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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추천 소설: 핏빛 자오선 - 코맥 매카시

풍류도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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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1 22:4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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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어느 이름 모를 소년이 한 명이 있다. 그 소년은 1833년 테네시에서 출생했다. 소년은 14살이 되는 해에 집을 가출한다. 특별히 갈 곳이 없던 소년은 험하고 험한 서부를 정처 없이 배회한다. 그 곳에서 소년은 화이트 대위가 이끄는 비정규군의 눈에 들어 입대하게 된다. 바야흐로 30년에 걸친 피의 살육전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첫 걸음을 하게 된 것이다. 소년은 비정규군의 합류한지 얼마 되지 못 해 아파치의 습격으로 부대가 전멸하게 된다. 거기서 간신히 살아남은 소년은 글랜턴이 이끄는 흉악한 범죄 집단인 머리 가죽 사냥꾼의 일원으로 들어가게 된다. 진정한 지옥의 한복판으로 소년이 들어간 것이다.

   서부극. 서부극은 아시아나 유럽에 비해 상대적으로 역사가 짧은 미국이 자신들의 역사적 정당성을 얻기 위한 하나의 이데올로기 장르로서 등장하여 오래 시간 동안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는 장르이다. 그래서 서부극은 종종 자신들의 정착 역사를 정당화하기 위해 백인 - 카우보이 - 이주민들을 선으로, 반면에 유색인종 - 인디언 - 원주민들을 악으로 설정한 다음 그렇게 형성된 이분법적 구도 아래 선이 악을 무찌른다는 식으로 자신들의 정복 역사를 미화한다. 이후 시간이 흘러 서부극도 다양한 형태로 분화하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세월이 흘러 2008년에 서부 장르 소설의 대가로 불리는 코맥 매카시가 뒤늦게 국내에 소개된다.

   통상적으로 코맥 매카시는 서부 장르 소설을 고급 문학으로 승격시킨 작가로 평가 받으며 미국 내에서 필립 로스, 돈 드릴로, 토마스 핀천 등과 함께 미국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최고의 작가 4인방으로 분류되는 작가이다. 그리고 핏빛 자오선은 그런 매카시의 최고 걸작으로 평가 받는 작품으로서 오늘날 매카시가 있게 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작품이기도 하다. 만약 이 작품이 없었다면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는 작가로서의 매카시가 있었을까 할 정도로 그 평가는 어마어마하다. 그렇다면 매카시를 최고의 작가로 승격시켜준 그의 최고 걸작으로 불리는 핏빛 자오선은 과연 어떤 작품일까. 서부극인 만큼 선량한 백인과 악독한 인디언의 대립을 다룰까. 아니면 수정주의 서부극처럼 선악 이분법이 모호한 상태에서 서부극에 대한 반성과 성찰을 다루고 있을까. 일단 굳이 따지자면 이 작품은 후자에 더 가깝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이 작품이 그나마 후자 쪽에 가깝다는 것일 뿐이다. 이 작품은 일반적인 의미의 서부극과 그 분파인 수정주의 서부극의 경계선을 훌쩍 넘어 그동안 우리가 생각하고 있었던 서부극이라는 대명사 자체를 뒤흔든다.

   일단 이 작품은 서부극의 대가로 평가 받는 작가의 작품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통상적인 의미의 서부극에서 한참 떨어져 있다. 선악 이분법은 애초에 있지도 않고 오직 극단적인 악만이 남아있다. 그 악이 얼마나 극성스러운지 웬만한 수정주의 서부극에 등장하는 악은 명함도 못 내밀 판이다. 때문에 이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극도의 허무와 염세 성이라는 지독한 악취로 넘실된다. 그리고 그 지독한 악취 속에서 피어난 악의 꽃들인 등장인물들은 아무런 도덕적, 윤리적 망설임 없이 극단적인 폭력을 통한 섬뜩한 학살을 자행하며 자신들이 발 붙어 놓은 모든 곳들을 피의 바다로 불들이게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에서 어설프게 예전의 정통 서부극의 향취나 수정주의 서부극의 서늘한 냉기를 찾는 부질없는 짓은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애초에 있지도 않은 것을 어떻게 찾을까. 그렇다면 작가는 이 작품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이 지점에서 한 가지 집고 넘어가야할 것이 있다. 그건 이 작품이 실화를 바탕으로 집필되었다는 것이다. 그 실화란 1846년과 1848년 사이에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서 벌어진 전쟁이 일어나던 혼란스러운 시대 상황을 배경으로 불법 군대들이 국경을 넘어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원래 텍사스는 멕시코의 땅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텍사스에 거주하던 미국인들이 반란을 일으켜 강제적으로 영토를 강탈한 다음 미국 쪽으로 편입되었다고 한다. 그것이 1848년이다.) 정확하게는 멕시코가 미국과의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국내외에서 일어나는 혼란을 틈타 빈번하게 일어나는 자국 내 쿠데타와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미국 용병을 고용하지만 그들은 오직 돈을 벌 목적으로 선량하고 무고한 인디언과 멕시코 인들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해 그들의 머리 가죽을 벗겨 그것을 적군이라 속여 멕시코 정부로부터 돈을 갈취한 것이다.

   이와 같이 이 작품은 당시에 횡행했던 잔혹 범죄들을 배경으로 집필 되었기에 당연하게도 강도 높은 폭력 묘사들로 넘실된다. 어떤 때는 그 강도가 너무 세서 인간의 탈을 쓰고 과연 이럴 수 있을까 자문하기에 이른다. 그만큼 이 작품에서 쏟아지는 피로 범벅된 학살과 폭력, 살인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그리고 그런 총체적 악의 중심에는 홀든 판사라는 인물이 있다. 그는 마치 흡사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의 안톤 쉬거를 연상시키는 절대 악의 화신이자 이 작품의 전체적 분위기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그는 강아지를 강에 던진 다음 떠오르는 강아지를 총으로 쏘아 죽이는 것은 예사고 어린 아기의 머리 가죽 벗기기, 학살, 살인 등을 밥 먹듯이 저지른다. 그렇기에 그의 악마적인 카리스마는 상당히 대단하다. 그러나 판사는 단순한 사이코패스 악한이 아니다. 판사는 자신만의 철학을 가진 인물이다. 이를테면 325쪽 흡사 니체를 연상시키는 “도덕의 법은 약자를 위해 강자의 특권을 빼앗으려고 인간이 만들어 낸 거라네. 역사의 법은 시시때때로 그 법을 뒤엎지. 도덕적 가치관은 그 어떤 궁극적 시험으로도 옳고 그름이 증명될 수 없어...... 중략.” 라는 대사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자기 나름의 법칙으로 움직이는 인물이다. 그것은 도덕이나 질서, 법이 아닌 철저히 힘에 의해서 작동하는 살벌한 세계관이다.

   이렇듯 판사가 저지르는 악행의 근본에는 힘에 대한 뒤틀린 욕망이 갈려 있다. 그리고 그런 살벌한 세계관은 당시 미국 제국주의의 정신이기도 했다. 대륙에서 평화롭게 살고 있는 토착 원주민들을 잔혹하게 학살하여 건국한 미국, 원래 멕시코 땅이었던 텍사스를 강탈하여 미국으로 편입한 몰염치 등 이미 더러운 피로 건국된 나라 미국에서 도덕과 법보다 힘에 대한 과도한 맹신이 물든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일 것이다. 때문에 홀든 판사의 광기와 폭력은 단순한 그 개인의 것이 아닌 미국의 폭력적 역사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무차별적 폭력에 의한 학살을 업으로 지금도 전 세계를 피바다로 만들고 있는 미국. 그렇다면 그 미국에 희망이 있을까. 여기에 작지만 조용하게 성장하는 작품의 주인공 소년이 있다.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이름 모를 한 소년이 겪는 파란만장한 일대기로 전개된다. 1833년에 태어나 1878년까지 온갖 험난한 일을 당하는 소년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범죄자 집단에 합류해 잔혹한 학살의 한복판에 참여하고 점차 폭력에 물들어 간다. 그런데 여기서 유의해야 할 점은 명색이 주인공이지만 그에게는 이름이 없다는 것이다. 오직 소년으로만 불릴 뿐이다. 또한 이 작품은 그 주인공 소년의 내면을 묘사하는데도 굉장히 인색하다. 때문에 소년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 길이 그리 용이하지 않다. 주인공 소년에 대한 인상은 그저 이름 없는 한 인물이 역사라는 거대한 폭풍 앞에 휩쓸리는 구나 정도로 보일 지경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왜 끝끝내 소년에게 이름을 부여하는 것은 거부했을까. 미치광이 악마 홀든 판사를 비롯해 그의 주위 인물들은 모두 이름이 있는데 말이다. 그건 아마 이름 없는 소년만이 이 지긋지긋한 폭력적 세계에서 그나마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름을 부여하지 않은 것일 것이다. 그것은 이름이라는 대명사에 갇힌 상태에서는 대명사로 이루어진 문명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작품을 유심히 보면 알겠지만 여기서 가장 순수한 인물은 역설적이게도 이름이 없는 저능아이다. 저능아이기 때문에 이름을 부여받지 못 하고 문명으로부터 제외된 인물인 저능아는 당연하게도 문명이라는 이름의 폭력에서 한창 벗어나 있다. 그리고 그런 저능아와 마찬가지로 소년에게도 이름이 없다. 물론 소년은 저능아와 달리 학살에 동참하는 악행을 저지르지만 막판에 악의 화신인 홀든 판사와 정면으로 맞서 투쟁한다. 비록 이미 더럽혀졌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핑계로 진실로부터 외면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에 반해 홀든이라는 이름을 가진 판사는 앞서도 얘기했지만 미국적 악몽의 그 자체이다. 즉 미국 - 홀든이라는 대명사는 폭력이라는 악을 상징한다. 그리고 대명사로 이루어진 미국 - 홀든은 각종 대명사들을 양산하며 선악 이분법을 형성해 악행은 저지른다. 이를테면 인디언 - 더럽고 추악한 악이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름이라는 대명사에 붙잡힌 인물들은 홀든이라는 악과 대면할 수가 없다. 이미 그 자신이 대명사로 이루어진 문명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타락한 전직 신부 토빈이 이름 없는 소년에게 홀든 판사를 죽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래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름 없는 소년은 절대적 악의 화신인 홀든 판사에게 살해를 당한다. 결국 작품의 유일한 희망인 이름 없는 소년이 끝끝내 미국적 악의 상징인 홀든 판사를 넘지 못 하고 무너진 것이다. 그리고 그 지점에서 작가는 애초에 낭만적이고 멋있는 서부극은 애초에 있지도 않은 가짜라고 선언한다. 진정 실재 서부극은 피에 굶주린 폭력적 제국주의자들에 의한 학살로 이루어졌다고 말한다. 이렇게 작가는 종래의 모든 서부극과는 차별된 진정 묵시록적인 서부극을 제시한다.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던 가짜 서부극이 아닌 아무런 희망도, 도덕도, 선도 없는 오직 끝이 보이지 않는 섬뜩한 광기와 폭력만이 난무하는 무법천지로서의 진짜 서부극을 말이다. 그런 점에서 작가 코맥 매카시가 서부 장르 소설을 고급 문학으로 승격시킨 작가로 평가 받는 것은 실로 타당한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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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no one
Updated at 2018-07-11 15:34:50
Comac --> Cormac. 표지에 오타라니. (노안 인증인가요?) 노나없 때문에 염두에 두고 있는 작가네요.
WR
풍류도인
2018-07-11 14:12:47

그냥 코맥 매카시 소설은 발견 즉시 다 읽으면 됩니다. 몽땅 다 걸작입니다. ^_^ 

no one
2018-07-11 15:43:53

스토너로 유명한 존 윌리엄스의 부처스 크로싱을 읽고 감명받아 리뷰를 찾아 읽다가 코맥 맥카시가 이 장르로는 갑이다라는 글을 읽었거든요. 물론 부처스 크로싱(번역 아직 없나봐요)도 엄지척 반열이구요. - 버팔로 떼를 협곡에 몰아넣고 몰살하는 게 클라이막스 장면입니다.(스포될것도 없는게 표현이 대단하지 스토리는 거들뿐입니다. 그래서 번역을 안하는지도 모르지요.) 리뷰어들끼리 이견없이 코맥 맥카시가 최고다라고 해서 그의 국경 삼부작을 To read에 모셔 놓았죠.

WR
풍류도인
2018-07-12 13:50:06

오 부처스 크로싱! 오늘 처음 알았는데 정말 읽고 싶어지네요. 그런데 왜 정발을 안 해줄까요? 흑흑 ㅠㅠ 

no one
2018-07-12 14:03:16

평생 쓴 단 세개의 각각 다른 장르의 소설. 각각 고고히 떠있죠.

no one
2018-07-12 14:29:42

https://goo.gl/images/eG5sCb

웜뱃
2018-07-11 15:01:21

 잘 읽었습니다.

WR
풍류도인
2018-07-12 10:32:18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_^ 

FIRST BLOOD
Updated at 2018-07-11 16:01:17

요즘도 생각날 때마다 간간히 꺼내보는 책입니다. 특히 운명에 관한 그 탁월한 서술들..

WR
풍류도인
2018-07-12 10:32:45

정말 이 소설은 걸작이라는 단어 이외에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_^ 

아쌀
2018-07-11 23:29:30

제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예요. 문장이 어찌 그리도 서늘하고 아름다운지.

WR
풍류도인
2018-07-12 10:32:58

제 생애 최고의 걸작 소설입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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