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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아버지를 아주 싫어하는데 저에게 과거를 추억할 자격이 있을까요?

바티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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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85
2026-04-19 00:53:39

저희 아버지는 경남 고성출신으로 전후 베이비붐 세대이십니다.

어려운 시절이었던지라 저희 아버지도 억척스럽게 살아오셨습니다.

90년대 중반~00년대 초반까지 잘 나가셨던것 같은데 그 이후로는

그 이후로는 집안이 계속 내리막길입니다.

성공에 대한 강한 열망이 있으셨고 가족을 위해 부단히

애쓰셨음을 알고 있습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싫어합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성공만을 좇다 사상누각을 

세우셨던것 같습니다.

 

지금은 아버지를 싫어하지만 어렸을때는 아버지를 정말 무서워했습니다.

뉴스에 나올정도로 학대 당하거나 그러지는 않았지만 많이 맞고

자랐습니다. 집안 청소 안했다고 맞고 게임한다고 맞고 공부하라고

독서실에 가둬놨는데 불시점검?중 pc방에 있었다고 맞고 그랬습니다.

가둬놨다고 표현했는데 아버지께서 독서실 관리자에게 저를 감시하고

없어지면 자신에게 연락하라는게 기억이 납니다.

 

언젠가 밤에 죽도(竹刀)로 아버지에게 맞고 있었는데 팔꿈치가

잘못 맞았는지 계속 부어올라 곧바로 응급실로 갔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왜 이렇게 되었냐고 저에게 물었는데 아버지가

계단에서 굴러 넘어졌다고 대신 대답했고 저는 무서워서 입을

다물수밖에 없었습니다. 응급조치를 받고 새벽에 잠들었는데

이불속에서 소리내지 않고 울었습니다. 집에서는 위압적이고

당당한 아버지가 밖에서는 거짓말을 하는 모습이 너무 미웠습니다.

아버지가 도어락을 여는 소리, 발자국 소리, 아버지와

비슷한 풍체를 가진 사람을 보면 심장박동이 빨리지고 몸이

굳어지는 증상이 있었습니다.

 

어렸을때부터 봐왔던 아버지의 모습은 윗사람에게는

깍듯하지만 가족, 자신보다 사회적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 

무례하게 행동하는 갑작스레 성공한 졸부의 느낌이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목적을 위해서라면 거짓말도 서슴없이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자신, 가족을 위해서 신호도 지키지 않고

과속하는 모습을 많이 봐 왔습니다. 나중에 가세가 기울고

나서 차도 겨우겨우 굴리셨는데 과격운전하는건 변하지가

않더군요.

지금은 차를 유지하실 상황이 아니라 대중교통을 이용하십니다.

 

금전관계도 문제가 많으셨는지 감옥에도 여러번 다녀오셨습니다.

어머니 명의로 돈을 빌리고, 차량등록을 하다 한계에 부딪히자,

저에게도 돈을 빌려달라, 대출을 받아달라 요구하셨습니다.

어렸을때부터 찍소리도 못하고 눌려살아서 거절할수가 없었습니다.

저의 20대를 제 명의로 등록된 아버지 빚 갚느라 보냈던것 같습니다.

30대 초반 언젠가 제가 빚을 갚지 못해서 법원에서 약식재판을

받았습니다. 아버지라는 올가미 얽혀있는 현실에 분노했고

악착같이 빚을 갚았습니다. 그때 이후로는 아버지와 돈얘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5형제인데 자식들 누구도 아버지를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장녀인 누나는 아버지와 크게 싸우고 고2때 집을 나갔습니다.

성남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차녀인 여동생도 아버지와 크게 싸우고 2년전 집을 나갔습니다.

여동생이 아버지처럼 어머니과 4,5번째 동생들에게 함부로

행동하는 모습에 크게 싸웠습니다. 나간뒤로 얼굴도 안봤고

연락도 안합니다.

저는 작년 8월, 회사 근처로 집을 구해 혼자 살고 있습니다.

나오기 직전 아버지와 크게 싸웠습니다. 집안사정이 여의치

않은데 감옥에서 나오신지 1년이 넘었는데 무슨일을 하는지

모르겠다. 가족을 부양하라는게 아니라, 같이 살아가기 위해

최소한의 생활비를 보태어라 얘기했습니다만 변명만 하실뿐

이야기 하기를 회피하십니다. 계속 있다간 서로 얼굴만 붉힐것 같아

말도 안하고 집을 나왔습니다. 

4,5,번째 동생은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막내 동생들과

막역한 사이는 아니지만 먼저 집을 나와 미안한 마음일 뿐입니다. 

독립하여 혼자살게 된지 약 8개월이 넘었습니다. 

많지 않은 월급으로 빠듯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제 아버지의 치부만을 이야기 하였는데 아버지 나름대로 

가족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셨습니다. 어렸을때 제주도,

일본으로 가족여행도 가고 중학생때는 저와 누나를 

유럽으로 1달 패키지 여행도 보내주셨습니다.

제발 공부좀 하라고 비싼 학원에도 등록해 주셨구요.

다만, 이 모든게 가족간 소통의 결과가 아닌

아버지가 바라신 일방적인 결정이었습니다.

 

저는 제 아버지가 성공을 위해 부단히 노력하셨지만

결코 도덕적인, 자식들에게 모범이 되는 아버지는

아니셨다 생각합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요즘따라 어린시절을 추억하고 있습니다.

9살까지는 부산의 시골마을에서 살아서 언제나 친구들과

산을 타며 계곡을 드나들며 놀았습니다.

서울에서 초등학교 3학년~6학년까지 좋은 선생님을 만난것은

저에게 큰 행운이었습니다. 그때 꾀병을 부려 학교를 조퇴하고

한동안 오락실에 빠져 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않아 꾀병을

부린것이 적발되어 선생님께 크게 혼났었는데 그때의 인성교육이

저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고학년때 

담임선생님들의 지도가 있었기에 올바르게 살아가자라는

가치관이 생겼던것 같습니다. 

15살까지는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공차고 pc방에서 게임하며

즐겁게 보냈습니다. 

걱정없이 뛰놀던 그시절이 그립습니다.

어렸을때 살던 곳이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저에게 과거를 추억 할 자격이 있나 싶습니다.

 

저의 행복했던 어린시절 기억은 

제가 싫어하는 아버지의 떳떳하지 않은 희생위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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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drymoon
2
2026-04-18 16:02:17

위로 드립니다.

행복하시기 바라겠습니다.

 

저의 가족도 아버지와 연을 끊고 살고 있습니다.

샤아
1
2026-04-18 16:16:31

그냥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대체로 그분들 세대는 전부는 아닐지라도 생각하는 사고방식도 일부 다른점이

있다는것을 인정해야겠습니다.

그리고 그분도 늙고 힘이빠지면 자신의 판단을 반드시 후회하실겁니다

자식들이 부모에게 무심한분들 주변에 간혹 보는대 대체로 본문글 쓰신분과

어느정도 비슷한면이 있는분들입니다.

MAGI
1
2026-04-18 16:23:39

누군가를 잘 위로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라 다른 말은 아끼겠습니다. 힘들게 지나왔을 길을 바르게 보려고 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한 자격이 있으시고요.  그리고 앞으로도 삶에 대한 바른 자세와 더 크게 나아갈 용기를 가지고 더 쑥쑥 나가실수 있을 것 같습니다. 행복하시길 바라겠습니다

사라모해
1
2026-04-18 16:27:29

많이 힘든 시절을 보내셨군요. 

전 아버지와 어렸을 때 대화를 거의 안하고 살았고(바깥일 밖에 모름) 화를 많이 내셨지만 폭력은 다행히 없었습니다. 

밥상이 날라 다니는 건 .. 너무 자주 봐서 밥먹을때가 가장 긴장 되는 시간 이었습니다. (어렸을 때 집안 분위기 아주 암울하고 사춘기때. 다시 안보고 살고 싶다고 다짐도 여러번 했죠)

매일 매일 식사 시간은 악몽이었네요. 

 

그나마 다행인건 교육열은 남들보다 더 강했기에 ..고등학교 이후는 외지 생활을 해서 .. 나이 들면서 싫어했던 감정도 무뎌지고 아버지가 나이 드시고 약해 지는게 보일 때쯤에는 연민이 생기더군요. 

지금은 약간 치매기운도 있고 거동도 불편하지만 .. 가끔 전화해서 보고 싶다고 합니다. 제가 먼저 하는 경우는 많지 않고(엄니랑은 자주 하죠) 아부지는 먼저 걸어서 예전엔 절대 못할 대화도 자주 하고 잘지내려고 합니다. 

 

저랑 차이는 폭력의 유뮤 인거 같아서 많이 안타깝습니다. 그게 더 저보다 힘들꺼라 생각이 들고요. 

억지로 관계가 회복 되거나 그렇지는 않겠지만 .. 떨어져 살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용서하는 부분도 있으리라 봅니다. 저도 고등학교 때부터 다른 지역으로 유학 가지 않았다면 끔찍 해서 관계 회복이 안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세월 흘러. 아버지도. 그 상황이 어려운 상황이었고(지금 저보다 어린) 애들은 많고 동생도 많고 ..일은 힘드니 화가 많았지 않나 생각 합니다. 

그래도 폭력. 도박. 술. 여자 문제 없었던게 다행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지만 당시는 아주 힘들었고 탈출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 했었네요. 

 

저와 비슷한 어린시절(강도는 다르지만)을 겪으신거 같아서 힘 내시라고 적어 봤습니다. 

인공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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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6-04-18 17:00:29

경북 대구 근처 하양(?)이 고향인 아버지.

작년 2월에 돌아가셨는데, 그 동안 프차에 올라 온 아버지 상들에 비하면 인격적으로 좋으셨던 분이었어요.

38년생. 그 나이대에 맞지 않게 집안일 설거지 등도 잘 하시고.

 

말년에 치매가 찾아 온,

백수 시절 둘이 같이 산 2년간,

정신적으로 너무 타격이 커서

치매 노인이 된 아버지 한테 하지 말아야 할 욕도 무지 많이 하고 그랬네요.

삼시 세끼 차리고 각종 약 때 맞춰 먹게 하고.

 

딸  먼저 보내고 아내, 그리고 당신 순서로

세상을 뜨고.

그때 그때 고통스러웠던 기억들도 세월 따라 엷어져 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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