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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일상]  그때 그 시절 음악방송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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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3 16:44:49

 이전에 적어 놓은 글이 저장되지 않고 날아갔네요. 좀 늦어진 이유입니다. 

 

화양리. 이곳은 태어나 35년을 서울에 살면서도 한번도 와보지 못한 곳이다. 건대입구역에서 몇번 하차 하긴 했지만. 특별한 기억은 없다. 고모댁에 방문했던 몇차례 외엔.  

 

들은바로는 예전에 집나온 청소년들이 자주 모이던 곳이라고 했다. 서울 서부에 영등포가 있다면, 동부엔 화양리가 있다고. 서로의 사는 곳 중간 지점에서 보자고 했더니 그는 대뜸 이곳을 찍었다.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을 기다린다. 

괜한 기대가 생기냐고? 아니 긴장은 살짝 된다.

 

긴장을 풀려면 역시 음악이다. 남들은 요즘 mp3 플레이어를 사용하지만, 난 여전히 소니 포터블 cdp로 듣는다. 그것도 명기인 E-01로다가. 무겁긴 한데 음질에선 mp3와 비교는 무의미하다. 그날 듣고 있었던 음반이 아직 랙에 꽃혀있다. 

 

 

락계의 상돌아이 두 분이 만났다. 야호와 13과 시드의 리더 스카이 색슨. 그 화학 반응은 실로 독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저기서 누군가 고개를 갸우뚱 거리고 있다. 

나도 실눈을 뜨고 애써 그 누군가의 윤곽을 훑는다. 

 

숏컷에 작은 체구, 건빵 바지를 입고 나올 거라고 했던 것 같은데 ... 그럼 맞네. 

안경을 껴도 교정 시력이 0.7 정도라 식별 가능한 내용은 그 정도였다.  

 

어쨌든 나도 손을 흔들어 보인다. 

난 검은 뿔테 안경, 작은 체구, 알아보기 쉽게 손에 책을 들고 있을 거라고 했다.  

 

그가 다가온다. 점점 가까이. 

 

"바쿠 맞지?"

"그래. 맞어."

 

걸쭉한 목소리, 성별과 체구완 다르게 중성적 보이스다.  

예상과 다른 건 언제나 즐거운 경험이다. 

 

모니터에 적힌 텍스트로만 접했던 그의 목소리는 예상과 전혀 딴판이었다. 

걸걸하고, 다소 낮은 톤에, 불온함과 상스러움이 짙게 묻어나왔다. 

 

"하아, 씨팔, 그냥 갈 걸 그랬나?"

"왜? 내가 별로여서?"

 

"멀리서 보니까 무슨 찐따처럼 보이길래 ... 가까이서 보면 괜찮을까 했는데 ..."

"그래서 내가 오프에서 보는 걸 싫어하는 거야. 환상을 품고들 나오니까 서로."

 

"아.. 선곡한 음악에 확 가버려서. 내가 좀 그런걸 못이기거든. 어쨌든 나왔으니 반갑고, 오늘은 내가 술한잔 살게"

"당연히 그래야지. 나도 어려운 걸음한 거야." 

 

근처 술집으로 바로 이동했다. 30대 중반이니 애들처럼 재고 자시고 할 것 없다.  

 

어제 방송에서 '지금 바로' 보자고 했던 그였다. 

 

지금 바로? 근처에 사는 게 아니라면 그 시간에 볼 순 없었다. 

 

나는 다음날 수업이 있으니, 수업 마치고 보자고 했던 것이다. 

 

그가 묻지도 않은 말을 먼저 꺼낸다. 

머리가 짧은 이유는 머리가 깨져서 꿰메느라 살짝 땜빵이 생겨서 짧게 깎아버린 것이라 했다.

 

"홍대서 싸워서 깨진 건가?" 

나도 아무런 사심 없이 형사가 취조하듯 물었다.

"아씨. 누가 그 얘길 바쿠한테 했어? 그 년이 일렀지? 쌍년이네. "

 

싸움의 당사자에게 들은 것 아니었고, 아마도 그 모임에 참여한 누군가가 나에게 귀띔해준 것이지만

난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첫 만남인데, 술마시다 싸워서 대가리 깨진 얘기나 하고 있고. 나도 참 ..."

"그보다 나이가 나보다 위라면서 어째 옷차림새가 집 나온 고삐리 같냐."

 

"이게 우리 오빠가 중국에서 떼어다가 파는 옷들이나 악세사리야. 집 나온 애 같아?"

"그렇잖아. 여자가 카키색 건빵 바지라니. 다소곳까진 아니어도 만나는 사람 생각해서 갖춰 입고 나오는 게 일반적인 것 아냐?"

 

난 어차피 일반적이라는 카테고리를 혐오했지만 그렇게 일부러 미끼를 던져본다. 

 

"상가집에 조문 정도라면 드레스코드 같은 걸 하겠지만 인간 만나는 데 뭔 신경을 써."

 

좋다. 이런 게. 

뭔 상관이냐. 뭘 입고 나오든. 그딴 걸 고민하는 게 제일 한심한 일이다. 

 

기분 좋게 한 잔을 빤다. 

"앞으로 네 닉네임은 싸마로 해라. 아니 난 앞으로 그렇게 널 부를거니까. 닉을 바꾸든 말든."

"싸마? 그게 뭔 의미야? 싸구려... 어쩌고. 이런 느낌 같은데?"

"아냐. 싸이키 마녀라는 의미긴 한데, 그게 뭐 중요해? 내가 널 그렇게 부른다는 게 중요한거지. 말은 의미가 아니라 행동이야. 말은 명령이고, 수행이고, 실천인거지. 뭔 의미 따위를 찾아." 

 

그날 수업에서 한참 떠들었던 내용을 여기서 다시 복기한다. 화용론, 언어 수행 등에 관한 이론들. 

    

목소리는 걸걸하고 어투는 막돼먹은 스타일이었지만, 피부는 하얗다. 시체를 닮은.

   

"그런데 선곡 많이 늘었더라. 요즘 바쿠가 선곡하는 곡들 중엔 나도 못들어본데다 아주 죽이는 게 많던데. 언제 그렇게 내공을 쌓았어?"

 

"첨엔 메타복스 조사장한테 음반 좀 사다가, 얼마전부터 스웨덴 놈하고, 러시아 딜러한테 대량으로 매입을 했지. 스웨덴 놈하고 한국 음반들을 주고. 북유럽 싸이키를 트레이드했고, 러시아 딜러한테 장당 7000원 꼴로 대량 매입 좀 했고. 거의 언오피셜 복각 씨디긴 한데 소리는 들을만 해." 

 

"그럼, 나중에 혹시 이 밴드 있으면 좀 구해줘."

그가 적어 놓은 밴드가 웨이크필드였다. 

 

 

나중에 어렵사리 구해서 그에게 선물로 준 음반 수록곡인데, 브라스 섹션과 하드락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명곡이다. 

 

나는 그 묘하게 신경을 건드리는 목소리를 음미하면서, 조용히 그를 다시 본다. 

묘하게 색기가 흐른다. 온 몸에 결계를 두르긴 했지만, 언제든 그것을 스스럼 없이 풀 용의가 있다는 시그널이 몇차례 보였다. 

 

"온라인에서와 다르게 말 수도 적고. 시니컬하네. 마치 저 위에서 내려다보듯."

"시니컬한 건 맞고. 남을 잘 알지도 못하는 데 함부로 무시하진 않고, 말 수는 수업 때 외엔 없어."

 

 "선물하나 가져왔어." 

그가 꺼낸 것은 만달라mandala였다.

"오! 만달라네. 직접 그린 거야?"

"만달라 알아?"

"좀 알지. 내가 종교에 관심이 많아. 기독교 말고. 큿! 일단 주는 것이니 감사히 잘 받겠고 나중에 네가 원하는 씨디 구하면 그걸로 퉁치자."

 

마신다. 술이 나를. 소주 한 병이 주량이지만, 한 병을 넘어가면 무한대다. 아무런 맛도 못느낀 채 기계처럼 목구멍에 밀어 넣는다. 그날 모처럼 블랙아웃!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다. 어딘가에서 일어나 보니 온 몸이 흙투성이에, 더러운 것들로 오염되었다. 그리고 협탁 옆에 놓인 메모 하나. 

'얘를 할머니한테 맡기고 나왔는데, 새벽에 열이 난다고 엄마한테 문자가 와서 어쩔 수 없이 혼자두고 간다. 어제 너무 많이 마신 것 같던데 잘 챙겨먹고 들어가.'

 

그랬군. 하아. 또 시계를 쳐다본다. 오후다! 

큰일이다. 오늘 오후 수업이 있는데 지금 가면 간신히 맞춰 갈 순 있겠지만, 수업 교재가 없는데.

 

별 수 없다. 학생한테 빌려야한다.  

일단 택시 타고 학교로!  

 

 

 

 

 

   

 

   

 

 

 

 

 

 

 

 

님의 서명
스피노자처럼, 바타이유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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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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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4-04-23 23:52:47

'상돌아이 두 분이 만났다.'
귀추가 주목됩니다.
(추가)
커피 마시며 이제 듣는데요,
독한 노래는 넘기고 스노차일드 음미하는데 좋군요.
브라스 인트로에 아임 프리~~ 까지, 70년대스러운데 21세기 밴드네요.

WR
1
Updated at 2024-04-24 11:49:11
This psychedelic rock band from Pueblo, Colorado formed in 1969 and continued to play all over the Northwest until their breakup in 1974. The band recorded a concept album for Warthog Studios in Denver from 1971-72.

 

동명의 다른 밴드를 보셨나봅니다. 6말 7초 밴드입니다. 전 1995년 이후 음악은 듣지 않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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