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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클라라와 태양, 이시구로가 착안한 특이점(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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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3 12:18:08

 

10.

모네의 그림이 아름다운 이유는 명확하지 않아서입니다. 명확한 것이 아름다움의 중요 요소라고 한다면 현대 사진 작품이 모네의 작품보다 아름답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네의 불명확한 경계선들을 보면서 보는 사람은 끊임없이 마음 속에서 풍경을 재구성하고 그것과 연관된 기억까지 떠올립니다. 모네가 의도하지 않았어도 감상하는 사람의 시각과 기억까지 합쳐진 아름다움의 다른 영역까지 아우르게 만든 것입니다.

 

클라라와 태양은 의도적으로 자세하게 기술하지 않습니다. 클라라의 입장이나 클라라를 만든 사람 입장으로 생각해보면 이시구로가 모네 그림의 아름다움을 의도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클라라의 제작 목적 상 불필요한 것들은 에너지효율 차원에서 배제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중점이 되는 것은 비약하는 로봇의 사고의 흐름입니다. 독자는 그 논리추론을 붙잡고 의지하며 다음 이야기 흐름을 따라갑니다. 주변상황은 모호하고 오로지 로봇의 눈과 로봇의 디지털추론이 어느 순간 비약을 해도 그렇구나 하면서 따라가게 됩니다. 

 

잠시 책장을 덮고 하늘을 올려다보면서 생각하면 클라라는 먼 옛날의 그리스, 이집트, 마야의 어떤 사람의 생각과도 비슷하겠구나 깨닫습니다.

 

11.

oblong

ob·long

/ˈäbˌlôNG/

noun

an object or flat figure in an elongated rectangle or oval shape.

"an oblong of grass"

adjective

having an elongated shape, as a rectangle or an oval. 

 

작품 속에서 나오는 핸드폰 또는 태블릿 같은 미래 개인용 단말기를 에이에프는 오블롱이라 지칭합니다. 일본말로 쟁반이기도 한 '오봉'도 오블롱이 어원이란 생각인데 근거를 찾지 못했습니다.

 

에이에프는 인간들이 보고 있는 단말기의 내용을 인식하긴 하지만 상관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프라이버시를 우선적으로 존중하는 원칙 때문인지는 나오지 않지만 여러 차례 screen을 볼 수 있다는 정황이 나옵니다.  오직 인간의 말과 행동이 유의미하고 따로 지시받지 않은 이상 스스로 유추해서 인간에게 유리한 판단을 합니다.

 

만일 에이에프가 단말기를 이용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설정까지 포함된다면 논점이 흐려질 수 있으므로 위 10번 모네의 그림 이야기처럼 많은 디테일은 무시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12.

에이에프 판매점의 매니저는 클라라의 예민하고 다정한 품성을 알아봅니다. 마지막에 클라라와의 문답은 기술 발달로 인간과 흡사한 로봇을 만나게 될 인간이 그런 물건을 어떻게 인간적으로 상대할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그들의 대화는 중요한 내용이니 스포할 수 없지만, 인공지능이 끼칠 해악에 대한 우려가 많고 세상의 의견이 양분되어 있는 지금, 클라라를 진공청소기로 여기는 가정부나, 특정 용도로만 생각하는 엄마나, 공동목표 달성을 위한 동료가 되기도 하는 아빠나, 상대를 차별하지 않고 의견을 경청하는 릭 등 다양한 에이에프를 대하는 자세는 지금의 세상과 다르지 않습니다.

 

다양한 의견이 하나로 모이지 않을 것은 확실하고 기술은 계속 발전할 것입니다. 이시구로는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알고리듬을 만들어 탑재시킬 것을 요구하는 것일까요?  논리회로는 잘못될 리 없지만 논리의 중첩과 하위목표가 최종목표에 위배되지 않는 한 인간에게 해가 되는 판단이 종국적으로 이로운 것이라고 결론날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므로, 변하지 않으며 희생을 감내하며 배반에도 화내지 않는 인간 자체에 대한 사랑을, 인간이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그 사랑의 힘을 프로세스로 탑재시키는 것이야 말로 궁극적으로 인간보다 인간적인 로봇을 만들어 내고 그 결과로 세상이 더 착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에이에프의 마지막을 에이에프 입장에서 생각한다면 야적장에 앉아 매일 태양으로부터 에너지를 받고 생각할 수 있는 상태이나 움직이지 못합니다. 외부적으로 돌(or doll)과 같습니다. 클라라는 만족합니다. 등산로 곁의 돌도 나무도 만족하리라 생각합니다. 희생이나 배반의 결과가 아니고 사랑의 결과이며 사랑을 멈추지 않음, 그 상태로 존재해 있는 셈입니다. 인간이 만든 순서도에 의해 개발됐을 클라라의 사고가 단순한 논리의 거듭된 결과로 이르는 곳은 사랑과 사랑의 누적이며 끝이 없는 상태가 된 것이기에 기술개발과 더불어 중요한 것은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잊지 않는 자세를 견지하는 것이겠죠.

(계속)

 

 

님의 서명
인생의 한 부분만이 아니라 전체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서를 해야 하고, 하늘을 바라보아야 하며, 노래하고 춤추고 시를 써야 하고, 고통 받고 이해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 Krishnamurti
6
Comments
1
2024-04-23 12:45:59

작품에 대한 궁금증이 점점 늘어 현기증이 날 지경입니다

WR
2024-04-23 12:53:36

나름의 어그로 성공인가요?

1
2024-04-23 12:59:30

만년의 모네 작품들을 보면 랭보가 말한 견자의 vision을 얻은 듯 합니다^^ 어쩌면 사물의 경계와 생성, 소멸이란 우리의 식이 만들어낸 환상일지도 모른다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ex nihilo nihil fit, 세계란 영원히 일자일 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WR
1
Updated at 2024-04-23 13:15:14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전 돌이라면 세계를 어떻게 이해할까? 생각해 봤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인간은 주어진 능력 만큼 이해할 수 밖에 없고 설명할 수 있는 세상을 구축해 살고 있는 것이죠. 돌보다는 나은 형편이니 기뻐해야 마땅합니다만, 돌도 제 나름 만족한단 이야기였습니다.

1
2024-04-23 14:50:43

미시마 유키오의 금각사 중 이 구절하고 하신 말씀이 상통(相通)하는 것은 아닐까도 싶네요^^


「俺は君に知らせたかったんだ。この世界を変貌させるものは認識だと。いいかね、他のものは何一つ世界を変えないのだ。認識だけが、世界を不変のまま、そのままの状態で、変貌させるんだ。認識の目から見れば、世界は永久に不変であり、そうして永久に変貌するんだ。それが何の役に立つかと君は言うだろう。だがこの生を耐えるために、人間は認識の武器を持ったのだと云おう。動物にはそんなものは要らない。動物には生を耐えるという意識なんかないからな。認識は生の耐えがたさがそのまま人間の武器になったものだが、それで以て耐えがたさは少しも軽減されない。それだけだ」 


나는 그대에게 가르쳐주고 싶었다. 이 세계를 변모시키는 것은 인식이라고. 알겠나? 다른 것은 어느 하나도 세계를 바꿀 수 없다. 인식만이 세계를 불변인 그대로, 그 그대로인 상태로 변모시키는 것이다. 인식의 눈에서 보면, 세계는 영구히 불변하고, 그리고 영구히 변모하는 것이다. 그것이 무슨 쓸모가 있냐고 그대는 말하겠지. 그렇지만 이 生을 견뎌내기 위해서, 인간은 인식이란 무기를 가졌던 것이라고 해야겠다. 동물에게는 그런 것이 필요없지. 동물에게는 生을 견딘다고 하는 인식같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인식은 生을 견뎌냈다고 하는 것이 그것채로 인간의 무기가 되었던 것이지만, 그렇다고해도 견뎌내는 어려움이 조금이라도 경감되지는 않는다. 그것 뿐이다.


<金閣寺> 三島由紀夫

WR
1
Updated at 2024-04-24 00:46:10

"동물에게는 그런 것이 필요없지. 동물에게는 生을 견딘다고 하는 인식같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생각이 좀 다르네요. 금각사에 흥미가 생겼다가 꺼지게 되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편견없이 금각사 각 잡고 읽어보겠습니다^^

 

금각사를 읽고 나서 좋다면 풍요의 바다 4부작을 봐야겠습니다. 

https://www.goodreads.com/series/56766-the-sea-of-fertil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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