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PM] 볼보 S80이를 보내버렸습니다 ㅠㅠ
이제 새차 뽑은지 4개월 밖에 안된 볼보 S80이를 제 손으로 박살내 버렸습니다. 평소에 그렇게
조심운전/안전운전/방어운전 하면서 접촉 사고 한번 안 냈는데요 산길 가다가 오르막길에서
급가속하는 바람에 왼쪽으로 굽는 코너에서 오른쪽 먼저 살짝 박고 그 충격으로 밀려가서
도로 왼쪽 연석과 가드레일을 박아 버렸습니다.
뒤돌아서 블랙박스도 보고 사고 원인은 생각해 봤습니다.
가장 중요했던건 당연히 저의 운전미숙과 제 차의 성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산길 드라이브 즐긴다고 지지난주 토요일 아침 가평 근처로 아침에 나섰습니다. 산길이니까
좀더 기민하게 운전해야 안전할거 같아서 평소에는 늘 에코모드로 다녔는데 그날은 스포츠 모드로
바꾸고 탔습니다. 사실 스포츠 모드 해봤자 변속 타이밍이 좀더 느려지는거 외에 큰 차이는 없는
차인데 그래도 좀더 재깍재깍 반응하는 느낌은 들었습니다.
완만한 코너가 앞에 있고 오르막 경사가 좀 급해보여서 평소처럼 엑셀을 좀 꾹 밟았습니다. 에코나
엘레강스(기본 모드)일 때는 변속이 1,500RPM이하에서 되서 트랙션이 좀 약하거든요. 그런데 스포츠
모드라 RPM을 많이 썼는지 평소와 다르게 차가 쑤욱 나가는 거였습니다. 뭔가 이거 너무 빠른데라고
느끼긴 했지만 솔직히 그때 계기판을 봤다면 깜짝 놀랬을 겁니다. 나중에 블랙박스 확인해 보니까
장난 아니었습니다.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이 싸악 뒷통수를 스치면서 브레이크 페달에 발을 옮기고
발에 힘을 주면서 동시에 핸들을 돌렸는데 이미 그 타이밍에 코너가 벌써 코앞에 와있었습니다.
오른쪽 연석을 스치듯이 박고 튕겨 나가면서 20미터쯤 쭈욱 대각선으로 미끄러져 올라가서 왼편
연석과 가드레일을 받았는데 그 순간이 정말 0.1초 정도로 순식간으로 느껴졌습니다. 영화처럼
슬로우비디오로 지나가며 지나간 인생이 주마등처럼 넘어가고 그런건 없이 정말 순식간에 사고가
났습니다. 에어백이 터지고 화약 냄새가 자욱한 가운데 계속 의식은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에어백이 전부다 터진게 너무 이상할 정도로 강하게 박은 느낌이 없었습니다. 일단 몸이
괜찮은지 훑어보기 시작했는데 어디 하나 피나거나 부러진 곳 결리는 곳은 없었으나 에어백이 터지는
압력에 오른쪽 팔 안쪽의 피부 표면이 쓸려서 손바닥 반만큼 벗겨졌더군요. 잠시 정신을 추스르고
기어 P에 넣고 문 열고 나왔습니다.(물론 비상브레이크가 작동되서 차는 이미 단단히 서 있었습니다)
팔에 까진 것을 제외하고는 몸에는 전혀 이상이 없었습니다.
지나가던 운전자 두분이나 차를 세우고 괜찮으냐고 도움이 필요하지 않느냐고 친절히 물어봐
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차 앞부분은 어느 정도 찌그러져 있었지만 뉴스에서도 보던
완전 박살 이런거랑은 거리가 멀었습니다. 윈드쉴드부터 뒷부분까지는 흠집 하나 없고 유리창에
금 하나 안 갔습니다. 내부 공간은 1센치도 안 밀려들어온 듯 했습니다. 문짝 네개 다 문제없이
잘 열리고 강하게 박은 왼쪽 앞은 범퍼고 헤드라이트고 다 날아갔는데도 비상등은 깜빡이더군요
차가 남긴 마지막 메시지는 엔진 냉각수가 부족하니 점검하라는 거였습니다.
주변에 차 오는지 확인하고 보험사에 전화해서 사고 신고하고 기다렸는데 렉카로는 못 끌고 간다고
큰트럭 불러서 싣고 정비소로 갔습니다. 정비소에서도 앞차축이 다 박살이 나서 지게차로 끌어내렸
고요. 병원가서 상처 드레싱하고 엑스레이 찍어서 확인했습니다. 약처방 받아서 먹고 드레싱
하루에 한번씩 갈아주는게 전부였고요. 다음날 아침 일어났는데 목이랑 허리 약간 뻐근한 것
빼고는 다른 이상은 없었습니다. 팔쪽 상처가 얕음에도 불구하고 엄청 아프고 오른팔을 못쓰는
생활이 더 힘들었습니다.
물리치료 두세번 받고 일주일 정도 휴가 내고 집에서 쉬니까 좀 피곤하고 짜증나긴 하지만 일할만한
상태가 되었고 이주가 지난 지금도 딱히 이렇다할 후유증은 없습니다. 그런데 제 차는 정비소에서
연락이 오길 이미 정품 부품값으로만 견적이 5천만원이 나왔다고 하더군요. 그냥 전손처리 하는
방향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차는 전손인데 사람은 멀쩡하니 이게 정말 볼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볼보가 왜 보험요율이 가장 높은지도 이해가 가더군요. 만약 제차가 소나타였고
같은 상황이었다면 지금쯤 병원에 누워있을 겁니다(물론 소나타는 그만큼 가속이 안될테니 어찌보면
사고가 안 났을 수도 있죠). 삼성화재에서 대물 담당자가 전화왔는데 차가 날았냐고 물어보질 않나
대인담당자는 사고현장 사진 봤다면 심하게 다치셨냐고 물어보는데 까진게 전부라고 하니까 잠시
당황해하더군요. 팔 안쪽 상처도 오늘 의사쌤이 더 이상 치료는 필요없을 정도로 회복됐다고
합니다. 아직 관리를 좀 더 해주긴 해야 하지만 오른팔을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편합니다. 오른손잡이지만 다행히 왼팔로도 마우스질과 젓가락은 할 줄 알지만 많이 불편하긴
했습니다
가솔린 4기통 1,969CC지만 싱글터보로만 245마력 토크 35.7kgm의 출력을 내는 차라는 점을 간과
했던거지요. 평소 묵직하게 나가던 이차에 익숙해져 있었고 노면이 미끄럽다는 사실을 간과, 그리고
오르막길의 경사도를 잘못 본것 스포츠모드에서의 강한 트랙션을 경험하지 못했던 점 브레이킹이
늦었던 점 사실 따지고 보면 다 제 잘못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자기 차의 성능에 대해서 미리
좀 잘 알고 있어야 이런 사고를 막을 수 있을거라 봅니다. 운전학원이나 연수 때는 국산 소/중형차로
만 하니까 아무래도 출력이 좋은 차와는 주행감각이 다를 수밖에 없으니까요.
정말 몸을 안 다친게 다행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이제 갓 3천 킬로 뛴 완전 애지중지한 새차를
전손시키는게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이 모델이 단종인데다가 많이 팔리지도 않았고 그 중에서도
희귀한 흰색 가솔린 모델이라서 같은 중고를 사는건 거의 불가능하고요. 볼보차 특성상 다들 오래
타시기 때문에 중고 매물도 안 보입니다. 새로 나오는 S90이 있지만 그걸 사려면 자차보험금에다
적어도 국산 중형차 한대 값은 더 얹어줘야 하니 사정권이 아니고요...
그래서 무슨 차를 살까 아무리 고민해 봐도 이만한 깔끔한 내외장 디자인, 효율적인 다운사이징 엔진
극강의 안전성과 신뢰성, 갖가지 ADAS시스템, 강한 차체 강성, 주행 안정성, 고급진 기본 오디오,
훌륭한 가죽과 착좌감 및 충동 안전시스템을 갖춘 시트를 지닌 E-세그먼트 차량은 존재하지 않더라구요.
왜 처음에 S80을 샀는지 생각해 보니 그 때 참 가장 효율적인 선택을 했던거 같습니다. 아무리
볼보의 구시대 차량이라곤 하지만, 12년이 넘은 설계라고는 하지만 지금 봐도 전혀 촌스럽지 않고요
매번 문을 여닫을 때마다 느껴지는 묵직함과 주행감은 국산 중형 대비 장갑차를 타고 있는 느낌
이었습니다.
사고가 한번 나보니 안전한 차를 타야겠다는 생각이 간절하긴 한데 차를 막 찾다보니.... 제가
예전에 정말 타고 싶었던 재규어 구형XJ모델 괜찮은 녀석이 있더라구요. 10년 11만키로 뛴
차인데 어찌나 끌리던지 지금 아니면 그 차를 한번 소유해볼 일은 앞으로는 없을 것 같고
그런데 과하게 크고 정비요소도 많을 거고 운전하기 불편할텐데... 아 안전한 차 찾다고 이게
무슨 딴생각이야 하고 있습니다. 정말 살 차가 없어요 ㅠㅠ 결국 예산의 후달림으로 현기차로
가야 되는데 차를 탈 때마다 느껴지는 불신감과 수입차에서 오는 자신감 결여는 앞으로도
계속 저의 운전 부주의에 대해서 떠올리게 할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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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다음 차는 볼보 xc90이나 s90 근처로 생각중입니다. 나이 드니 저나 가족의 안전보다 더 신경쓰이는 건 없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