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내일을 위한 시간 (스포)

극심한 우울증으로 휴직했던 산드라(마리옹 꼬띠아르)의 복직이 무산될 위기에 처한다. 사측에선 열여섯 명의 기존 직원들에게 보너스 수령과 동료의 복직 중 양자택일하란 조건을 내건다. 그녀의 거취를 결정할 투표를 앞둔 주말 동안, 산드라는 복직을 위해 동료들로 하여금 보너스를 포기하도록 일일이 설득하러 다닌다. 이렇듯 <내일을 위한 시간>의 플롯은 꽤 간명하다. 절박한 노동자의 1박 2일간 동분서주 관찰기. 어쩌면 현대판 <12인의 성난 사람들>로도 볼 수 있겠다. 물론 이 영화엔 폐소공포증을 자극하는 밀실의 압박감도, 의표를 찌르는 갑론을박도 없다. 다만 확실한 열세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장벽을 조금씩 허물고자 하는, 미약한 존재의 무모한 노력이 담겨있다. 이전에 실시됐으나 무효화된 투표결과는 2:14. 산드라의 복직 대신 자신의 보너스를 택한 이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극중 유죄를 확신하던 배심원들을 헨리 폰다 홀로 하나하나 설득했던 것처럼, 산드라 역시 조심스레 대반전을 꿈꾼다. 생계유지가 최우선이고 치열한 경쟁과 도태가 당연시된 사회에서 스스로 희생하면서까지 타인을 배려하는 것이 가능할까.
이역만리 타국에서 제작된 이 영화가 남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건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명료하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세상의 냉혹한 실정을 적확하게 포착한다. 한참을 망설이다 찾아간 산드라의 부탁을 거절하며 동료가 내뱉은 한마디. "너 없이도 우리끼리 충분히 가능한데 왜 네가 필요하겠어?" 만국의 위태로운 노동자들이 질겁할 대사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로서의 가치상실은 죽음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후 산드라가 자신감을 잃고 자살기도하는 설정이 뒤따르면서 이를 잔인하게 확인시킨다. 또한 그녀와 동료들이 각자의 사정을 피력하면서 입 밖으로 종종 꺼내는 대사도 주목할 만하다. "이런 상황은 내가 원해서 만든 게 아니야." 그렇다. 이건 사측이 조장한 결과다. 말단 직원들의 투표로써 해당사안을 결정한다는 사장의 방침은 얼핏 민주적·합리적인 절차로 보인다. 하지만 극 초반 그는 산드라와 재투표 문제를 의논하고자 기다리겠다 해놓곤, 막상 그녀가 도착할 땐 차타고 떠나는 중이었다. 재투표의 이유는 투표 당시 작업반장이 산드라가 복직된다면 다른 직원이 대신 해고돼야 한단 협박을 했기 때문이다. 사장은 작업반장에게 그런 얘길 전한 적 없다며 강력히 부인한다. 하지만 극 후반 산드라에게 계약직 직원을 해고하고 그녀를 복직시키겠다며 회유하는 상황을 보면 꽤나 의심스럽다. 또한 주말 동안 직원들을 압박하고선 막상 산드라가 추궁할 땐 전혀 모르겠단 듯 시치미 떼고 오히려 직장 분위기를 망쳤다며 다그치는 작업반장은 어떤가. 결국 사측의 '합리적 배려'는 책임회피에 가깝다. 조금이라도 지출을 줄이고 싶은데 제 손을 더럽히긴 싫으니, 하루하루 힘겹게 버티는 '을' 들을 벼랑으로 밀어놓곤 그들간의 대립과 반목을 부추기는 것이다. 어찌 보면 게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가련한 인생들을 도덕적 시험대에 올려놓아 쉽사리 결정 못 할 딜레마에 빠트리는 게임 말이다. 그들을 억지로 게임에 소환해놓곤 민감한 문제는 알아서 해결하라고 떠민 형국이다. 설령 동료들이 보너스를 선택한들, 선뜻 비난할 수 없는 상황이니 서글픔이 피어난다. 산드라가 좀 더 절박하긴 해도, 궁극적으론 다들 먹고살기 벅차다. 작품이 제시한 광경은 자본주의가 선사한 햇살 대신 그늘에 익숙한 수많은 이들에게 보편적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eln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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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1 10:12:21
글 잘 읽었습니다. 영화 보기 전에 결말이 감동적이라길래 어떤 내용일까 궁금했었는데 보고나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 지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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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결말이 마음에 들었어요. 약간 침울했던 기분이 조금 풀리더군요. 쫓겨난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나온 모양새가 되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