성애를 발휘해서 비상금까지 넣어주며 허락합니다. - 행위와 주체 간에 일관성이 없습니다. 그런 측면으로 볼 때 영화 속에 많이 나오는 키메라들처럼 원작소설 또한 구조적으로 키메라인 것이죠. 괴기와 로맨스와 정치소설이란 혼종인데 한 사람의 캐릭터도 그런 혼종이라고 보고 납득해야 할까요? - 쎈세이션만을 추종한 이야기전개라고 이해했습니다.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으로 영화의 거의 모든 것이 설명할 수 있습니다. 임신한 상태 자살을 시도하는데 현대에서 임신출산은 여성에게는 사회진출의 장벽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임신우울증은 흔한 병이 되어 있는 현대에 더 납득가능한 설정이기도 합니다.


피노키오식 성장과 백치아다다식 무모한 이타 등 여러 단계를 거치며 사회진출과 경제활동에 눈을 뜬 벨라를 남성들은 이해하지 못하죠. 지켜보고 지지하는 맥스만이 끝까지 남게 되는 것은 아마도 여성작가들이 쓴 요즘 드라마에 많이 나오는 이상적인 남성상이 아닐까 합니다. 소유욕 강한 남성은 양으로 만들어버리고 사회주의와 레즈를 공통분모로 하는 여성끼리 상석에 앉아 오후의 햇빛을 쬐는 모습은 이 영화를 기괴한 키메라들과 치 떨리는 메스질과 적나라한 성행위를 거듭 감상하며 뭔가 있겠지 끝까지 보게 한 영화 치고는 단순한 구조였다는 허탈함을 느끼게 합니다. 역시나 엠마 스톤의 주연상과 나머지는 미술, 의상, 분장 등 말고 이야기에 의한 오스카 수상이 없었다는 것이 제 생각과 일치합니다. 


빅토리아와 벨라의 뫼비우스 띠 같은 성장/퇴행은 인간의 윤회를 떠올리게도 합니다. 태어났기에 기억은 없고 아기이면서도 성인의 몸을 가졌다는 모순적인 설정이고 자주 어안렌즈로 표현된 장면이 나오는 것처럼 관객은 만화경으로 현실에 없는 것을 쳐다보는 것처럼 이것은 허구라는 자각을 하면서 보게 합니다. 관객이 전지적 시점에서 내려다보는 느낌, 즉 유희를 극대화시킨 탐미적인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시각적 고통, 말초적 재미, 성적 힘의 논리의 반전 등이 과히 깊은 뜻은 없었습니다.


출연하는 여성을 중심으로 떠도는 위성같이 주변인물로만 머물고 여성들은 멘토나 동료로 자리매김됩니다.  똑똑한 여자들은 사회주의/레즈비언이고 멍청한 여자는 물 뜨는 역할에 머물고 맙니다.


미장쎈을 보는 눈호강과 포르노에 가까운 노출 및 정사씬이 난무함에도 예술영화 본다는 떳떳함을 가질 수 있는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시나 원작 작가와 감독 모두 남성입니다. 페미니즘을 남성적으로 해석하면 이렇게 될까요? 아니면 원작작가의 가여운 것들이라는 제목처럼 남성우월적관점에서 작가가 기사도를 발휘해 폭력적인 남편을 수술해 버리는 결말을 상정했을까요. 영화 속에서 상징하는 여러 부분들이 그저 그렇고 대단하지 못합니다. 페미니즘을 표방하기엔 단순하고 극단적이며 유치합니다. 그렇다고 다수가 즐길 영화도 못됩니다. 


남성관객에게는 볼거리를 여성관객에게는 승리감을 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떤 의미로든 괜찮은 눈요기감이면서 관객의 허위의식을 감별하려는 것인지 감독이 그 정도인지 다시 생각해 볼 일입니다. 영화의 높은 평점은 의상과 미술에 전적으로 의존한다고 봤습니다.


상황과 걸맞지 않는 의상과 식기와 가구들이 어쩌면 화면 주변의 어둠과 다르지 않은 '미화'를 위한 장식이라면 시각적 가치마저도 없는 그로테스크한 화면으로 점철될 것이 뻔한 것이므로 엠마 스톤의 오스카 수상에 빛나는 열연 말고는 '이야기'에 점수를 줄 게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성과 여성, 사랑과 소유욕, 여성의 매춘(역사 깊은 직업) 등 이런저런 생각할 거리를 주는 영화이기에 좋게 보자면, '고급적'인 세미ㅍㄹㄴ 아닌가 싶습니다. 줄리아 로버츠의 '귀여운 여인'이라는 영화 속 주인공의 직업이 현실적으로는 암울한 것과 마찬가지 맥락입니다.


잘 봤고 즐겼지만 이 영화를 오스카 4관왕이라고 마냥 찬사를 주어야 할까라는 고민을 했더니 긴 혹평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시간을 할애해서 후기를 쓸 정도의 영화라는 것과 그랬군요는 '까'는 글을 되도록이면 자제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고 읽으셨길 바랍니다. 


요약하자면, 관음과 예술을 병치해 희석하고 자극적인 소재로 성장과 페미요소를 섞었지만 대단할 것은 없는, 보긴 봐야 되는 영화인데 추천하긴 어려운, 후기마저도 키메라처럼 쓰게 되는 영화입니다.

 

 

님의 서명
인생의 한 부분만이 아니라 전체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서를 해야 하고, 하늘을 바라보아야 하며, 노래하고 춤추고 시를 써야 하고, 고통 받고 이해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 Krishnamur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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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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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0 08:17:41

 블루레이가 오고 있는 중입니다만 영화를 보는 희미한 방향만큼은 님의 말씀에 공감이 갑니다.  

쓰는 김에 부탁 하나 드려도 될까요?  

바튼 아카데미를 한 부분 빼고 거지반 마스터 비슷하게 했는데 한 부분에서 걸리네요.   

마지막 산타클로스 복장을 한 인생이랑 이야기를 하는 시퀀스입니다.    당췌 뭔 말을 하는 건지... ㅠㅠ 

꽤 득의만만하게 말을 마친 폴 지아마티의 표정을 이해 못 해서요.     라틴어까지...  

대여섯 번은 봤는데 정말 지아마티의 연기는 놀랍습니다.     메리의 수상은 당연히 예상이 맞았네요. ㅎ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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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4-03-20 14: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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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0 15:06:46

아, 역시 여쭤보기를 잘 했군요.    전부터 참이왔다가 마침 영화 관련 글이 보이길래 용기를 냈네요.    귀찮은 부탁을 드렸나 내심 마음 쓰였네요. 

선물로 동네방네 돌리는 명상록이 괜시리 나올 건 아니라 생각했는데 거기서 쓰이는군요.     

따뜻한 결말로 가기 위한 정거장을 놓칠 뻔 했습니다.  

항상 고맙습니다. ㅎ 

2
Updated at 2024-03-20 08:20:36

이 영화 전에 기대했던 감독들의 작품, 파묘와 듄2에 적잖이 실망을 좀 한 까닭인지 요로고스 란티모스가 여전(?)하다는 것이 만족스럽더군요. 저에게 영화는 소설이란 장르의 이미지화인 동시에 움직이는 사진 (물론 사진은 회화에서 나왔겠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굳이 어떤 의미(?)를 찾을 필요는 없다고도 생각합니다, 미로나 마티스의 회화에서 의미를 찾을 필요가 없는 것처럼 말이죠. 영화는 감독이 보여주고 싶은 이미지를 생각해놓고, 그 이미지에 맞춰서 내러티브를 만들어도 상관없다고도 보고 있습니다. 요로고스 란티모스는 그리스 태생이죠, 희랍 신화의 세계를 노골적으로 보여준(!) 킬링 디어와 같은 전작을 보면 태생이란 게 무시 못할 것인가 보다 싶습니다. 봉준호 감독이 한국 태생이 아니라면 기생충 같은 한국 특유의 계급 영화가 나올 수가 없었겠죠. 지인의 말입니다만 장 피에르 주네, 팀 버튼, 웨스 앤더슨을 참고해서 비로소 이제 이 영화로 감독은 오롯이 '자기 세계'를 구축하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개인적으론 드디어 요로고스 란티모스가 거장이란 칭호를 받을 때가 되었다고도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예술' 뒤에 숨은 눈호강은 회화에서는 오랜 전통(?)이 아니겠습니까, 멀게는 바로크 시대의 누드화부터 세기말 빈의 클림트와 쉴레에 이르기까지 말이죠^^ 님께서 감독을 사디스트로 보셨던 것과는 반대로 저는 감독의 전작들, 예를 들어 더 패이버릿과 이 작품을 통해서 감독이 패미니스트는 아닐까 하고 생각합니다. 반대의 관점이겠습니다만 주체적인 여성이죠, 억압과 굴레를 벗어나서 본인이 '하고 싶은' 것들을 거침없이 해나가니까요. 

좋은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최근에 본 영화이기에 소견이지만 님의 정성스러운 평에 덧붙여보았습니다. 저는 금요일에 도쿄 산토리 홀에서 있을 슈만 교향곡 연주를 예매해놓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산토이 홀의 음향을 카라얀이 극찬했다던데 기대가 됩니다 ㅎㅎ   

2
2024-03-20 12:57:32

장면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쟝 삐에르 쥬네가 생각났는데 역시나 추측이 맞았나봅니다
관객의 시야를 순간적으로 불편하게 만드는 특유의 기법이 매우 인상적이었는데 이 영화도 그런 감상포인트가 있겠군요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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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4-03-20 13:31:17

방금 넷플릭스 닭강정 시청을 마치고 왔습니다. '모든 기계' 회사 사무실, 그러니까 공장 입구 주변부터 내부까지의 초반 시퀀스를 보며 이병헌 감독 또는 미술 담당이 웨스 앤더슨을 따라했다는 의심을 했습니다. 한국식 웨스 앤더슨도 보기에 괜찮았습니다.  유쾌하기로 따지자면 닭강정이 한 수 위이긴 합니다^^

 

페미니즘을 염두에 두고 한 번 생각한 뒤에 성장영화로 다시 되새김하고, 에로스적 사랑을 버리고 지배적 남성을 걷어차며 초식남을 거느리고 여성끼리 커플로 앉아 있는 마지막 장면의 세팅이 원작 그대로인지 감독의 설계인지 궁금했습니다. 수단과 과정이 어떻든 페미니즘의 지상 목표가 승리일까 평등일까 아니, 각 자의 인식일 뿐일까(mkgd님 댓글에 쓴 대댓글처럼요^^), 모두 잊고, 런던과 지중해를 꿈 꾸듯 돌다 온 것일까 생각합니다.

 

산토리홀 공연이 당장 금요일이군요. 좋은 시간 되시기를. 저는 이곳에 파묘 개봉인데 시간이 늦어 어찌할까 고민하다 예약하려니 그나마 빠른 시간이 있는 목요일(산토리홀 계실 시간)은 매진이네요. 더 늦은 주말에 봐야겠습니다.

1
2024-03-20 14:56:59

말씀하신 대로 21세기 영화의 트렌드가 지금 인식하는 게 현실일까 아니면 꿈일까 인 듯 합니다. 메타적으로 영화라는 장르를 바라보는 시각이라고 해도 될까 싶기도 하고요. 영화는 현실의 재현(representation)이겠지만 우리가 실제한다고 믿는 물질(material)은 실재(reality)의 재현일 뿐인지도 모르죠 (플라톤의 idea를 떠올려보시면 될 듯 합니다). 이건 21세기 소설이란 장르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한강씨의 훌륭한 작품인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도  주인공이 경험하는 것이 실제하는지 인식에 불과한 것인지가 모호하죠. 웹이라는 공간이 생겨나고 뉴턴 물리학에 균열이 생기면서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기가 열리지 않았나 싶기도 합니다, 반드시 물질적이 아니더라도 우리의 인식 안에서 또다른 세계가 존재할 수 있으니까 말이죠, 호접지몽처럼요 ㅎㅎ 

 

도쿄는 오래간만입니다, 산토리홀은 기대가 됩니다^^ 그럼 나중에 다시 뵙겠습니다! 

2024-03-20 12:58:45

"절대로 부모님과 함께 못 볼 영화"의 순위에 올랐다더군요

2024-03-20 12:59:01

"절대로 부모님과 함께 못 볼 영화"의 순위에 올랐다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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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0 12:59:14

"절대로 부모님과 함께 못 볼 영화"의 순위에 올랐다더군요
기대됩니다

WR
2024-03-20 13:29:24

바이트수 가장 많은 댓글에 추천했습니다.

1
2024-03-20 14:59:09
1
2024-03-20 15:16:10

다른 걸 떠나서 엠마 스톤을 좋아합니다.
Face도 개성 있고 연기도 좋아서요. 연기 욕심이 좀 있는 것 같은데 다양한 도전을 해 주면 소비자 입장에선 좋은 일이죠

WR
2024-03-20 20:58:35

란티모스 감독의 다음 영화에 또 나오더군요. 엠마 스톤의 여우주연상을 견인한 감독과 합이 잘 맞나 봅니다.
https://youtu.be/qHZYoLgW90A?si=EdkE9OWQL1iqZInp
https://namu.wiki/w/%EC%B9%B4%EC%9D%B8%EB%93%9C%20%EC%98%A4%EB%B8%8C%20%EC%B9%B4%EC%9D%B8%EB%93%9C%EB%8B%88%EC%8A%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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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3-21 01:21:55

안그래도 보려던 영화였던 터라 본문을 읽지 않고 있었네요. 제 짧은 감상평은 볼만한 영화였다 정도입니다. 이것저것 많이 담으려고 했던 것 같기는 하네요. 미셸 공드리 정도가 느껴지다가 나중엔 그냥 성인용 동화 정도가 되어버린 듯 하고요. 초반에 바타유의 눈 이야기가 연상되던 충동의 세계에서 빌둥스로망이 되면서 부터 좀 하품도 나기도 했고요. 

WR
1
2024-03-21 01:35:35

10분 정도에서 봐야하나 고민하고 평점 검색하니 imdb 8.1이라 끝까지 보기로 했었습니다. 시각적 유희로 가득찼으나 전작에서처럼 지적인 신비는 많이 사라졌죠. 대중성에 다가서고 스타덤에 오르는 방법을 찾은 듯 보였고, 지적인 관음을 설득에도 성공했죠. 다만, 원작의 한계인지 몰라도 도식적인 결말이 아쉽기도 했지만 대중적으로 설득력이 높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인의 몸과 아이의 성적 자각이라는 구조 자체가 교류하는 남성을 전제하니까 이야깃거리가 그것을 벗어날 수가 없고 잘 팔리는 소재이기도 하죠. 다음 작품(윗 댓글에 있는)을 보면 란티모스를 더 알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감독의 필모 '그래프'가 꺾이는지 아닌지요. 

1
Updated at 2024-03-21 02:09:21

감독은 전혀 모르는 사람이고, 여주인공의 이름도 이번에야 알았어요. 요즘 영화는 거의 보질 않거든요. 성심리 발달 이론에 따르면 유아기 다형적 도착성 단계에서 대개는 부모의 금지 명령으로 잠재기로 들어가는데 여기선 금지에 저항하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단계를 건너뛰네요. 이후 섹슈얼리티(성충동)를 매개로 세상과 소통하는데, 성충동의 다른 이름이 지식 충동이기도 하죠. 재미난 것은 갓윈이라는 이름에서 사회주의, 그의 딸 메리 셸리에서, 프랑켄슈타인이 떠오르고, 아내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에서 페미니즘이 나올 것이고 등등. 그렇지만 더 얘기하자면 좋은 얘기는 안나올 것 같아서 ... ^^     

WR
1
Updated at 2024-03-21 02:15:28

그러니까 원작의 한계, 아마도 최근에 유행했던 좀비링컨류 작품들의 원조격인 작품인데 그리 깊은 무엇을 담지는 않았으니 비쥬얼과 센세이션을 많이 담았고 감독 입장에서 비범한 비쥬얼과 근엄한 센세이션이어야 했겠죠. 뭔가 있는 것 같은 전작에 비해 성공과 한계의 정점이 이번 작품일 것일지 다음 작품에 다른 다양성을 보여줄 것인지는 두고 봐야 알겠습니다. 주인공의 성장(특히 독서)을 촉발하는 배에서 만난 흑인남성의 모델이 누구였을지 궁금하더군요. 단계별로 멘토 같이 등장하는 여성들도 그렇고요. 

2024-03-21 02:39:23

이 영화를 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 윌리엄 데포 때문이였어요. 호아킨 피닉스랑 윌리엄 데포 영화는 가급적 보려고 합니다. 말씀하신대로 영화는 서사보다 시각 예술이니까 감각적 영상미도 중요하죠. 저도 그런 관점에서 영화를 감상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영상 미학 장치들이 포화상태라 잘못하면 클리셰가 되어버릴 위험이 많죠. 가령 흑백과 컬러의 전환이라든가, 열쇠구멍으로 엿보는 듯한 장면, 그리고 불협화음의 배경음악 등등이 작품과 유기적 구조를 맺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갸우뚱해지더라고요. 여주인공이 갖는 심신의 부조화를 표현하는 것이었을까요? 그렇다면 너무 순진해 보이고요. 깊이있게 보질 않아서 확신할 순 없네요.   

WR
1
2024-03-21 02:47:40

지금까지 말씀하신 것 모두 동감입니다. 전작도 그렇지만 여운은 그리 오래가지 않습니다. 고급진 지적(?)포르X? 사실 유희 계급에서 남는 시간 소일할 때 맞춤형인 나름의 탐미주의 아닌가도 생각했어요. 그렇기에 페미도 성장도 아닌 미장쎈 영화가 되었다고 봅니다.

 

취한배님이 위에 말씀하신 내용으로 확인되듯 아는 만큼 즐길 수 있고 보이는 만큼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것은 관객의 노력과 감독의 배려가 만나야 하죠.

 

아는 대로 느낀 대로 글이라도 올리면 이렇게 관점들을 들을 수 있으니 좋습니다.

 

거의 동시에 시청한 '닭강정'이 저에게는 더 의미 있고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ㅎ

1
2024-03-21 02:56:08

애정이 있는 만큼 느낄 수 있는 건 맞습니다. 제가 요즘 영화엔 영 적응이 안되요. 영화뿐 아니라 대부분 최근 문화 컨텐츠들에 대해서 어떤 임팩트를 느끼지 못하는 불감증에 걸렸나 봅니다. 여튼 오랜만에 유익한 대화였습니다. 또 좋은 글 기대할게요.  

WR
1
2024-03-21 03:08:29

감사합니다. 


바튼 아카데미 장면에 대한 윗 댓글 내용 중에 책에 나온 텍스트를 인용하며 대화하는 경우가 나왔는데요. 현대에서는 드물고 효과적인 경우도 드물어졌습니다. 

 

텍스트의 강력함은 아직 여전한데 사람들의 생활상이 달라져서 일상관계에서의 텍스트는 오히려 반감이 들 수도 있게 된 세상인데요.

 

사람들과 만났을 때 영화의 어떤 장면이나 특정 주제의 어떤 영화를 이야기하면 이야기가 잘 통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어쩌면 제 입버릇이나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상대도 봤던 영화라면 쉽게 공감하고 돈독을 앞당기게 되더군요. 

1
2024-03-21 03:29:48

네. 열쇠구멍은 좋게 보자면 자칫 지리멸렬해질 수도 있는 스튜디움 속에 일종의 푼크툼 같은 장치였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댓글에서 영화 내용을 누설하기도 그렇고, 나름 볼만한 영화는 되었기에 악평을 달 생각도 없는데 ... 쓰다보니 또 개버릇 남 못주는군요. 저는 당분간 체중조절에만 매진해야겠습니다.^^

WR
2024-03-21 03:42:18

엠마스톤의 무도회춤이 회자되는 것이 풍성한 볼거리에 비해 담론이 어설픈 반증이죠.
실망했다 하면 잘난 체하는 것 같고 그렇다고 대단한 영화라고 할 수도 없는 감정의 키메라를 연성시키는 작품입니다.^^

WR
Updated at 2024-03-21 02:27:40

더 랍스터, 킬링디어, 더 페이버릿. 세 작품은 괜찮은데요. 

비범하고 괴상하고 신비하고의 의미에서요. 페이버릿은 그 중 평범한 이야기입니다.

https://ko.wikipedia.org/wiki/%EC%9A%94%EB%A5%B4%EA%B3%A0%EC%8A%A4_%EB%9E%80%ED%8B%B0%EB%AA%A8%EC%8A%A4

 

저도 송곳니는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송곳니의 동력이 아직까지 계속 되는 것 같은데 구태여 찾아보는 노력은 하고싶지 않은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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