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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연극 인형의 집, Part 2 후기

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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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19-04-14 16:0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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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일자 : 2019/4/13 엘지아트센터

더블캐스팅 : 서이숙,박호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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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릭 입센의 고전 희곡 [인형의 집]의 다음 이야기를 전개시키는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인형의 집]은 인류 최초의 페미니즘 희곡으로 기록에 남은 명작이다. 온실의 화초처럼 지내 온 19세기 가정 주부인 노라가 남편과 가정 불화를 겪다가 집을 휙 나가버리는 파격적인 결말 때문에 노라의 이후 행보를 각자의 기준에서 상상해보고 추측해 볼 수는 있겠다. 워낙에 논란이 분분했던 열린 결말이었기 때문에 1879년 발표 이후 100년이 넘도록 논쟁이 분분했고 이후의 여성주의 작품들에 강력한 영향을 끼친 마무리라서 뒷 이야기를 떠올려 보기도 쉽다. 그렇지만 이걸 구체화시켜 작품으로 내놓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굳이 [인형의 집]의 속편을 구성할 필요가 있을까? 19세기의 노르웨이 중산층 가정 주부인 노라가 살림과 육아, 내조 밖에 모르고 살다가 충동적으로 집을 나가 버린 뒤에 과연 뭘 하고 지냈을까. 당시의 시대상과 여성 인권을 고려했을 때 부정적인 미래 밖에는 안 보인다. 둘 중 하나 아닌가. 상처입은 자존심으로 가출해서 쫄쫄 굶며 가난에 시달리다 창녀가 됐거나 가지고 있는 돈 탈탈 털어 어디 여관 같은데서 한 두달 기거하다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여성 인권이 바닥인 그 시절 밥순이가 집 나가 봤자 할 수 있는게 뭐가 있었을까.

 

[인형의 집]에서 핵심은 노라가 집을 나가기까지의 심리 상태와 변화 과정, 자아 회복을 통한 여성의 선택과 결정에 있다. 남성 중심의 보수적인 19세기 중반의 문학계에서 평범한 중산층 전업주부가 남편과 말다툼 끝에 자아를 찾겠다며 집을 나가는 행위 그 자체만으로 여성 문제를 진일보한 시각에서 접근한 것이다. 어린 자녀 셋을 내팽개치고 집을 나가는 노라의 무책임한 행동과 도덕성의 결여를 따지기 전에 행동하는 여성의 모습을 주류 문화에 대두시켰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컸다.

 

19세기 기준으로 앞날이 뻔히 내다보이는 가출한 노라의 행방은 굳이 그려낼 필요가 없었다. 노라가 집 나가서 뭘 해먹고 살건 [인형의 집]이란 작품에선 중요하지 않다. 노라가 집을 나가기까지의 과정과 결정에서 의미를 세우는 작품이고 이것만으로도 논쟁을 야기시킬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굳이 고전 뒤집기의 고질병으로 후속편을 구성하는건 [인형의 집]의 주제에선 부질없는 짓이요, 쓸데없는 도발이고 작품을 근시안적으로 바라본 무의미한 제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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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자가 염두해 두지도 않은 속편을 후대의 다른 작가들이 멋대로 부풀려서 원작자의 의사와 무관한 비공식 속편이 자행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동화 뒤집기의 궁색한 발상만큼이나 일회성 흥미 정도를 유도할 뿐인 무모한 도전 의식이라고 본다. 명작은 명작으로, 고전은 고전으로 두었으면 좋겠는데 고전에 사로잡힌 문필들의 헌정이 깃든 욕망으로 진지한 팬픽은 부지런히 개발되고 있고 그 결과물은 보는 이를 당황시키기 일수다.

 

원작자와 무관한데다 오늘의 시각이 가미된 고전의 속편 개발은 결국에는 동어반복이나 사족에 그칠 뿐이다. 이번에 연극 [인형의 집, Part 2]를 접하면서 예전에 떠들석하게 나왔다가 금세 잊혀졌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속편 [스칼렛]이 떠올랐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떠난 레트를 되찾겠다며 내일을 희망하는 스칼렛의 결말에 아쉬움이 남는다고 괜히 [스칼렛]같은 속편을 만들어 놔서 원작의 여운만 찢어놨다. 최근 미국 연극계에서 주목 받는 극작가 루카스 네이스의 야심작인 [인형의 집, Part 2]도 [스칼렛]같은 비공식 속편과 다를게 없는 속편 야망으로 원작의 정서를 위태롭게 계승하고 있다.

 

루카스 네이스의 [인형의 집, Part 2]는 쓸데없이 개발되는 고전의 비공식 속편들에서 흔히 나타나는 동어반복과 사족의 문제를 암담하게 가지고 있는 재능 낭비의 결과이다. 이런 류의 기획은 의욕과 달리 책 뒷면에 붙어 있는 확대 해석한 작품 분석, 장황한 해설서에 그칠 때가 많아서 꺼리는 편이지만 국내에 들여온 라이센스의 외양이 무시할 수 없는 구성이라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박용호는 해븐이 망하고 나서도 여기저기 옮겨 다니며 기획자로서의 뚝심을 보여주고 있다. 박용호가 가지고 온 브로드웨이 최신 신작에 평단의 호평, 2017년 토니상, 드라마데스크 어워드 등 후보 실적도 좋다. 신뢰로 쌓인 엘지아트센터 기획 연극에 요즘은 연극계에서 보기 쉽지 않은 서이숙, 박호산 등이 무대로 복귀했다고 하니 비공식 고전 후속편이라는 불안한 요소에도 도저히 안 볼 수가 없었다. 작품보다는 엘지아트센터의 안목과 배우 구성에 의지하여 관람을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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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인형의 집, Part 2]는 각종 시상식의 주요 부문 후보에 오르며 두각을 보였고 2018년 미국에서 가장 많이 공연된 희곡으로 기록된 최신 화제작이다. 박용호의 남다른 안목과 이력이 없었다면 브로드웨이 초연 2년만에 라이센스로 보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인형의 집]에서 집을 나간 노라의 삶을 긍정적으로 예상하긴 쉽지 않은 일이다. 그 당시 시대상이나 바닥 난 여성 인권을 떠올렸을 때 비극적으로 짚어내게 된다. 루카스 네이스는 과연 집 나간 노라의 삶이 흔히들 예상하는 것처럼 비극적이기만 했을까, 란 물음에서 [인형의 집, Part 2]를 시작했다. 모두가 예라고 했을 때 생기게 되는 반발심, 청개구리 심보로 [인형의 집, Part 2]의 구성이 발동된 것이다. 결과는 그저 장황할 뿐이다. 15년간 사회물 먹은 노라는 자리합리화로 무장한 사이비 교주같이 입만 살았다. 대화할 줄 모르는 노라의 열변은 답답할 뿐이다.

 

루카스 네이스가 구성한 비공식 [인형의 집, Part 2]의 구성은 집 나간 노라가 15년만에 토르발트의 집으로 돌아오는 것에서 시작된다. 모두의 예상과 달리 사회적으로 성공한 노라의 당당한 풍모는 현대의 시각이 가미된 비공식 속편만이 보여줄 수 있는 상상의 결과로 귀엽고도 도발적인 구석이 있다. 그러나 초반 15분을 지나면 도저히 참아줄 수 없는 괴물의 본능을 보이고 만다.

 

남편과 어린 자녀 셋을 버리고 떠난 노라는 몸을 팔지 않고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 삯바느질 밖에 없었다. 독립 수단으로 삯바느질 일을 하며 모은 돈으로 초라한 집을 장만했고 이후 필명으로 가출 경험을 쓴 자전적 소설이 성공하면서 혼자서도 잘 먹고 잘 살게 된다. 노라는 15년간 사회물을 먹으면서 연애도 했다. 아쉬울 것 없는 환경에서 자유로운 생활을 하던 그녀가 15년만에 토르발트의 집을 찾은 것은 알고보니 법적으로는 아직 토르발트와 혼인 상태였기 때문이다.

 

필명으로 작가 활동을 하며 여성운동가로 명성을 얻고 있는 그녀가 기혼 상태라는 것이 들통나면 그때까지 쌓은 그녀의 명예와 부가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다. 노라는 아직 정리되지 못한 토르발트와의 혼인 관계를 법적으로도 완전히 끝내기 위해 15년만에 으로 돌아와서 15년 전 토르발트와 나누었던 말다툼을 반복한다. 그러다 15년 전과 비슷한 방식으로 주체성을 회복하고는 사회운동가로서, 여성운동가로서 대단한 결의를 띈 채 다시 집 밖으로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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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호평을 받은 작품이고 라이센스 자체로는 안정적인 구성이다. 번역도 매끄럽고 자연스럽게 라이센스로 흡수했다. 믿고 보는 배우들의 배역 밀착감도 훌륭하다. [인형의 집, Part 2]의 내부로 봤을 때는 걸리는게 없는 구성력이고 기획력이다. 무대 구성도 뛰어나다. 조명의 활용과 실내에서만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선의 구간 등 군더더기 없이 진행된다.   

 

[인형의 집]의 속편으로 봤을 때는 걸리는게 많다. 집 나간 노라의 모습에서 끌을 내는 [인형의 집]은 속편의 여지를 남기긴 하지만 속편의 가능성을 염두해둔건 아니라서 속편이 나온다면 그때부턴 주저리주저리 늘어 놓는 사족으로 전락하게 될 작품이다. [인형의 집]의 열린 결말에 의지하여 루카스 네이스가 만들어낸 [인형의 집, Part 2]는 우려한대로 사족에서 시작해 사족으로 끝을 내는 일회성 도발의 비공식 속편에 지나지 않는다.

 

집 나갔다가 15년만에 돌아온 노라에게는 면죄부를 주기 어렵다. 헨릭 입센이 구성한 15년 전 집을 나가기까지의 모습에선 이해되는 측면이 있고 최초의 페미니즘 희곡이란 점에서 의미와 상징성을 부여할 수 있다. 그렇지만 노라의 결정이 상당히 충동적이고 무책임했다는 점에서 집을 나갔을 때 이야기를 마무리를 짓는게 맞았다. 집을 나간 노라의 모습은 가볍게 상상할 수는 있지만 구태여 다룰 필요까진 없다.

 

15년만에 돌아온 [인형의 집, Part 2]의 노라는 극 시작부터 끝까지 밉상 짓만 떨다가 퇴장한다. 그녀가 15년 전에 어린 자녀 셋을 버리고 떠난 바람에 토르발트를 비롯하여 주변 사람들은 상처를 입었고 힘든 삶을 보냈다. 오로지 자기 자신만 중시하여 자아 회복을 하겠다며 싸질러 놓은 상황들은 방치한 채 결코 만회할 수 없는 죄를 저지르고도 노라는 반성하는 기색도 없고 자기합리화로 똘똘 뭉쳐 있어서 보기가 역겹다. 필명으로 활약하는 성공한 작가 활동도 절대 운이 아닌 자기의 능력에 의해 인정 받은 것이라고 착각하는 자기애의 모습에선 작가의 의도가 원작 모독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다.

 

쉬는 시간 없이 90분간 노라를 중심으로 쉴틈없이 이어지는 대화의 구성 속에서 자신감 넘치는 노라의 당당한 태도는 후반부로 갈수록 비굴하고 구질구질해진다. 노라는 장마다 대화 상대를 바꿔가며 자기 변호만 열심히 해댈 뿐 상대방의 의견은 귀담아 들으려고도 안 하며 자기 대신 육아를 책임진 유모나 엄마 없이 자란 아이들에 대한 미안함도 보이지 않는다. 주변에 닥친 상황은 다 그들의 팔자요, 운명이고 자기 자신한테만 관대하다. 도발 그 자체로 지지 받을 수 있었던 시절에 보였던 결정과 신념에서 전혀 나아가지 못한 노라의 모습은 미성숙하다.

 

사회적인 시선으로 서류상의 이혼을 마무리 짓기 위해 15년만에 뻔뻔하게 돌아온 노라의 두번째 결정은 마지못해 서류상으로도 이혼해주겠다는 토르발트의 배려를 받아들이지 않고 기혼 상태로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깨부수겠다는 것이다. 그녀는 이혼하지 않고 또 다시 느닷없는 주체성 회복에 취해서는 다시 집을 나간다. 15년 전에는 주체성 회복을 위해 집을 나갔다면 15년 후에는 사회적으로 손가락질 하고 누가 봐도 도덕적으로 문제가 되는 방종도 여성의 자아 회복 하나로 포장시켜 합리화로 일과하려는 자유부인으로의 선언이다. 세뇌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서류상 이혼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판사에게 약점 잡혀서는 작가로서 쌓은 명예와 부가 하루아침에 날라갈 처지에 있는 상태에서 이혼을 안 하겠다? 첫번째 집을 나갔을 때는 운좋게 상황이 맞아 떨어져 굶지 않고 독립할 수 있었다. 두번째 집안 대문을 열고 나갈 때 과연 노라에게는 첫번째 집을 나갔을 때와 같은 운이 뒤따를까? 배를 쫄쫄 굶어 봐야 각성을 하려나? 사회운동가, 여성운동가로서 폭넓게 활동할 것을 암시하고 떠나는 노라의 뒷모습에서 각종 이권과 이익, 기금 마련을 위해 극악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이중적인 여성 단체가 떠올랐다. 15년만에 비공식적으로 돌아온 연극 [인형의 집, Part 2]의 노라는 특정 단체의 곳간을 채우기 위해 비밀리에 교묘한 방법으로 지시하고 지휘하는 괴물같은 수장의 모습이 되고 말았다.  

 

 - 공지된 상연 시간은 100분이나 실 상연 시간은 90분이다.

 

 - 10쪽 분량의 무료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유료 프로그램은 판매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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