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스포츠) 판을 바꾼 섹스 심볼, 안나 쿠르니코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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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나 쿠르니코바는 8세에 주니어 토너먼트에 출전하기 시작했다. 나가자마자 두세 살 더 많은 선배들을 쉽게 이겼다. 때는 90년, 안나의 잠재력을 아는 사람은 이미 알고 있었고, 로마의 한 대회에서 IMG 직원들이 접근했을 정도였다. 10세에 러시아에서 미국으로 둥지를 옮겼고, 에이전시와 정식 계약을 맺었다. IMG와 연결된 닉 볼리테리의 테니스 아카데미에 입성한다. 그녀는 이 유명 아카데미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외모로도 실력으로도 주의를 집중시켰다. 다음 세대의 슈퍼스타가 될 것임을 암시했던 것이다. 닉은 10세의 안나에 대해 회상한다. “타고난 미인에 카메라 앞에서 말하는 방법을 알고, 대중 앞에서 옷을 입는 방법까지 완벽하게 인지하고 있었죠.” “제 인생에서 마주한 최고 수준의 재능이었습니다. 진짜 물건이었어요. 이게 진짜인지 제 볼이라도 꼬집어봐야만 했으니까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코치 중 한 명이었던 그는 자신이 인정한 최고 수준의 재능에게 헌신했다. 명코치와 소녀의 유대관계는 꽤나 돈독했는데, 실제 그녀는 슈퍼스타가 된 이후에도 기회가 될 때마다 다음과 같은 감사를 표했다. “닉은 제 인생에 있어서 정말 중요한 전기를 마련해준 은인입니다. 그가 없었다면 지금의 전 없었을 수도 있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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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쿠르니코바가 미국에 도착하고 불과 3개월이 지났을 때, 14세 이하 주니어 탑 시드 선수들 중 상당수를 꺾어버렸다. 13세, 14세가 됐을 때, 이미 업계 관계자들에게 안나는 유명 인사였다. 그녀의 전 코치 중 한 명인 해롤드 솔로몬은 14세 때 그녀를 처음 봤다면서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긴 금발 머리를 뒤로 묶은 미소녀였어요. 뭐랄까,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즐기는, 조금은 으스대는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그녀는 마치 ‘알아요. 안다고요. 눈을 떼기 힘들 거예요. 전 대단한 물건이에요. 언제 폭발하느냐는 시간의 문제일 뿐이죠’라 온몸으로 말하듯 꽤나 도도한 자태로 코트를 누비고 다녔습니다.” 쿠르니코바는 14세에 18세 이하가 참가하는 오렌지 볼 토너먼트에 참가해 우승을 거뒀다. 대회 역대 최연소 우승자로 남아있다. 같은 해 ITF U-18 주니어 월드 챔피언과 U-18 주니어 유러피언 챔피언 대회에서도 모두 우승을 차지했다. 국내 최초의 테니스 아카데미를 연 서의호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특히나 여성부는 14세 때 국제대회에서 우승을 거두는 선수가 크게 성장할 가능성이 통계적으로 높다. 대표적으로 마르티나 힝기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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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싱글 4대 메이저 타이틀만 총 8개를 갖고 있는 테니스의 전설 팸 슈라이버가 말했다. “안나 쿠르니코바가 13세일 때 처음 봤어요. 재능을 타고났단 건 누구나가 알 수 있었죠. 그리고 97년, 프로로 전향(14세인 95년에 프로로 전향했다. 팸의 기억 오류)한 첫 해였던가요? 그녀가 보여줄 수 있는 진짜 경기력을 제대로 볼 수 있었어요.” 97년에 안나는 윔블던 4강전까지 진출했다. 슬프게도 이것이 메이저대회에서 이 정도의 성적을 거둔 마지막 순간이었다. 본인은 그 이유를 들며, 다음과 같이 푸념했다. “프로로 전향한 주니어 선수들은 나이에 따른 자격 규정(the Age Eligibility Rule)에 따라 14세부터 18세까지 최대 8개의 토너먼트 경기만 참가할 수 있습니다. 성장기의 어린 친구들은 여러 대회에 계속 참가, 본인보다 더 뛰어난 기량의 선수들을 맞이해 끝없이 배워야만 하는데, 저 규정으로 인해 성장에 제약을 받는 것이죠. 한 대회와 다른 대회의 텀이 두 달이 되는 걸 생각해보세요. 특별한 부상도 없는데 말이죠. 멍하니 연습장에서 연습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에 저도 그랬고요.” 참고로 로저 페더러는 현재까지도 the Age Eligibility Rule을 완화하는 걸 강력히 주장한다. “어린 재능의 경기를 더 보고 싶습니다. 어린 친구들은 더 많은 경험을 쌓기 위해 더 많은 경기에 참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르티나 힝기스의 경우(참고로 힝기스는 앞선 룰이 생기기 전에 프로에 데뷔했고, 덕분에 사후 소급적용이 되지 않았다)를 상기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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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많은 사람들이 안나 쿠르니코바를 두고 재능에 따른 기대치를 충족시키는데 실패한 선수로 기억하고 있다. 앞선 결과를 야기한 가장 큰 이유로 그녀의 어머니 알라 쿠르니코바의 존재가 꼽힌다. 닉 볼리테리가 말한다. “어린 안나에겐 그녀의 인생을 살 여지가 조금이라도 필요했습니다. 선수로서만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말이죠. 그런데 그녀의 어머니는 언제나 딸 옆에 있었습니다. 기상->아카데미->연습->집. 이것이 반복이 됐죠. 덧붙여 알라만의 테니스 교육법이 있었는데, 제가 안나를 맡았을 당시 그녀는 어린 선수라 아무리 재능이 뛰어날지언정 고쳐야 할 부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녀는, 사실상 알라는 자신의 방식을 고수했습니다. 제가 그녀의 딸에게 들어갈 수 있는 여지는 애초 한정적이었단 소리입니다.” 해롤드 솔로몬은 알라에 대해 굉장히 비판적 자세를 보인다. “안나는 프로로 전향한 후 아카데미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들 가족은 마이애미로 갔습니다. 그녀의 어머니가 자신의 딸을 전담해 교육했던 소리입니다. 사실 알라는 안나가 어렸을 때부터 큰 꿈을 품고 있었습니다. 테니스 선수로서 승리자를 만드는 것보다 더 큰 꿈, 온갖 커머셜과 연예 활동까지 넘나드는 종합 스포츠 엔터테이너로서 자신의 딸을 만드는 것이었죠. 실제로 욕망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종종 우리에게 ‘어떻게 하면 자신의 딸이 그런 새로운 유형의 슈퍼스타가 될 수 있을지를 고민해보자’라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안나 쿠르니코바의 가족이 원했던 바, 성적과는 상관이 없이 안나의 경기엔 많은 관중이 몰렸다. 마치 록스타들을 향해 맹목적으로 구애를 펼치는 그루피들처럼, 숱한 남성들이 온갖 성적 농담까지 내뱉으며 안나를 따라다녔다. 파파라치는 언제 어느 때고 그녀의 곁을 맴돌았다. 10대 소녀가 견뎌내기에 그리 쉬운 환경은 아녔다고 생각한다. 테니스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면 몰랐으련만, 잠재력을 만개시키기 전부터 이미 연예계와 커머셜까지 바쁘게 오가던 상황에서 모두를 갖기란 욕심이었다. 안나 본인이야 가외 활동이 테니스로부터 자신을 멀어지게 만들지 않았다고 하지만 말이다. 닉 볼리테리는 “사람의 성장엔 때가 있습니다. 안나에겐 10대 중반 이후 기량에 있어서 발전시켜야만 할 영역이 있었습니다.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했죠. 전 알라 쿠르니코바가 그에 적절한 능력을 지닌 사람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결국 당사자의 몫이다. 10대 중반 소녀가 그런 중대한 결정을 내리기에 충분히 독립적인 존재인가를 따져보긴 해야겠지만 말이다. “엄마는 제게 최선을 다했습니다. 물론 그녀가 생각한 방식대로 말이죠. 어찌됐든 당시 저에겐 꼭 필요한 존재였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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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과연 안나 쿠르니코바는 닉 볼리테리 등이 말한 것처럼 테니스 선수로서 거대한 재능을 갖고 있었을까? 한두 번 우승하는 게 아닌, 여러 차례 싱글 부문에서 그랜드슬램을 차지할 정도의 재능 말이다. 안나가 프로로 전향했을 때를 보자. 20세기의 테니스 여제 슈테피 그라프가 아직 2차 전성기에서 완전히 내려오지 않던 중이었다. 여자 테니스판의 90년대 중후반을 거의 완벽하게 장악한 마르티나 힝기스는 빠르고 많이 뛰며 동시에 대단히 예리한 샷을 영리하게 보낼 줄 아는 천부적 재능을 보여줬다. 린제이 데이븐포트와 함께 여성 테니스판에 파워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게 될 윌리엄스 자매도 등장했다. 다이나믹하고 완성도 높은 스트로크를 자랑한 쥐스틴 에냉도 같은 세대 선수였다. 이들 중 어느 누가, 아니 어느 한 명이라도 안나보다 재능이 떨어졌던가.

간단하게 말해 이뤄지지 못한 가능성에 대한 아쉬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단 얘기이다. 아니 그럴 수 있단 것이다. 그래서 ‘내 딸은 유년 시절과 프로 전향 전 주니어 시절 정도에만 테니스에 올인하고, 나머지 기간은 가외 활동과 병행한다’란 알라 쿠르니코바의 계획과 여기에 대해 별다른 반항을 하지 않았던 안나 쿠르니코바의 행보는 대단히 영악하고 현명한 선택이었을 수 있다.
다음은 많은 이들이 부정하고 싶은 불편한 진실일 것이다. 테니스 선수로서의 실력이나 업적에 있어서 안나 쿠르니코바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치 위대한 선수들인 마르티나 힝기스와 린제이 데이븐포트 또 비너스 윌리엄스와 쥐스틴 에넹(21세기 여제인 세레나 윌리엄스를 제외한 동세대 선수들만 선별했다)의 순자산(기관별로 차이가 있다)이 얼마인지 아는가. 힝기스는 대략 303억 원, 데이븐포트는 대략 243억 원, 비너스는 대략 911억 원, 에넹은 대략 170억 원이다. 커리어 WTA 싱글 우승기록은 힝기스 43회(메이저 타이틀 총 5개. 2017년 은퇴), 데이븐포트 55회(메이저 타이틀 총 3개. 2010년 은퇴), 비너스 49회(메이저 타이틀 총 7개. 현역), 에냉 43회(메이저 타이틀 총 7개. 2011년 은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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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안나 쿠르니코바의 순자산을 알아볼 차례이다. 안나의 순자산은 약 607억 원이다. 그녀의 커리어 통산 WTA 싱글 우승기록은 0회다. 0. 97년 윔블던 4강까지 진출한 게 메이저대회에서 가장 높게 올라간 기록이다. 커리어도 사실상 03년도에 끝이 났다. 이후 코트에서 완전히 떠나게 되는 07년까지 이벤트 대회에나 출전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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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 쿠르니코바의 전 코치 중 한 명이었던가, 일전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안나가 프로에 데뷔한 이후부터 한 살씩 나이를 먹을 때마다 그 입는 의상이 점점 짧아졌습니다. 전 그녀에게 걱정 반 진담 반으로 ‘내년엔 완전히 벗고 다녀야 할지도 모르겠군’이라 말했습니다. 그녀가 뭐라고 답했을까요. ‘당신의 꿈속에선 가능할지도요’였습니다.” 난 그녀가 자신의 최고의 무기가 무엇인지, 아니 대중이 그녀로부터 무엇을 가장 원하고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미 10대 시절부터 말이다.
여담으로 에냉이 여자 테니스판에서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한 00년대 초반, 업계 관계자가 다음과 같은 말을 했던 걸 기억한다. “에냉은 잘합니다. 아주 좋은 선수예요. 하지만 안나 쿠르니코바보다 많은 돈을 벌 순 없을 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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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어쩌면 안나 쿠르니코바는 슈테피 그라프나 세레나 윌리엄스보다 여자 테니스판에 아니 전체 여자 스포츠판에 더 많은 변화를 가져다줬을지도 모르겠다. 바로 상업성의 추구란 측면에서 말이다. 안나가 남긴 가장 완벽한 유산은 마리아 샤라포바이다. 샤라포바는 안나보다 훨씬 좋은 워크에틱을 지녔고, 해서 더 좋은 재능을 갖고도 그것을 만개하는데 성공했으며, 쇼 비즈니스와 깊은 유대관계를 지니면서 동시에 커리어를 길게 끌고 나가는데 소홀함이 없었다. 커리어 WTA 싱글 우승기록은 36회, 메이저 타이틀은 총 5개이다. 지금까지 모은 대회 상금은 약 468억 원, 그녀의 순자산은 약 2,370억 원이다. 이제 21세기 여제 세레나 윌리엄스가 나올 차례다. WTA 싱글 우승기록은 72회, 메이저 타이틀은 총 23회이다. 지금까지 모은 대회 상금은 약 1,100억 원, 그녀의 순자산은 약 2,180억 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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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스포츠계에 있어서 뛰어난 재원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테니스계, 어린 친구들은 과연 누구의 후계자가 되길 꿈꾸며 운동을 하고 있을까? 사실 이 질문은 전체 스포츠판에 해당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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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어떤 남성과 호텔에서 정사를 하는데 워낙 소리가 크고 거칠어서 화제?가 되었던 선수가 있었다고... ;;
(확실한 기억이 아닐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