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만일, 우리나라가 과거 '독일제국'과 같은 막강한 힘을 가졌다면 하는 시나리오였다면
항상 집에있으면서도 언제쯤은 내가 생각한것을 정리해서
누군가에게 알리고 싶다는게 항상 매일같이 맴돌았습니다..
뭔가가 잡히는데, 알것 같은데, 이걸 말을 못하고 그냥 있으려니깐
참 답답하고, 입이 근질거린다는 것이죠..
항상 머리속에서 번쩍하고 지나가는 착상들이 시시때때로
지나가는데... 이걸 말을 못하고 있으니, 항상 뭔가 제 자신에
큰 빚을 진거 같고, 그런게 있잖아요..
물론 제 서술이 나찌 독일 미화하거나, 히틀러에 저를 대입시켜서
악마를 편든다고 그런게 아니라, 만일 내가 아니면 다른분들..
예를 들어 이글을 읽거나, 2차대전에 중급이상으로 파고드신분들은
한번쯤은 생각해 보셨을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내나라 한국이 항상 거대나라 중국과 일본,심지어 북쪽만주지방에 흉노족
맨날 이렇게 역사적으로 침략만을 당해왔는데, 하다못해 몽골족까지
원나라라고 해서, 고려시대 침범해서, 속국으로 삼았잖아요?
그런데, 그렇게 당하기만 하고 남의 나라 점령은 고사하고
여력도 없는 나라, 피해의식으로 젖어있던 나라가 한순간에
무적의 권력을 가지고, 자신의 나라를 짚밟없던 나라에 무력으로
응징하고, 영토를 넓히며 한번쯤 정복을 했다는 성취감에
휩싸여, 자신감을 얻고, 맨날 좁은 나라에서 저 멀리 몽골 초원을
누비는 그런꿈을 꾼분들이 아무리그래도 저만 그런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런 심정으로 글을 쓴다면,
서두에 밝히지만, 제2차대전때 독일군의 막강한 전력은 '베르사이유
조약'에 묶여서, 제건이 힘들정도였는데도, 불과 십수년만에 다른나라를
압도하는 획기적인 증강과 신전술 신무기로 일어선 그야말로 기적같은
전세였습니다.. 그당시 루프트바페는 아예 역사가 최초였다고 보시면
됩니다.
과연 그당시 1940년대 독일의 지도자가 되어서,자기 밑에 점령당한
나라를 1차대전패배로 경제적 물질적으로 극심한 피해를 입고
치를 떨던 나라에서, 그렇게 굴욕감을 줬던 프랑스를 정복하고
콩피에뉴숲에서 열차에서 항복조인식을, 갖고 에펠탑이 보이는
파리에서 자랑스럽게 개선행진을 한다면, 한번쯤은 이런 로망은
말은 못해봤지만, 생각해보신 분들은, 아예없다고는 할 수 없다고
봅니다.. 히틀러의 심정은 나라를 위해 전쟁에 참전해서 용감히
싸웠지만, 납득하기 힘든 패전을 굴욕감을 겪고, 군사적으로
최소한도의 여력만 남겨놓고, 다 무장해제 당하고, 나라같지도 않은
바이마르 정부에서 매일같이 베르사이유 조약에 의해 배상금은
커녕 풀칠도 못하는 심정에서 자신의 나라와 민족을 일으켜 세워
보겠다는건, 2차대전이 그리 쉬운 과정이 아님을 알고서도
국가를 재건하고 놀랄만한 성과를 얻은 그때 그렇다면..그당시에
저나 당신이라면 어떻게 행동을 했을까 이 생각이 들지않겠습니까?
먼저 서두에 밝히는, 가장 큰 논점은..
제가 생각하는 가장 이해가 안가는것이, 영국침공을 왜 구체적으로
시도하지 않고, 공중전이라는 수박겉핧기 식으로 끝냈냐 이겁니다..
사실 히틀러가 러시아를 침공하는건 이건 도저히 상식밖의 일이라서
아무리 생각해도 말도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말이죠..
이건 나중에 얘기하기로 하고 먼저 영국 점령..
영국을 점령하지 않으면, 미국의 직접적인 개입이 발생했을시
군사적인 거점이 된다는 것은, 왠만한 사람은 다 압니다..
프랑스를 1940년 정복하고, 배틀오브 브리튼을 벌여서 물러났는데..
사실 제가 만일 지도자라면 영국부터 점령해야 한다는 것은 군사적인
식견을 가진 사람으로서는 상식입니다... 아니 300만이 넘는대군이
있고, 아무리 해군력이 딸려도 그렇지 상륙하는게 문제지..
영국의 전함이 무서워서 상륙을 포기 합니까? 오히려 공중전력은
1.5배는 더 영국을 능가하고 있었습니다...
만일 히틀러가 러시아까지 정복하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면
그 남겨둔 퍼즐은 맞추고 진행했어야죠... 이걸 영국을 나두고
동쪽으로 진격하면, 일단 모든전력이 동쪽으로 치우치면,
영국이 미국과 함께 침공하면 못막습니다.. 왜냐하면, 350만
국방군과 친위대를 러시아로 보내면, 프랑스점령군은 고작
수십만 밖에 안되는데, 그 전력으로 어떻게 영미연합국을 막습니까?
제가 여태까지 2차대전 서적을 읽으면서도 가장 이해가 안된게
영국을 포기한겁니다... 그냥 간단합니다.. 루프트바페, 크릭스마린
베어마크트를 한날 한시에 동시에 3군을 투입시켜서 침공하면
영국전력으론 막을 수 없습니다.. 절대로(그당시에는 미국은
아무 상관도 없었습니다) 왜냐햐면, 300만 대군을 막기엔 영국의
전력은 아무리 예비군 동원해도 그 수준이 안됩니다..
그리고 점령지인 프랑스의 파드 칼레에서 바라보면, 영국의
절벽이 바로 코앞에서 보이는 지근 거리입니다...
그런데도 이걸 놓쳤다는건 말도 안되죠.. 애시당초 독일이
영국 상륙을 할려는 계획은 지근거리인 동남쪽이 아닌
남쪽과 동쪽 캔트주이쪽으로 투입할려고 했습니다..
먼저 알아둬야 하는건 왜 러시아에 집착했나 이겁니다..
일단은 영국을 잡아야 했는데, 그러질 못합니다.
바바로사 작전에서 밀리기 시작한 1942년쯤엔 동부전선으로
주력군이 9할이 동부전선에 투입되었고, 영국의 야간공습으로
쑥대밭이 되고있었는데, 이미 히틀러로썬 자꾸만 건드리는
영국을 어떻게 하기엔 이미 늦었죠, 이미 동부전선으로 빼도
박도 못하는데, 영국을 응징한다는건, 시기를 아주 많이 놓친
셈이고, 히틀러도 영국에 관대히 생각한 생각이 틀렸다는것을
깨닫았겠지만 이미 늦었고, 엎질러진 물컵이었죠.
만일 히틀러의 독일이, 프랑스전투이후 그 즉시
한날 한시에 3군을 투입하면 공수부대와 공군이 각기 미리
치고 나가고, 하인켈, 슈투카등 공중폭격으로 일소한다음,
나머지 메서슈미트 109같은 전투기로 요격을 방어한다음
유보트와 해군전력으로 맞수를 두고, 그뒤 모든 부대가 아닌
제 1진이 상륙해서 교두보를 확보하면, 따라서 최소한 150만
육군부대를 상륙시키면, 물론 그 당시에는 어쨋든 피해가
발생하겠지만, 실패할리가 없습니다.. 일찌감치 히틀러는
동쪽으로 눈을 돌려 프랑스점령후 계획적으로 동부 폴란드
러시아 분할지역 근처로 90%의 국방군을 이동시켰습니다..
이게 문제였죠... 이때만일 우선순위를 영국으로 선택했다면
영국점령은, 히틀러의 의지만 있으면, 해결되었습니다...
일단은 왜 제가 영국, 영국 이렇게 집착하냐고 하면..
진행과정을 보면 확연히 알 수 있습니다...
배틀오브브리튼중에서도 확인된, 영국의 야간폭격기 융단폭격을
경험했으면서도, 이걸 공군의 맞대응으로 그치고 넘어갔다는
점입니다... 만일 영국 점령을 했으면, 독일의 공업도시의
밀레니엄 폭격같은(1000대를 동원해서 야간의 융단 폭격을 한다는
'도살자' 해리스의 폭격방식)것은 막을 수 있었겠죠...
그리고 제일 중요한 노르망디 상륙작전도 막을 수 있었을거구요.
그리고 아프리카 전선은 당연히 없었겠죠(물론 나중에 가서 미국이
참전한다면 아프리카를 통한 상륙작전은 있었을지 모르지만)
이태리가 점령하면, 영국과 아프리카에서 싸울일도 없을것이구요..
그럼 이 롬맬의 전력을 아프리카로 낭비할 이유가 없는 거구요
만일 이렇게 된다면... 당연히 같은 앵글로 섹슨인
영연방국과 미국이 참전한다고 한다면 아프리카를 통해서
접근하겠죠.. 하지만 일단 남부유럽으로 상륙부대가 오면
남부유럽 그자체가 독일의 완충지대가 됩니다..
일단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건제하고.. 만일 미영연방국이
침투한다고 해도, 애초부터 러시아침공작전이 없었다면
그 전력으로 방어하면, 아주 무리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말한 모든것이, 영국점령포기와 바바로싸작전으로
모든게 물거품이 됩니다.. 애초에 독일의 천년제국은 허구라고
해도 그에 버금가는, 장기 집권을 노렸다면, 영국을치고 잠재력
이 있는 러시아와 정치적으로 해결했어야 했다는겁니다.
스탈린은, 히틀러를 사상은 다르지만 거의 9할을 정치적인
파트너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러시아전력이 아직 몰골이
말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독일과 전쟁을 벌인다는
시나리오는 제가 몇번을 확인해도 그런 사실이 전혀 없습니다.
스탈린이, 전쟁초반에 장성들에게 간섭하다가, 전권을 맡기는
주의 였다면, 히틀러는 그 반대로 갈수록 일일이 참견개입했죠.
물론 히틀러가 전쟁기 후반에 일일이 간섭하고 귀족 장성들을
극도로 혐오하고 이해할 수 없는 자충수를 둔것을 보았을때
그가 문제가 있다는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최소한 전쟁 초반기만 해도, 39년 폴란드침공과
스칸디나반도 점령, 수많은 동유럽 위성국의 주축군 가담
루마니아 유전확보, 그리고 40년 프랑스 점령같은 사례는
히틀러의 무시못할 잠재력은 일단 인정해 줘야합니다..
39년 폴랑드침공만 하더라도, 대개 거의 모든 독일장성들이
반대했고, 무리라고 봤습니다.. 그 이유가 아직 전쟁준비가
안되었다는 거였습니다.. 그런데 다 반대하는데 히틀러는
과감히 군사작전을 펼쳐서, 블리츠크릭전법으로 한달만에
점령해 버립니다.. 역시 마찮가지입니다.. 프랑스 영국군은
폴란드군과 달라서, 만류하는 장성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역시 히틀러의 의지로 6주만에 점령해 버립니다..
이런 사고방식이 주위에 있었으니, 히틀러가 아니면, 그냥
전쟁이 날 일이 없었을거고, 역시 그저 베르사이유조약에
묶여서, 번영은 꿈도 못꾸었을것은 틀림없습니다..애시당초
히틀러의 추진력을 가진 정치인이나, 군관료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프랑스점령에서 보듯, 무시못할 히틀러의 식견이 드러났습니다..
상식적인 발상가지곤, 절대로 프랑스를 점령할수도 없고..
이름도 없는 무명의 장군이 활약하는것은 있을 수 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 계획인, 벨기에로 진격해서 프랑스 파리로 향한다는
고전적인 수법은 이미 프랑스가 그쪽으로 올것을 알고 주력군에
만반의 태새를 갖췄습니다.. 그리고 마지노선도 건제했구요..
그런데 히틀러는 이런식으로는 실패할것을 뻔히 알고... 계속해서
그 계획말고 다른 참신한 역발상을 찾고 있었습니다.. 사실 아르덴
침투도 히틀러가 그것을 좋금은 생각하고 있었는데, '낫질작전'은
전적으로 만슈타인의 창작작품이 아닌, 히틀러가 미끼를 던져넣고
만슈타인이 구미에 맞게 각색해서 내놓은 작전으로써 히틀러의
창작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이건 사실입니다. 히틀러가 프랑스로
고개를 돌리던중
그런와중에, 독일의 정찰기가 벨기에상공에서 불시착해서, 그 모든
서류를 소각못해 전쟁계획이 들통나서, 바꾸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히틀러는 기다렸다는듯이 새로운 안건을 요구했고.. 그러던와중에
만슈타인이 작성한 '지켈슈니트'작전을 보고 그걸 곧바로 입안해
버립니다.. 그당시 만슈타인의 한낫 참모장에 불과했고, 그 계획
자체도 말도 안된다고 했습니다. 일단 그 계획의 요지가 기습작전
이었고, 아르덴숲을 관통해서, 프랑스 북서부 해안으로 진격해서
반으로 가른다는 전략이었는데.. 이걸 믿는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문제가 아르덴 숲은 대규모 지상전력이 기습공격하기엔 좁고
산림이 울창해 상식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은 다 '이건 말도 안된다'
고 했을 정도였고, 그리고 일단 성공한다고 해도, 그 전력이
북부 해안을 휩쓸고 나갈려면 측면이 위태롭다고 보고 이것 역시
프랑스군이 바보가 아니고선 위험하다고 하는 의견이 대다수였고
역시 집단군 사령관인 페도르 폰 보크조차도 같은 의견이었습니다..
보크의 의견을 빌리자면 "자네는 그 광활한 숲을 전차대가 뚫고
지나가서, 북쪽의 프랑스 해안가로 진격하면, 측면에서 길게 늘어진
전선에 프랑스가 옳다꾸나 하고 잠자코 있길 기대하겠지..하지만
바보가 아닌이상, 병참이 늘어났는데, 그걸 가만이 나둔다는게
자살행위란 말씀이야" 이런식의 논지였습니다.
하지만, 히틀러는 이 안건을 절대지지해서 실행해 옮겼고..
구데리안의 신생기갑군과, 클라이스트 A집단군 산하의 라인하르트와
구데리안이 측면으로 가르고 올라갔고, 역시 롬멜조차도 하루에도
수십KM를 주파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맹진격을 거듭 영프연합군을
덩케르크로 몰아넣고, 포위하는데 성공합니다.. 그 뒤 이야기는
말을 안해도 다아시겠지만, 덩케르크 철수로 이어지죠..
히틀러는 그 당시 '낫질작전'에 영,프군이 곧장 말려들어 벨기에로
주전력을 이동시킬때, 쾌제를 부르며 "나는 정말 눈물이 날지경이더라
니깐, 그놈들은, 내가 뻔히 북쪽으로 치고 들어가는것으로 알고는
옳다구나 하고 미끼에걸려들더라고, 나는 즐거워서 눈물이 날지경이
었더라구" 이렇게 반응했다고 합니다. 역시 자신의 계획이 성공하자
흡족해했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이시점에서 선택을 해야 했다면, 역시 위해서 다 말한데로
영국을 치는데 온 전력을 투입했어야 했는데, 히틀러는 자신감이
넘쳐흘러서, 지금까지 도박이 모두 성공을 거두었는데..
폴란드 단치히수복, 오스트리아 합병, 스칸디나 침공 성공
프랑스 점령..이게 단한번의 실패도 없어서, 물론 그뒤 영국전투는
공군전력으로만 추진하다가, 중단했지만... 그 과정을 보면
실패가 거의 없었습니다. 이 자신감으로 인해서, 치명적인
실수로 영국을 고려하지 않고, 일을 추진하고 러시아를 침공한것
입니다.. 그렇다면 러시아의 스탈린의 관점에 봤을때 보면
스탈린은 아예 히틀러와 전쟁을 상상도 안해보고 있었습니다..
오히려, 폴란드 침공으로 독일과 러시아 폴란드 2개로 반으로
쪼게고 먹고, 에스토니아 같은, 러시아땅으로 만드는데 만족했고..
프랑스를 침공했을땐 오히려 쾌재를 불렀습니다.. 바보가 아닌
이상 어떻게 독일이, 프랑스를 이기겠나고 생각했고, 전쟁이
터진다고 해도, 무시못할 피해를 입고, 싸움 붙는걸 지켜보며
은근히 잘되었다고 할정도였습니다.. 영국의 처칠이 러시아와
독일의 전쟁을 바라보는 시점이 똑같이 스탈린도 독일과 프랑스의
싸움을 지켜보며, 어느쪽이 더 피해를 많이 입나 이걸 상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왠걸, 6주만에 점령해버리자, 아연실색해버립니다..
스탈린은, 독일군이 바바로싸 작전으로 동쪽이 뚫렸다고 해도
상황보고를 무시하고, 독일의 침공은 사실이 아니라고 하며
극구, 독일군과 교전 불가원칙을 내세웠습니다... 그결과
공군의 하루만에 괴멸, 육군전력 풍지박산 그자체였습니다..
그런데도 믿지 않다가, 뒤늦게선 깨닫고, 전쟁에 맞섰죠.
히틀러가 러시아의 인구수를 산술적으로만으로도 계산하고
전쟁을 벌였다면, 아니.. 최소한 구데리안이 러시아의 기갑전력이
히틀러의 상상보다 그 이상이라는 보고를 무시하지 않았다면
러시아 침공은 생각으로 그쳤을 겁니다.. 하지만 연전연승하는
분위기에서, 참모는 물론 장성들 조차도, 이제는 히틀러의 신통함에
숭배를 할지경이었고, 참모장 할더도, 처음엔 반대하다가 바바로싸
초반에 보여준 그 눈부신 전과에 신기해해까지 했습니다..
그렇다면, 일단 독일이 거둔 전과를 보면, 1941년 러시아 침공후
잡힌 포로만 200만명이 넘고 죽이거나 부상당한 러시아 군만
300만명.. 그렇다면 도합 500만이 넘는건데.. 독일의 전전력을
생각한다면, 이것은 독일군의 시각에서 봤을때는 완전히 이긴
전쟁이었고, 실패할수 없는 게임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히틀러가, 러시아 스탈린이, 더이상 전력이 나올 수 없을것이라고
판단착오를 한 점이었습니다.. 폰레프를 레닌그라드로 진군시켜
봉쇄하고, 중부집단군의 폰보크를 모스크바까지 진출시키고
룬트슈테트의 남부집단군의 애초의 러시아를 먹는 가장 큰
주된 이유인, 러시아 유전지대와 곡창지대로 차근차근 점령하고
있었는데, 독일이 개전시점이, 겨울이 된것이 문제였습니다..
결국 들뜬 자신감이 문제였습니다... 아예 그 살인적인 러시아의
추위를 고려하지 않고, 겨울이전에 점령성공한다고 믿었던 히틀러는
아예 동복을 마련하라는 지시조차 안내리고 있었던 겁니다.
이제 겨울이 닥치자, 독일군은 곧 얼어붙었고, 동상환자가
급상승하고, 전차등, 굴러다니는 모든 기갑전력이 동파방지용
부동액조차 없어서 멈쳐버렸는데... 이때 구데리안이 동기복
같은 겨울장비의 필수품이 꼭 필요하다고 역설하다가 파면당하고
모스크바까지 40에서 50키로미터까지 접근하다가 돌연 남부로
진로를 틀어버리고 이렇게 모스크바점령은 물거품이 되면서
전환점이 되고 말죠. 구데리안은 모스크바점령을 포기한게
매우 안타깝다고 했고, 반드시 모스크바점령을 했어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스탈린그라드에서, 그 20만대군 전멸이 터지고 이때부터
불길한 조짐이 감지되죠.. 사실 스탈린그라드에서도 승리가
코앞에 보여서, 히틀러조차도 다이겼다는 반응이었는데...
무지막지한 스탈린도 자기 이름이 달린 이도시에 전력을
투입해서, 루마니아, 불가리아 이태리같은 2선전력인 측면을
공격당하면서 1:5전력이 앞서는 러시아군에 포위당해서
무너지죠... 이때 투입된 러시아예비전력이 100만이었다고
합니다. 문제는 파울루스가 항복한 이유와 그결과에 반론이
많은데, 만슈타인이 그 위급성을 알고, 히틀러를 설득해서
구원작전을 폈지만, 파울루스가 스탈린그라드에 60키로까지
당도한 만슈타인의 구원부대의 계속되는 후퇴요구를 무시하고
그냥 버텼다는거였는데.. 사실 이렇게 되면, 유전지대를 장악
목적으로 남부로 간 클라이스트 집단군이 고립되는 쳐지가
되어서, 파울루스가 항복하는 바람에 클라이스트집단군이
살았다는 논리인데, 물론 일리가있는 얘기지만...
이때부터 독일이 수세에 몰리죠..
문제는 이제 부터입니다.. 그 쿠르스크전투가 1943녀에 벌어지는데
여기서 해복되지 못하는 큰 피해를 입었는데, 왜 히틀러가
만슈타인의 기습공격을 무시하고, 전력이 완성되때까지 기다렸다가
전투를 벌이자는 것이었는지... 히틀러는 신형무기 타이거와,
판터가 생산량이 모자라, 전력이 약하다는 핑계였고, 만슈타인은
기습시기를 놓치면, 적이 들키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알다시피... 이렇게 히틀러가 꾸물거리는 와중에 러시아는
에바 체코바라는 스파이를 투입시켜서, 그 사실을 알았고
주코프를 시켜서, 만반의 대비를 시켜서... 결국 대패를 당했다는
거죠. 만일 이때 만슈타인말대로 갔으면,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지
모르죠.. 만슈타인은 나중에 기동전에 달인 답게, '기동방어'라는
대가다운 기법으로 하르코프에서 기적같은 승리를 이루긴 했지만
전황이 악화되자, 히틀러특유의 장성 해임방식인 '요양을 미끼'
만슈타인을 좌천시키고.... 그때 당시 독일 장성들은, '스탈린
그라드'의 악몽을 꿈꾸며, 고립전멸에 극도로 민감해, 히틀러의
절대사수를 무시하고 자주 퇴각하곤 했고, 이는 히틀러를 자극
하는 행위였고, 장성해임이 반복되는 시점이었습니다.
이때부터, 히틀러는 1942년 이후로 점점꼬이는 상황에 불같이
화를 내기 일수였고, 그리고 터진 슈타우펜베르크가 일으킨
암살미수로 인해서, 반미치광이가 되어서 귀족출신의 장성에
대한 미움이 극도로 높아지는 계기가 되죠..
그렇다면, 과연 히틀러가 정신병자였는가 하는 의문이 붙는데..
사실 후대연구자의 기록에 의하면, 히틀러는, 정신분열증, 즉
조현증환자나 기타 정신병을 앓은 기록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
약물도 발견 되지 않았고, 다만 히스테리나, 발작, 과대망상이
보인다고 한것이죠.. 그가 엄청나게 화를 낸것은, 자신의 과업이
수포로 돌아가고, 패전을 거듭하면서, 마치 부도난 기업의
CEO같은 처지가 되면서, 심해졌다고 합니다. 그게 한순간에
모든게 무너지자, 처음엔 어떻게해든 막아보자고 했으나,
점점 꼬이고 가망이 없자, 울분을 참을 수없었죠.
그렇다면, 유태인학살은 어떻한가? 이게 히틀러의 악마가 아닌가
하는 관점이 대부분입니다.. 저또한 이런 인종론이 잘못된것으로
생각하는바입니다.. 하지만, 그 당시 유럽에서 반유대주의는
히틀러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고, 사실 원래는 히틀러또한
반유대주 사상가의 이론에 매료되었고, 리벤페르스, 쇠르너같은
반유대주의자의 사상에 동화되었고, 오히려 1920년 의외로 미국의
자동차왕 헨리포드의 반유대주의 서적에 영향을 받을 정도라고
했습니다. 헨리포드는 극도의 반유대자였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죠. 문제는, 히틀러는 유대인뿐만 아니라, 정신지체아
슬라브인, 짚시를 인간으로 보지않고, 필요악이라고 규정하고
전부 죽이거나, 노예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히믈러가 이 계획에 가담해서, 처음엔 총도 쏘보고 폭탄도써
봤지만, 결국엔 독가스로 처리한다음, 태워버린다는 방식이었습니다.
이런 인종편협사상의 히틀러가, 만일 러시아포로들에 조금만
관용을 베풀었다면, 그렇게 빨리 몰락하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관점이 대부분입니다.. 소수의 ROA의 블라소프같은 전향장군
이 있었지만, 러시아군이 죽기살기로 싸운 이유가, 포로로 잡히면
죽는다는 생각만 아니었다면, 정치장교의 후방기관총난사같은
러시아군의 무자비함때문이라도 독일에 투항해서, 흡수해서
전력으로 써먹었을지 모른다는 겁니다.
그리고 히틀러는 애초에 전쟁에 질것을 알고, 프로파간다전쟁
으로 돌아섰다는 개인적인 의견이 생각나곤 합니다.
히틀러는 지금의 독일전력으론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합니다.. 벌지전투에서 동부에서 긁어 모은 전력으로 아르덴
반격을 했지만, 그때 당시 총참모장인 구데리안도 어이없어
했고, 그냥 소모되는것을 지켜보면서, 히틀러가 후대에 독일의
위대함을 위해서, 거짓 선전전략을 썼다고 하는 생각이 없진
않습니다.. 실지로 히틀러가 추진한 육군 무기중에는 진짜
전쟁에 써먹기에는, 말도안되는 무기가 많았습니다..
당시 구동도 힘들다는 60톤의 타이거전차나, 타이거II(일명 킹타이거)
약트티거, 마우스, E-100.. 육상의 전함 이런 상식밖의 무기를
제작하도록 한결과.. 실지로는 너무 양이 적거나, 기동력이 딸려
도움이 안되는 무기가 상당 수였고, 그 숫자도, 매우 적었는데..
히틀러는 괴벨스의 힘을 빌려 프로파간다전술로, 이를 후세에
알리기 위해, 과장 과대 선전했고.. 오늘날 우리가 아는 무적의
독일군으로 착각시키겠금.. 선전술을 펼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우리가 알고있는, 전격전의 무적의 독일전차군단은, 중전차가
아닌, 폴란드-프랑스전역에서의 '블리츠크릭', 즉 '전격전'의
신화속의 마크3나 마크4전차를 지칭한다고 합니다.
전쟁막판에도, 복수의 무기라는 V-1, V-2가 전세를 만회할 수
있을거라고, 굳게 믿었고... 사실은 전황회복에 도움이 안되었죠.
한가지 덪붙이자면, 미-일 전쟁의 경우만 봐도
미국이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전쟁했지만, 미국이 진짜 우리나라를
일본에서 해방시키려고 전쟁을 시작한것은 아니란 점을 언급하고
싶습니다..그당시 미국은 뉴딜정책등의 대공황에서 벚어나는 시국
이었고, 일본군이 37년 중국 난징을 침략해서, 남녀노소, 무차별
학살하고 강간하고 다녔어도, 일본전쟁에 개입하지 않았다는점을
본다면, 미국은, 다분히 일본과의 전쟁은, 진주만공습이 가장
큰 이유라고 보는게 타당합니다.. 미국의 정의로운 미군개념은
2차대전승리 이후에 생긴 용어라고 보시면 됩니다...
미국은, 우리나라가 딱해서, 일본을 처부순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나라가 피해를 입어서, 일본의 팽창을 막고자 전쟁에
개입한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미국이 제2전선 운운하고, 두개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다는 개념은
당시로썬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타도가
우선'이라는 전쟁 시나리오 데로 움직였습니다...' 최근에들어서
미정부는 엄청난 국비가 들고 불확실한 2개-전선개념을 버리는
시대적인 요구에 직면하고 있죠.
지금도 얼마전 부터 보기시작한, 앤서니 비버의 '2차대전사'를
흥미진진하게 보고 있는데.. 제가 집에서 본 책중, 과거 국어
사전을 제외하고 가장 두꺼운 책이라고 확신할 수 있습니다..
가격이 무려 5만원이 넘지만, 할인하고 나면 4만원대에 구입할
수 있는데, 저는 조금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먼져, 책 내용이 존 키건의 책과 중첩되는게 없습니다..
물론 비버가 대작인 존키건의 명저서를 모를리 없고, 이왕 쓰자면
뻔한 내용을 쓰기 보다는, 우리가 몰랐던, 아니 자료수집에
더 광범위하게 추적해서, 한 군인 개개인의 편지내용을 근거
삼아 저술한 책임으로, 아주 신선한 맛이 있습니다...
용어도 새롭습니다.. '롬멜'이 아닌 '로멜' 그리고 '하인켈'
이나 '토부룩'은 각각 '하잉켈'이나 '토르부르크'등으로 참신한
단어 지칭사용을 써서 차별화했습니다.
무려 1200장에 다다른 방대한 내용은, 한마디로 존 키건의
1,2차대전사 각권을 합친거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걸 사면
다른 책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아무튼 제가 가장 중점을 두었던 '영국점령'실패는
예전에도 밝혔든, 히틀러의 엄청난 판단착오였고, 이를 중점
취급하지 않은것은, 우리나라 서적또한 영-미권에서 나온 대부분의
2차대전서적의 영향이 크다는 점입니다. 영-미가 과연 이런 자신의
치부를 대놓고 드러내놓는, 광고하고 다니진 않았겠죠..
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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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죄송하지만
세줄요약 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