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크] '올드폐인'이 쓴 올드보이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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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안 보신 분들은 이 글을 읽으셔도 좋다고 할 줄 알았죠라고 할 줄 알았죠가 아니라 읽어도 됩니다.안 됩니다. 됩니다. 안 됩니다(됩니다,안 됩니다를 1121번째 반복했을 때의 결과대로 읽으시오! 그렇게 안 하면 나야 모르지!)
OLD BOY-한국영화사상 전무후무할 컬트영화!
한 남자가 영문도 모른 채 사설 감옥에 갇힌다. 그리고 15년의 세월을 송두리째 빼앗긴 채 세상으로 풀려난 남자는, 몸뚱아리 하나로 복수의 길을 떠난다. 영화 ''올드보이''는 그러한 복수의 내면을 찢고, 자르고, 부수어 보지만, 끝내는 물음표로 맺어지는 영화다. 마치 함부라비 법전의 한 구절을 영화화한 듯한 이 영화는, 두 시간 내내 피로 범벅이 된 복수의 단면을 아낌없이 선보인다. 코를 막고 싶을 정도로 지독하게 풍겨오는 피냄새는 ''복수심''이 인간의 원초적 본능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본능은 본래 소름 끼치도록 잔인한 것이 아니던가. 한 가지 우스운 건, 이러한 영화의 화법이 관객들에게 "정말 끝내주게 끔찍하지? 그러니까 입조심들 하고, 함부로 복수하지 말거라." 라고 어머니가 자식에서 훈계하는 것처럼 들린다는 것이다. 영화는 사사로운 복수의 부당함과 말 한 마디의 중요성을 너무나 잔인하게 웅변하고 있지만, 덕분에 나는 기존 영화보다 묵직한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올드보이는 놀랍게도 한국영화가 이제껏 밟아보지 못했던 금기의 영역을 스스럼없이 무너뜨리고 만다. 그러나 그러한 금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식으로 끊임없이 질문하고 질문할 뿐, 굳이 매듭지으려 하지 않는다. 과장일 수도 있지만, 나는 이것이 바로 올드보이를 걸작임을 주저하지 않게 만드는 무서운 힘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러한 금기를 몇몇 소설이나 구전설화에서 다루어지긴 했지만, 영화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기란 처음이었다.그렇다면 이러한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나는 그 무엇보다도 한국영화의 질적인 발걸음이 아닌가 싶다. 불과 몇 년전만 해도 시류에 편승해 졸속제작된 조폭영화들이 판을 치지 않았던가? 일부에선 홍콩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몇몇 뜻 있는 영화인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우리 영화계는 조금씩 활력을 되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 끝에 ''올드보이''와 같이 대담한 주제를 담아내면서도 재미와 깊이를 갖춘 웰 메이드 영화들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올드보이''를 연출한 박찬욱 감독은 말했다. "올드보이는 과잉의 영화다." 정말 그렇다. 음악에서부터 영화 곳곳에 숨어있는 화려한 프랙탈 이미지와 힘이 잔뜩 들어간 스토리텔링까지, 과잉의 화염이 시종일관 넘실댄다. 하지만 전작 ''복수는 나의 것''의 그 찬탄할만한 낯설음에 비하면 그러한 과잉은 새발의 피도 못 된다. 조금만 더 고민했더라면 사상 유례없는 과잉의 에너지를 뿜어냈을 것이다. 그런데 그 무엇보다도 감탄할만한 것은 탄탄한 시나리오와 빼어난 연기 앙상블이다. 동명의 일본만화를 각색했다는 시나리오는 긴장과 이완을 절묘하게 오가고 있으며, 살아 꿈틀거리는 캐릭터는 물론 번득이는 대사까지, 한 권의 책으로 나오더라도 전혀 손색이 없다. 그리고 15년을 잃어버린 남자가 느낄법한 무궁무진한 감정들을 징그럽게도 완벽히 소화해낸 최민식의 연기는 더이상 말이 필요없다. 그동안 유들유들한 이미지에 갇힌 듯, 늘 미숙한 인상을 주었던 유지태는, 광기와 상처 받은 내면을 동시에 아울러야 하는 이우진 역을 경이롭게 연기해 내며 몰라보게 탈바꿈했다. 또한 미도 역을 맡은 강혜정은, 전혀 주눅들지 않는 당당한 연기로 나이를 의심케 할 정도다.
영화 말미에 이르러 모든 것이 마무리될 즈음에 남자는 깨닫는다. 자신이 ''무심코''한 일이, 자신이 ''무관심''했던 일이 인간의 내면을 얼마만큼 황폐화시키는가를. 그래서 영화는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삶의 처절한 비극성을 똑똑히 보여주는 풍자극으로도 읽힌다. 이처럼 관객으로 하여금 다양한 해석과, 즐거운 사색을 하도록 이끌어주는 힘, 그 힘이 바로 영화라는 매체의 진정한 마력이 아닐까?
<한마디 더!>
1. 올드보이를 사투리 버전으로 만든다면?
(표준어) 사랑해요, 아저씨
(경상도) 내아를나아도! 아저씨
2. "단 한명의 관객을 위해서라도 영화는 틀어줘야 되는거 아닙니까?"
''바람난 가족''에서 봉태규가 당당하게 내뱉던 말이다. 나는 이 대사가 다양함에 목말라하는 관객들의 마음을 위풍당당하게 대변해 준 거 같아 속이 시원했다. 나는 요즘 재밌고 익숙한 영화보다는, 올드보이나 여섯개의 시선처럼 독특하고 지적인 영화를 보고 싶다. 하지만 그러기엔 우리나라 극장문화는 너무나 획일적이다. 관객이 제법 든다 싶으면 온통 그 영화만 틀어댄다. 이건 식당주인이 손님이 오기도 전에 밥상을 차려놓는 꼴불견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서울로 달려가 힘차게 외치고 싶다. 김건모의 ''핑계''를 틀어놓으면서...
"영화관계자분들! 제발 좀 입장 바꿔 생각합시다!"
3. 올드보이의 반전은 분명히 때묻지 않은 사람들에겐 일생 최대의 충격일 것이다. 하지만
더욱더 충격적인 반전은 내가 미성년자임에도 이 영화를 보았다는 것이다(올해 고등학교 입
학). 내가 자주 이용하는 어느 극장은 신분증 확인절차도 없다. 시대를 앞서간(?) 얼굴 덕분
에, 사람들은 내가 교복 입을 땐 반말하고, 사복 입으면 존대말한다. 현재 나는 복수는 나의
것, 오아시스, 지구를 지켜라 등 작품성 있는 성인(?) 영화들을 모조리 휩쓸고 있다. 단순히
재미로 보는 게 아니라 지성을 살찌우기 위해 보고 있다. 열심히 공부하고 틈틈이 영화평론을
쓰면서 훌륭한 시나리오 작가나 영화 평론가가 되겠다.
(쓸데없는 소리 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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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이제 대한민국 영화사는 올드보이 이전시대와 이후시대로 나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