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80년대 국민학교 교실..
만약 코로나가 80년대초에 퍼졌다면..
한반 70명에
오전 오후반으로 나뉘어서 등교..
위생관념도 높지 않지 않았던 시기라..
저처럼 달동네 출신들은 줄 초상 났을듯..
오늘 교육부에서 개학시기를 발표 한다니..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문득, 예전 생각이 나네요.. ^ ^;;
당시에는 아파 죽어도 학교에서 아파 죽어야 한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던 시기라서...
누구 한 명 걸리면...줄초상 났었을 듯...
아마 외국처럼 됐을 가능성이 높겠죠..
나라에서 집 밖에 나가지 말라고 하면 말은 잘 들었을지도요...
전구 하나까지 등화관제도 가능했잖아요?
80년 5월 광주에선 아무일 없었다고 정부에서 얘기 했다고 아직까지도 그걸 믿는 바보도 있고...
만약 두환이가 명령을 했다면..
말 잘들어서 그럴 가능성도 높겠네요
등화관제라고 하니 또 옛날 생각나네요 ㅎㅎ
제가 3학년때 전학갔던 학교는 3부제였어요. 오전반 점심반 오후반
저희 학교는 한반 60명 2부제였는데
3부제도 있었군요.. ㄷㄷㄷㄷ
저도 55명 2부제... 형님들
ㅎㅎㅎㅎ
중국에서 온거라 아마도 해외 여행이 힘들었을 당시니까
전세계적으로 크게 유행은 힘들었을지도 모르지만
국내 발생 이였다면 아마 사망자가 많이 발생 했을꺼 같습니다.
여기 저기서 굿판 벌이고 했을지도요.
판데믹은 힘들지만..
국내는 큰 영향받았을거라는 말씀,
제일 합리적인 예상 같습니다 ^ ^
집밖 나오지 마라 시내에 탱크 세웠을수도...
하긴..
전대갈이 그러고도 남았겠죠..
저 시대는 통금도 있고 등화관제도 했던 시대라 중국처럼 봉쇄도 가능 했을듯..
전대갈이 전염병에대한 지식을
가졌을지가 의심되지만..
독재시대라 봉쇄가능 했을거 같습니다
시공사에서 마스크 판매업 추가했을듯
천재십니다!! ㅎㅎㅎㅎㅎ
걱정은 되는데 윗분들 말씀대로 당시 독재시절이었고 저녁때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던 시절이라 중국 뺨치는 봉쇄가 가능했을겁니다. 아무도 그걸 뭐라 비난하지도..
사회적 거리두기도 없이
따닥따닥 책상 붙여서 공부했던 기억이 났었는데..
말씀대로 봉쇄하나는 가능했을거 같습니다 ^^;;
일단 원인을 밝혀내는데 걸린 시간이 지금과는 비교도 못됐을테니 퍼지기도 엄청나게 퍼졌을테고 의료시스템 미비로 걸리면 그냥 기도 하는거 말고 별 방법이 없었을겁니다
산동네는 줄초상 났을거예요..
독재시대니 이후에 봉쇄는 가능했을거라 생각이 들구요 ..
저도 비슷하게 생각합니다..
독재여서 봉쇄는 손쉽겠지만
그전까지 엄청난 사망자가 발생하지 않았을까하는..
18반에 오전 오후반으로 나뉘었던 기억입니다. (서초동에 있는 신* 국민학교)
무슨 소림사도 아니고..
강람출신이시군요!!
우면산 바로 앞에 있는 약수터 가까운 시골동네 살았습니다. ^^;;;
그 당시라면 뭐 죽던살던 일단 학교는 모두 등교했겠지요. 솔직히 무슨 병인지도 모르고 까짓 감기인데 먼 엄살이야! 했을겁니다. 저도 몸살감기로 너무 힘들었어도 학교는 꼭 갔던 것이 기억납니다. 양호실에 잠시 누어있었긴 했지만요.
오히려 크게 번지지는 않았을것 같습니다. 코로나 감염이 많이된 나라들이 주로 선진국이고 국제교류가
많은 나라들이 대부분이고 당시엔 독재국가라 봉쇄할수도 있다고 생각되고 국민들도 국가에 잘 따르던
시절이고 애들도 말 잘듣고 잘 따르던 때거든요.
다만 당시 정부가 얼마나 심각성을 느끼고 실기하지 않느냐하는건 잘 모르겠네요.
대신 자연면역력이 만랩...=3=3=3
푸하하하 마포초등하꾜로 전학을 갔더니 오전반 82번이었답니다. 경성고 졸업시 한반에 60명 15개반... 동기가 900이네요.
당시에는 아파 죽어도 학교에서 아파 죽어야 한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 있던 시기라서...
누구 한 명 걸리면...줄초상 났었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