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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임란 때 일본의 전력이 얼마나 막강했을런지 감이 잘 안옵니다.

아스라이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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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173
Updated at 2020-09-14 21:39:58

 뚜렷한 기승전결 없는 뻘글입니다 . 그냥 가볍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한반도는 틈만 나면 후방안정 , 수탈 , 위력 과시 등의 여러 이유로 대륙세력의 침략을 받아 왔습니다.

대륙세력 입장에서 한사군 설치 , 나당연합군의 한반도 제패 , 원 간섭기 , 병자호란 같이 임팩트 

있게 침략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경우도 있지만 반대로 그 정도의 케이스를 빼면 대부분 효과적으로 

막아냈지요 . 우리 조상들이 그렇게 끈덕지게 막아내고 버텨온 덕분에 그 큰 중화세력 옆에

위치함에도 고유한 정체성을 지킬 수 있었겠고요.

(물론 한반도가 워낙 수성에 유리한 지형이고 , 정말 뭐 털어 먹을거 없는 똥땅이라 침략&점령유지비용 

대비 뽑아낼 수 있는 이득이 적고 , 선진문물 도입하려고 알아서 조공 잘 해오고 , 수천년간 중화의 

주적이었던 북방민족의 후방을 신경쓰이게 만드는 존재로써의 효용 등등을 감안해야 하겠습니다. ^^;;)

 

 그 강대한 대륙세력이 진지하게 먹을 생각은 안했던 한반도를 바다 건너의 소국이 고작 20일만에 

수도까지 흽쓸고 올라왔다? 당시 명나라 조정에서 이것들 뒤로 손잡은게 아니냐고 의심했던 게 충분히 

납득이 갑니다.

 

 외려 일본에게 있어서 침략이 불리했던 조건도 있지요 .

 

1. 전쟁의 핵심은 전투보다 보급이고 그 보급선에 바다가 끼어있다? 유지 난이도 대폭 상승입니다.

 

2. 일본이 조선보다 큰 나라라 국력의 총합이 훨씬 크다 해도 봉건 체제라는 특성상 단일한 대오로 

뽑아낼 수 있는 전력에는 큰 제한이 생깁니다. 실제로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강건너 불구경했구요 .   

 

 상황이 이럴진데 일본은 정말 질풍같은 속도로 한반도를 초토화 시켜 버립니다 . 종심돌파에만 

급급했던 거 아니냐고 까내리는 건 너무 구차하지요 . 사실 일반적인 인식만큼 조선도 당나라 군대는

아니었고 전쟁대비를 게을리 하지도 않았습니다 . 그저 일본이 그런 조선을 압도할 수 있을 만큼 

훨씬 강했었을 뿐이죠 .

 

 전국시대의 개막인 오닌의 난이 1467년이고 임란 개전이 1592년입니다 .

그야말로 100년 넘는 세월 동안 섬나라에서 수많은 세력들이 박터지게 싸워가며 명멸해 갔습니다.

그러는 사이 일개 병사 개개인의 전술 이해도 , 초급 지휘관의 수행 능력 , 사령관의 전략수립 , 

각종 전쟁기구의 퀄리티 , 병참술 등등 전쟁과 관련한 모든 요소가 예리한 칼날처럼 갈고 닦여졌을 

겁니다 . 일본이라는 국가 자체가 전쟁머신이 됐다고 무방할 정도로요 .

 

 비록 근대 이전의 사건이라 현시대에의 접목이 어렵고 더욱이 우리 민족을 잔인하게 유린한 

일인지라 도저히 곱게 보아줄 수는 없지만 , 인간이란 존재가 하기에 따라선 얼마나 단련될 수 

있는지 하나의 예시로써 고찰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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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담담하게...
5
2020-09-14 12:37:15

바다에선 고기밥 ~

유진♥서진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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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9-14 13:58:31

조선의 실수가... 일본의 실수가... 서로 겹쳤죠...

 

우선 조총이라는 신무기를 조선은 간과했습니다.. 일본은 확실히 검에 강했습니다만,, 결국 활이라는 장거리 타격 무기의 위력에 눌려서 조선은 항상 유리하게 진행시키긴 했죠.. 헌데, 임진왜란때는 조총이라는 무기가 그 활의 위력을 눌러버리면서 당시 일본의 검이 조선군을 제압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일본군은 빠른 속도로 한양을 점령하고 조선 왕의 항복을 받으면 끝날 줄 알고 서울로 몰려가기 바뻤고, 그게 예상외로 빨리 진행이 되어지면서 조선군을 너무 무시하기 시작하게됩니다.. 

당시 조선의 일선 주력부대는 평안도.함경도 국경지대에 집중이 되어져 있었고, 예비 주력은 충청도에 있었습니다.. 헌데.. 신립은 전라.충청도의 예비 주력이 올라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북방에서 데려온 병력만으로 밀어붙이다 탄금대에서 패하죠..

전라.충청도 병력은 늦게 올라오는 통에 한산도에서 패하게 되는 와키자카 야스하루에게 용인에서 패하는데요.. 이 전투를 전멸로 묘사를 하지만,,, 올라왔던 병력은 5만~7만정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대로 퇴각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들 중 일부는 이후 황진 휘하로, 권율의 휘하로 유지하면서 이치전투, 웅치전투, 제2차진주성 전투등으로 전라도를 방어하는 데 성공하였고 다시금 행주대첩으로 한양을 탄환하죠...

다시 말해서 조선 주력을 너무 우습게 보고 방치하다 제대로 급소를 찔리게 된 것입니다..

 

확실히 조선군은 적지 않았습니다.. 조선 태종~문종 3대 시대의 정예병력은 최대 30만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 군종도 다양했다고 보았습니다.. 다만, 세조 이후...서류상의 군대였지... 질적으로는 무너지고 있었죠..

수적 확보도 안되니 질적으로도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무너진 것도 큽니다....

그래서 전라.충청도 예비 전력 5만~7만이었다고 해도.. 실질적인 정예 병력은 2~3만 이하로 그렇게 많지 않은 병력있으며 이 병력들을 가지고 전투하기에는 육상의 전선은 너무나도 컸죠.

조선 육군의 입장에서 보자면 함선에 타고 몰려다니기 수월한 수군보다 불리한 상황이긴했죠....

 

다만, 임진년 이후 나름 강하게 단련해서 어느정도 육성이 되어진 까닭에 정유재란때는 임진년 초기보다는 나은 모습을 보이긴 합니다. 다만 역시 허를 찔려 칠전량 해전 패전으로 전라도가 뚫린 것이 치명타이긴 했습니다만...

피그말리온
3
2020-09-14 12:51:19

양반과 그자제들의 군기피가 조선을 병들게 했습니다.

니코데무스
1
2020-09-14 13:21:42

그래서 특히나 대권후보의 아들 병역문제에 민감해질수 밖에 없었죠

라니아케아
2
2020-09-14 12:53:33

선조 도망, 왜구 멘붕

거침 없이 진격하다 보니 보급 안됨, 바닷길 막힘

많은 의병에 왜구들 놀람, 대포에 놀람

겨울 추위와 조선이 생각보다 털어 먹을게 없었음

 

왜구들이 100년이나 지들끼리 싸우고 지랄들 했으니

그당시 기준으론 세계최깅 

이라고 하더군요

 


 

 

賣香人
5
Updated at 2020-09-14 13:49:44

임진왜란 당시 일본 군사력이면 유럽 가서도 쓸어버립니다. 전국시대 일본의 조총 갯수가 30만개로, 당시 유럽 전역의 조총 개수 합친 것보다 많았다고 합니다. 총기 수와 병력 수, 실전경험을 고려 할 때 영국 정도는 바로 쓸려 나가고, 유럽 본토에 상륙했을 때 프랑스 단일국가 상대로라면 일본이 이기고, 유럽 다국가 연합군이면 그래도 자웅을 겨뤄볼만 하지 않았을까 저는 생각합니다.

韓風相隨
6
Updated at 2020-09-14 13:02:43

임진왜란 때의 일본은 과대평가되었다는 입장입니다 

 

외적의 침입을 잘 막아냈던건 고려 이전 시기의 일이구요

조선은 명나라의 핵우산을 믿고 병력은 최소한으로만 유지했어요 

병력은 없이 SCV만 뽑아놓은 상태였죠 

 

니코데무스
1
2020-09-14 13:22:57

설명이 설민석 급이시네요

Listener
2
Updated at 2020-09-14 13:11:41

2차세계대전 초기에 당시 유럽의 군사강국, 특히 육군강국이였던 프랑스가 독일의 전격전에 어이없이 항복한거나, 해군강국이던 미국이 일본의 기습 이후 1년 가까이 열세에 몰렸던 것을 보면... 개전 초기에 상대를 먼저 기습 할수있는 공격자가 매우 유리한 점이 임란초기 일본군 연승의 큰 이유중 하나일겁니다.

에스케이.
2
2020-09-14 13:17:53

일본이 간과한 것중의 하나가 조세 체계죠. 아무리 양반 지방관리의 토착 비리가 있었어도 농사지어 거둬가는 세가 크지 않았는데 일본은 기본적으로 훨씬 더 많죠. 일본이 쳐들어와서 그동안의 수탈을 막아 줄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보니 전혀 받아 들일수 없어 의병이 전국에서 일어나게 된거죠.

Zilinx
10
2020-09-14 13:21:17

 일본이 패한 이유.. 주절거려 봅니다...

 

1. 왜군은 드럽게 무식하였슴.대부분 문맹. 상호간에 작전 전달이 안됨..게다가 서로 사이도 안좋음.

2. 조선왕만 잡으면 다 항복할 줄 알았슴.근데 선조가 냅다 튐...그것도 아주 빨리 그리고 멀리 튐..

3. 왕잡으려고 종심위주로 가다보니 보급에 심각한 문제가 생김. 각지의 의병 활동으로 보급선이 심각해짐.

4. 개전초기에 왜군이 전라도만 먹었어도 지금 우리는 일본인 됏슴. 권율 및 훌륭한 분들의 활약으로

   전라도 진격을 죽을힘을 다해 막는데 성공.. 전라도는 나라를 구한 고장임..

5. 정유재란때 민간인 학살을 너무 많이 했슴.풍신수길이 열받아 지시햇다는데 어차피 저넘들한테 잘해봐야

   소용없으니 공포전략으로 가자한게 패착이었슴.

   점령지역을 잘 관리하였으면 당시 조선이 개막장이라 어찌될 수도 있었음.

   실제로 왜군에게 넘어간 조선인도 부지기수 였다 합니다. 

6. 이순신을 몰랐음.

   만약 알았다면 무슨수를 써서라도 제거해야 했슴.

7. 명나라의 참전..

   명군은 당나라 군대였지만 화포의 압도적인 화력이 있었고

   이전 왜구와의 수많은 접전경험으로 왜구 특기인 긴칼을 이용한 백병전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전술이 있었슴.

8. 본질적으로 임진왜란은 풍신수길이 놈이

   일본을 통일 후 불안세력인 각 지역의 다이묘 세력을 약화시키는게 주 목적이었슴.

   이는 625때 모택동의 한국전 파견이유와 동일함.

   그저 전쟁 승리보다는 각 지방 다이묘들의 사병들이 조선으로 출병하여 많이 죽기만 바랫을것임..  

9. 왜인들과는 상반된 조선인들의 성격..

   일본인들은 강자에는 무조건 복종하고 약자에게는 군림하는게 민족성인데 비해

   조선인들은 집안끼리 혈족애가 엄청 강하며, 강자라고 무조건 복종하지도 않고

   약자라고 무조건 밟는 민족성 아님,,,

   평소에는 유순하나 내 집안 누가 다치거나 죽으면 그때부터는 물불 안가림.

   베트남전때에도 내 전우 하나 다치거나 죽으면 그 동네 베트남 마을은 다 작살내버렸다 하네요.

10. 의외로 임란당시 조선인으로 귀화해 왜국과 싸운 일본출신들이 많았다 합니다.

    일본 통합 과정에서 겉은 통일되었지만 패배한 세력들은 불만이 많았겠죠..

 

결론 - 임란은 우리가 이긴 전쟁입니다.

         풍신수길 집안이 이 전쟁후유증 으로 결국 처참하게 멸족당했죠..

         전쟁기간 민간인 제외한 병사 사망수도 왜놈들이 훨씬 많습니다.

         우리나라의 전쟁스타일은 항상 같습니다.,

         침략해오면 일단 후퇴..길게 길게 전선만들어놓고

         그다음에 전 민족이 나서서 자근자근 짤라버립니다.,.

         오죽하면 몽고가 점령을 포기하고 부마국으로 삼았을까요..

         우리는 확실하게 위대한 전투 민족입니다.

        

 

    

anauddydtk
2020-09-14 13:45:39

위기 앞에 뭉치는 우리의 민족성은 오래전부터 

그 유전자가 전해져 온거군요 ㅎㅎ임란 때 일본의 전력이 얼마나 막강했을런지 감이 잘 안옵니다.

general86
2020-09-14 13:52:21

근데 대몽항전은 우리가 결사적인것도 있었지만 몽골입장에서 고려의 가성비가 좀 갸우뚱한 상황이라 그런것도 있죠^^

에쎄프레소
1
2020-09-14 14:06:59

항왜의 숫자가 최소 만은 넘었을 거라더군요.. 실록에는 3만으로 기록되어 있다고.. 쨋든, 이 항왜들이 겁나 잘 싸웠는데 아무래도 왜군과의 전투에 투입시키기에는 믿음이 가질 않아서 북방 여진족과의 국경지대로 돌렸다네요.. 그리고 조선의 최정예인 북방군을 왜군과의 전투에 투입..

아흐동동다리
3
2020-09-14 13:27:47

전쟁 초기만 보고 판단하신 건가요?

아토즈
Updated at 2020-09-14 14:29:45

주제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임란이후 명나라도 군사력을 소진해서 망하는 길로 들어섰고 일본도 토요토미 정권이 무너지고 도쿠가와 막부가 들어서는데 가장 국력을 소진한 조선은 달라진거 없이 3백년 더 원리주의 주자학으로 빠져갔다는게 아쉽습니다.

ksplayer
2020-09-14 23:13:12

다른 얘기입니다만 도쿠가와이에야스와 마오쩌퉁이 비슷한 면이 있어요 남 죽도록 싸울때 이리저리 피하며 구경만 하다가 싸옴 끝나고 지쳐있을때 나라를 통채로 날름 주워먹어 버렸으니

마고성
2
2020-09-15 01:06:19

 교과서에서는 알려 주지 않는 이런 관점도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Arbot5mzAIE

 

일본이 점령한 지역은 도시지역  부산 대구 대전 서울 이고  나머지는 점령을 못했고

 

이미  임진왜란 발생 당해에   경주, 밀양 등에서 졍규군이 반격을해서 경주성을 탈환 했고,  의령 등지는 곽재우 의병들이 그리고 유시민이 진주에서 출병해서 함안 창원등을 회복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즉 일본군은  경상도에서도  겨우  도시만 점령하고 반격을 당하고 있었다는 내용입니다.

 

근거가 있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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