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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브람스의 간주곡 -글렌 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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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8-29 10:59:15

 

 

 

 사실 굴드는 베토벤과 브람스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베토벤이 고전주의적 엄격성을 잃지 않았던 초기 곡들을 한정적으로 좋아했고, 정서적 표현이 과감해진 시기 이후의 곡들은 가치가 없다고 폄하했죠. 

 

굴드는 나중에 자신이 오래 음악을 연주하고 결론을 내린 바, 독일음악 전통이 진지함을 가지고 추구할만한 가치가 있는 거의 유일한 음악이라고 했으면서도 그 적통으로 분류되는 슈베르트와 브람스는 또 싫어했습니다. 베토벤 보다도 더 대책없는 멜랑콜리 때문이었겠죠. 후에 동시대의 도 다른 위대한 피아니스트 리히터의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D960번을 듣고나서야 그 곡에 대해서만 의견을 수정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굴드의 필모에는 공공연하게 자신이 폄하했던 음악들이 군데군데 섞여 있습니다.  녹음 경력 두 번째로 녹음한 베토벤 후기소나타집이 그렇고, 무엇보다 자신이 그렇게 혐오해마지 않았던 낭만주의 비르투오조인 리스트가 베토벤의 교향곡5번을 피아노버전으로 편곡한 곡을 연주한 것이 그렇습니다. 신기하게도 이 연주들은 애호가들 사이에서도 상당한 수준의 연주로 인정받습니다. 특히 리스트 편곡의 베토벤 5번 같은 경우는 여지껏 이 연주를 능가하는 버전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런 음반 중 무엇보다 제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것은 그가 연주한 브람스의 열개의 간주곡  (10 intermezzi for piano)입니다.

 

굴드는 평소에 피아노를 가리기로 유명했습니다. 자기가 연주할 피아노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연주를 취소하는 일이 예정대로 하는 일보다 더 많을 정도였죠. 조율이 엉망인 피아노라도 연주하는 그 순간만큼은 그 악기를 완전히 믿고 하나가 되는 리히터와는 정 반대였죠. 그가 자신이 피아노와 사랑에 빠졌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피아노 자체를 인격화 시켰던 피아노가 딱 한대 있었습니다. 스타인웨이에서 전문연주자들에게 협찬해서 대여했던 콘서트그랜드 CD318이 바로 그피아노였습니다.

 

굴드의 연주를 들어보면 마치 현대의  F-1드라이버와 같은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선호하는 레퍼토리와 음역대, 연주의 방식이 무척 제한되어있지만 그 안에서는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극한의 테크닉과 정교함, 섬세함을 보여줍니다. 여리고, 빠르고, 정확하죠. 그래서 그는 자신의 집에서 사용하는 개인적인 피아노에 대해서는 피아노의 상태가 엉망이어도 그때그때 임시변통으로 자신이 주로 연주하는 중간음역대만 소리가 제대로 나오면 만족할 수 있는 연주자였습니다. 정확하고 보통 피아노에 비해서는 과도할 정도로 예민하고 빠른 응답을 보여주는 CD318은 그에게 안성맞춤이었던 피아노죠. 

 

이 피아노를 59년즈음에 발견하고 이후 60년대를 관통하면서 굴드는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연주경력의 끝과 끝을 장식하는 골드베르크들을 제외하면 그의 가장 빛나는 연주들은 이 시기에 나왔죠. 

 

브람스의 이 간주곡집은 굴드가 막 이 파아노와 사랑에 빠져을 무렵, CD318과 가장 행복한 신혼을

즐기던 무렵에 나왔던 작품입니다. 곡들이 전반적으로 구슬프고 애처로운 분위기를 자아내지만, 저는 이 음반을 들을 때면 앞으로의 운명을 모른 채 마냥 행복을 즐기는 한 사람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평소 자신을 짓누르는 완벽함에 대한 추구와 진지함에서 벗어나, 자신이 폄하하는 음악을 가장 행복한 때에, 가장 완벽한 피아노를 통해 즐기는 굴드. 이 모순적 풍경의 깊이. 

 

"이것은 아마 당신이 들어본 가장 섹시한 브람스 간주곡의 해석일 것이다. 나는 진심으로 이 연주가 내 피아노 연주 경력의 가장 뛰어난 연주라 생각한다. 그리고 어쨌든 당신들은 아마 내가 구제할 수 없이 낭만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N2g21w604B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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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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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0 18:49:43

좋은 글과 좋은 음악 감사합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만 한 달에 2~3번 정도는 들어서..

이젠 옆집 아저씨 같은 느낌이 있네요~^-^

 

WR
2020-03-20 18:53:56

젠프 앨범이군요. 이 버전으로 못들어봤는데 음질이 어떨지 궁금하네요. 하기야 제가 막귀라 고음질이 별로 의미 없는 사람입니다만.ㅋㅋ

2020-03-20 19:01:32

어...

음질이 뭔가요?
혹시 요즘 다들 말하는 '노이즈 캔슬링'인가 뭔가 그거 말씀인가요?

저는 대부분의 소리는 'ON'과 'OFF'로만 구분해서..

음질이란 단어는 무척 낯서네요ㅎ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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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3-20 19:09:13

이 앨범이 굴드가 직접 연주한 것이 아니라 굴드의 원래 녹음을 컴퓨터로 분석한 다음 음량, 터치, 페달링 등을 모두 세세하게 수치화해 야마하 피아노로 현대적 녹음 시설을 통해 제현한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말하자면 자동피아노 연주죠. 그러니 아마 공간감이나 세밀한 음향적 질감이  55년의 원 녹음보다 훨씬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런 정확한 수치적 복제가 진짜 굴드의 연주를 복원해는지는 잘 모르겠고 그래서 그다지 흥미가 가진 않아요.  그래서 음질(즉 감상자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공간감이나 선명도 등 음향의 쾌감)을 여쭤본 것입니다.

2020-03-20 19:22:54

맞습니다. 저도 이 앨범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만, 잘 안 듣게 되더라구요 ^^

1
2020-03-20 19:24:11

에구구..

가볍게 농담으로 댓글 달았다가 너무 진지하게 말씀하셔서 죄송스럽네요.

위의 이미지는 '글렌 굴드 골드베르크 변주곡'으로 검색한 이미지를 링크한 거고..

 

제가 요즘 듣고 있는 앨범은 [Glenn Gould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 글렌 굴드 1955년 녹음 리마스터 에디션 (J.S. Bach: Goldberg Variations BWV988 - 1955 Recording)]

 

 

주로 스트리밍 음악을 무선이어폰으로 듣는 편이라..

말씀하신 음질에 대해서는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아마 2006년쯤부터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가끔씩 들어왔는데 앨범을 구입해서 들었다기 보다 거의 스트리밍으로 들은지라 무슨 음반을 거쳐갔는지, 음반별로 느낌이 어땠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군요~^-^;;

WR
Updated at 2020-03-20 19:45:13

저도 달아놓고 나서 '내가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글을 달았구나' 싶었는데, 미처 수정하지 못하고 밥을 먹으러 다녀왔습니다. 죄송해요.^^;;;;

2020-03-20 20:50:32

별말씀을~

앞으로 눈치 챙기고 댓글 달게요ㅎㅎ

2
Updated at 2020-03-20 19:04:34

굴드의 브람스.. 별미중의 별미같은 녹음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요즘에 하콘 아우스트뵈(hakon austbo)의 브릴리언트 음반으로 자주 듣습니다..

WR
2020-03-20 19:06:37

그렇군요. 저도 들어보고 싶네요.^^

WR
2020-03-20 19:13:57

좋은 음악 추천 감사합니다. 제가 링크한 곡과 같은 곡을 찾아 들어봤는데 이쪽은 좀더 정통적인 브람스 연주네요. 저역이 좀 더 풍성하고 연주도 낭만주의 비르투오조 적입니다. 

1
2020-03-20 19:26:55

메시앙 녹음으로 잘 알려진 노르웨이 피아니스트인데 자기주장을 크게 내세우지 않으면서 전체를 하나로 부드럽게 리드하는 연주가 맘에 들었습니다.. 독일적(?)인 외양을 살짝 걷어냈다고 할까요..^^

WR
2020-03-20 19:44:36

그렇군요 해설 감사합니다. 나중에라도 꼭 이 피아니스트를 진지하게 들어봐야겠네요.

1
Updated at 2020-03-20 19:29:25

검색해보니 Op. 117이 유투브에 올라와 있는데 이게 맞는가 모르겠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RQdQiNNZQIY

2020-03-20 19:30:48

맞는것 같습니다^^ 은근 중독성이 강한 연주라 볼륨 낮게해서 bgm으로 감상해도 좋습니다^^

1
2020-03-20 19:32:11

듣고 있는데 아주 좋네요... 음원 알아봐야 겠네요 ^^

2020-03-20 19:37:00

감사합니다^^

WR
2
2020-03-20 19:43:27
https://www.youtube.com/watch?v=uw8FE_NXkCQ

 위 앨범 전곡이 있더라고요.^^

Updated at 2020-03-20 19:45:39

오 감사합니다. 구독해야 겠네요 

1
Updated at 2020-03-20 20:17:21

 오 음악 추천과 상세한 설명이 들어간 이런 이야기 좋네요!

다른 분들이 올려주신 자료도 마음에 듭니다. 땡스여!

여담이지만 전 오래 전에 굴드 형님 앨범 처음 구했을 때

듣다가 어디서 뭔가 소리가 들린다 싶다가 사람이 내는 소리인것

같기도 했고 혹 앨범에 오류가 있는지 좀 혼돈스러웠던 기억이 있네요.

 '굴렌 굴드에 관한 32개의 이야기' 같은 영화를 보면서 이 여러모로

독특한 분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지요.

WR
1
2020-03-20 20:35:58

네,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1
2020-03-21 10:59:00

클래식 입문이라 피아니스트는 조성진 정도 밖에 모르는데....

요즘 유명한 베토벤 피아노 콘체르토 5번이 좋아서 코부즈에서 음원 찾아보니 여러 연주가의 연주중에 글렌 굴드 연주가 가장 마음에 들고 음질도 좋아서 자주 듣습니다.

그런데 글렌 굴드의 뒷 이야기가 나와서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WR
2020-03-21 11:09:02

굴드의 피협 5번이 가장 마음에 드셨다니, 정말 듣는 귀가 남다르십니다. 굴드는 정말 개성이 강한 연주자라서 다른 연주자들과 비교청취가 많을 수록 더욱 사랑스러워질 겁니다. 명작의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범작을 많이 경험해야 한다고 철학자 대니얼 데닛이 그랬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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