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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다운사이징(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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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0 15:5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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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사이징]이전까지 알렉산더 페인은 실패작이 없는 감독이었다. 헐리우드에서 돈과 명예를 모두 끌어다 줄 수 있는 보장성 강한 거장이었다. [다운사이징]으로 첫 호흡을 맞춘 맷 데이먼만 해도 출연 제안을 받고는 대본도 읽지 않고 이 작품을 수락했다. [다운사이징]이전에 알렉산더 페인이 만든 영화들은 대부분 흥행에 성공했고 비평적 지지를 받았으며 아카데미에서도 선전했다.


[다운사이징]은 많은 예산이 들어간 작품이다. 오락물이 아닌 이상 헐리우드에서 [다운사이징]같은 드라마 장르에 6천 8백만불이나 투자하는 시대는 지난지 오래다. [다운사이징]은 1990년대까지나 줄줄이 나왔던 고예산 드라마이다. 연말 성수기에 6천 8백만불이나 들인 135분짜리 드라마를 작가주의의 상업물로 착수시킬 수 있었던데에는 헐리우드에서 지난 20여년간 알렉산더 페인이 축적시킨 야무진 이력과 이야기적 내공 덕분이다.


파라마운트는 과거 알렉산더 페인의 능력이 흥행으로까지 이어졌던 [디센던트][사이드웨이][어바웃 슈미트]의 성공을 보고 [다운사이증]의 기획에 희망을 가졌을것이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설정을 말도 안되게만 풀어낸 알렉산더 페인의 과대망상은 제어 기능이 풀려 버린 채 소재주의로 그치고 말았다. 다운사이징 기술을 통한 미래 사회의 혼란과 고민에 대한 무책임한 발상을 수습하느라고 안간힘을 쓰다가 자포자기로 바닥을 보이고 있는데도 누구 하나 관여를 하지 않았는지 도무지가 구제가 안 된다. 모처럼 돈도 마음껏 쓰고 작가주의의 실현도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부려댄 결과 알렉산더 페인은 첫 실패작으로 인상을 구겼다. 재능있는 감독이니 차기작에서 [다운사이징]의 악몽과 굴욕을 만회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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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담한 구성의 작품이었다. 각본은 알렉산더 페인의 연출작 대부분을 알렉산더 페인과 공동 집필한 짐 테일러의 영감에서 시작됐다. 이미 고전이 된 [애들이 줄었어요]같은 가족물을 통해 익숙해진 사람을 줄이는 기술에 대한 상상이 10여년에 걸쳐 숙성되면서 현재의 작품으로 발전됐다. 농담 삼아 던진 한줄짜리 발상을 알렉산더 페인과 짐 테일러가 다듬으면서 그간 오락물로나 활용됐던 인간 축소 기술에 대한 판타지적 세계관은 현실적인 문제 인식을 입히면서 날카로운 사회 풍자극으로 확장성을 갖는다.


알렉산더 페인은 현 시대 인류에게 처한 환경 오염, 인구 과잉, 지구의 자원 고갈, 기후 이상, 경제 악화, 국가 갈등 등으로 당면한 위협적인 상황과 생존 문제를 영화나 소설, 만화 등에서 뻔하게 보아 왔던 다운사이징 기술에 결합시켜 공감과 고민을 안겨주려 한다. 의도는 좋았다. 애석하게도 소재에 서툰 감독의 의욕은 발악이 되고 말았다. 소재를 구현시키는 시선이 너무 단편적인 테두리에서 맴돈다. 장황하게 펼친 미래관과 달리 호흡도 짧아서 전개를 이을수록 의문만 키우고 있다.  


주인공이 다운사이징 기술을 받아들이고 이주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초반부는 그럴듯하다. 예산의 결과를 풍성하게 확인시켜준다. 인간 축소 기술에 관한 작품인만큼 시각적으로 볼만한 장면이 많다. 완벽한 행복과 평화를 추구하는 [플래전트빌]같은 화사한 공간을 [트루먼 쇼]의 소우주처럼 꾸며 놓은 소인국의 묘사도 근사하고 주인공이 다운사이징을 선택하고 축소되는 복잡한 과정도 조잡스러운 재미와 흥미를 유발시킨다. 세균 침투의 우려로 인체의 털을 다 깎고 시술을 받는것이라 받아들이긴 했지만 생물과 인간을 축소시킬 수 있는 최첨단 기술력에서 인간의 많지도 않은 털을 걸러내지 못해 전신 제모를 하게 만드는 상황이 의아하기는 했다. 금니나 임플란트, 몸안에 들어있는 각종 보형물을 전부 다 제거하고 시술을 받는 과정은 재미있는 시각효과를 만들기 위한 영화적 설정으로 이해했다. 극중 기술력과의 매치는 부자연스러웠다.  


빈부격차도 없고 더 많은것을 누리기 위해 소인의 삶을 택하면서 사치와 풍요만 가득할것이라 보이는 레저랜드 밖에는 양면성이 드리워져 있다. 정부가 다운사이징 기술을 악용해서 강제로 소인이 된 불법 체류자나 범죄자 등을 몰아 넣은 수용소같은 공간이 있다는것은 맹점을 보일 수 밖에 없는 과학 기술의 단면을 비웃는데에는 효과적인 장치이다. 인간 세계와 소인들의 삶, 그리고 소인들의 세계에서도 벽 하나를 두고 구분되는 대조적인 세계를 통해 강렬하고도 예리한 풍자극을 완성할 수 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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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없게도 영화는 설정을 결코 넘어서지 못하고 넘어설 의지도 보이지 않는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같은 모음집에서 볼 법한, 콩트 형식으로 가볍게 접근한 엉성한 미래관에서 구성이 말려 버린다. 설정에 대한 욕심은 거창한데 반해 구성을 채워 넣는 재료가 부실하다. 전개 내내 지나치게 단순화시킨 전개 때문에 의구심만 낳는다. 다운사이징 기술이 인류의 대안이 되기엔 다운사이징 시술을 받은 소인들을 정상적인 크기의 인간들이 지속적으로 관리해줘야 할 문제가 드러나는데 극은 이 문제를 언급만 할 뿐 짚어내지 못한다. 극에서도 시술을 받기 전 주변 사람이 주인공을 향해 정상 크기로 살아가는 인간들의 희생이 따라야지만 세금 한 푼 안 내고 인공적인 공간에 마련된 이주 공간에서 풍요를 누릴 수 있는것에 분풀이를 하는데도 이후에 일반 인간과 소인들의 갈등은 일어나지 않는다. 일반 인간과 소인이 풀어야 할 문제가 많은데도 주인공이 소인이 되는 순간 일반 인간은 대립은 커녕 존재 자체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소인의 삶을 선택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한데 반해 소인국에 대한 책임까지 져야 하는 일반 인간들이 선택은 싹 무시돼서 답답하다.  


레저랜드의 계급도 의아하다. 벽 하나를 두고 강제로 다운사이징 당한 불법 체류자나 범죄자들의 고립된 삶은 정부의 강제성이 동원된것이니 이해가 되지만 레저랜드 안의 풍경은 희한하다. 레저랜드에서도 일반 인간 세계와 같은 직업군과 세계관이 펼쳐져 있다는게 문제다. 다운사이징 시술을 받으면 소인의 삶을 선택한 덕분에 평생 놀고 먹으면서 향락에 빠질 수 있다고 하지만 소인들이 부유한 삶을 누리기 위해선 또 다른 소인들의 도움과 보조가 있어야 한다. 레저랜드도 택배 회사 직원이나 그 외 정신적, 육체적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각종 직업들이 다 있고 그걸 일반 인간 세계처럼 소인들이 담당하고 있다. 영화는 이들이 인간 세계와 다를바 없는 노동을 하는데도 왜 다운사이징 시술을 받았는지에 대한 설명을 전혀 못하고 있다. 주인공이 소인국의 빈민가와 얽히는 과정이나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소인국에서도 전혀 다른 빈부 격차가 발생하는 모순도 보다 자연스럽게 풀었어야 했다. 다짜고짜 상황만 펼쳐 놓고 이해를 강요하려고 한다.  


영화가 풍자극의 범위에서 다운사이징 설정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깊게 들어갈 수 밖에 없다. 너무 허술하다. 극중 노르웨이 과학자가 창조해낸 다운사이징 기술은 평범한 소시민인 주인공 폴이 시술을 받고 나서도 논란을 잠식시키지 못한 과도기의 기술력이다. 이런 설정이라면 차라리 수술 부작용이나 기계 오작동, 일반 인간들의 희생과 세금으로 관리되는 레저랜드에 대한 거부감이나 박탈감, 대조적인 상황을 해부학적으로 그려내는게 낳았을것같다. 정작 대두시켜야 할 고민은 쏙 빼놓은 채 영화는 우연과 억지에 의존한다.


남편을 졸라 소인이 되려고 했던 아내가 시술 받는게 무섭다며 도망치는것도 대책없이 구겨 넣어 난데없이 느껴질뿐이다. 아내에게 배신 당한 주인공은 졸부가 된 여유인지 관심이 짝짓기에만 쏠려 있어 여자만 보면 발정난 짐승처럼 집적거리기 일수다. 이해할 수 없는 돌발 행동을 너무 자주 저질러서 소시민을 대변하지도 못하고 있다. 폴이 청소부인 베트남계 이민자인 녹 란 트란을 도와주는 계기도 급작스럽고 대체 왜 파티광인 이웃집 남자 두샨이 폴에게 접근하고 그를 최초의 소인 마을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가는지도 알 수 없다. 평범한 주인공이 별다른 계기도 없이 다운사이징 개발자를 만나 또 다른 선택을 강요당하는 상황도 쥐어 짜낸 티가 역력하다. 너무 많은 변수와 결점이 보이는 기술력인데도 터무니없는 태도로 뻔뻔하게 밀어 붙이고 그 조차도 책임을 못지고 있다 보니 당황스럽기만 하다.


최초의 소인 마을 사람들이 수명을 다 해가고 있는 지구에서 생존을 보장 받기 위해 지하 세계를 만들어 더 작아진다는 후반부는 광신도들의 광기로 보여 이해가 쉽지 않다. 구체적으로 지구가 망가지는 과정을 보여줘야 하는데 그런것없이 그냥 지구에서 인간이 머물수 있는 시간이 길지 않다고 규정할 뿐이다. 또 다른 세계관으로의 이동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설득력이 너무 떨어진다. 아무리 사업 수단으로 두샨이 폴까지 데리고 간것이긴 하지만 때 맞춰 상황이 벌어지는것도 어색하다.


선택의 기로에서 레저랜드에서의 삶을 택하고 새로운 사랑과 현재의 삶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주인공의 모습으로 매듭짓는 결말에 이르고 나면 소재주의의 혐의를 씌울 수 밖에 없다. 결정적으로 영화가 너무 지루해서 그냥 넘어갈만한 부분까지 다 밟히는 통에 전개 따라가는 과정이 보여지는것 이상으로 피곤하고 굉장히 짜증이 난다. 납득이 안 되는 전개의 연속으로 인내력을 시험받는다. 보스턴 쓰레기로 대변되는 애플렉 형제와 발정난 웨인스타인과 엮이면서 모범적인 이미지가 실추된 맷 데이먼의 소시민을 대변하는 연기도 지금 상황에서 봤을 때는 가식적으로만 보여 집중하기가 쉽지 않다. 음흉스럽고도 유쾌한 크리스토프 왈츠의 입체적인 세르비아인 연기가 없었다면 고문과도 같은 졸작의 흐름을 견뎌내기 어려웠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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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0 18:30:41

멧 데이먼이 '야 네가 이러려고 이 딴 영화 찍었냐' 하는 자괴감이 들었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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