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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책을 읽고]지능의 역설- 통찰로 시작해 궤변으로 끝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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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3-02-19 16:38:11

책 읽는 동아리에서 이번 달에 선정한 책을 하나 읽었는데 후기를 도저히 안 쓸 수 없어서 글 파보네요.

 


도서명: 지능의 역설

저자: 가나자와 사토시

출판사: 데이원

가격: 16,000

 

 

 

 

< 중요한 통찰로 시작하는 연구 >

 

이 책의 기본적인 취지는 '지능 역시 인간적인 지표 중 하나일 뿐이다'라는 것으로 전 아주 강하게 그렇다고 단언하며 동의하는 편입니다. 지능이 높은 사람을 제법 많이 만났지만 그들의 공통점은 머리 회전속도가 빠르다는 것뿐이었고, 그 외에 성격, 인간성, 신체적 특징, 심지어 통찰력조차 사람마다 천차만별이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어떤 내용을 실었을까 하는 기대를 꽤 하고 있던 것도 사실입니다. 비록 모임에서 읽으라고 해서 읽은 것이나 연구를 통해 나온 특징들이 어떤 것일까, 내가 생각하지 못한 지능 높은 사람의 특징에 어떤 것이 있을까 하고 기대가 된 건 부정할 수 없었죠.

 

초반에 나온 이야기들은 그래서 꽤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사바나 원칙이라던가 저자 본인이 세운 사바나-IQ 가설이라던가 하는 것들은 약간 걸리는 부분은 있어도 제법 설득력이 있는 부분이었고요. 특히 급격한 사회발전의 탓으로 우리의 뇌가 진화하면서 대응하도록 설계된 부분 외에는 뇌가 진정한 의미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 설계되지 않은 부분에 대한 대응은 일반 지능(IQ)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 역시 저의 가치관(사람은 오랫동안 자연적으로 프로그래밍된 컴퓨터다)과 일치하였기에 더 흥미로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 결론을 정해두고 끼워맞추는 엉터리 퍼즐 >

 

그러나 본론으로 들어가서 지능 높은 자들을 일반화한다고 보여준 자료들은 실망의 연속이었네요. 아니, '이걸 학자라고 해야 하나?'하는 수준의 황당함의 연속이었다고 하는 게 더 적합하겠습니다. 학자라는 사람이 연구의 엄밀성도 없고, 추측은 넘치고, 신빙성을 높이는 사례를 왜 영화에서 가져오는지도 의문이고 여러모로 참 그랬거든요.

 

가장 단적인 사례를 하나 들어보죠. 신앙과 지능의 연관관계에 대한 이야기인데, 이 주제에서 저자의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아래와 같습니다.

지능이 높을수록 신앙심의 희박하다

(지능의 역설 164~170쪽)

이 주제는 얼핏 보면 현실을 잘 반영한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갤럽 조사를 보면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평균 지능은 높은 편인데

 

한국, 국가별 평균 IQ 순위서 4위..."지능지수 가파른 성장세" < 기획 SPECIAL < 기사본문 - 파이낸스뉴스 (fnnews1.com) 

 

신앙인 비중은 대단히 낮으니까요. 미국인은 전체적으로 종교인 비율이 69%나 되지만 우리나라는 제일 높은 60대 이상조차 60%를 못 넘깁니다.

 

종교 떠나는 미국 사회, 개신교 감소세 특히 심각 - NEWS M

 

(링크가 안 먹히는 건 차후에 수정하겠습니다)

 

 

 

http://www.gallup.co.kr/gallupdb/reportContent.asp?seqNo=1208

 

 

문제는 이 책에 쓰인 다른 문구입니다. 저자는 교육 수준이 신앙과 관계없다는 것이 아닌, 양의 상관관계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신앙심이 강해진다

(지능의 역설 167~168쪽)

하지만 알다시피 한국은 세계에서 교육수준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로, 단순히 대학진학율이 높은 게 아니라 중등까지 의무교육에 세계적으로 고등교육 이수율이 50%대로 OECD 1위입니다. 예외적인 소국들도 있겠지만 보통국가 중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임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얘기는 일언반구 안 합니다. 엄밀하게 연구한다면 문제가 되는 변수는 모두 조사해서 결과를 내는 게 정상일진대, 이 변수는 씹고 지능과 신앙만으로 결론을 내버리더군요. 만약 교육과 신앙이 연관관계가 있는 게 사실이면, 교육 수준이 가장 높은 대한민국의 신앙심이 낮은 이유에 대한 설명이 많이 부족해집니다. 그저 신앙이 교육을 누를 정도로 높아서 신앙심이 희박한 사람이 많다고 하기에는 궁색하겠죠.

 

사실 경제학을 포함한 대부분의 사회과학 연구들이 이렇게 변수들을 취사선택하는 건 흔한 일이긴 합니다(그래서 내가 사회과학을 매우 안 좋아하지만). 하지만 상관관계가 분명히 있다고 본인이 얘기하고선 이렇게 대놓고 묻어버리는 게 연구자로서 바람직한가는 생각할 필요가 있을 거라 봅니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전개되는 것들이 한두개가 아니라는 거겠죠. 예전에 MBC에서 보도해서 논란이 되었던, 알통 굵기가 정치적 신념을 좌우한다는 보도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당시 보도했다가 개망신당한 알통과 정치신념 기사

 

이와 비슷한 얘기가 이 책에서도 나옵니다. 지능과 정치신념의 상관관계로. 그것도 매우 긍정적으로. 그 외에도 고지능자가 클래식음악을 좋아하느니, 술담배를 더 하느니... 보다보면 한숨나오는 얘기들이 천지삐까리에요. 그 중에서 현실과 맞는 연구도 있긴 하지만(고지능자가 사기 등 사회체계를 이용한 범죄를 주로 활용한다 등) 위처럼 워낙 많은 것들이 다른 변수를 임의적으로 배제하다보니 그저 얻어걸린 거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길 수밖에 없고요.

 

다른 예로, 책에서는 지능이 높을수록 신체적 매력이 높다는데 아니 그럼 기네스 펠트로는 머리가 좋아서 코로나19를 김치로 치료한다는 등의 상상초월한 발언들을 진지하게 하고 다니는 걸까요?

 

물론 책에서는 자기 연구의 신빙성을 증명하기 위해 조사결과가 우연일 확률을 제시합니다. 억대부터 양(1031)분의 1까지 참 많은 숫자를 동원해 조사가 필연이라고 주장하는데... 처음부터 영향을 줄 수 있는 변수 다 배제해놓고서 우연일 확률 없다고 하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 지 전 잘 모르겠습니다.

 

 

 

< 마귀를 잡기 위해 또다른 마귀가 되려는가? >

 

이 책에서 시작과 끝에 강조하는 '지능은 사람을 구성하는 변수 중 하나일 뿐이다.'는 말은 지능과 인성을 결부해서 보려는 사람이 많은 현대사회에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외모가 인성을 반영하지 않듯 지능 역시 다른 것을 반영하지 않는데 결부하는 듯한 착각에 경종을 울릴 필요가 분명 있기 때문입니다. 책에서 나온 것처럼 지능이 높지 않은 사람이 일상적으로 하는 걸 지능이 높은 사람은 분석하려다 오히려 실패하는 경우도 제법 있기도 하고요.

 

다만 이 책과 제가 지닌 생각의 차이라면 지능으로 결정되는 것에 대한 입장차이일 겁니다. 전 지능은 머리 회전속도 외에는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다 보는데, 저자는 지능이 일반인과 다른 성향을 결정한다고 보니까요.

 

결국 저자는 지능이 인간상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고 얘기하는 것이나 다름없는데, 이는 방향만 반대일 뿐 높은 지능에 대한 선입견을 만든다는 면에서 똑같아 보입니다. 물론 선입견이 옳다면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들어도 받아들여야겠죠. 양자역학이 상식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지만 물리 현상을 매우 훌륭하게 설명하니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나 임의적으로 변수 통제해서 원하는 결과 만들어놓고서 별로 훌륭하게 설명하지도 못하는 이론을 받아들이라 하면 인정할 사람이 몇이나 될지, 그건 깊이 고민해봐야 할 문제일 겁니다. 이게 만약 진화심리학의 일반적 의견이면 진화심리학도 결국 보통 사회과학과 다를 게 없다는 얘기밖에 안 되고, 그건 진화심리학의 위상을 크게 떨어뜨리지 않을까 하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책 까는 글은 정말 오랜만에 쓰는데, 자기계발서 이후 이렇게 낚인 건 처음이라 화가 좀 났나 봅니다...

님의 서명
내가 흔들리지 않을 때 모든 것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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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3-02-19 18:05:08

흑인여자는 신체적 매력이 떨어진다고 했다가 욕 바가지로 먹은 사건은 기억나네요.

WR
2023-02-19 18:38:22

ㄷㄷㄷㄷ;

2023-02-20 01:03:17

물은 알고있다~류 인가보죠?

WR
2023-02-20 10:39:52

연구는 거의 그 수준이긴 한데, 시작과 끝은 나름 통찰을 담은 기이한 서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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