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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반반 수필] 잊은 줄 알았던 기억 (02.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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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2-17 21:18:36
  • 배구 스타들의 학교 (학내) 폭력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지요. 대한민국 인터넷 커뮤니티란 알다가도 모를 곳이어서, 이 이슈가 과연 언제까지 이어질지, 어느 정도 파괴력을 가져올지 지금은 짐작조차 제대로 못하겠습니다. 이러다가 다른 이슈에 덮힐지, 아니면 다른 스포츠 영역, 혹은 연예계 영역, 아니면 더 멀고 넓게 퍼져나갈지 종잡을 수가 없습니다.
 
  • 사회적으로 이 이슈가 어느 정도까지 파장을 일으킬지 모르겠습니다만, 저 개인에게도 잊은 줄 알았던 옛 기억을 떠올리게 했네요. 다만 제 학창시절만 하더라도 학생들 간의 괴롭힘보다는 선생의 체벌이 아주 무섭고 심했던 시기라 다소 방향이 다르게 전개되기는 합니다.

  • 오늘 아침 다른 커뮤니티에 "지금은 상상도 못할 90년대 체벌"이라는 제목의 글이 추천을 많이 받은 글로 올라왔습니다. 데스크탑으로 보지 않고 모바일로 보아서 사실 본문 내용이 뭐였는지는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하나둘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학창시절의 상처들을 댓글로 이야기하는 것을 보자니 공감가는 글이 꽤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 생각하지 않았던 기억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 1996년 여름의 일이었습니다. 2018년 이전에 가장 더운 여름은 흔히 1994년이라고들 합니다만, 저 개인적으로는 1996년의 여름이 정말 무더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1996년 8월, 가장 무더운 시기 가장 온도가 높았던 오후, 우리 반 담임은 반 전원을 맨발로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 서게 했습니다.
 
  • 담임이 우리에게 "가혹행위"를 가했던 이유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보충수업이 끝나고 청소를 하는데 보니 우리 반 옆 화장실에 누가 책걸상을 빼놓았던 겁니다. "땡땡이"를 치면서 들키지 않게 하려 그랬었겠지요. 그래서 청소를 마치고는 예의 "어떤 놈이 그랬는지 아는 사람 불어"를 했고, 아무도 나서지 않으니 반 전체에게 책임을 물은 겁니다.
 
  • 이 사건에 대해 이제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건 "가혹행위"일 뿐입니다. 그 외에는 무엇이라고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 무슨 교육적인 이유가 담겨 있겠습니까? 그저 정보를 캐내기 위한 고문이며, 본인의 기분을 풀기 위해 자신이 가진 "권력"을 비합리적으로 사용했을 뿐이죠. 내가 기억하기로는 담임이 당시에 '범인'을 결국 알아내지 못했습니다.
 
  • 오늘날처럼 인터넷이 있었더라면, 스마트폰이 있었더라면 담임의 인생을 끝장내는 것은 정말 쉬웠을 겁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996년은 불과 몇 년 지나면 도래할 21세기와는 너무나 다른 세계였습니다. 3년 내내 광고에서 흘러나오는 팝의 가수를 알기 위해 노력한 일이 있었습니다. 친구 녀석이 신문을 보다 당시 유행하기 시작하던 컴필레이션 앨범 광고에서 그 노래의 제목을 손가락으로 짚어 주었을 때야 한 재즈 가수의 이름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랬던 시기에 교육청에 가서 무얼 한다, 법원에 가서 소를 제기한다, 헌법소원을 낸다 같은 "사회문화" 시간에 듣기만 했던 그런 얄팍한 지식은 행동으로 옮겨질 수 없는 미약함 그 자체였습니다.
 
  •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 흔한 동문회, 동창회 한 번을 나가질 않았다 보니 고등학교 시절 기억은 다 잊은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어딘가에 쓰디쓴 기억은 남아있고, 그 기억은 이제는 할아버지가 되어 있을 사람에 대한 적개심을 낳습니다.
 
  • 몇 년 전, 어린 조카를 잠시 돌보다 감정을 이기지 못하고 소리를 지른 적이 있었습니다. 곧바로 내가 잘못한 걸 알고서는 미안하다고 얘기를 했지만, 조카는 담아두고 있다가 한참 지나서, 전혀 생각지도 못한 때에 나에게 '그때 왜 소리 질렀어요?' 라고 조용히 물어보았습니다. 순간 가슴이 내려앉아 모든 정성을 다해 '그 일은 너의 잘못이 아니라 나의 잘못이었노라고, 어른들은 가끔 자기가 못난 것을 아이에게 화풀이할 때가 있노라고, 정말 미안하다고,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내가 물어볼 용기는 없지만, 그 아이가 그 기억을 잊었기를 바랄 뿐입니다.
 
  • 아마 내가 담임을 다시 만나게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만일 내가 그를 만나고 알아보게 된다면 그 일을 물어볼 수 있을까요? 그는 내가 조카에게 했듯이 사과할까요? 아니면 사내자식이 그런 일로 꽁해서 기억도 나지 않는 일을 '은사'에게 추궁한다 힐난할까요. 가슴을 꼬집던 여선생도, 중요부위를 만지고는 냄새맡는 흉내를 내던 할아버지 선생도 아닌,  그 "아스팔트" 사건이 가장 먼저 떠오른 걸 보면 그 사건이 내게 상처가 되긴 했던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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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까르고 : 〔2007. 10. 18 - 2020. 09. 16.〕 〔2020. 09. 23. ~ 2021. 03. 22.〕〔2021. 04. 08 - 〕
Mr.에스까르고 : (2020. 09. 16. - 09. 22.) 【Mr.기념 주간】
Mr. 에스까르고 : (2021. 03. 22. - 2021. 04. 07.) 【Mr. 투쟁 기간】
[주요 글] 일간 코로나-19, 주간 코로나-19, 반반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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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Updated at 2021-02-18 02:56:58

사과할줄 아는 용기와 양심은 신이 아무에게나 

허락하지 않는 능력이지요. 

어린 조카에게 좋은 말로 설명과 이해를 구하는게 정말 쉽지 않은 

일인데 감탄 했습니다. 

 

지금같은 고백들이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서 

우리 아이들이 더 안전한 환경에서 살아 갈수 있는 

계기가 될거라고 밑습니다.  

2021-02-18 02:31:23

그 담임이 미친놈이네요. 상처가 깊게 남았군요.

아이들을 키우면서 매를 들지 않겠다는 다짐은 지금까지 지켜왔지만, 가끔 버럭 소리를 지르며 주의를 주는 일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정말 무서워했습니다. 참 미안하고, 부끄러운 기억입니다. ㅠㅠ

다른 위치에 있는 사람이 보다 약한 위치의 사람을 공격하거나 압박하거나 심지어 이죽거리는 것 모두 폭력이라고 생각해요. 늘 조심해도, 아직 부족합니다.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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