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세종과 한글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들.
대한민국 사람들에게 시기를 정하지 않고 고대부터 근현대까지 통털어서 가장 존경하는
위인이 누구냐고물어보면 가장 압도적으로 등장하는 1위와 2위가 있습니다.
바로 세종대왕과 충무공이신데요 어느때는 근소하게 또 어느때는 차이가 많게
항상 변함없는 1위는 세종대왕 이시죠.
유신시절 박통이 충무공을 가장 존경한다는 이유로 전국 곳곳에 충무공 동상을 세우고
충무공의 위업을 기렸던 그 시절에도 1위는 변함없이 세종대왕 이셨습니다.
왜 세종대왕을 충무공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존경을 하는걸까 생각해보면
바로 훈민정음 창제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더 자세하게 말하면 훈민정음을 창제하신 이유때문이라고 봅니다.
훈민정음을 왜 창제했을까....뭐..우린 다 알고 있잖아요.....
세종의 일화를 살펴보면 요즘 말로 표현해서 [부지런하고 똑똑한 상사] 정도로 봐야할것 같습니다..
요즘 보스나 상사들의 중요한 덕목으로는 [똑똑하지만 게으른 사람] 이라지요....?
부하직원보다 30분 늦게 출근하고 30분 빨리 퇴근하는게 중요한 덕목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세종에게는 씨알도 안맥히는 이야기라는거죠.
그 당시 농업에 대한 기술서적이 없어서 농업기술서적의 편찬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세종은
몇몇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농사에 관한 전국의 달인들에게 농사기술에 대해 노하우를
뽑아라고 지시합니다. 그래서 신하들이 당장 전국의 농사 달인들을 도성으로 불러올리겠다고
대답을 합니다.
그러자 세종이 이렇게 말합니다.
..아니..왜?
..달인들에게 농사기술을 물어보라면서요?
..그런데?
..물어볼려면 일단 오라고 불러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니까 왜 오라고 해야되느냐고? 그 사람들도 농사하느라 바쁠텐데...
..그러면.....?
..뭐가 그러면이야.? 니들이 직접 가야지....
..전국을...요?
..제주도도 빼지마라....분명히 말했다..내가....
아무리 사소한 지시라도 나중에 지시사항이 어떻게 됐는지 꼭 확인을 하는 상사가 있지요....
세종이 그런 스타일이었다고 합니다.
출장가는 직원에게 덧붙이는 말도 항상 잊지 않았다고 합니다.
....가는김에 농사에 관해서 설문도 조사해오고...내일 아침 경연은 참가하고 출발해....
[훈민정음] 창제에 대해서 저를 포함한 많운 분들이 훈민정음은 세종과 집현전 학사들이
같이 만들었다고 배워왔고 그렇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훈민정음]은 세종대왕 혼자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게 정설이라고 하는군요.
정말 놀랍지 않은가요?
사람이 문자를 만든다는거 말입니다. 그것도 혼자서 . 그것도 완벽한. 그것도 몇년만에.
세종이 혼자서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 증거는 차고 넘치는데 집현전 학사들과 같이 만들었다는
증거는 한개도 없다고 합니다.
어느날 갑자기 세종이 의정부에게 조정일을 대신 살피라면서 정무에 대해 손을 뗀적이 있었고
훗날 문종이 되는 세자더러 그 정무에 대한 결재를 대신해라고 지시를 내렸다고 합니다.
아픈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노느걸 좋아하는 성격도 아닌데 말입니다.
그러니까 건강하던 세종이 어느날 갑자기 나랏일을 살피지 못할만큼 해야할 일이 생겼다는건데
그게 뭐겠습니까?
결국 몇년뒤에 세종은 집현전의 젊은 8학사를 부릅니다.
그리고 책을 한권 던져줍니다.
...뭡니까?
...응..훈민정음 베타버전 1.0 일세.
...그런데요?
...그걸 지금부터 니네들이 직접 해보고 버그가 있는지 난이도가 높은지 알아내고
다 알아냈으면 공략집도 한권 같이 만들어오도록...
그날 이후. 2년 7개월동안 집현전의 8학사들은 열심히 베타테스터로서의 임무에 충실하게 됩니다.
...전하 그동안 베타테스트 결과 고칠것도 없고 그 누구나 쉽게 사용가능하리라 봅니다.
지금 즉시 오픈테스트를 해도 절대 문제가 없겠습니다. 그리고 이게 공략집입니다....
라고 보고를 하게 됩니다.
이렇게 훈민정음 해례본이 탄생하게 되는거죠.
아마 이런 일때문에 집현전 학사들과 세종의 공동창제로 알려진게 아닌가 싶습니다.
오픈테스트 하던날.
세종은 대전에서 많은 신하들에게 내가 이런걸 만들었으니 보고 품평을 해주게.....
라고 신하들에게 의견을 구합니다.
최만리를 비롯한 여러 대신들이 극구 반대를 합니다.
아버지같은 나라 중국이 가만 있겠느냐....
우리에게는 더 이상 완벽할 수 없는 한자가 있다....
한자가 있는데 다른 글을 만들고 사용한다는건 오랑캐나 하는 짓이다...등등
많은 발언을 하는데 짜증이 난 세종은 그중 하나를 날립니다. [유 파이어 고백홈]
....아니..품평을 해라고 해서 한것뿐인데...이러시면 ....
....품평을 해라고 했지 악플을 달라고 했냐? ㄲㅈ
결국 한사람이 쓸쓸히 뒤돌아서서 대전을 나가는 그 이후로 누구하나 반대를 하지 못했고
드디어 세종28년인 1446년 10월 9일 한글이 프리웨어 신분으로 세상에 반포되기에 이릅니다.
[창제일은 세종 25년인 1443년 1월 15일 이고, 남한은 반포일 북한은 창제일을 기념일로 합니다]
이렇게 훈민정음은 1446년 10월 9일날 온 조선땅에 반포되어 언문 1.0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집니다.
그후 약 4백년뒤 1894년. 4백여년동안 언문1.0 이라는 이름으로 천대받아오던 훈민정음은
갑오개혁때 국문, 나랏글로 공식으로 인정, 지정되었으며 명칭또한 국문, 조선글, 그리고
비로소 정음 이라는 이름을 찾게됩니다. 언문 1.0 에서 정음 2.0이 된것이죠.
1894년에 나랏말로 지정이 되었고 그 이듬해 최초로 한글 가로쓰기가 탄생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전에 1880년에 리델이라는 프랑스 사람이 한불 사전을 만들면서 먼저 가로쓰기를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수백년 관습이었던 세로쓰기를 여전히 쓰고있었습니다.
1896년 드디어 후세의 수많은 수험생들을 고민하게 만들어버린 띄어쓰기가 시작됩니다.
바로 독립신문에서 말입니다. 이로써 아버지가 가방에 들어가는 일은 더이상 없게 됩니다.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십니다]
1897년 주시경 선생께서 한글 가로쓰기 사용을 정식으로 주창하게 됩니다.
그리고 1910년 드디어 주시경 선생에 의해 하나밖에 없는글, 큰 글 이라는 뜻을 가진
순 우리말 한글이란 이름을 갖게됩니다
훈민정음 1.0 에서부터 시작해 약 600년이 지나서 자랑스런 이름 한글이 탄생한겁니다.
일본은 이 한글을 무시하고 없애려는 시도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한글 창제 원리는 어느 달맑은밤 세종이 창 문쌀을 보고 거기에서 힌트를 얻어 만들었다고
말도 안되는 개소리를 늘어놓지만 한글학자들은 반박할 만한 사료나 자료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1940년 안동에서 어떤 사람이 [옛날책 한권 팝니다. 택포 천원. 네고없음. 직거래 희망]
라고 책 한권을 판다고 소문을 냈습니다.
그 당시 경성 한복판 기와집 한채가 1000원 하는 시절이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청담동 빌라한채, 양재 은마아파트 한채 정도 되는 그런 가격일테지요.
그러자 전형필 이란 사람이 가서 그 책을 보니 이건 그냥 천원짜리 물건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이 책은 도저히 천원주고 살 물건이 아닙니다...하면서 11000원을 주고 사게 됩니다. 청담동 빌라 열한채.
그게 바로 집현전 8학사들이 2년 7개월간 베타테스트 하면서 만들었던 공략집 훈민정음 해례본이었고
그 책을 11,000원을 주고산 전형필 이란 사람이 바로 간송미술관을 만든 간송 본인이었습니다.
간송은 6.25때 본인이 수집한 수많은 유물들은 다른사람에게 맡겼지만, 이 해례본 만큼은
본인이 직접 들고 피난을 갔다고 합니다. 잘때도 베게밑에 두고 잤다고 하죠.
그렇게 해례본이 발견되므로써 일본의 개소리를 한번에 발라버릴수 있었습니다.
지금 일본 오사카 궁성 수장고에 이 해례본 진본이 한권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학자들이 한번만 보자고 그렇게 애타게 부탁하고 사정해도 일본은 부인하고 있습니다.
이 지구상에 사람들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언어가 약 6000가지가 된다고 합니다.
그 언어를 표현할 수 있는 문자가 또 약 200여가지가 된다고 하구요..
그 200가지 문자중에서 문자의 근원, 만든이유, 만들어진 날자, 만든사람 등 6화원칙에 대해
알려진 문자는 단 하나.....한글뿐입니다.
각 나라의 문자마다 장단점이 있겠지만 한글만의 장점을 말해본다면..
글자 한개당 단 하나의 발음만 존재하는 유일한 문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글자 한개당 하나의 발음만 존재한다면 수많은 각종 소리나 말들을 문자로 구현하기가
어렵지 않느냐 라는 말을 듣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한글은 기본자음 5개의 닿소리(혀가 어디에 닿아서 생기는 음]와 기본 모음 3개의
홀소리(혀가 아무데도 닿지않고 그냥 목구멍 울림만으로 나는 소리) 로 이루어져 있고
나머지 자음과 모음은 기본자음과 기본모음에서 파생된 자음과 모음이지요.
그래서 이 자음과 모음 을 다 합친 글자수는 28개가 됩니다.
이 28개의 글자를 조합해서 만들수 있는 글자는 약 11172개가 된다고 합니다.
물론 말도 안되는 이상한 조합으로 이루어진 글자 말고 정식문법에 맞는 글자수가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약 2500개 정도의 글자만 사용하고 있다고 하죠.
우리는 이 2500개의 글자만으로도 세상의 모든 소리와 말을 최대한 그 발음에 맞게
문자로 구현할수 있다는 겁니다.
그게 바로 세종께서 꿈꾸어 오셨던 우리나라 백성들이 배우기를 희망하셨던
바른소리 였습니다.
바로 정음 인것이죠. 너무 눈물겹지 않습니까?
비근한 예로 가장 널리 알려진 한중일 문자 비교 방법인데요
한중일 사람들에게 맥도널드 햄버거를 글자로 적어보라고 하면 다 적습니다.
하지만 그 글자를 읽어보라고 하면 맥도널드 햄버거 라고 읽혀지지 않습니다.
다들 알잖아요 일본어 아시는분들 일본어로 맥도널드 햄버거를 적어서 읽어보면
마그도나르도 함바가 라고 읽어진다는걸 말입니다.
우리는 그냥 맥도널드 햄버거 라고 쓰고 역시 그냥 맥도널드 햄버거 라고 읽어주기만 하면 됩니다.
다만 한자와 가나가 한글에 비해 배우기 까다로울 뿐이고 표현의 방법이 다르다 뿐이지
어떤게 더 낫네 못하네 라고 나눌사항은 아니라고 봅니다.
문자는 각기 그 나라의 고유문화와 정서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죠.
영어권 사람들에게 한중일 문자를 가르쳐주게되면 여실히 배우기 쉬운 문자가
어떤건지 드러나게 됩니다.
생각해보세요 한자를 서양사람들에게 어떤식으로 설명을 해줄수 있을까요?
日, 一, 逸, 壹, 鎰, 溢, 佾, 馹, 佚.........
일 이라는 글자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글자수가 많습니다. 약 35개가 되는군요.
그런데 이 글자들의 용처가 다 다릅니다. 표의문자의 가장 큰 불편함이 아닐까 하는 부분이죠.
일본은 가나와 한자를 같이 가르쳐야 하는데 한자를 가르치기 전에 가나의 원리부터
어떻게 설명을 할건지가 어려운 부분이겠지요.
알파벳은 유구한 세월을 거쳐 완성된 인류대표 문자지요.
한글과 비슷한 부분도 있지만 가장 큰 다른점은 한글은 조합형 글자인데 알파벳은 나열형이라는
점입니다. 아무래도 글자는 조합형보다 나열형이 나은 부분도 있습니다.
대신 글자마다 발음이 비슷하거나 혹은 글자하나에 여러 발음이 존재하는 부분이 있어서
불편하다면 불편할수 있는 부분이 있는게 또 알파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가끔 이름이나 주소같은걸 불러줄때 스펠링을 불러주는 그런 장면을 영화나 드라마에서
종종 볼수 있습니다.그런데 한글은 대부분 글자 하나에 발음이 한개뿐이라서 그럴일은 별로 없지요.
다만 내와 네 같은 발음은 한국사람들도 잘 분간하기 어려운 발음인지라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
알게되는 경우라고 봐야죠.
한글도 풀어쓰기를 할수는 있습니다. 알파벳의 경우처럼 말입니다.
ㅎ ㅏ ㄴ ㄱ ㅡ ㄹ ㄷ ㅗ ㅍ ㅜ ㄹ ㅇ ㅓ ㅆ ㅡ ㄱ ㅣ ㄹ ㅡ ㄹ ㅎ ㅏ ㄹ ㅅ ㅜ ㅇ ㅣ ㅆ ㅅ ㅡ ㅂ ㄴ ㅣ ㄷ ㅏ 한국사람만 이 암호같은 글을 읽을수 있을것입니다. 한글도 이처럼 풀어쓰기를 할 수 는 있지만
너무나 불편해서 처음부터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신라시대에 잠깐 만들어서 썼다는 이두가 이런식의 문자가 아니었을까 짐작합니다.
이두가 가나와 비슷한점이 있다고 해서 말입니다.
한글의 장점은 크게 두가지 라고 봅니다.
배우기 쉽다.
웬만하면 모든 소리를 문자로 표현이 가능하다. 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어서 IT 시대가 되었습니다.
놀랍게도 한글은 이 IT세상에서마저 사용하기 쉽고 편하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게 다 세종대왕 덕분입니다.
그분의 백성을 사랑하심이 얼마나 컸는지를 알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항상 존경하는 조상님 1위를 굳건하게 지키고 계신거라고 봅니다.
저 역시 세종대왕께서 혼자 한글을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좀 우스운게 왕께서 혼자 캄캄한 밤 등불아래에서 아~~~에~~~~오~~~~
그러면서 혀놀림을 하셨다는게 상상이 잘 안됩니다.
혀의 모양을 본따서 글을 만들었다면 그 수 많은 밤을 혼자서 위아래로 현란하게
혀놀림을 하셨을 터인데 당뇨를 앓고 계셨던 분이신지라 항상 입이 말랐을터이고
그런데도 아~~~예~~~하고 매일 그랬다면 입이 바싹 말랐을 것입니다.
그래선데 이런 일들은 내관이나 상궁 나인들을 시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이런거죠...
...자 다들 따라서 소리내봐 아~~~~
그렇지 다들 잘하고 있어. 그대로 소리내면서 그 아 소리를 낼때 입안에 있는 혀 모양의 형태가
어떨것이다 라고 생각을 해서 그대로 여기에 그려봐.....
...그리고 너 아~~소리 낼때 이상하게 소리 내지마 눈은 또 왜 감는데....?
뭐 이런식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나이 오십이 넘었거나 곧 넘어갈 양반이 매일 밤마다 혹은 날마다 아~~에~~
혼자서 그러실수 있겠어요.
분명히 숙달된 조교들의 도움이 있었다고 봅니다.
물론 조교들은 왜 밤마다 불려가서 현란하게 혀를 놀려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몰랐을터이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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