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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일상]  그때 그 시절 음악방송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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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4-04-20 17:12:09

몸집이 커져봐야 좋을 게 별로 없다. 뭐든지 경량화가 좋다. 체중도 그렇고, 시스템도 그렇다. 가벼워야지 이동하기도 쉽고 욕망을 내려놓기도 좋다. 

 

방송 청취자가 제법 늘었다. 인기 방송국처럼 수천명의 리스너를 거느린 것은 아니지만 한번 방송하면 열 댓명은 꾸준히 찾는다. 이런 음악들도 듣는 사람이 없진 않구나. 리스너들이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정 청취자 외에 드문 드문 찾는 이들까지 대략 50여명은 되는 것 같다. 이렇게 되고 보니 그 안에서 파벌이 생긴다. 고정 청취자. 이게 사실 문제가 된다. 고착이 되면 뭐든 탈이 난다.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순환이 필요하다. 고인물이 썩는 징후가 바로 파벌의 형성이다. 

 

청자들 사이에서, 혹은 씨제이를 중심으로도 파벌은 생긴다. 중립적 위치를 유지하려고 해도 별 소용은 없다. 받아들이는 타인은 언제나 내 통제 밖에 있으니까. 

 

모월 모일 홍대 클럽에서 라이브 콘서트가 있었는데 거기서 사단이 난 모양이다. 일본의 인디 밴드(사실은 대단한 밴드, 애시드 마더 템플의 일원들이었다.) 공연이 있었고, 거기서 음악방송 고정 청취자들이 번개를 가졌는데 그 장소에서 두 여성 간의 난투극이 있었단다. 머리채를 휘어잡고, 주먹을 교환하며 등등. 

 

그 참사 이후로 내 방송의 청취자는 급속히 줄었다.  

 

오늘은 리스너가 한명 밖에 없다. 

 

그냥 빨리 접어야겠다. 근데 저 인간은 들어와서 아무 소리도 않고, 그냥 음악만 처듣고 앉아있다.

 

공연한 심술기가 발동했다. 

 

"여보쇼. 매번 뼈 빠지게 음악 공수해다가 바쳤으면 고맙다거나 그런 표현 정도는 해도 되는거 아뇨? 어떻게 말 한마디를 안해."

 

사람이 없으니 공개창에다 그냥 쏘아붙였다. 

모니터를 쳐다보는지 마는지 그는 한동안 답변이 없다. 

속에서 더 열불이 났다. 그냥 마이크에 대고 한마디 해야겠다.

 

"사람이 말을 했으면 들은 척은 해야지. 모니터 좀 쳐다 보면서 음악 들어요. 뭐 대단한 일을 하신다고."

 

그제서야 답이 

"엇! 못봤어요. 죄송해요. 그런데 ... 고맙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걸 말로 표현해야 알아요?"

 

"아니. 그럼 말로 표현해야 알지. 어떻게 압니까?"

 

"별 인기도 없는 방에 들어와서 이렇게 열심히 감상하고 있는 자체가  ... " 

 

"아니 벌써 몇 달 째 당신한테 리퀘스트 받아서, 그 음악들 구해서 올리느라 힘든 건 알아요? 당신이 원하는 곡은 화일 공유 사이트에도 없고, 오직 돈주고 구해야 하는 거라고. 그런데 정작 난 그 사람이 누군지 전혀 몰라. 심지어 성별도 모르고. 뭐 이런 비대칭적 관계가 다 있어? 난 성별부터 직업, 사는 곳까지 다 공개했는데."

 

"내가 물어본 거 아닌데요? 본인이 리스너들한테 집적 대느라 공개한 거 아닌가요? 그리고 나 여자 맞아요. 보자기 벗었는데 왠 딴 소리?"

 

"그래요. 여자 맞다고 칩시다. 근데 좀 취향이 독특하시네. 음악이 좀 프리키한 ... 그런 쪽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물론 나도 그런 스타일 맘에 들더라고. 헌데 여자분이 이런 스타일 음악 좋아하는 게 아무래도 난 아닌 것 같아서 의심을 좀 했소. 그건 그렇다치고. 나이는 어떻게 되요? 민증 까고 편하게 갑시다."

 

"내가 더 위일 거예요. 정확한 나이는 공개하기엔 그렇고. 아무튼.... 그리고 그게 뭐 중요해요? 그냥 말 편하게 하려면 그렇게 해요. 난 상관 없으니까."

 

뭐지? 말대꾸 따박따박 잘하네. 

 

"그럼 편하게 닉넴 부르자. 너부터 내 닉네임 불러봐"

 

당시 내 닉네임은 바쿠닌이었다. 테러리즘에서 바뀐 지 좀 되었다. 닉네임에 대한 거부감이 하도 드세서. 테러리즘의 기의는 살리되, 기표를 바꾸는 식으로. 아마 잘 모를테니까.  

 

"바쿠라고 부를게. 근데 바쿠닌이 뭐야?"

 

"있어. 그런 사람. 무정부주의자야. 자세히 알 건 없고."

 

"무정부주의자... 그렇군. 내가 전에 좋아하던 남자가 그람시를 좋아했는데, 그 사람도 아나키스트 얘기를 많이 꺼내긴 했어. 너도 비슷한 류의 인간이구나."

 

"그람시? 난 굳이 따지자면 그람시 쪽은 아닌데... 그건 음악방송 채팅창에서 논할 얘긴 아닌것 같고. 어쩌다 이런 음악을 좋아하게 된건가? 덕분에 나도 새로운 음악을 알게되서 좋기는 한데."

 

"우연히 이쪽 인터넷 음악방송에서 그런 음악만 선곡하는 오빠를 통해서 알게 되긴 했지. 벌써 몇년 되었어. 그런데 요즘 그 오빠도 좀 시시한 음악들을 선곡하더라고. 그래서 이곳저곳 방을 기웃대며 귀동냥 좀 하는데 어느날 네가 방 제목에 거창하게 사이키델릭이라고 적어놓았길래 기대를 하고 들어왔던 거야. 역시 별 거 없더군. 제퍼슨 에어플레인, 그레이트풀 데드, 도어즈, 아이언 버터플라이 등등. 이런 음악은 너무 많이 들어서 별 감흥이 없거든. 나쁘다는 게 아니야. 그냥 나혼자 집에 있는 걸로 들어도 되는거니까. 굳이 이곳에 찾아와 들을 필욘 없다는 거지."

 

"오빠? 이를테면 음악 스승이 있었던 게로군. 근데 그 사람이 요즘엔 선곡이 별로다? 그럼 이제 내가 호구잡힌건가? 말 잘듣는... 아니 됐고. 뭐 하느라고 음악 들으면서 아무 소리를 안해?"

 

"푸훗. 인형 눈알 붙여."

"봉제 인형에 눈알 붙이는 작업? 요즘에도 그런 걸 사람이 하나? 기계가 하지 않고?"

 

"이를테면 그렇다는 얘기야. 조그만 인터넷 쇼핑몰 하는데, 이것 저것 잡일이 좀 많아. 친오빠가 중국에서 물건 떼어오면 내가 인터넷 쇼핑몰에 상품 등록하고, 택배 배송하고 그런 ..."

 

난 이상한 사람(사물)을 좋아한다. 그리고 irregular한 것들을 좋아한다. 그것들이 있어야 세상이 발전한다고 생각해서다. 이를테면 클리나멘, 특이점들, 송곳처럼 튀어 나온 푼크툼들이다. 모든 것이 일정하고 올바르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부딛히고, 충돌하고, 마찰해야 변화 생성이 가능하다. 가시처럼 눈에 와 박히고, 처절한 비명처럼 귀를 뚫는 자극들을 사랑한다. 사도마조히스트냐고? 사람은 누구나 사도마조히스트였다. 문명을 알기 전에는, 사회화 되기 전에는. 로트레아몽이 그랬잖은가. 웃는 아이의 천진난만한 미소를 찢어버리고 싶었다고. 안달루시아의 개의 오프닝 장면에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브뉴엘과 달리처럼, 초현실은 현실 밖이 아니라 현실 깊숙이 숨어있는 참된 현실이다.

 

지금 대화하고 있는 이 여자가 위 참사의 중심인물이다. 모난 돌이다. 모난 돌은 모난 돌끼리만 매칭이 된다. 물론 매우 어려운 일이지만. 

 

"너 제법 재밌는 구석이 있구나. 그래 기분이다. 오늘은 내가 너에게 추천곡 하나 던져주마. 들어봐! 신부와 수녀들이 만든 음반인데 이 양반들 약을 한 사발씩 들이키고 만들었나 봐."

 

 

 

 

 

 

말 없이 음악을 깊이 받아들이고 난 후 그녀가 말을 던진다.

 

"우리, 만나야겠다. 지금 바로!"

 

 


    

 

님의 서명
스피노자처럼, 바타이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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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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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4-04-20 18:22:46

필력 좋으시네요. 글이 술술 읽어집니다. 이렇게 글 재밌게 잘 쓰시는 분들 부럽습니다. 다음화도 기대합니다. (글 읽고보니 저도 눈팅만 하면 혼날 듯해서 댓글 답니다.)

WR
2024-04-20 21:05:34

눈팅만 해도 괜찮습니다만 나와서 이런 격려의 말도 훌륭합니다. ㅎ

2
2024-04-20 18:57:55

저번 하드락카페 시리즈에 이어 음악다방도 흥미진진 하네요 

 

감사합니다

WR
2024-04-20 21:05:49

네. 저도 감사하고요. 

1
2024-04-21 15:53:41

약 한사발 들으키고 만든것 같은 the search party 마음에 드네요.
"우리, 만나야겠다. 지금 바로!" 다음편이 무지 기대됩니다.^^

WR
2024-04-21 17:53:57

관심 감사합니다. 다음 편 쓰려고 저장해 놓은 게 다 날아갔네요. ㅠ.ㅠ 좀 시간이 필요하겠군요. 

2
2024-04-21 21:41:28

결론은 장기하? 

 

https://youtu.be/OFqfIOzU544

WR
2024-04-21 22:44:38
1
2024-04-22 15:12:58

참 흥미롭게 한번에 읽어내려갔습니다

음악이 몽환적이면서도 제 취향에 딱이군요

좋은 음악 감사합니다^^

WR
2024-04-22 21:29:24

감사합니다. 

1
2024-04-22 15:52:40

청취자들과의 티키타가가 아주 잼납니다. ^^

당시 방송이 너무 잼났을것 같습니다.

WR
2024-04-22 21:30:01

당시 방송 에피소드가 좀 있긴 합니다. 재미만 있었던 게 아니고 파란만장했죠.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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