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우키시마호 생존자 "배 폭침 직전, 일본인은 떠났다"
내일이면 8월 15일 제74주년 광복절입니다. 우리의 정말 큰 경사인데 그런데 74년 이맘때로 돌아가 보자면 안타까운 의문사가 있었습니다. 해방의 기쁨을 다 누리기도 전에 목숨을 잃어야 했던 강제 징용 피해자들이 있는데요. 바로 우키시마호에 탑승했던 그 사람들입니다. 조금 길 수도 있지만 제가 미리 해설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1945년 8월 15일에 해방이 되고요. 일주일 뒤죠. 8월 22일 일본에 끌려갔던 강제 징용자들 또 일본에 살고 있던 교민들. 이분들이 고향으로 가기 위해 부산행 배에 몸을 싣습니다. 그 배가 바로 우키시마호입니다. 이 배를 준비하고 타라고 권유한 건 일본입니다. 그런데 부산으로 향한 이 배에서 의문의 폭발이 일어나고요. 그 안에 타고 있던 수천 명이 목숨을 잃습니다. 74년이 지나도록 사고의 원인은 오리무중인데 가까스로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그건 단순 사고가 아니다” 라고 애타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13살 소년이면 그러면 가족 따라서 일본 가셨던 거로군요.
◆ 장영도> 네, 그렇습니다. 이제 해방돼서 기쁨에 들뜨고 있었던 한국 교포들, 강제 징용자들이 부산으로 배를 태워주겠다고 하니까 싫어하는 사람이 없겠죠. 다 환영을 했고. 나중에 이제 이상한 소문 돌기 시작하니까 안 타려고 했던 사람들도 더러 있었던 것 같아요.
◇ 김현정>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이상한 소문인지는 모르지만, 어렸기 때문에. 흉흉한 소문이 지금 생각하니까 아마 이런 폭발 사고와 관련된 소문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한데 그런 게 돌면서 가기 싫어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일본은 이게 마지막 배다, 하면서 막 억지로 태웠다.
◆ 장영도> 맞습니다. 그러니까 모든 증언한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 장영도> 그런데 문제는 일본 사람들은 승선자 명부가 없어서 정확한 명수는 모른다. 다만 우키시마호 폭침으로 인해서 죽은 사람이 524명이다. 그런데 증언한 사람들, 살아나온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적어도 2000명 내지 3000명이 죽었다고 증언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너무나 수적인 차이가 많아요.
◇ 김현정> 차이가 많죠. 탑승 정원도 원래 그 배의 탑승 정원이 4000명인데 지금 뭐 증언자 중에 최소 증언하는 분 얘기만 들어도 7000-8000명이니까.
◇ 김현정> 그렇게 배가 부산을 향해서 출항을 하고 이틀을 갔는데 갑자기 뱃머리를 일본 쪽으로 돌립니다. 부산 가는 항로를 벗어난 거예요. 그리고는 대형 폭발이 벌어지는데 그 당시 상황 혹시 기억나십니까, 할아버님?
◆ 장영도> 기억이 정확합니다.
◇ 김현정> 정확하게 나세요? 어떻게 기억하세요?
◆ 장영도> 그 배에 승선할 때 소위 노약자, 부인들은. 여자와 노약자들은 배 밑에다 태우고 젊은 사람, 남자들은 배 위쪽에다 태웠어요. 어머니하고 누나하고 여동생하고 나는 그때 어렸으니까 배 밑에 타고 아버지하고 형님은 배 위쪽에 탔어요. 그러니까 8월 22일 출항한 이후로 침몰할 때까지 같은 배에 탔어도 따로따로 타고 왔죠. 갑자기 “육지가 가까이 왔다, 육지가 보인다” 라는 소리가 들려서 배에 밑에 있었던 내가 육지를 구경하기 위해서 배 위로 올라오려고 하니까 여동생이 따라오려고 하는 거 따라오지 못하게 했어요. 만약에 그때 여동생이 나 따라왔으면 혹시 살았는지도 몰라요. 그리고 어머니가 위험하니까 올라가지 말아라 하는 거 어머니 말 듣지 않고 갑판 위로 올라왔어요.
◇ 김현정> 나오신 거군요.
◆ 장영도> 그런데 그것이 어머니의 마지막 유언이었겠죠.
◇ 김현정> 그렇게 되네요.
◆ 장영도> 그리고 갑판 위에서 육지를 구경하고 있는데 갑자기 그냥 펑 하는 소리가 났어요. 소리가 남과 동시에 배가 그냥, 그 큰 배가 두 동강으로 딱 쪼개졌어요. 그런데 만약에 일본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미군이 투하한 기뢰에 의해서 배가 파손됐다면 앉아 있던 내가 앞이나 뒤로 넘어져야죠. 그런데 물로 딱 떨어졌어요. 그리고 모든 살아나온 증인들 말에 의하면 물기둥을 봤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어요.
◆ 장영도> 그것은 결국 무엇인가 하면 일본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미군이 투하한 기뢰에 의해서 폭파한 것이 아니고 배 내부에서 폭파시켰다고 하는 것이 증명이 되는 거죠.
◇ 김현정> 내부 폭발로 보인다 이 말씀이시고. 그거 말고도 사실은 내부 폭발을 의심할 수 있는 정황이 여러 가지가 있어요. 배가 폭발하기 전에 배에 탔던 일본인 승무원들 중에 고위층은 작은 배를 타고 이미 떠났었다면서요?
◆ 장영도> 맞습니다. 그것은 고위층이 누군지는 잘 몰라요. 갑판에서 육지를 구경하고 있는데 그 구명보트가 내려와요. 구명보트가 내려와서 구명보트에 사람이 몇이 타고 구명보트가 막 모선을 출발하자마자 펑 하고 터졌어요.
◇ 김현정> 네, 그러니까 그런 것도 있고 또 우키시마호를 인양을 합니다. 수년 뒤에 인양을 하는데 수년 뒤에 인양을 하고 나서 보니까 배의 모양이 밖에서부터 뭔가에 의해 공격 당한 것이 아니라 안에서 밖으로, 이렇게 펼쳐져 있는 모양. 이 모양들을 봤을 때도 내부 폭발임을 의심하게 하는 이랬다는 증언들도 있더라고요. 게다가 바로 그걸 다 없애버렸어요. 파편들을 없애버려서 지금은 사실은 남아있지도 않은 이런 상황. 아무튼 그 당시 폭발이 일어나고 아수라장이 됐을 텐데 그 장면도 기억나십니까?
◆ 장영도> 뚜렷하게 기억이 나죠.
◆ 장영도> 폭발함과 동시에 살기 위해서 배 밑에서 갑판으로 다 올라올 거 아닙니까? 왜냐하면 폭발과 동시에 바로 침몰한 것은 아니니까. 보니까 이제 갑판 위에 그야말로 참 개미떼처럼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갑판에 있었는데 그 갑판이 배가 한가운데로 딱 잘라지니까 배가 기울기 시작했어요. 그때 갑판에 있었던 그 많은 사람들 대부분이 배가 뒤집어질 것 같으니까, 뒤집어지면 다 죽으니까 물에 다 뛰어들었어요. 그런데 그때 배가 파손되면서 등유가 한 10cm 정도로 두껍게 깔렸어요.
◇ 김현정> 기름이.
◆ 장영도> 그럼과 동시에 사람은 사람대로, 짐은 짐대로 등유 깔려 있는 바다에서 그냥 말처럼 아비규환 그대로죠.
◆ 장영도> 서로 또 엉켜가지고 수영 칠 수 있는 사람이나 수영 못 치는 사람들이나 서로 잡고 엉켜가지고는 뛰어내렸던 사람들은 거의 즉사했어요. 그 광경을 제가 지금 뚜렷이 기억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이렇게 해서 우키시마호에서 돌아가신 분이 한 2000여 명이 넘는 것으로 지금 알려져 있는데 일본이 발표한 건 겨우 524명입니다. 우리 생존자들이 주장하는 것의 4분의 1밖에 되지 않는. 게다가 배를 인양한 것도 8년이나 지난 뒤에. 그것도 인양하자마자 고철로 팔아 넘깁니다. 지금 남아 있는 증거도 없습니다. 블랙박스도 없습니다. 이 상황에서 진상규명을 위해서 뭔가를 밝히기 위해서 일본 최고재판소까지 가셨었다면서요.
◆ 장영도> 일본에서 주장하는 524명만이 죽었다고 해도 대재난 사고죠, 그렇죠?
◇ 김현정> 대형 사고죠.
◆ 장영도> 그런데도 당시 우키시마호 사건 증언에 대한 보도는 전 일본의 많은 신문, 일본의 라디오 단 한 마디, 단 한 글자도 발표가 안 됐어요. 그런데 저희 선친께서 부산으로 상륙하자마자 이 사실을 고발을 했어요.
◆ 장영도> 거기에 아버지가 증언한 내용이 처음으로 기사화돼서 발표된 것이에요. 그러니까 일본 사람들이 자기들이 어떤 저의가 있으니까 이것을, 매스컴을 통제한 것이지.
◇ 김현정> 숨기지 않았겠느냐.
◆ 장영도> 그 저의가 업었다고 하면 이 큰 재난사고를 갖다가 보도하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요.
◇ 김현정> 그렇죠. 미군의 기뢰였다면 더더욱 보도를 했었을 텐데. 그걸 숨길 이유가 없는 것인데.
https://news.v.daum.net/v/20190814094501907?d=y
제대로 몰랐던 역사적 사건인데 참담하네요, 일독을 권해드립니다.
항상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고 살아 왔으면서 우리는 젠틀해야 하네 어쩌네 배신자 노릇은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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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키시마호의 출항지였던 교토 인근 마이즈루항에는 우시키마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위령비가 있습니다.
위령비 사진을 볼때마다 마음이 아픈데요, 언제고 꼭 찾아가보고 싶은 장소입니다.
(사진출처는 부산일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