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왜 과학이 어떻게 성립되는지 공부해야 하는가?
갑자기 떠오른 기억 때문에 답답함이 밀려오는지라 글을 씁니다.
예전에 가족 모임(얼마전에 썼던 글에 나온 그 가족모임이고, 그 글에 등장한 그분과 동일합니다.)에서 GMO관련해서 가볍게 언쟁이 붙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GMO를 어떻게 활용하는가가 문제가 될 수는 있지만 GMO자체에 위험성이 있다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므로 GMO자체를 금지하거나 GMO식품을 원론적으로 피해야 할 필요는 없으며, 환경이나, 섭취시 인체에 대한 유해성은 유전학적 관점이 아니라 생태론, 환경과학, 생화학, 식품과학 등 관련 과학적 측면에서 규명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분은 몬산토의 GMO를 이용한 제초제에 내성이 있는 곡물 종자의 개발이 환경에 불러온 재앙을 예로 들면서 GMO에 대한 반대가 정당하다는 입장이었고요.
그러나 '과학적'으로 사실을 조금만 살펴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GMO(Genetically Modified Oranism)는 우리가 알게 된 유전학적 지식을 이용해 표적 유전자를 변형시켜 목표한 유전적 형질을 획득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이미 자연이 수억년에 걸쳐서 무작위적으로 해오던 R&D를 더 목표지향적이고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만약 GMO가 위험하다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유기체가 위험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세상의 모든 유기체는 자연선택을 거쳐 끊임없이 유전자가 변형되어 온 진화의 산물이니까요. 그것을 인간이 더욱 선명한 목적성을 가지고 행했다고 하더라도, 자연이 행한 것에 비해 더 위험할 일도, 더 안전할 일도 없습니다. 단지 더 효율적일 뿐이죠. 그러나 하나의 유전자는 하나의 표현형에만 영향을끼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표현형에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의도하지 않았던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연에서 이루어지는 돌연변이를 통한 진화에서도 마찬가지죠. 때문에 우리가 섭취하는 비GMO 식품들이 GMO 식품에 비해 특별히 안전하지 않습니다. "네추럴리 데인저러스"라는 책에서는 유전자조작을 거치지 않은 재래종 식품이 가진 위험성(특히 발암물질 등)에 대해서 수 많은 사례들을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결국 어떤 식품이 장기적으로 안전하지, 안전하지 않은지에 대한 결정은 생화학적, 식품과학적 조사를 통해서 밝혀질 수 있고, 우리가 안전한 식품을 먹기 위해서는 재래종이든, 유기농이든, 아니면GMO든 모든 식품들이 안전성 검사를 거쳐야 합니다. 미국의 FDA나 한국의 식품안전처가 존재하는 이유는 바로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함이고, 잘 기능하고 있습니다. GMO가 사실상 극단적인 수준으로 안전하다는 증거는 이제는 GMO가 아닌 식품을 거의 찾아보기 힘든 일반적인 식품환경에서, 40년이 지난 현재까지 단 한 건의 문제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은 지난 번 그 가벼운 언쟁 중에, "너에게는 너의 신념이 있고 나에게는 나의 신념이 있으니 합의되지 않을 때는 그냥 서로 인정하고 넘어가면 된다"라고 말하더군요. 어떤 면에서는 맞는 말이지만 저는 이 이야기를 듣고 가슴이 콱 막히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세상에는 서로 충돌하는 수 많은 주장들이 있고 서로 합의되지 않을 때는 강요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일견 합리적인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제 셍각에는 이것은 그럴듯하지만 세상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 공허한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존재하는 수 많은 주장들에는 확실성의 격차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가장 확실한 주장 중 하나는 자연수의 산수 체계에 들어맞는 주장일 겁니다. 1+1=2라거나 2+3=5라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아마 "지구가 평평하지 않다"라든가, "관찰 가능한 모든 세계에는 열역학 법칙이 통용된다"는, 우리에게 늘 관찰되는 세계에서 한 번도 반례를 발견할 수 없었던 경험법칙들이 있을 겁니다. 논쟁의 여지가 있는 주장들에는, "비타민C를 충분히 많이 섭취하면 만병통치약과 같다"라는 주장이나, "외계인이 존재할 수 있다"와 같은 주장들이 있을 수 있고, 우리가 아는 수 많은 정량화가 힘든 사회, 인문과학적 주장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GMO가 비GMO에 비해 특별히 위험하지 않다는 주장은 얼마나 확실한 주장일까요? 만약 우리가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자연계 생물 교과를 충분히 이해했다면, 그리고 유전자가 표현형을 만들어내는 작동방식을 초보적인 수준에서나마 충분히 이해했다면, GMO가 비GMO에 비해 더 위험하다는 생각은 거의 넌센스에 가깝게 느껴질 겁니다. 왜냐하면 두 과정은 한쪽이 무작위적이고, 한쪽은 작위적이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근본적으로 동일한 과정이며, 작위적이냐 무작위적이냐가 안전성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증거'는 고사하고, 어떤 '그럴듯한 이론'조차도 제시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실들을 종합할 때, GMO가 특별히 더 위험할 것이 없다라는 주장은, 공중에 돌을 던져서 상승한다음 낙하하는 물체의 지면충돌시 최종 속도가, 동일한 고도에서 그냥 떨어뜨린 물체의 최종 속도와 동일할 것이라는 정도의 확실성을 가진 주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들을 알아내기 위해서 과학저들은 수많은 실험을 하고, 재현가능성이 있는 단 하나의 반례가 나오기만 해도 그 주장은 무너질 만큼 엄격한 절차를 따랐다는 것을 안다면 과학적 방법론의 무게를 그렇게 가볍게 생각하기는 힘들것 입니다. 바로 이것이 과학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아주 초보적인 스케치입니다.
그러니 이 정도의 신뢰성을 담보하고 있는 과학적 주장들에 대해서도 받아들이지 못하겠으니 각자의 신념다로 믿으면 그만이다라는 식의 주장은, 인간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미신적 주장과 다를 바 없습니다. 오히려 미신보다 더 나쁩니다. 이런 주장들은 힘들게 쌓아올린 인간의 몇 안되는 장점과 확실성을 자신의 게으름과 태만으로 무너뜨리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코로나 정국의 백신에 대한 거부감을 유포시켰던 자들이나, 아이들에게 백신으니 병원치료를 거부하게 하는 혹세무민하는 자들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우리가 그런자들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으려면, 게으르지 않고 우리가 합리적인 주장을 각각의 확실성에 맞게 채용할 수 있는 정도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과학적 회의주의는 이런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자신의 머릿속에 슬그머니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고 위력을 발휘하는 '신념'들을 무력화 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해독제이며,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이런 방식들을 쉽게 취득할 수 있도록 과학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수 많은 좋은 설명자료들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에 그저 몸을 맏기거나, 손쉽게 상대주의를 주장하면서 자신의 주장과 함께 자존심을 지키는데 만족합니다. 제가 충분히 숙고되지 않는 경솔한 상대주의를 병적으로 혐오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런데 세상에는 아직도 이런 주장들이 힘을 얻고 무시하지 못한 반계몽적 행태들을 유발하는 일들이 오히려 합리적인 선택보다 더 많이 벌어질 만큼, 인류의 다수가 과학적 사실이나 그 작동방식에 익숙하지 않습니다. 다행히도 저는 새로운 10년 주기를 맞이할 때마다 그 이전보다는 점진적으로 대중의 과학에 대한 이해가 아주 조금씩이라도 진전되고 있음을 느낍니다. 아마도 더 많은 좋은 생각도구들이 개발되고 이러한 것들이 발전된 미디어들을 통해 신속하게 보급되기 때문이겠죠. 제 느낌으로는 이런 긍정적인 영향력이, 혹세무민하는 주장들-예를 들어 천공이나, 전광훈 같은 자들이 말하는 근거 없고 목적성이 빤히 보이는 주장들-이 퍼지는 속도보다는 조금이나마 더 빠르게 느껴집니다. 아마도 2~30년 전이라면 지금보다 그런 것에 휩쓸리는 사람들이 더욱 많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분들에게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는 과학적 앎을 정신적 삶에 있어서 최우선으로 두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 보다 저에게 더 쾌감을 주고 감동을 주는 정신적 사건들이 충분히 많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제가 어떤 선택이나 판단을 함에 있어서, 과학에 근거한 자료들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선택의 기초가 되는 욕망은 의심할 나위 없이 나 자신의 것이지만, 과학적 근거는 그 욕망을 실현시키는 최적의 방법론을 채택하기 위한 가장 확실한 자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과학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엄격한 과학적 방법론을 통해 얻어진 지식들을 신뢰하고 판단의 근거로 활용해야 합니다. 이것만이 우리를 무지와 어리석음으로 이끄는 생각없는 상대주의에서 구원할 유일한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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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