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등산] 제 나이 혈기방자한 24세...
![[등산] 제 나이 혈기방자한 24세...](http://dvdprime.paran.com/dpUserUpImg/upload/200907/20090706220854890.png)
몸무게 60Kg대 였을 때죠. 지금 보면 저 당시 참 날씬했었습니다.-_-;;;
지금은 얼굴과 바디 사이즈가 저 때의 1.5배 늘었고, 안경알 크기는 1/2로 줄었습니다.
아... 저 가수 이용 안경보다 큰 안경... 포토샵으로 보정해 버리고 싶네요. ㅡ.ㅡ
아래 lica님의 설악산 공룡능선 등반글을 보니 예전 생각이 나네요.
당시 다니던 첫 직장을 그만 두고 설악산으로 도망간 적이 있었습니다.
회사를 그만 두게 된 사연은 예전에 시게에 쓴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전 확실히 그만 두는 것으로 정리했는데, 회사에서는 사직을 인정하지 않고 자꾸 출근하라고 종용을 하더군요. 그래서 같은 팀에 계시던 대리님에게 상의를 했습니다.
"김대리님, 아무래도 어디론가 도망을 가야겠는데 어디로 가면 좋을까요?"
"어, 설악산 같은데 좋지 않을까? 백담쪽으로 올라가서 중간에 산장에서 하루 자고 내려오면 여유있게 갔다올 수 있어. 백담사 올라가는 길은 산책로거든. 워크맨으로 음악 들으면서 올라가면 캬~~ 죽이지!"
그때는 핸드폰이 없었기 때문에 설악산으로 도망가면 팀장이나 사수가 집으로 전화를 해도 소용없을 거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김대리님이 알려주신 대로 설악산으로 가기로 했습니다. (김정주 대리님, 지금은 어디서 뭐하시는지...)
문제는 그때까지 제가 산이라고는 동네 뒷산 외에 도봉산 한번 올라가 본게 다라는 거였죠.
알려주신 코스는 백담 쪽으로 해서 오전에 여유있게 출발하면 중청인가 어디 산장에 오후 한 4시쯤 도착하게 되고 거기서 하루 자고 오색이나 설악동 쪽으로 내려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친구 하나와 같이 가기로 약속을 했는데, 이 넘이 정작 출발 며칠전 덜컥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어 결국 저 혼자 가게 되었습니다.
당일날, 상봉 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가려는데 차가 막 떠났더군요.
1시간을 더 기다려야 다음 버스가 출발한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가 접근합니다.
"아저씨, 설악산 가시면 봉고차타고 편하게 가시죠?"
"예? 봉고차요?"
"지금 손님 3명 타고 있는데, 아저씨가 타면 바로 출발합니다. 쭉쭉 뻗어서 편하게 갈 수 있어요."
버스보다 요금이 한 1,500원 정도 더 한답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그게 더 편할 것 같더군요.
그래서 그 아저씨를 따라가서 봉고차를 탔습니다.
(요즘 같으면 뭔가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었겠지요. 그때만 해도 세상이나 저나 아직 순진했나 봅니다.)
한참을 자다보니 내리랍니다. 여기가 어디냐고 물으니 '오색마을'이라네요.
오색마을은 예정에 있지도 않았고 어디에 붙은 동네인지도 몰랐던지라,
"아저씨 전 백담사 쪽으로 가는데요." 하니
"설악산 올라가는 길이 백담사밖에 없는 것도 아니고 어디면 어때요? 오색에서 올라가는게 더 빨라요."
하더군요.
하긴 뭐 어차피 혼자이고 특별히 정해진 코스로 갈 이유도 없다 싶어 그냥 내렸습니다.
그날은 오색마을 민박집에서 하루 묵으며 주변 약수터 등을 둘러 봤습니다.
선녀들이 목욕하던 동네라더군요. ^^
유유자적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아침 8시부터 산을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오르다보니 '도대체 내가 왜 이 짓을 하고 있나'하는 후회가 밀려 오더군요.
등산이라고는 해보지도 않은 놈이 11월달에 혼자 설악산을 오르노라니 정말 너무 힘들었습니다.
장비도 하나도 없고 뭘 준비해야 하는 지도 몰라서, 배낭에는 봄가을용 점퍼 하나 넣고 손전등 한, ABS 초콜릿 한봉지 넣어 온게 다였습니다. 수통 하나도 안가져 온 겁니다.
그나마 설악산에 눈이 와 있다길래 오색마을에서 아이젠 하나는 사서 챙겼지만, 신발도 등산화가 아니라 당시 유행하던 영에이지 캐주얼화를 신고 왔는데, 이게 바닥이 플렉시블해서 바위나 돌길 등을 오를 때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사진에 신고 있는 신발입니다...)
게다가 남보다 땀을 3배 이상 더 흘리는 놈이 물통도 안가져오고 오이 쪼가리 하나 안가져와서 올라가는 내내 엄청난 갈증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올라가다가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만 나면 가서 양껏 그 물을 마시고, 매점을 만나면 포카리스웨트 2깡통 사마시고 물 한바가지 추가로 퍼마시면서 올라 갔습니다. 페이스 조절하는 법도 몰라 조금 힘들면 쉬고 또 조금 가다 또 쉬고 하다보니 아무래도 정상에는 도저히 못올라 가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라가다보니 역시 땀을 엄청나게 흘려 파커재킷을 가방에 넣고 얇은 점퍼로 갈아 입었다가, 나중에는 남방셔츠도 벗어버리고 반팔 면티셔츠 차림으로 올라갔습니다.
도중에 그냥 내려가자 싶어 몸을 돌려보니, 제가 출발했던 곳은 보이지도 않고 지금까지 올라온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만 쉬고 있으면 나뭇잎 스치는 바람소리, 가끔 땅속으로 흐르는 물소리, 한적하게 날아다니며 짹짹거리는 새소리만 들리는 그 고즈넉함에 저절로 다시 올라갈 힘이 솟아나곤 했습니다. 내려오시는 분들이 "이제 얼마 안남았습니다. 힘내세요~!"하고 격려해 주시는 말들도 큰 힘이 되었습니다. 정말 얼마 안남은 줄 알고 올라가다가 속았다는(?) 걸 알고 허탈해 지기도 했지만요.^^ 적막한 산중에서 나뭇가지에 매어져 있는 리본 하나도 반갑기 그지 없었습니다.
그렇게 오르다보니 어느새 대청까지 올라가게 되더군요. 머리에 털나고 등산이라고는 선배들에게 떠밀려 도봉산 겨우 한번 가본게 다였는데, 혼자 설악산에 올랐다는게 스스로 참 대견했습니다. 나중에 친구들에게 미쳤다는 소리를 들어도 기분이 좋았습니다. 대청봉에서 컵라면을 하나 사 먹었더니 시간이 1시가 채 안되었습니다. 애초에 계획은 산장에서 하루 자고 1박2일을 하는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이른 시간에 도착해서 하룻밤 묵어간다는 계획은 이미 물건너 갔습니다.
그런데, 혼자 내려 가려니 길도 모르고 해도 짧아져서 중간에 날이 저물것 같아 하산길이 걱정스럽더군요.
주위를 둘러보니 젊은 남자 두사람이 눈에 띄었는데, 행색을 보니 산을 많이 다니는 사람들 같아 보였습니다. 그래서 설악산 많이 와봤냐고 물어보니 한 사람은 3번째, 다른 사람은 5번째랍니다. 두사람은 친구사이인데 대학원 다니고 있는 학생들이었습니다. 저보다 한 3살 정도 많았을 겁니다. 그래서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혼자 내려가기가 무서워서 그러니 같이 내려갈 수 있겠냐고 물었더니 흔쾌히 그러자고 합니다. 그리고 내려오다가 신혼부부도 함께 내려오게 되었는데, 신혼여행 중이랍니다. 신혼여행으로 등산을 왔다는게 신기했는데, 여자분 산 내려는게 완전히 다람쥐 수준이더군요.
저는 신발도 등산화가 아닌 일반 캐주얼화인데다가 바닥도 연질이었는데, 내려올 때는 쌓여있는 눈 때문에 아이젠을 장착했습니다. 올라갈 때 하도 물을 많이 먹어서 내려올 때 다리가 다 풀려 버렸는데, 아이젠 신고 바위를 밟고 내려오다가 발목이 꺾여 굴러 떨어질 뻔 하기도 했습니다.
내려오기가 올라가는 것보다 더 어려웠던게, 올라갈 때는 위를 쳐다보며 가니 땀이 흘러도 괜찮았는데, 내려올 때는 대청에서 구입한 설악산 지도가 그려진 손수건으로 머리띠를 만들어 맸는데도 땀이 그 손수건을 타고 넘어 자꾸 안경으로 떨어지면서 안경이 얼룩지는 바람에 앞이 안보여 더 위험하더군요.
결론적으로 함께 내려온 그 사람들 덕분에 무사히 내려올 수 있었습니다.
설악동 매표소까지 내려오니 시간이 7시가 훌쩍 넘어 캄캄하게 어두워 졌는데, 신혼부부팀 아저씨가 같이 내려온 것도 인연인데 회 한접시 사겠다고 해서 잘 얻어먹고 여관을 찾아 들어가니 정말 온 몸이 천근만근이고 발은 엉망진창이 되어 있더군요. 이름모를 여관에서 욕조에 물 받아놓고 몸을 담그고 있노라니 피로는 마구 밀려들어도 기분 하나는 참 좋았습니다.
아마 혼자 설악산 오르는게 그렇게 힘들다는 걸 알았더라면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그때는 참 세상 무서울게 없는 24살때라 정말 아무 생각 없었던 거죠.
그 후로도 등산은 거의 안했습니다. 몇년에 한번씩 다른 사람들에게 이끌려 도살장에 소 끌려가듯 가긴 했지만, 여전히 등산은 저에겐 너무 힘이 듭니다. 산에 많이 다니시는 분들은 설악산 한번 다녀온게 뭐 그리 대수냐고 하시겠지만, 사실 제 발목이 산에 오르기에 참 부적합하게 생겨서 오르막길을 조금만 걸어도 발목이 무척 아프거든요. 지금은 설악산에서 케이블카나 타면 모를까 점점 더 가기가 어려워 지네요. 아직까지 등산장비도 하나 없고...
산 잘타시는 분들 참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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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많은 생각을 가지고 설악에 다녀오셨겠네요. 산은 말없는 가르침이라고 합니다. 제가 아는 분 같았으면 11월에 그 채비를 해서 설악에 죽으려고 가느냐고 했겠습니다만, Guyver님처럼 올곧은 분을 산이 해꼬지 할 리가 없겠죠. 고생하셨지만 좋은 추억으로 남으신 것 같아, 그리고 이런 좋은 글을 읽게 해 주셔서 감사의 뜻으로 추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