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감상기] 명작을 찾아⑦ - 장예모의 인생 (활착, Huozhe, Lifetimes, To Live, 1994)
전에 함께 근무했던 동료가운데 학식뿐만 아니라 다방면으로 지식이 풍부했던 이가 있었다. 태국에서 출생, 말레이시아에서 성장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UMass에서 학업을 마친 중국계 미국인으로 언젠가 영화를 주제로 담소하던 중 그가 최근에 (DVD로) 본 영화 한 편이 무척 좋았다며 들려준 제목이 낯설었다. 화제에 <갱스 오브 뉴욕, Gangs of New York, 2002>의 품평 또한 등장했던 것을 미루어보아 얼추 8~9년 전 같은데 전체적인 대화내용이야 어렴풋하지만 제목만큼은 또렷이 기억에 남았다. 산다는 것, 혹은 인생, To Live, Lifetimes으로 인용했던 영화, 바로 오늘 다룰 작품이다.
영화의 원제가 되는 활착 (活着, huozhe), 실제로 낯선 단어이고, 한자사전엔 ‘옮겨 심거나 접목한 나무가 살아 붙음’이라 적혀있다. 대학로에서 연극으로 올려지기도 했던, 살아가기 위해 목숨을 걸고 피를 팔아 위기 때마다 가족을 구하는 사내의 이야기, ‘허삼관 매혈기’의 작가 여화(위화, Yu Hua)의 1992년 소설을 장예모(Zhang Yimou)가 영화화했다. 2002년 제임스 조이스상을 수상한 중국 3세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그러나 역대 수상자 명단엔 빌 브라이슨과 JK 롤링도 눈에 띄는 것을 보면 순수한 문학적 성취로만 선정하는 상은 아닌 듯도 하다.
(그나저나 중국인의 이름을 원어발음대로 표기하기로 한 것은 이제 확정된 건가? 그렇다면 장예모가 아니고 장이모우라 불러야.)
1940
장제스와 국민당정부를 대만으로 패퇴시킨 제2차 국공내전(1946~1949)과 중화인민공화국의 수립. 농공업 대증산 정책이랍시고 밥짓는 솥까지 몰수했던 대약진운동 (1958~1960), 이는 제2차 세계대전의 총사망자수에 육박하는 2천만~4천만의 인구를 기아로 죽음에 이르게 한 참담한 실패로 귀결되어, 결국 마오쩌둥으로 하여금 1962년 국가주석직을 사임하게 만들고, 절치부심하던 그가 류사오치와 덩샤오핑 등, 떠오르는 신진권력의 실세들을 제압하기 위해 일으킨 친위쿠데타성격의 문화대혁명 (1966~1976). 파란만장했던 중국현대사의 격랑을 맞으며, 새옹지마와 인생유전을 읊조리게 만드는 인생은 참으로 졸렬하고 비루하고 고달프지만 그래도 절규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참고 살아가는 것이라며 잔잔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영화.
원작에선 아들 요우칭에게 닥친 참극이 더욱 어처구니 없는 에피소드로 그려지지만 장이모우는 위화와 함께 작업한 각색을 통해 비극적인 요소들을 많이 순화, 그럼에도 인생은 살아갈 만한 것이라는, 그리고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는 희망의 불씨를 살려놓으려 애썼다. 1994년 칸느영화제 심사위원대상과 박애주의상을 수상했으며, 당시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이었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출품작 가운데 가장 선호한 작품이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중국정부의 시선마저 따스해진 것은 아니어서 중국에선 끝내 상영불가였을 뿐만 아니라 장이모우로 하여금 2년간 영화제작을 금지시키기도 했다.
장이모우의 작품세계는 1999년 두 편의 사랑스러운 이야기, <책상 서랍 속의 동화, Not One Less, 1999>와 <집으로 가는 길, The Road Home, 1999>을 내놓은 이후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때까지 걸어온 궤적에서 일탈, 지나친 중화주의에 매몰되는 듯하여 실망스럽다. 1998년 자금성을 무대로 연출한 오페라 투란도트만 해도 그러려니 했지만 공연예술 쪽으로 한번 내친 걸음은 2008년 북경올림픽 개/폐회식에 이르기까지 거침이 없어 베를린, 칸느, 베니스 영화제를 석권했던 그의 재능이 낭비되고 있는 느낌이다. 그가 기획, 제작한 가무와 음악이 버무려지는 종합 야외공연 <인상 유삼저,
아내 지아젠을 연기한, 초기 장이모우의 분신과도 같은 공리.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한 데뷔작 <붉은 수수밭, Hong Gao Liang = Red Sorghum, 1987>이래 둘이 6번째로 함께 한 작품이 <인생>이다. 그러나 영화 전편을 끌고 가며 정작 마음을 울리는 연기를 보여준 이는 놀음에 정신 나간 철없던 사내, 그러나 천성이 악하지는 않았고, 진솔하며, 교만이나 허세 따위와는 담쌓은, 지주의 아들 출신이라는 원래 신분의 멍에 때문에 스스로 주눅들고 예민하게 반응하며, 또 이것 때문에 지난한 아픔을 겪기도 하지만, 인생의 모진 고비를 돌며 세상을 바라보는 깊고 따스한 시선을 갖추게 된 후꿰이 역의 갈우(거요우, Ge You)였다. 짙은 페이소스가 묻어나는 그의 연기는 아시아의 배우로서는 최초로 그 해 칸느영화제 주연상 수상의 갈채까지 주어졌다. 그의 성가에 비해 우리에겐 덜 알려진 배우이지만 펑 샤오강의 범작 <야연, The Night Banquet, 2006>에서 독배인줄 알면서도 “내 어찌 그대가 주는 잔을 거절할 수 있겠느냐”며 건네 받아 들이키던, 형제살인으로 권력을 쟁취했으되 끝까지 미워할 수 만은 없던, 황제가 바로 그다.
거요우 이후, 아시아 배우로 칸느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이들은 양조위 (량차오웨이, Tony Leung)가 <화양연화, In the Mood for Love, 2000>로, 그리고 <아무도 모른다, Nobody Knows, 2004>의 야기라 유우야가 있다. 여우주연상에는 장만옥 (장만위, Maggie Cheung)이 <클린, Clean 2004>으로, 그리고 우리의 전도연이 <밀양, Secret Sunshine, 2007>으로 수상했다.
참고로 칸느영화제의 꽃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역대 아시아권의 (중동과 오세아니아를 제외한) 작품은 지금까지 모두 5편이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카게무샤, Kagemusha, 1980>를 필두로, 이마무라 쇼헤이 <나라야마 부시코, The Ballad of Narayama, 1982>, 첸 카이거 <패왕별희, Farewell My Concubine, 1993>, 이마무라 쇼헤이 <우나기, The Eel, 1997>, 그리고 가장 최근작으로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엉클 분미, Uncle Boonmee Who Can Recall His Past Lives, 2010>가 뒤를 따른다.
준석이네
0
2011-07-20 18:06:50
중학교때 비됴 대여점에서 보고 그날 저녁에 한번 더 본 영화입니다. 안보신분들은 꼭보세요
ftp
0
2011-07-25 04:19:27
저도 귀주이야기가 인상에 깊었습니다. <인생>도 물론이죠, 걸작입니다. 매우매우 걸작이죠, 요즘은 장예모에게 기대하는 바가 별로 없지만 이 떄 영화들은 정말이지 최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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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중문과 교수님이 가장 재밌게 본 중국영화라고 해서 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중국 근현대사의 비극을 철저하게 개인(가족)에게 초점을 맞추어 드러냈던 작품이죠. 그래서 비판의 날이 조금은 무딘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 시절에 이런 영화를 만들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놀랍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정말 갈우의 연기가 굉장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