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사라진 시간(강력한 스포)
자연은 늘 정직하다. 아니 한결같다. 자연스럽다는 말이 자연을 설명할 가장 좋은 단어가 아닐까?
영화는?
영화도 자연스러운 것들이 있다. 하지만 영화가 자연은 아니잖아. 이야기라는 게 자연처럼 정직하고 한결같고 자연스러울 필요가 있을까?
이 영화는 영화를, 스토리를 바라보는 우리의 관습에 의문을 던지는데 큰 의미와 재미가 있다고 느껴졌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한다면 너무나 흥미롭고 깊이 있는 작품이 될 것이고 질문 자체를 헛소리라고 생각한다면 도무지 말이 되지 않는 이야기로 남고 마는 영화이다.
내가 나로 살아간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나아가 산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이 영화에 등장하는 수혁과 이영 부부처럼 어느 날 불의의 사고로 죽을 수도 있는 불확실한 삶을 살아간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아니 삶이 의미가 있는 것일까?
내 모든 기억, 내 모든 경험과 궤적들을 증명하는 모든 것이 사라지고 딱 하나 연결되지 않는 과거의 전화번호 하나 딸랑 남아 있다면 내가 아닌 나로 살아간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나라면 그냥 콱 죽어버릴 듯 하다. 도무지 의미가 없는 삶을 살아가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아니 살아갈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형구 역시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속내를 이야기하고 나서는 곧바로 상대방(초희)에게 미안하다는 사과를 한다.
불의의 사고로 죽음을 맞이하기도 하는 무의미해 보이는 삶일지라도 살아있다는 사실만으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서 살아야만 하는 삶일지라도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지금의 삶을 살아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형구와 같은 처지에 놓인다면 죽음을 스스로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삶에 대한 의지가 높은 형구는 자살 보다는 타살을 통해, 존재하지만 부정하고 싶은 삶을 되돌리려 한다.
형구에게 살인이란 범죄를 밝히고 범인을 잡는 일을 했던 자신이 저지를 수 있는 최고로 끔찍한 행동일 것이다, 자살 다음으로.
그런 행동마저도 허무한 결과로 이어지고 마지막 희망이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꾼 그날 밤의 송로주를 진탕 마셔도 변화지 않는 현실을 맞이하게 되는 형구는 아이들이 함께 읽어주는 매일매일 힘을 주는 말들을 듣고 자신이 존재하는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래, 선생님 부부도 꿈이고 형사로서의 삶도 꿈이었을 거야. 나는 많이 아팠으니까.'
그렇게 실존을 받아들이는 순간 자신은 더 이상 아프지 않게 되고 밤마다 다른 사람이 되어서 자신을 가둬야만 했던 그 쇠창살도 더는 필요 없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왔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에 만났던 뜨개질 선생님ㅡ초희와 재회를 하게 된다.
형구는 여전히 형사로서의 삶에 대한 실낱같은 집착을 버리지 못하지만 자신과 같은 아픈 병을 앓고 있는 초희를 위로하고 공감하며, 힘들고 괴롭고 아프고 놓고 싶더라도 삶이 존재한다면 그저 살아가야만 하는 게 인간으로서 한결같고 자연스러운 게 아닐까?라는 깨달음과 위로를 던진다.
영화는 자연이 아니지만 우리의 삶은 자연의 일부분이니까...
내가 걸었던 시장길은 선생님으로서 걸었던 길일까? 형사로서 걸었던 길일까?
사라져버린 혹은 빼앗겨버린 아이를 보고 싶은 형구는 엄마와 함께 걷는 아이에게 시선이 가고 여전히 그늘진 과거의 삶은 가슴 한 켠에 남아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내 그늘에서 벗어나 햇살이 닿는 곳, 앞을 향해 나아가며 실존하는 스스로에 대한 다짐 한 마디를 한다.
힘이 되고 또 힘이 되는 말,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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곱씹을수록 좋은 영화 같습니다. 마지막 대사의 의미가 더 명확하게 다가오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