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HD] UHD-BD 리뷰 - 아키라AKIRA (일본판)
오토모 카츠히로 씨의 만화 'AKIRA'를 애니메이션화 한 AKIRA (이하 '아키라')는, 1988년 7월에 일본에서 최초 개봉한 이래 수많은 화제를 뿌렸고 그 맥박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만 그 '의미'는 순수하게 작품에 주목하느냐, 아니면 미디어 매체에 주목하느냐에 따라 좀 다르게 받아들여질 여지가 많다는 생각이 드네요.
미디어 매체에 주목한다면 이 작품의 의미는, 일본 버블 경제 시대의 한 상징으로 남을 만큼 어마어마한 물량을 투입하여 만든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 마치 그 시절을 그리워하듯 새로운 물리 매체 규격이 나올 때마다 일본이 동원할 수 있는 해당 시점 최고의 기술로 만들어 내놓는 정성에 있을 것입니다. 그에 대해서는 아래 링크에서 자세히 다루었으며, 이 점을 앞세우기 시작하면 이미 이 애니메이션의 내용이 갖는 밀도감에 대해서라든가 그 전개의 호불호를 논하는 게 별 의미가 없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
https://dvdprime.com/g2/bbs/board.php?bo_table=blu_ray&wr_id=2073230
그리고 마침내 본작의 시간 배경인 2020년에, 현실에선 이 작품의 4K UltraHD Blu-ray (이하 UBD)판 아키라가 발매되었습니다. 이번 리뷰의 목적은 '시대가 (이제야)따라왔다'는 꽤 여러 가지 생각이 드는 문구를 앞세운 이 UBD에 대해서 논하는 것입니다.
- 카탈로그 스펙
UHD-BD 트리플 레이어(100G), 2160/24P(HEVC), 화면비 1.85:1, HDR10
최고 품질 사운드: 돌비 트루HD 5.1ch (일본어) * UBD와 패키지 동봉 BD 둘 다 동일
자막: 일본어, 영어 (Off 가능)
아키라 UBD는 디스크 실 용량 91.9G에 본편 89.4G (본편 only 수록)이며, 2시간대 작품(124분)에 이만한 본편 용량과 평균 비트레이트를 부은 UBD는 UBD가 발매된지 4년이 지난 지금도 별달리 없을 정도입니다. 다만 후술하듯 엄청난 영상 비트레이트에 비해 음성 비트레이트는 좀 문제가 있습니다.
- 서플 사항
아키라 UBD의 서플은 모두 패키지에 동봉된 보너스 BD에 수록되었습니다. 수록 사항은 하기 참조.
- AKIRA SOUND MAKING 2019 : 1080P24/ LPCM 2.0ch(24/48), 39분 57초
- AKIRA SOUND CLIP BY 芸能山城組 : 1080i/ LPCM 2.0ch(16/48), 19분 7초
: 아키라의 사운드 제작과 믹싱 등을 담당한 야마시로구미의 작업 영상과 작중 영상등을 혼합하여 만든 일종의 '메이킹 뮤직 비디오' 영상. 1988년에 VHS 등으로 별매했던 영상을 재수록한 것으로, 당시 발매된 VHS를 디지털 업스케일 해서 보는 감과 비슷하며 영상이나 음성에 노이즈가 종종 낍니다.
- 엔딩 크레딧(1988년 개봉판) : 1080P24/ LPCM 2.0ch(16/48), 4분 3초
- 극장 특보 및 예고집 : 모두 1080P24/ LPCM 2.0ch(16/48) 스펙이며, 이 서플에만 영어 자막 지원.
- 예고편 No.1 (2분 8초)
- 예고편 No.2 (1분 2초)
- 특보 No.1 (32초)
- 특보 No.2 (32초)
- TV 스팟 (17초)
- 콘티집
새로 제작된 UBD화 메이킹 영상이나 별매했던 사운드 클립이 있긴 해도, 오토모 씨의 오디오 코멘터리라든가 각종 제작 자료 데이터가 망라된 DVD 서플 등에 비하면 아카이브 용도로는 다소 빈약한 인상이긴 합니다. 다만 1988년 개봉판의 엔딩 크레딧을 넣어준 것이 개인적으론 상당히 의미 있고 기쁜 서비스라 생각되는 정도.
- 영상 퀄리티
아키라의 UBD는, 현존하는 북미 상영판 필름 중 가장 상태가 좋은 35mm 포지티브 롤에서 4K 스캔 & 4K 리마스터하여 제작되었습니다. 과거 09년 발매된 BD판(이하 '구판 BD')은 기존 필름을 새 필름에 전사한 뒤 HD 텔레시네 과정을 거쳐 제작되었는데, UBD판은 다시 기존 필름에서 스캔한 뒤 복원을 포함한 리마스터 처리한 것이 차이점. 더불어 이번 UBD 패키지에 동봉된 BD(이하 '신판 BD') 역시 UBD화를 위해 작성된 마스터를 FHD 다운 컨버트하여 수록했습니다.
: 해상감
일단 UBD와 구판 BD를 비교할 때 가장 쉽게 눈에 띄는 것은, 1. 암부의 밝기가 다소 밝게 조정되었고 + 명부는 훨씬 많이 확장되어 결과적으로 전체적인 화면 다이나믹스는 향상되었다는 것. 2. 여기에 스캔 및 마스터링 해상도 역시 개선되면서, 구판 BD보다 확실히 더 눈에 잘 띄는 암부 디테일 + 전반적으로 크건작건 개선된 해상감을 맛볼 수 있습니다.
(* 다만 이 암부의 밝기가 신판 BD에도 동일하게 올라갔기 때문에, 신판 BD는 화면 다이나믹스 면만 따지면 구판 BD에 비해 좀 손해를 보기도 했습니다. BD 명부의 최대 휘도는 예나 지금이나 최대 100니트 한도 내에서 기준을 잡고 작업하기 때문.)
그 결과 카네다 패거리의 아지트인 술집 하루키야 입구 계단에 버려진 캔이라든가 쓰레기 같은 자그마한 오브젝트도 보다 선명하게 다가오는 것은 물론, 창문 안에 비치는 책상의 그림자까지 그려넣었던 당시의 열성마저 UBD에서 보다 선명하게 드러나는 편입니다. 폭발 신 등에서 한 장 한 장 수작업으로 그려 넣은 유리 파편이라든가, 도망치는 인물들의 표정 및 복장 선 등등... 이런 것들 하나하나가 특히 대화면 감상 시에 보다 선명하게 살아나는 것은 UBD 해상력의 강점.
: HDR
HDR면에선, 최대 휘도 1000니트 & 평균 휘도 369니트라는 적당한 스펙의 HDR10 그레이딩 덕에 OLED 등 상대적 저휘도 디스플레이에서도 심한 맵핑이나 클리핑 없이 재생할 수 있다는 것이 우선 큰 강점. 덕분에 이 UBD가 가진 전반적인 '쨍한 느낌'과 확실하게 확장된 명암폭 역시 좀 손쉽게 재현할 수 있는 편입니다.
특히 아키라 UBD는 그레인 처리면에서 되도록 그레인을 지우지 않으면서 정갈하게 남기는 기조를 택한 것으로 보이며, 신 별로 화질 편차가 제법 있는 부분들(신마다 필름 열화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도 평준화 보정을 하지 않고 신별로 마스터링 처리했습니다. 여기에 HDR 덕에 보다 확장된 명부까지 겹치면서 결과적으로 그레인감 자체는 구판 BD보다도 더 선명하게 와닿긴 하지만 + 노이즈화 되어 지저분해진 그레인(색을 먹어 지글거리는 느낌까지 드는)만 별달리 눈에 띄지 않게 잘 지우면서 적당히 자연스러운 필름 감각을 유지하고 있는 게 강점.
: 광색역
색역면에선 주로 적황색 계통이 진하고 선열하게 발색하도록 처리되어 있으며, 이 처리가 작품 자체가 가진 강렬한 이미지들을 보다 잘 살려주는 편입니다. 특히 초반 바이크 질주신의 화려한 네온 사인이라든가 오토바이 라이트 같은 부분들이, HDR 처리로 확장된 명부와 이 진하고 선열한 감의 광색역이 겹치면서 마치 싱싱한 필름을 보는 듯한 감을 주는 것이 가장 큰 강점.
이게 UBD 패키지 내 신판 BD의 직접 촬영 샷이고...(약간 상이 삐딱한 건 사진기 각도를 잘못 맞춰서^^;)
이건 UBD의 해당 신 직접 촬영 샷. 비록 프로젝터 투사 촬영이고 UBD 쪽은 플레이어 톤 맵핑까지 걸린 상태라서 명암 재현폭이 온전하지 못하지만, 발색 경향의 차이는 대략 이런 수준입니다.
이것도 UBD의 재생 직촬샷으로, BD에 비해 더 진한 황색의 진한 발색감이나 더 쨍한 광빨을 느끼기 좋은 신 중 하나. 물론 구작 셀 애니메이션의 색 재현성은 a. 당시 제작 시 사용한 도색 방식이나 b. 필름 전사 후의 실제 상영감을 감안하면 > '제작 및 상영 상황을 그대로 재현'한다는 면에선 오히려 UBD가 좀 과장되기 십상이지만, 아무튼 이 UBD는 오토모 씨가 직접 감수하면서 OK를 한 것이니까 적어도 오토모 씨가 내고 싶었던 광빨과 컬러라고 할 수 있기는 합니다.
: 기타 영상 관련 트리비아
트리비아 A. ...영국판 아키라 구판 BD(아래 스샷은 컬렉터즈 에디션)는, 좀 특이하게도 액자식 화면비(상하좌우 블랙바)인데 다른 판본보다 상하좌우 화면 정보량은 오히려 더 많습니다. 영국 발매사인 Manga 엔터테인먼트가 09년 BD화 스캔 데이터(트리밍 처리 전의 DPX 데이터)를 직접 받아서 재처리를 했기 때문인데, 이번 UBD화 스캔 마스터에 비해서도 여전히 정보량이 더 많더군요.
이게 일본판 UBD 패키지 내 신판 BD의 스크린 샷이고...
이게 영국판 컬렉터즈 에디션의 동일 장면 스크린 샷. 차량 우측의 오브젝트/ 가로등대 상단의 오브젝트를 잘 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주 큰 차이는 아니고 액자식 화면비의 단점도 있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이런 게 있다는 눈 요깃거리. 다만 아래 적는 프레임 오류 문제는 중요합니다.
트리비아 B. ...2009년 최초 발매된 일본판부터 가장 최근에 발매된 정발판까지 전 세계의 어떤 판본이건 아키라의 '구판 BD'에는 1시간 29분 7초에 프레임 오류가 있습니다. 현상에 대한 설명은 아래 링크 게시글 참조.
이 오류는 DVD 및 그 이전의 매체에선 나오지 않았던 것이고 오직 구판 BD에만 있는 오류인데, 결론부터 말하면 이번 UBD와 UBD 동봉 신판 BD에선 이 오류가 없습니다. 이는 BD화 텔레씨네 과정에서 필름 열화 포인트 수정을 하면서 해당 프레임의 이전 프레임으로 복구하여 일어난 현상으로 알려져 있는데, 당시엔 이게 실수인지 어쩔 수 없는 처리였는지 애매하게 덮고 넘어갔지만 > UBD에선 아예 재 스캔 재 마스터링 처리하면서 확실하게 수정해 놨습니다.
- 음성 퀄리티
아키라의 사운드는 매체가 바뀔 때마다 영상 이상으로 성의를 들여 수록되었고, UBD 발매 전까지 그 최고봉은 09년 BD화를 위해 제작된 24비트/192kHz 스펙의 돌비트루HD 5.1ch (일본어)음성입니다. 그 골자는 서플 항목에서 소개한 야마시로구미가 '하이퍼 소닉 프로젝트'란 명칭 하에, 작중 쓰인 효과음 등 이른바 생활 사운드를 새로 녹음하여 덧붙이고 + 전체 사운드를 24/48 스펙으로 디지털 마스터화 한 뒤 > 주파수 대역별로 업 컨버트하여 24/192로 만들어낸 것.
그리고 UBD에 와서는 이 일련의 프로세스가 '하이퍼 소닉 페가서스'란 명칭으로 레벨 업했는데, (자세한 기술적인 설명은 북클릿이나 서플 다큐에서도 언급되며)요약하면 09년 당시엔 BG/ SE/ 대사 등을 구분짓지 않고 동일 주파수 대역대에선 동일한 업 컨버트 알고리즘을 걸었다면 > UBD화 작업시엔 BG/ SE/ 대사를 우선 분리하고 해당 오브젝트 별로 따로 대역 레벨을 올리든지 컷하든지 하는 식으로 보다 세밀하게 작업했다는 것입니다.
일단 UBD(및 동일한 데이터를 수록한 신판 BD)의 실제 체감 사운드를 평하라면, 구판 BD에 비해 주로 '강렬함' 면에서 분명 파워 업한 것은 맞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서라운드 음장이 보다 넓게 펼쳐지면서 음 자체가 공간 구석구석 선명하게 침투하는 느낌. 이 역시 초반의 바이크 질주신부터 쉽게 확인 가능한데, 주행음이라든가 바닥에 깔린 폭주족의 팔이 바이크 바퀴에 깔려 부서지는 효과음 등등 모두 보다 선열합니다.
이와 같이 임장감과 디테일이 모두 크건 작건 좀 더 살아나면서 음의 잔향도 보다 깊게 퍼지며 울리는 인상이라, 이를 잘 빠져들 수 있을만큼 재생할 수 있으면 마치 미디어와 현실의 경계가 없어지는 듯한 경험을 맛볼 수도 있습니다. 구판 BD의 사운드도 S/N 자체는 엇비슷하게 우수하고 다이나믹스 감은 오히려 더 좋은 감이 들지만, 공간을 더 자연스러우면서도 선명하게 채운다는 점에선 UBD/신판 BD 사운드가 더 인상적입니다. 때문에 실제 감상 시에도 몰입감이 좀 더 좋은 편.
문제는... 우선 새로 녹음하고 디지털 업 컨버트한 부분들 덕에 소리가 너무 생생해지면서 도리어 화질이 크게 개선되지 않은 일부 신들과 괴리감이 있다는 정도. 실제로 여러 효과음과 배음, 잔향을 새로 섞어 재창조했다보니 몇몇 부분에선 그냥 리마스터가 아니라 리메이크 수준입니다. 하기는 과거 DVD를 위한 DD/DTS 사운드를 만들면서 믹싱 변경 및 추가한 부분 > BD의 돌비 트루HD 사운드를 만들면서 다시 변경 및 추가한 부분 등이 계속 쌓여 왔으니, 이젠 본래 이 작품의 최초 발매 미디어(LD 기준) 당시 갖고 있었던 음을 '그대로 듣는다'는 감각과는 많이 멀어졌다 싶기도 하네요. 좋게 말하면 진화고, 나쁘게 말하면 (리마스터 수준을 살짝 넘어간)변형인 셈.
다음으로 이보다 더 중대한 문제는, 이번 아키라 UBD와 동 패키지 내 신판 BD에 수록된 최고 퀄리티 사운드 스펙은 스펙을 뜯어 확인한 결과 16비트/192kHz 입니다. 당연히 평균 비트레이트도 24/192 돌비 트루HD 5.1ch보다 더 낮습니다.(구판 24/192는 평균 14.34Mbps, 신판 16/192는 평균 9.5Mbps) 발매 전 보도 자료는 물론 표지에도 분명 비트샘플링 스펙 24/192로 적혀 있는데 실제로는 아니라서 상당히 이상한 상황인데, 이 건에 대해선 발매사 등에 클레임을 제기해 둘 생각이라 답변이 오면 따로 게재해 보겠습니다.
- 첨언
서문에도 이미 언급했지만 아키라는 시대의 주류 물리 매체로 모두 나왔고, 해당 기점에 가장 우수한 기술력으로 수록하고자 했던 작품입니다. 덕분에 저도 돈 꽤나 들였지만, 마침내 종착점(으로 거의 95% 확정된 바)인 UBD까지 왔고요.
'드디어 시대가 따라왔다'는 이 작품, 이런 말을 사이드 라벨에 당당히 써서 남길 수 있는 물리 매체를 내놓는다는 건 (비록 그 주체가 일본이긴 해도)물리 매체를 사랑하는 이로선 꽤 부러운 일입니다. 그러니까 대략... 우리나라에서 '2020 우주의 원더키디' UBD 같은 걸 내놓을 환경이 되었다면 우리도 이런 문구를 쓸 수 있었을라는지? 물론 유튜브에 전편 공개된 원더키디가 접근성 면에선 더 좋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때로는 어떤 낭비에 가까운 고급스러움도 추구하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런 식의 낭만과는 거리가 멀기도 하지요.
그런 면에선 마치 이 화려한 네온사인처럼, 일본이 아키라라는 작품에 들여 온 정성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말그대로 매체가 바뀔 때마다 나왔고, 그때마다 새로운 게 시도되었습니다. 덩달아 서양에서도 크게 뒤지지 않을 정도로 다채로운 물리 매체가 속속 발매되었으며, 마침내 최고이자 최신이며 최후일 것으로 보이는 물리 매체인 UBD까지 오고 말았네요.
하지만 그와 동시에, 어쩌면 이제 일본은 아키라 같은 과거의 영광과 유산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다는 이면 역시 비추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리얼리티를 추구한 애니메이션- 하지만 단순히 실사를 쏙 빼닮게 그리는 것에 치중한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현실 세계를 그대로 애니메이션화 하여 재현한다는 목표를 가진 이 작품. 하지만 이만한 파급력을 가진 작품은 일본의 버블 붕괴와 함께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상태입니다. 마치 열리지 않은 채로 중단 되어 버린 네오 도쿄의 2020년 올림픽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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