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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하트스톤(스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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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5-09 01:5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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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의 작은 어촌 마을 아이들 이야기이다. 갓 사춘기에 접어든 동네 아이들은 이제 막 이차 성징에 접어들었고 나날이 바뀌는 신체 변화에 조숙해진 몸으로 맞서고 있다. 아이들은 시골 동네 별볼일 없는 패거리 속에서 저절로 올라오는 성욕과 배설의 본능, 호기심으로 충만하다. 가난한 섬마을에서 아이들은 달리 할게 없다. 원시적이고 야생적인 환경 속에서 무방비 상태로 방치된 소년, 소녀들이 할 수 있는거라곤 또래들과 어울리며 성에 대한 호기심을 하나하나 서툴게 시도해 보는 것 뿐이다. 본능에 맡겨진 무료한 일탈과 성욕의 끓어오름 속에서 아이들은 각자의 자아를 찾고 예기치 않은 순간에 성정체성을 발견한다. 주인공 중 한명인 크리스티안은 게이임을 자각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기까지 고통과 혼란에 빠진다.  

 

영화를 보는 내내 폐쇄적인 환경에서의 고립된 삶을 생각해 봤다. 영화로는 정말 드물게 볼 수 있는 아이슬란드 시골 섬마을의 삶이 생생하게 펼쳐지는데 섬뜩할 때가 많았다. 표면적으로는 10대 남자 아이가 게이로서의 성정체성을 발견하고 죽마고우였던 동성 친구에 대한 감정이 우정에서 사랑으로 바뀌는 과정을 따라가는 작품이지만 극에서 주력하는 것은 정서적인 요소이다. 특수한 환경에서 일상을 보내거나 혹은 버티고 견뎌야 하는 성장기 아이들의 삶을 느린 호흡으로 섬세하게 따라간다.

 

시간이 정지된 듯한 가난한 섬마을에서의 삶은 그야말로 시간을 죽이는 과정같아 보인다. 마땅한 문화 시설도, 편의 시설도 조성돼 있지 않은 야생적인 공간이 주는 권태와 고독감은 부모 세대로 상징되는 성인들의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어른들의 표정엔 활기가 없다. 지루함만이 가득하다. 이차 성징을 맞은 소년, 소녀들이 주로 성적 호기심을 객기와 도발로 채워가는 과정을 따라가는 작품이지만 아이들의 일탈에 무력하게 대응하는 어른들의 권태가 곧 아이들의 미래가 될것이기 때문에 암담하다. 이곳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특별한 계기가 없는 한 또래 친구들과 이른 나이에 결혼해서 부모 세대처럼 안주할 것이다.

 

어른들이라고 달리 할게 있는게 아니다. 이 작품에 묘사되는 어른들의 유일한 놀이 문화는 마을 창고 같은 곳에 초라하게 마련된 클럽이 다이다. 사방이 바다이고 황량하게 조성된 거대한 대지뿐이다. 벗어날 길 없어 보이는 환경에서 아이들의 위험한 일탈을 제어할 방법은 없어 보인다. 아이들이 저지르는 발칙한 장난과 위태롭게 채워가는 성욕은 사방이 바다인 섬마을이 부추기는 것이다. 호기심을 분산시킬 대상이 전혀 조성되어 있지 않다. 부모들은 대체로 아이들에 무관심하고 남의 집 식기가 몇개인지까지 다 알 수 있는 폐쇄적인 지역 사회에서 매일 보는 얼굴들끼리 할 수 있는 것은 낮이고 밤이고 어울려 다니며 감정 보다 앞서는 성욕의 본능을 짐승처럼 무기력하게 채워가는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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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보기엔 압도적으로 아름답지만 그 안에서 터를 잡고 살아야 한다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는 아이슬란드 섬마을의 생생한 공간감과 무료한 일상의 묘사는 감독의 유년 시절 경험을 반영한 결과이다. 10번을 반복해서 읽어도 도저히 외워지지 않을 것 같은 이름인 구두문두르 아르나르 구드문드손 감독은 장편 서사를 만들기 위해 이차 성징을 맞은 청소년들의 과도한 성욕과 성정체성 발견을 기본 구성으로 깐 것 같다.

 

감독의 주된 관심사는 성장 퀴어물의 느린 속도 보다는 환상적으로 조성된 그림 같은 섬마을의 고립된 일상과 권태이다. 이 작품에서 더딘 호흡으로 전개되는 일상의 묘사는 정말 보는 내내 공포였다.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은 비좁은 지역 사회의 건조함, 도무지 눈 돌릴 대상이 없고 마땅히 할게 없어서 집착하게 되는 성욕의 실천, 몸이 반응하는대로 움직이는 기계적인 교미의 시도. 다 공간의 압박감 때문에 일어나는 짓들이다. 기본 주거 환경이 불우한 삶으로 이들을 도태시켰다. 아버지 말을 몰래 훔쳐 친구들과 소풍을 떠나도 몇시간도 되지 않아 발각되고야 마는 섬마을의 폐쇄성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단편적인 설정을 반복적으로 전개시키는 작품이다. 가슴이 나오기 시작하고 사타구니 음모와 겨드랑이 털이 자라기 시작한 발정난 아이들이 서툴게 시도하는 교미의 방법들은 반복적이어서 금세 지루해진다. 전개라고 할것도 없다. 대부분의 성적 일탈은 교합 직전에서 그친다. 성교육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니 얄팍하게 아는 지식을 동원하여 몸이 이끄는대로 반응하다 내빼는 식이다. 극에서 그리는 시기가 방학 기간인지 애들은 학교도 안 간다. 사교육도 없다. 휴대폰, 인터넷과도 거리가 먼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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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폐쇄적이고도 원시적인 아이슬란드 섬마을 공간에서 방치되다시피한 사춘기 아이들의 발정과 도발을 북유럽 영화 특유의 다큐적인 질감을 부여하여 천천히 따라간다. 속도가 너무 느리다. 감독이 주제에 대해 보다 깊은 고민과 의욕을 보였다면 살짝만 건드려도 바로 터져버릴 것 같은 호르몬 분비의 성작극을 넘어설 수 있었을 것이다. 배경과 기본 설정에서 결이 다양한 드라마의 가능성이 엿보인다. 아쉽게도 이 작품으로 어렵게 장편 영화 입봉을 한 구두문두르 아르나르 구드문드손 감독은 아이슬란드의 비좁은 섬마을에서 유년 시절을 보낸 자신의 경험에서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다. 오로지 환경이 압박하는 성장극의 정서적인 요소에만 집중한다.  

 

원시적인 자연환경에서 이차 성징을 맞은 사춘기 아이들의 성욕은 생생한 현장감으로 실감나게 묘사되긴 하지만 보여지는 것 이상의 깊이를 끌어내지는 못한 채 반복적인 구성으로 맴돌다 그쳐서 지친다. 몸이 이끄는대로 섞이다 예기치 않은 순간에 성정체성을 발견하는 퀴어극의 과정도 기본 설정에 따른 일차원적인 해석이라 가볍고 한편으론 유치해서 우습기까지 하다. 토르가 성정체성에 대한 혼란과 동성애에 대한 열벙으로 자살 시도를 한 크리스티안을 받아들이는 모습도 변화하는 감정선이 고르지 못해 진정성이 떨어진다. 자기 때문에 제일 친했던 친구를 죽게 만들 수는 없으니 일단은 급한 불은 끄자는 심정으로 크리스티안의 짝사랑에 반응해주는 것 같아 보인다.

 

감독 개인의 유년 시절 경험을 녹였고 장편 입봉작이다 보니 이야기가 개인의 정서에 정체되어 버린 것 같다. 아이들이 삶을 대처하는 모습 사이사이로 아이들의 미래가 될 어른들의 고독과 불안전성도 비춰졌다. 배경이 중요한 이 작품에서 감독이 지금보다 포괄적인 시선으로 섬마을의 삶을 그려내려 했다면 성장 퀴어극으로 활로가 좁아진 이야기가 지금보다는 훨씬 풍부하고 비옥하게 조성됐을지도 모른다. 아이슬란드 풍경은 근사했지만 발정난 아이들의 유치한 일탈 하나에만 매달리고 있어서 배경이 낭비됐다.

 

전개 호흡도 가다듬을 필요가 있었다. 북유럽 영화들이 영화적 기교를 자제하고 날것 그대로의 묘사에 집중하긴 하지만 이 작품은 그 중에서도 특히 호흡이 너무 느리고 구성이 반복적이어서 유독 지루했다. 풍경 효과는 30분을 넘어서면 한계점을 보이며 몰개성적으로 그려진 각 배역의 드라마도 얇기만 해서 매력이 떨어진다. 흔하게 볼 수 있는 사춘기 아이들의 치기일 뿐이고 매우 전형적인 방식으로 야릇하게 발전시키는 퀴어극의 성질도 얄팍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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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09 11: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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