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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내일을 위한 시간 (스포)

bayman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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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75
Updated at 2017-08-04 05:11:15

내일을 위한 시간 (스포)
 

 극심한 우울증으로 휴직했던 산드라(마리옹 꼬띠아르)의 복직이 무산될 위기에 처한다사측에선 열여섯 명의 기존 직원들에게 보너스 수령과 동료의 복직 중 양자택일하란 조건을 내건다그녀의 거취를 결정할 투표를 앞둔 주말 동안산드라는 복직을 위해 동료들로 하여금 보너스를 포기하도록 일일이 설득하러 다닌다이렇듯 <내일을 위한 시간>의 플롯은 꽤 간명하다절박한 노동자의 1박 2일간 동분서주 관찰기어쩌면 현대판 <12인의 성난 사람들>로도 볼 수 있겠다물론 이 영화엔 폐소공포증을 자극하는 밀실의 압박감도의표를 찌르는 갑론을박도 없다다만 확실한 열세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장벽을 조금씩 허물고자 하는미약한 존재의 무모한 노력이 담겨있다이전에 실시됐으나 무효화된 투표결과는 2:14. 산드라의 복직 대신 자신의 보너스를 택한 이가 압도적으로 많았다극중 유죄를 확신하던 배심원들을 헨리 폰다 홀로 하나하나 설득했던 것처럼산드라 역시 조심스레 대반전을 꿈꾼다생계유지가 최우선이고 치열한 경쟁과 도태가 당연시된 사회에서 스스로 희생하면서까지 타인을 배려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역만리 타국에서 제작된 이 영화가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면그건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명료하기 때문일 것이다영화는 세상의 냉혹한 실정을 적확하게 포착한다한참을 망설이다 찾아간 산드라의 부탁을 거절하며 동료가 내뱉은 한마디. "너 없이도 우리끼리 충분히 가능한데 왜 네가 필요하겠어?" 만국의 위태로운 노동자들이 질겁할 대사다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로서의 가치상실은 죽음과 다름없기 때문이다이후 산드라가 자신감을 잃고 자살기도하는 설정이 뒤따르면서 이를 잔인하게 확인시킨다또한 그녀와 동료들이 각자의 사정을 피력하면서 입 밖으로 종종 꺼내는 대사도 주목할 만하다. "이런 상황은 내가 원해서 만든 게 아니야." 그렇다이건 사측이 조장한 결과다말단 직원들의 투표로써 해당사안을 결정한다는 사장의 방침은 얼핏 민주적·합리적인 절차로 보인다하지만 극 초반 그는 산드라와 재투표 문제를 의논하고자 기다리겠다 해놓곤막상 그녀가 도착할 땐 차타고 떠나는 중이었다재투표의 이유는 투표 당시 작업반장이 산드라가 복직된다면 다른 직원이 대신 해고돼야 한단 협박을 했기 때문이다사장은 작업반장에게 그런 얘길 전한 적 없다며 강력히 부인한다하지만 극 후반 산드라에게 계약직 직원을 해고하고 그녀를 복직시키겠다며 회유하는 상황을 보면 꽤나 의심스럽다또한 주말 동안 직원들을 압박하고선 막상 산드라가 추궁할 땐 전혀 모르겠단 듯 시치미 떼고 오히려 직장 분위기를 망쳤다며 다그치는 작업반장은 어떤가결국 사측의 '합리적 배려'는 책임회피에 가깝다조금이라도 지출을 줄이고 싶은데 제 손을 더럽히긴 싫으니하루하루 힘겹게 버티는 '들을 벼랑으로 밀어놓곤 그들간의 대립과 반목을 부추기는 것이다어찌 보면 게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가련한 인생들을 도덕적 시험대에 올려놓아 쉽사리 결정 못 할 딜레마에 빠트리는 게임 말이다그들을 억지로 게임에 소환해놓곤 민감한 문제는 알아서 해결하라고 떠민 형국이다설령 동료들이 보너스를 선택한들선뜻 비난할 수 없는 상황이니 서글픔이 피어난다산드라가 좀 더 절박하긴 해도궁극적으론 다들 먹고살기 벅차다작품이 제시한 광경은 자본주의가 선사한 햇살 대신 그늘에 익숙한 수많은 이들에게 보편적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플롯의 대부분이 설득과정의 반복이라 자칫 지루함을 유발할 여지도 있다하지만 예상외로 스토리의 향배를 쉽게 단정할 수 없다산드라의 혼란한 심리상태처럼 희망과 절망안도와 불안의 순간이 시종일관 교차된다가령 복직할 수 없으리란 좌절감에 휩싸여 신경안정제 수십 알을 먹고 죽음을 기다리던 찰나집에 찾아온 동료로부터 그녀를 위해 투표하겠단 말을 듣곤 표정이 묘해지는 산드라집에선 잘 먹지도 않던 그녀가 죽을 고비를 넘기고선 병실에서 허기를 호소하며 먹거리를 찾는다당연히 돕겠단 말로 산드라를 안심시켜놓곤돌아선 그녀를 곧장 멈춰 세워 투표결과가 근소하게 나온다면 자신의 입장이 들통 나 사측 눈 밖에 날지 모른다며 머뭇대는 계약직 직원다르덴 형제는 출중한 스토리텔러답게 매 순간의 아이러니를 섬세하게 포착하면서 절묘한 페이소스와 서스펜스를 창출한다찬찬히 축조된 연민과 긴장은투표 당일 복도에서 조용히 결과를 기다리는 산드라의 표정에서 최고조에 달한다마침내 치러진 재투표 결과는 8:8. 그녀의 복직에 대한 찬성표는 과반수가 안 됐고 정성스러운 노력은 결국 빛을 보지 못한다하지만 사측은 그녀의 선전에 내심 놀랐는지 또다시 게임을 제안한다그녀보다도 약자인 계약직 직원들을 해고시킬 테니 돌아오라는 제안당초 사장에게 재투표를 부탁할 땐 친구 등 뒤로 물러서 한마디도 못 하던 산드라그러나 이젠 사장을 똑바로 마주 보며 단칼에 거절하고 떠난다남편과 통화하면서 그녀는 나지막이 말한다. "우리 잘 싸웠지나 행복해." 무력감에 젖어 몇 번이고 주저하며 삶까지 포기하려던 그녀가 비로소 행복을 느끼는 순간이다남에게 운명을 맡긴 채 타인의 양보를 호소하며 자괴감과 죄책감에 시달리던 그녀는자신의 길을 용감하게 결정짓는 주체적 선택이자 기꺼이 동료를 위해 희생하는 이타적 선택으로써 마음의 짐을 덜어낸다첫 장면에서 죽은 듯 잠들어있던거지처럼 연민을 구걸한다며 내내 징징대던 우울증 환자는 이제 없다내일을 향해 꿋꿋이 걸어가는 작은 영웅이 있을 뿐이다그녀의 고군분투는 아무리 현실이 각박할지라도 자본의 매정한 농간에 맞설 수가 있고약자들끼리 선의와 용기를 품고 연대할 수 있으며어쩌면 본인뿐만 아니라 타인까지도 구원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줬다그래선지 그녀가 거둔 절반의 승리가 무척 커 보인다집요히 따라다니고 세밀히 포착하며 진득하게 응시하던 카메라는 의연하게 걷는 산드라의 마지막 뒷모습을 그윽이 바라본다일자리 찾고자 고생하는 여성노동자를 다룬 점이 가뜩이나 <로제타>를 연상시키는데나이 들어 세파에 찌들어도 속는 셈치고 다시 기운 내보는 성숙한 로제타를 지켜보는 기분이다유난떠는 대신 묵묵한 눈빛으로 그녀에게 응원을 보내는 것 같아 가슴 찡해진다새삼스럽지만 다르덴 형제 영화의 엔딩은 늘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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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하얀새826
2015-01-10 10:41:30

이 영화 결말이 마음에 들었어요. 약간 침울했던 기분이 조금 풀리더군요. 쫓겨난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나온 모양새가 되어서..

elnino
2015-01-11 10:12:21

글 잘 읽었습니다. 영화 보기 전에 결말이 감동적이라길래 어떤 내용일까 궁금했었는데 보고나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 지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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