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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구텐베르그 금속활자는 교황 사절단이 한국을 방문한 후 얻은 기술

별똥별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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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8-25 13:16:18

엄청난 말이죠. 그런데 이 말의 출처가 국뽕 찌라시가 아니라 마국 부통령 앨 고어가 한 발언입니다.

 

 

“구텐베르크의 금속활자 인쇄는 한국에서 건너온 기술에서 비롯된 것이다.” 2005년 ‘서울디지털포럼’에 참석한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의 이 말은 국내·외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고어는 “스위스 바젤 인쇄박물관에서 1377년 제작된 ‘직지심체요절’이 금속활자로 인쇄된 가장 오래된 서적이며, 한국이 구텐베르크의 1455년 인쇄술 발명을 78년 앞당겨 세계사를 다시 쓰게 되었음을 알게 됐다”고 했다.

그는 "독일의 구텐베르그가 인쇄술을 발명했다고 주장했지만 사실 서양의 교황사절단이 한국을 방문한뒤 얻어온 기술"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박병선박사님의 연구로 프랑스 국립도서관 구석에서 먼지를 맞고 있던  직지심체 요철이 구테베르그 금속활자보다 78년이나 앞선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라는 것을 증명하였습니다.

 

하지만 여기까지였죠. 직지는 한계는 분명했습니다. 

고려시대 고활자 주조법은 대략 2가지로 구분됩니다. 그 하나는 고운 모래(뻘흙)를 이용한 주물사주조법이고 또 다른 방법은 밀랍을 이용한 밀랍주조법입니다. 이 방식은 완성도가 떨어지는 방식으로 알려져있씁니다.   주조를 제대로 하지 못하여 글자획의 굵기와 가늘기가 일정하지 않고, 어떤 글자는 기울어져 있고, 각 열이 곧지 못하고, 삐뚤빼뚤하고, 어떤 글자는 희미한데다가, 획수의 일부가 제대로 찍히지 않았으며, 어떤 데는 윗열의 글자와 아랫열의 글자의 획이 맞물려 있는 등 조잡한 오류가 많습니다. 이런 문제는 세종 때 갑인자가 조조되기 전까지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한글 활자.jpg

또한 잉크 기술이 떨어졌고 활판과 종이를 조여주는 프레스 기술이 부족해서 대량 인쇄에는 비효율적인 방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직지를 최고 금속활자로 인정하지만 본격적인 금속활자인 프레스 방식은 구텐베르그 기술에서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직지심경에 대한 또다른 비판은 한국의 전근대 사회에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요하네스 구텐베르크의 활판 인쇄기가 발명된 후 약 50여 년간 유럽 전역에서는 2천만권 이상의 책이 인쇄되었고, 1500년대 초반 50여 년간에는 독일에서만 6천만권 이상의 책이 인쇄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는 당대 유럽의 지성 세계뿐만 아니라 일반 대중 사회에도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으며, 종교개혁과 대항종교개혁같은 급진적인 사상적 발전을 이끌어낸 배경이 되었다. 반면 한국에서 금속활자로는 하나의 책에 대해 적게는 10부, 많아야 80부 정도의 책을 인쇄하는데 그쳤으니 큰 반향을 이끌어 내었다고는 하기 어려울 것이다.

- 나무위키-

 

그런데 말입니다.

앨 고어가 구텐베르그 금속 활자가 교활사절단에서 한국을 방문한 다음 얻어낸 기술이라는 파격적인 발언을 한 것이죠. 한국에서 "직지코드"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당시 교황이 있었던 프랑스 아비뇽, 교활청들 다양한 장소를 방문하면서 직지와 구텐베르그 활자의 연관성을 조사합니다.

 

앨 고어의 발언인 "구텐베르크가 고려의 금속활자 설계도 및 아이디어를 전해 받았다"고 했다는 정보가 스위스 추딘 박사(전 스위스 바젤 종이박물관 관장)에게서 나왔음을 확인합니다. 

 

구텐베르그 초상화를 보면 그는 동양풍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게다가 활자주조기가 고려의 주물사주조기구와 흡사했습니다. 

구텐베르그.jpg

구텐베르그와 고려 금속활자와의 연결고리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는 다음 조사로 발견됩니다. 대구MBC 보도국 마승락 기자의 "구텐베르크, 고려를 훔치다."에서 나오는 내용을 인용해드립니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교의 활판인쇄전문연구원 올리비에 드로니용 박사를 만났고, 그의 연구 결과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드로니용 박사는 구텐베르크가 최초로 인쇄한 42행성서를 3D전자현미경을 이용하여 인쇄표면을 조사했으며, 그 결과 모래 알갱이 흔적을 발견했다. 이는 42행성서를 인쇄한 활자가 주물사주조법(鑄物砂鑄造法)으로 만든 활자를 이용했다는 증거이다. 또 42행성서 중 같은 페이지에 인쇄된 글자 ‘a’들을 조사해 본 결과, 그 모양과 형태가 각기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다. 드로니용 박사는 이 결과 역시 주물사주조법으로 만든 활자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말한다. 즉 구텐베르크는 고려의 주물사주조법으로 만든 활자를 이용해 서양 최초의 인쇄물 42행 성서를 인쇄한 것이었다. 

교황청 사료에서 또 하나의 재미있는 문서를 찾아냅니다. 로마 교황 요한 22세가 꼬레의 수케왕에게 보낸 편지에 베이징에 보내는 새 주교를 잘 부탁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꼬레의 수케왕이라면 고려의 충숙왕일 가능성이 높다는 가설이 등장힙니다. 하지만 편지의 내용으로는 꼬레가 로마와 베이징의 중간에 위치해있어 고려일 사능성은 낮은 것으로 결론이 납니다. (이 이야기는 김진명의 소설 직지에 나온 내용입니다.)

 

이상에서 상상력을 동원해보면 고려에서 발견한 금속활자 기술이 구텐베르그까지 전달이 되었고 이 기술이 중세 서양 세계의 변혁하는 기폭제로 사용되었다는 것이죠. 이것을 증명할 수는 없으나 가능성이 없다고는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중국도 어떻게 해서든 '직지심체요절' 이전의 금속활자본을 찾으려 눈에 불을 키고 있지만 발견 못하고 있죠. 1103년 발행된 '불설관무량수불경'(佛說觀無量壽佛經)을 금속활자본으로 주장했으나 금속활자가 아니라 찰흙활자가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후 1341∼1345년 사이에 인쇄된 어시책(御試策)이 금속활자본이라 주장했으나 일본 정가당(靜嘉堂) 문고에 소장된 어시책의 원본을 확인한 결과 1341년 편찬된 목판본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중국으로서는 중국 금속활자 기술이 조선에 전파되었다고 주장하고 싶겠죠. 하지만 고려 활자의 구텐베르그와의 연관성이 높을 수록 중국이 끼어들 자리는 희박해지고 있습니다.

 

앨 고어는 금속활자에서 세계에 영향을 끼친 한국이 이제는 디지털에서 동일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문자와 기록에 미쳤던 조상님의 DNA가 내려왔기에 오늘날 한국의 위상이 있습니다.

 

 

 

 

PS. 저출산 문제만 어떻게 좀 ㅠㅠ  

별똥별집사 님의 서명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살아가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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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가짜눈섭
2
2021-08-25 04:19:42

얼마전 김진명작가의 '직지' 재밌게 읽었습니다

WR
별똥별집사
2021-08-25 04:44:14

저도 오랜만에 소설 잘 읽었습니다. 한글과 금속활자를 반대하는 기득권에 대한 통찰이 의미가 있었습니다.

역사 + 스릴러 + 썸 조합이 좋았고요. 

경운기풀옵션
3
2021-08-25 04:19:58

좋은글 감사합니다

WR
별똥별집사
2021-08-25 04:44:34
구텐베르그 금속활자는 교황 사절단이  한국을 방문한 후 얻은 기술감사합니다.
왕뚜꺼비
7
2021-08-25 04:20:36

엘 고어 대통령 할 인물이었죠. 아프리카 추장 뽑기만도 못한 추악한 미국대선 시스템의 희생양...

Listener
4
Updated at 2021-08-25 05:10:17

환경주의자인 앨 고어가 클링턴 다음으로 미대통령이 되었더라면, 

지구온난화에 대한 대책들이 현재보다 훨씬 더 앞서서 광범위하게 시행되었을 겁니다...구텐베르그 금속활자는 교황 사절단이  한국을 방문한 후 얻은 기술

WR
별똥별집사
3
2021-08-25 04:28:49

앨 고어가 예견한 지구 온난화가 지금 일어나고 있죠. 대통령,부통령 통털어서 학문적으로는 가장 뛰어난 사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왕뚜꺼비
1
2021-08-25 04:36:35

너무 똑똑하고 말잘해도 문제라는 거 보여준 정치인이기도 하죠... 고어와 부시의 대선후보 티비토론은 사회과학 쪽에서 활발하게 연구대상이었습니다. 분명 토론은 어버버 부시를 고어가 완벽하게 쳐발랐는데 이상하게 타비토론 후 여론조사하면 부시가 지지율이 올라갔죠. 그렇다고 고어가 거들먹거리거나 싸가지없는 태도를 보인 것도 아니었고 외모야 보시다시피 훌륭하고 목소리도 차분명료했는데 거참...

오렌지G
2021-08-25 10:12:08

저도 그 관련 글 조금 읽어봤었어요. 

이게 연관되서 보면 지금 보리스 존슨 영국총리가 자유로운 머리 스타일에 약간 어벙한 이미지가 먹히는 것과도 비슷한듯 합니다.

이튼스쿨 옥스퍼드에 상류층 출신인 그가 굉장히 서민적인 이미지로 보이는 효과가 있는거 같아요.

반대로 엘고어는 너무 엘리트 이미지고 마찬가지로 엘리트 집안인 부시가 상대적으로 어벙해 보였었어요.

이러하다 해도 왜 지지율이 그랬는지 이유는 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정치는 참 희안합니다.

WR
별똥별집사
2021-08-25 10:17:42

대중의 인식을 얻어야 하는데 결론적으로 매력이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관련한 이론이 있는데 나중에 소개해드릴게요.

루피만세
1
2021-08-25 04:21:58

기억으로는 '직지' 라는 소설이 위 내용을 근거로

소설 쓴 걸로 기억해요.. 

WR
별똥별집사
2021-08-25 04:45:08

직지코드에서 나온 자료를 기반으로 쓴 것 같아요.

작은울림
5
2021-08-25 04:24:43

김진명은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아서 말입니다 구텐베르그 금속활자는 교황 사절단이  한국을 방문한 후 얻은 기술

WR
별똥별집사
2
2021-08-25 04:27:25

지금 쓴 내용은 로마교황청 편지의 연구(고려 충숙왕이 아니다는 결론)외에는 김진명 소설과 별개로 조사한 자료입니다.

작은울림
2021-08-25 04:30:55

뉍, 알고 있습니다.

본문에 김진명 이야기가 나와서 한 말씀드린겁니다.

마니73
1
Updated at 2021-08-25 04:34:40

이 외에도 한국을 포함하여 동양에서 먼저 만든것이 많았지만 왠지 잘 활용하지 못했습니다. 왜 그럴까가 항상 궁금합니다. 어떤 책에서 그러더군요. 동양에서 화약을 발명했지만 그걸로 불꽃놀이를 즐겼고 , 서양은 전쟁에 도입해 역사를 바꿨다고요.  

WR
별똥별집사
1
2021-08-25 04:46:30

아주 가끔 세종같은 분이 나왔지만 유고, 성리학적인 세계관이 실용주의와는 동떨어져있었죠. 

세피롱
1
2021-08-25 05:01:09

분명 중국에도 우리나라 고려시대보다 더 이른 시기에 만든

금속활자던가 뭔가가 있었을겁니다.

자기손으로 다 불태워서 지금 하나도 안남아 있겠지만요. 구텐베르그 금속활자는 교황 사절단이  한국을 방문한 후 얻은 기술

 

WR
별똥별집사
Updated at 2021-08-25 05:03:14

김건모가 부릅니다. 핑계^^

인기배우
3
2021-08-25 05:42:28

우리에겐 고려 이전에 고구려도 있었고 고조선도 있었죠.

과거 중국이 우리보다 모든 면에서 앞섰을 거라고 단정하는 건 또 다른 식민사관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보수적인 전제하에 상식적인 가정으로 청출어람이 나왔을 수도 있죠.

WR
별똥별집사
2021-08-25 06:03:56

고려 초기 금속활자는 목판인쇄보다 더 불편했다고 합니다. 금속활자가 막 발생한 시점으로 보이고 이때 중국은 없었을 가능성이 있는거죠.

maple
1
2021-08-25 06:03:29

"하지만 편지의 내용으로는 꼬레가 로마와 베이징의 중간에 위치해있어 고려일 사능성은 낮은 것으로 결론이 납니다." --> 배를 타고 오는 것 기준으로 이탈리아-꼬레-중국 순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

WR
별똥별집사
Updated at 2021-08-25 06:07:48

해상로로 가면 가능성은 있겠군요.^^ 

시네마토그라프
Updated at 2021-08-25 08:12:26

불가능한 가설인게, 그 당시 서양은 아직 바닷길을 통해 중국으로 오는 길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희망봉을 거쳐 인도까지 도착한게 1497년에서 1499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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