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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알쓸신잡 영월편에 나온 파리 이야기

사과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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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7-11-06 08:25:23

지난 주에 방송한 알쓸신잡 영월편에서 유현준 씨가 파리의 도시계획에 대해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대략 요약 하자면 "오스만이라는 사람이 파리를 재건축 했는데 방사형의 현재 구조는 반란이 있을 경우 쉽게 제압하기 위한 것이 기본 목적이다. 말하자면 개선문 위에 대포 하나만 올려 두어도 사방에서 오는 적을 쉽게 제압할 수 있다."

이 부분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더군요. 병법이니 이런 걸 공부하지 않아도 방어의 기본은 적에게 내 등을 내어주지 않는 것 아닙니까.  요새니 성이니 방어를 위한 구조물들은 거의 모든 경우 뒤에 산이나 절벽을 끼고 앞에도 해자를 파고 성벽을 쌓아서 적이 공략할 수 있는 지점을 줄이고 나의 화력을 집중할 수 있게 만듭니다. 그런데 뻥 뚫린 벌판 한 가운데서 사방에서 오는 적을 상대한다? 거기다 개활지 한 가운데 있는 병력에 대한 보급은 어떻게 하고?

이런 의문을 가지고 구글을 좀 뒤져봤습니다만, 오스만의 도시계획의 기본철학이 반란군으로부터 방어라는 부분은 찾을 수 없더군요. 위키를 비롯한 제가 찾은 페이지의 설명들은 모두 위생, 범죄, 교통 등의 이유로 도시를 재정비 한 것이라 나와 있습니다. 물론 제가 건축에는 전혀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haussman, paris, renovation, city, design 이런 검색어만으로 찾아 본 것이라 찾지 못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만, 반란군으로부터 방어가 기본목적이라면 그 정도 검색에서도 걸려나올 만 하다고 보거든요. 혹시 역사나 건축에 조예가 있으신 분들이 답글로 보충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검색 중 알게 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20세기 중반에 개발된 파리의 부도심을 la Défense 라고 하더군요. Défense를 구글번역에 넣으니 영어로 defense 로 나오고 그 뜻은 "방어"죠. 그래서 혹시 그 이름을 가지고 한 말장난 같은건가 생각했습니다만, 말장난이라면 그렇다고 해야 보는 사람이 헷갈리지 않겠죠. 그리고 라데팡스는 20세기에 개발한 지역이라 반란군에 대한 방어 이런 것과는 관계가 없다고 봐야겠죠.

알쓸신잡 시즌2 안동편 이후 유현준씨에 대한 얘기가 조금 나온건 알고 있습니다만, 그 전에 이 사람에 대해 전혀 몰랐습니다. 그런데 기대를 가지고 본 안동편에서도 약간 앞뒤가 안 맞거나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부분이 몇 가지 있었습니다.

- 기와지붕과 처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구조물은 기본적으로 기둥을 비로부터 보호하고 빨리 마르게 하기 위한 설계를 하기 때문에 덥고 습한 남쪽지방으로 갈수록 처마가 올라가 곡선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 논리대로라면 우리나라보다 덥고 습한 일본은 처마의 곡선이 우리보다 심해야 하겠죠. 그런데 한, 중, 일을 살펴 보면 중국-한국-일본 순으로 처마가 직선에 가까워집니다. 제가 아는 일본의 기와집들은 처마가 거의 모두 직선이었습니다. 그에 반해 중국쪽은 대부분 휨이 큰 곡선이구요. 그래서 저는 기와지붕 처마의 곡선은 실용성 보다 심미적인 부분이 더 크며 동남아의 곡선 처마는 중국의 영향이지 않나 생각합니다.

- 아파트 방에 거실 쪽으로 창문을 내면 전체공간이 트이게 되어 더 넓은 느낌으로 쓸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뒷부분에서 도산서원 얘기를 하면서 일부러 공간을 가려서 전체 공간이 더 넓은 느낌을 가지게 한다고 하길래 음? 어떤게 맞는거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외에도 자질구레한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대표적으로 이 정도 생각이 나는군요. 다른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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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오징어외계인
Updated at 2017-11-05 21:44:50

제가 전에 보고 들은 기억으로는 예전에는 좁은 길에 바리케이트 치고 버티면 뚫기가 힘들어서 좁은 길은 다 없애버리고 대로를 뚫었다고 합니다. 근거는 찾아봐야 겠네요. 여행갈 때 찾아봤던 것이라서요. 프랑스 분이 계시면 쉽게 해결될 의문이네요. ㅎㅎ

WR
사과상자
Updated at 2017-11-05 21:55:27

위키피디아의 haussmann renovatoin 항목에도 비슷한 얘기가 짤막하게 나오는데요, 파리의 중심부는 불만과 봉기가 자주 발생했는데 어떤 동네 좁은 골목에서 보도블럭을 쌓아놓고 저항하다 진압됐다 하는 대목이 있더군요. 그런데 그건 말씀하신대로 좁은 골목을 넓게 밀어서 해결할 일이고 방사형의 도시구조를 만드는 것과는 별 상관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도 뻥 뚫린 곳에서 적과 대치하는 것이 아닌 통로를 봉쇄하고 화력을 집중시키는 방어의 기본이 나오죠.

진실의힘
2017-11-05 22:20:02

파리 재정비가 프랑스 혁명이후 나폴레옹 3세에 의해 시행된거니, 거기에 대해서 뭔가 들은게 있을지도 모르죠..

버디홀리
2017-11-05 22:47:09

반란군이 대포까지 끌고 다니는 경우가 드무니 건물 피해 안주고 공포감을 중앙대포로 유발할 수 있죠. 나폴레옹1세가 건물이야 무너지던 말던 왕당파들 대포로 때려잡은 일이 있었거든요

니힐중년
2017-11-05 22:57:39

나폴레옹 3세 시절 오스망 남작이 도시를 정비하기 이전의 파리는 바리케이드 천국이었죠. 대혁명 이후 유명한 파리 코뮨을 비롯해 파리 시민들이 바리케이드를 쌓고 권력에 저항한 역사는 유구합니다. 레 미제라블만 봐도..  싹 밀어버리고 싶었을 거예요 ^^

columbo
2017-11-05 23:10:42

라데팡스의 이름이 방어에서 온 것은 맞구요. 개발이 1960년대 이후에 이루어진 것도 맞지만 그 지역을 라데팡스로 부른 것은 훨씬 전이었어요. 그 지역에 있는 승전 기념물 이름이 라데팡스드파리였고 그 동네를 그냥 라데팡스라고 불었을 겁니다. 그 이름에 맞게 새로운 초대형 개선문도 다시 만들었구요. 저도 파리 갔을 때 들은 이야기라 정확하진 않아요.

WR
사과상자
2
2017-11-05 23:13:25

조금 덧붙이자면 윗분들이 말씀하셨듯이 이러저러한 일이 있어 도시계획에 있어 반란진압이 어느정도 고려할 요소가 되었을 수는 있겠으나, 방송을 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유현준 씨의 얘기는 그게 가장 중요한 이유이고 모든 설계가 그걸 고려해서 이루어졌다는 식으로 단정적으로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저의 의심은 더 증폭되었구요. 오스마의 도시 재정비에 대한 대부분의 설명은 반란진압이 주목적이 아니라 더럽고 어둡고 좁은 도시를 정비함으로써 시민들의 삶을 개선하고 불만을 줄이는게 도시계획의 주목적이었다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賣香人
2
Updated at 2017-11-06 03:08:34

처마 곡선은 알쓸신잡 이야기가 맞을 겁니다.

처마를 길게 빼지만 들어올리는 것은 나무 기둥을 비에 젖지 않게 하고 햇빛이 들어오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은, 건축쪽에서는 널리 알려진 합의된 상식 같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일본이 곡선처리를 하지 않고 직선으로 하거나 처마가 높이 들리지 않는 것은, 일본의 강우 패턴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여름 장마철에 폭우가 쏟아지고, 봄 가뭄, 겨울 가뭄이 있는 데,

일본은 연중 강우량이 분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여름에 비로 기둥 썩을 우려가 덜한 것으로 압니다. 

 

https://namu.wiki/w/%EC%B2%98%EB%A7%88

 

"일본 처마의 특징으로는 단청 등의 장식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는 일본의 기후가 중국, 한국과 크게 다르다 못해 서구권처럼 1년 내내 강수량이 고르고, 호쿠리쿠 지방이나 홋카이도처럼 아예 겨울에 강수량이 집중되는 지역도 많으므로 처마로 일조량을 조절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WR
사과상자
2
Updated at 2017-11-05 23:52:32

링크의 글은 중국과 한국의 차이는 심미적인 요소, 일본은 일조량을 고려할 필요가 없는 기후, 이렇게 정리가 되는군요. 그런데 일본이 굉장히 긴 나라라서 기후가 똑같지 않을텐데 지역적 차이가 있는지 궁금하네요.

賣香人
1
Updated at 2017-11-05 23:30:28

다른 분의 글로는... 김동욱 교수가 쓴 '한국건축, 중국건축, 일본건축'이라는 책에서 [처마의 득과 실]이라는 챕터가 있습니다. 거기 글을 몇페이지 인용하자면 이렇습니다. 

처마는 본래 중국에서 시작되어 한국, 일본, 베트남에 퍼져나간 건축기법이고, 햇볕과 강우량에 맞추어 지붕을 들어올린 것이 맞으며, 다만 15세기 이후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처마 건축과 유지에 돈이 많이 든다고 보고 처마를 포기하기 시작했지만, 한국은 옛 기법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건축 중국건축 일본건축 - 김동욱 경기대 건축학과 교수


처마곡선의 득과 실


"한국 건축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 어디인지를 묻는다면 대부분 아름다운 처마 곡선을 꼽지 않을까 한다. 과연 조선시대 궁궐이나 깊은 산중의 불교 사찰에 가서 건물을 바라다볼 때 처마 곡선은 유달리 정감이 가고 친숙해 보이고 또 주변 산세와도 잘 어울린다. 한옥이 많이 모여있는 서울 가회동의 북촌마을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담장 너머로 보이는 휘어진 처마의 곡선이 아닌가 싶다. 처마에 곡선을 주는 것은 서양 건축에서는 보기 어려운 동아시아 건축의 특징이며 그중에도 우리나라가 유독 처마 곡선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그러나 처마 곡선은 단지 예찬만 하고 넘어갈 것은 아닌 듯하다.


처마에 곡선을 만드는 일은 각별한 노력이 요구된다. 지붕은 긴 서까래가 아래로 경사져 내려가게 되는 데, 이 경사진 서까래만 가지고는 처마가 너무 낮아 보이기도 하고 볕도 잘 들지 않게 된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나타난 것이 서까래 위에 또 하나의 짧은 서까래를 올려놓는 것인데 이를 부연이라고 부른다. 뜬 서까래 라는 뜻이다. 부연과 구분하기 위해서 본래의 서까래를 처마서까래라고 한다. 처마 곡선은 처마 서까래와 부연이 양 끝으로 가면서 위로 상승하는 유연한 곡선을 만들면서 이루어진다. 서까래가 위로 상승하는 곡선을 만드는 데 가장 결정적인 부재가 평고대이다. 평고대는 서까래 끝에 높는 가늘고 긴 수평재인 데, 이 평고대를 적당히 위게 해서 양 끝이 하늘로 향하는 듯한 곡선을 만들고 서까래들은 평고대에 고정해 가면서 처마의 전체 곡선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처마에 곡선을 주는 것은 먼 고대부터 중국 건축에서 시작되었다. 이것이 점차 주변으로 확산되어 한국, 일본, 그리고 베트남의 건축에 퍼졌다. 주변 나라로 처마 곡선을 만드는 방식이 확산되면서 각 나라의 집짓는 사정에 따라 기술적인 변화도 나오고 형태도 조금씩 달라졌다. 무엇보다 처마 곡선의 원조라고 할 중국에서 변화가 일찍 나타났다고 짐작된다. 그러나 실상은 잘 파악되지 않는다. 목조건물에서 지붕은 거의 150년 정도가 지나면 전면적으로 자재를 교체하고 기와도 새로 잇게 된다. 따라서 먼 과거의 지붕 방식이 현재까지 온전히 남아있는 곳은 있을 수 없다. 아무리 오래된 것이라 해도 1,000년 이상의 기법을 그대로 간직한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 따라서 중국에서도 먼 과거의 처마 곡선이 과연 어떤 모습이었고 그것이 어떤 변화를 거쳤는지를 정확하게 말하기는 불가능하다.

처마 곡선은 각 지역의 풍토나 강우량 같은 자연 요소에도 영향을 받지만, 건물의 용도나 건축주의 사회적 신분에 따라서도 많은 차이를 나타낸다. 중국같은 광대한 대륙에서는 화북 지방의 처마 곡선과 화남의 그것이 완연히 다른 모습이다. 강우량이 적고 사람들의 기질이 검소하며 강인한 화북은 곡선이 강하지 않고 양 끝에서만 살짝 처마가 솟아오르는 정도를 선호한 듯하다. 반면에 비가 많고 온화한 기후에 화사함을 선호하는 장강 이남에서는 하늘로 치켜 올라갈 듯한 날카롭게 상승하는 곡선을 좋아한 듯하다. 물론 모든 건물이 그런 것은 아니고 대개 종교시설이나 사당 같은 건물들이 이런 곡선을 보인다. 대체로 명, 청대 건물의 처마는 양 끝에 가서만 곡선을 살리는 경향이 뚜렷하다.


일본은 13세기 전후 가마쿠라 시대까지는 중국이나 우리나라와 유사한 방식을 취했다고 추정된다. 또 13-14세기에 중국에서 선종이 도입되면서 지붕 전체에 완만한 곡선을 만들고 지붕 전체에 완만한 곡선을 만들고 서까래 전체를 부챗살처럼 펴는 방식도 나타났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일부에 한정되었다. 그러다가 15세기경 이후에 가서는 전혀 다른 길을 갔다. 일본의 지붕은 하네기라는 경사재를 지붕 속에 설치해서 지붕 하중을 받도록 했고, 그 결과 서까래를 거의 외부 치장용에 그쳤다.

물론 일본 건축의 지붕도 곡선 처마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서 우리의 평고대에 해당하는 기오이, 부연평고대에 해당하는 가야오이를 두고 이들이 곡선 결정에 기여하도록 한다. 그러나 지붕의 형태를 결정짓는 데는 이들 수평재 외에 다른 요소들이 더 작용했다. 15세기 이후 일본 건축은 선자연을 설치하지 않고, 추녀 쪽도 중앙부처럼 서까래를 평행하게 배열했기 때문에 처마의 느낌이 달랐다. 또 처마도 양끝에 가서만 겨우 곡선을 만드는 간편한 방식을 따랐다.


결국 조금 거칠게 표현하자면, 동아시아 건축의 처마 곡선은 중국이나 일본이 후대에 가서 시공상의 간편함을 채택하면서 처마 본래의 아름다움을 포기한 대신, 우리나라 건축이 이를 고수한 측면이 있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 장인들은 힘들게 평고대의 곡선을 만드느라 애쓰고 선자연을 유지하는 데 많은 공력을 들였다.

우리나라에서 처마 곡선에 큰 의미를 부여해왔다는 사실은 일반 살림집까지 지붕 처마에 곡선을 살렸다는 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궁궐이나 종교 시설이라면 모를까 살림집 지붕까지 곡선을 살린다는 것은 경제성으로 보아서 좀 지나쳤다고 생각된다. 물론 중국에서도 큰 부호의 살림집에서는 대문에 날카로운 곡선 처마를 두었다. 그러나 대다수 도시 지역의 주택에서 처마 곡선을 살리는 경우는 많지 않았다. 더군다나 도시중하류 계층 주택이라면 곡선과는 거리가 멀었다.

일본의 경우에는 이미 15-16세기 무사들의 주택인 쇼인즈쿠리에 곡선 처마는 잘 보이지 않는다. 도시 서민이나 농가는 말할 것도 없다. 이에 비해 조선시대 하회마을이나 양동마을의 기와집들은 멋들어진 곡선을 유지했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살림집에까지 처마 곡선을 살리려고 한 자세가 극단적으로 나타난 것이 서울 가회동 북촌마을의 집들이다. 북촌마을 주책은 대개 1930년대에 서울의 주택이 부족해지자 큰 집터를 잘게 쪼개서 여러 집으로 팔 목적으로 지은 소위 집 장사 집들이다. 따라서 이런 집은 비좁은 대지에 집을 최대한 압축시켜 방을 여럿 만들고 구조도 전통방식을 대충 흉내내면서 간략하게 처리해서 지었다. 그런데 이런 열악한 집에서 특별히 눈에 띄게 돋보이도록 한 부분이 지붕 처마이다. 처마는 집 규모에 비해 과다하게 곡선을 이루었고 거기다 함석 차양까지 덧달아서 한층 휘어오르는 느낌을 강하게 했다. 비록 도시의 비좁은 집이지만 처마만은 그럴듯하게 꾸며서 구매자들의 선호도를 높이려는 목적이 엿보이는 모습이다. 북촌마을 한옥의 지붕 처마는 조금 과장된 측면이 있지만, 이것이 일반인들에게 한국 건축의 처마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는 데 크게 기여했다고 생각된다.


한옥 건축의 처마 곡선은 확실히 이웃한 나라들의 처마보다 멋이 있다. 그런데 세상일은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이 있는 법이어서 이런 멋진 처마를 유지하는 데 적지않은 수고가 따랐다. 제일 큰 문제는 건축이란 시대 흐름에 발맞추어 끊임없이 변화해 나가는 것인 데, 그 부분에서 뒤처진 점이다. 집 짓는 과정에서 경제성이 큰 비중을 차지해나가는 흐름 속에서 한국 건축이 처마 곡선을 유지하느라 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한국의 처마 곡선을 단지 아름답다고만 말하고 있을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WR
사과상자
2017-11-05 23:22:59

잘 읽었습니다. 글에 따르면 한국의 처마는 심미적인 요소가 크고 처마를 가진 건축양식 중 특이한 경우라고 할 수 있겠군요.

賣香人
1
Updated at 2017-11-05 23:45:56

저 김동욱 교수의 글을 읽으면서 저는 전에 본 TV다큐가 생각났었는데,  

중국 동북 3성에 가면, 지붕 모양만으로 한족 집인지 조선족 집인지 바로 구별할 수 있는 데, 

조선족들은 요즘 집에도 지붕에 처마를 만든다고 합니다. 중국 한족들 집 지붕은 직선인데, 조선족 집은 지붕 곡선을 꺾어놓았기 때문에 집주인이 누군지 바로 알 수 있다고 하더군요. 

처마를 고수하는 한국인의 뿌리깊은 고전복고 경향이랄까 정체성이랄까... ^^;;;;

 

혹시 처마에 대해서 관심이 있으시다면,

유럽국가들의 지붕 각도에 대해서도 검색해보시면 재미있는 걸 보실 수 있습니다.

북유럽으로 갈 수록 지붕 경사도가 달라집니다. 눈이 많이 쌓일 때 지붕이 뾰족하면 눈의 자체 무게에 의해 밀려 내려오지만, 지붕이 평평하면 눈이 쌓여서 지붕이 내려앉거든요. 그래서 북유럽쪽으로 갈 수록 지붕각도가 뾰족하고 높습니다. (그 결과 다락방이 있는 집이 많습니다. ^^a)

처마 길이도 북유럽과 남유럽이 다를 겁니다. 


오케바리
1
2017-11-06 01:30:41

제가 이 자료를 중국에 직접가서 찍어온게 있는데 동북삼성이라고 하면 너무 막연하고 동북삼성쪽에서도 백두산쪽이나 연길쪽으로 가면 이 현상이 확실히 두드려지고 랴오녕성 심양쪽으로 백두산이나 연길쪽과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우리말이 옅어지면서 집의 구조도 중국식으로 가깝습니다. 백두산이나 연길쪽으로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조선말이 강해지고 집의 구조도 한국의 기와집이나 절에서 볼수 있는 정면의 좌우측의 처마가 꺽이면서 내려오는 우리식의 지붕 구조를 볼수 있습니다. 중국에서 저 집에 조선사람이 사는지 한족사람이 사는지 알수 있는 방법이 저 집의 구조가 100% 정확하긴 한데 그래도 의심스러우면 마당을 보면 된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마당에 소나 돼지가 있으면 조선사람 마당에 말이나 양이 있으면 한족사람 마당에 닭이 많으면 조선사람 마당에 오리가 많으면 한족사람 두만강이나 압록강에서 가는 방향의 반대로 앉아서 노를 저으면 조선사람 가는 방향으로 서서 노를 저으면 한족사람 이게 아무것도 아닌데도 피는 못속이는건지 사람이 살아왔던 환경이 변했는데도 예전 방식을 보고 배워서 그런건지 중국에 섞여 살아도 삶의 방식은 절대 안바꾸며 사는게 정말 신기하기도 했고 민족의 문화라는게 참 안바뀌는구나 라는것도 느낄수 있구요! 심양이나 동북삼성에서도 북쪽으로 갈수록 백두산과 멀어질수록 중국사람과 비슷하게 사는데도 아직도 조선족들은 우리는 현대문명으로 모두 잊어버리며 사는 단오니 칠월칙석이니 동지니 하는 명절을 한국의 우리보다 더 지키면서 살고 있는 모습에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 지금 조선족들이 한국에서 칼부림 하며 산다고 모든 조선의 정체성을 깡그리 잊고 사는게 아니거든요! 요즘 영화에서 보는 그런 조선즉들의 모습과 안산 가리봉 대림의 모습으로 지금의 조선족을 다 설명하기엔 부족함이 많다는게 제가 직접 중국의 조선족 마을에 가서 느꼈던 감정이기도 합니다.

inaba
1
2017-11-06 00:05:24

처마곡선은 확실히 동남아쪽에 가면 절정을 이룰정도로 확연하긴 하더군요. 경주갔을때 첨 들었는데 우리의 처마곡선이 더 큰원을 그릴수있어서 더 우수하다라는 말을 듣고 그 어린나이에 실소를 했던 기억이 있네요.

2017-11-06 00:17:21 (95.*.*.121)

 조금 찾아보니, 오스만이 파리 재정비를 한 진짜 목적이 무엇이냐라는 비판에서 자주 등장하는 항목이네요. 단순히 위생, 교통 등의 이유 만이 아니라 반란이나 봉기를 진압하기 위한 거 아니냐는 의심이 계속 있어왔고 오스만 스스로도 인정했다라고 나오네요. 좁은 골목길이 많으면 바리케이트를 치고 소요하기 쉽기 때문에 대로를 뚫었다 뭐 이런 내용들이 나오네요. 왜 방사형이어야 했는지는 잘 안 나오고요.

WR
사과상자
1
2017-11-06 00:44:40

위에도 적었지만 그게 고려요소일 수 있다는 건 동의합니다. 그런데 모든 설계가 진압이라는 목적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설명은 지나치게 단정적인게 아닌가 하는 것이 의문이었죠.

소상
1
2017-11-06 00:22:00

처마는 제가 배운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교과서에도 중국,한국,일본 순서로 곡선의 경사가 심하다고 나와있었습니다. 예시 사진이 중국의 자금성,한국의 경복궁, 일본은 기억 안나는데, 자금성의 처마는 직선, 경복궁은 처마가 살짝만 올라가 있고, 일본의 성은 휙 올라가 있더군요. 그런 예시를 보자면 저 말이 틀리진 않은거 같은데요.

自由魂
3
2017-11-06 00:26:30

데이비드 하비의 ‘파리, 모더니티’ 등에 나오는 얘기입니다. 일반적으로 군사적 방어가 아닌 좁은 골목의 바리케이트 농성 진압을 고려한 것입니다. 레미제라블 소설과 영화에 잘 묘사돼있죠.

란닝구 선생
2
2017-11-06 00:54:26

나무 위키에서 검색해 보니 유현준 씨의 건축에 대한 얘기 들에 논란이 좀 있군요...

링크 달아드립니다. 참고해서 보세요. 사과상자 님이 언급한 파리 도시계획도 나와 있네요..

https://namu.wiki/w/%EC%9C%A0%ED%98%84%EC%A4%80(%EA%B1%B4%EC%B6%95%EA%B0%80)#s-3.1

 

alfred
3
2017-11-06 01:10:54

거기 나오는 분들이 각자 자기의 생각을 얘기하는거지 뭐 진리를 말하는건 아니니까요. 예시를 든 근거의 팩트가 잘못됐다거나 하면 문제가 되겠지만 의견 정도는 괜찮다고 봅니다. 알쓸신잡이 꼰대 모음이 아닌건 이러한 유연성에서 오는거거든요. 거기에서 이건 꼭 맞어 하고 의견 고집하는 사람 없습니다. 합리적이고 논리적 근거가 있다면 그럴수도 있구나하는거지요 마지막으로 방송에 나오는 부분은 그분들이 이야기한 것의 극히 일부분일 겁니다. 거의 촬영 시간 내내 끊이지 않고 떠들텐데 그걸 매우 압축적으로 전달하지 않습니까? 방송에 나온 단편적인 부분만을 보고 판단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 trisam
2017-11-06 01:38:04

봉기 방어를 위해 열두개의 대로 중심에 개선문이 위치하게 했다는 것은 정설이 될수는 없겠죠.

봉기한 민중들이 개선문으로 몰려서 자살할 이유가 없거든요. 서쪽인 라데팡스 지역에서 파리 구시가쪽으로 몰려드는 군중을 방어할수는 있겠지만, 파리 중심이나 동쪽, 북쪽, 남쪽의 군중들이 거기를 뭐하러 가겠어요.

 

그런 용도라면 콩코드, 그랑팔레쪽에 포탑을 하나 올리는게 훨 효율적이겠죠. 개선문은 사통팔달의 요지이긴 하지만, 그만큼 우회로가 많다는 의미도 됩니다. 방어포대가 개선문에 주둔하고 있는 동안, 조금만 우회하면 개선문을 피해서 어디라도 갈수 있다는 말이죠.

 

그리고... 12통을 방어하기 위해서라면 포를 배치할 개선문 옥상은 너무 좁습니다.

 

다만... 도심을 리모델링할때 그런 의도를 잠시 고려했을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혹은 방어용이 아니라, 진압군 투입을 위한 요새로서의 활용을 고려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해보이네요.

2017-11-06 01:54:18 (223.*.*.65)

방송이라서 그런건지 모든걸 제대로 말하지 않는 부분이 강합니다 특히 유시민씨는 역사 쪽이 아니다보니 야사나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방송에 내보내고 있죠

그리푸스
1
2017-11-06 02:07:19

오스만이 그런 용도로 파리를 재건축한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파리의 현재 모습이 반란 진압에 더 유리한 게 맞다고 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적군에게 공격받을 곳을 줄이고 아군의 화력을 집중하는 형태의 방어는

적군과 아군이 비슷한 세력이거나 아군이 더 열세일 때에 의미가 있습니다.

반란 같은 경우는, 대개 반란군이 수적으로 열세이고 화력도 훨씬 약한 경우가 태반입니다.

그래서 화력이 강하고 다수의 병력을 가진 진압군이 쉽게 전장으로 이동할 수 있게 도로를 넓게 뚫고,

침투와 도주가 쉬운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최소화해서

반란군이 게릴라전을 하기 어렵게 하는게 훨씬 더 낫습니다.

 

kinoguy
1
2017-11-06 02:16:19

 어차피 유시민씨 역사관련 이야기도 작가들이 사실관계 고증해보면 틀린 부분이 많이 때문에 편집본에서 많이 잘라 낸다고 하더라구요. 그나마 방송본에 나온 이야기들은 작가들의 조사에 의해 어느정도 사실관계가 확인된 부분만 나간다는...다른 분들 이야기도 마찬가지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데이빗소로우
2
2017-11-06 03:09:27

처마는 햇빛 경사각을 적용한게 맞는데 유교수가 기둥 말리기 위해서 라고 한게 잘못된 겁니다. 처마의 용도는 여러가지인데 그냥 한가지 이유가 다 인것 처럼 막 던진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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