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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책소개] 글렌 굴드; 그래픽 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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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1-08-29 11:03:13

 

 

 

 

 한국에서 현재 번역, 출간되어 서점에 배포된 글렌 굴드에 대한 책은 총 5권이 있습니다. (앨리자베스 엔절리트의 연구서가 한 권 번역 출간된 것이 하나 더 있지만 일반 서점에는 배포되지 않았습니다.) 특이한 것은 그 저자들 중 3명이 프랑스인이라는 겁니다.

 

  굴드는 프랑스어를 쓰는 퀘백 주와는 거리가 먼, 온타리오 주 출신으로 평생을 토론토와 그 근방에서 살았습니다. 프랑스의 작곡가의 곡들을 무시했으며 확인된 바로는 평생 그들의 곡을 연주해 본적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인들의 굴드 사랑은 남다른데가 있습니다. 굴드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두 편이나 찍었던 브루노 몽생종의 인터뷰집이 있고, 사색적인 상상을 곁들인 에세이를 쓴  미셸 슈나이더가 있습니다. 그리고 5년 전에는 상드린 르벨이 드디에 세계 최초로 굴드에 대한 그래픽 평전을 그리고 썼습니다. 

 

이 책의 특이한 점은 책에 명시된 참고문헌들 마저도 거의 프랑스인들에 의해 쓰여진 것들만 참조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 책은 '프랑스인들의 눈에 비친 굴드'에 관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 싶습니다. 이 책은 신중하게 선택된 색채들로 굴드의 내면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습니다.  굴드에 대한 다른 책들을 읽어보신 분들께도 아마 설득력 있는 울림을 전해줄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장점은 다른 책들처럼 굴드에 대한 선지식을 그다지 요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마 굴드에 대해서 관심은 있으나 아직 잘 모르는 초심자들에게도 그다지 큰 집중력을 요구하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 모로 괜찮은 책입니다.  아래에 제가 블로그에 개인적으로 블로그에 기록해둔 서평을 옮겨왔습니다. 

 

 

기묘한 아름다움의 매혹 - 『글렌 굴드: 그레픽 평전』, 상드린 르벨

 

 


 

  아쉽게도 한국어로 번역되지 못했지만, 영미권에서 글렌굴드에 대한 평전으로 가장 많이 팔린 책의 제목은 『Wonderous Strange』(Kevin Bazzana)였다. "경이로운 기묘함"정도로 번역하면 좋을 듯한 이 제목은 그간 대중들이 굴드에게 느꼈을 법한 감정을 적절하게 표현한다. 굴드의 연주에는 손대면 부서질 것 같은 예민함과 연약함, 그리고 극도의 정교함과 참신함이 공존한다. 굴드의 전설적인 첫 음반이 발매되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대중들이 굴드의 음악에서 느꼈을 법한 이 아름다움이 '기묘한' 아름다움이나 경이로움으로 인식되는 이유는, 굴드가 그간 보여온 기행과 냉정한 인격에서 기인하는 바가 크다. 아마도 굴드의 그 독특하면서도 상처를 주는 행동이 아니었다면 그가 보여준 아름다움에 'Strange' 라는 형용사가 붙지는 않았을 것이다.(이 평전의 제목은 아예 경이로움이 아니라 이상함, 혹은 기묘함을 중심에 두고 있는 표현이기까지 하다.) 


  굴드가 타계한지 40년이 가까워 오는 지금은 아마도 굴드의 이러한 성격이 혹시 아스퍼거 증후군 때문이 아니었나 싶은 의심도 있기는 하지만, 모를 일이다. 굴드의 기묘함은 그의 죽음과 함께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았다. 


  굴드가 남긴 삶과 예술은 이제 더 이상 분리가 불가능한 하나의 신비로 남았는데, 여전히 이 신비를 한겹이라도 파헤쳐보고 싶었던 사람들이 있었던 모양이다. 많은 사람들이 굴드에 대한 기억이나 분석으로 나름의 추리를 한 가운데, 프랑스의 만화가 상드린 르벨도 그러한 시도를 했다. 


 

르벨은 말년의 굴드가 뇌출혈로 쓰러져 응급실에 온 상황에서 작품을 시작한다. 역사적 사실을 먼저 말하자면, 굴드는 결국 혼수상태에 빠져 다시는 깨어나지 못하고 생을 마감했다. 르벨은 굴드가 죽어가는 짧은 시간동안 굴드의 머리 속으로 들어가 그가 마지막 손간에 떠올렸을 법한 삶의 순간들을 꿈과 섞어 그려낸다. 그 순간들이 굴드에게 어떤 느낌으로 다가왔을지, 르벨은 굵은 결의 횡목 도화지에 수채화의 표현력으로 그가 상상한 굴드의 감정을 묘사한다. 물론 그 묘사는 굴드의 생전 인터뷰와 지인들의 증언에 기초한 상상이다.  

 

 

 


 굴드의 어린시절 일화들, 중요한 삶의 결절점이 된 콘서트들과 경험, 사람들과의 관계가 묘사된다. 첫 콘서트 관람에서, 신동으로서의 존재감을 과시한 버나드 하인츠가 지휘하는 토론토 심포니와의 1947년 데뷔 무대, 토론토 음악원 스승인 알베르토 게레로와의 만남, 첫 낚시의 충격적이고 불쾌한 경험, 굴드의 유일한 '사람'과의 로멘스였던 코닐리아 포스와의 관계 같은 에피소드들이 지인들의 인터뷰 형식의 증언들과 함께 단속적으로 그려진다. 

 

 

  이 그래픽 평전의 컷 분할은 굴드의 유명한 데뷔작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앨범 커버를 많이 모방했다.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인데, 그 앨범 커버와 이 만화의 컷 분할은 변덕스럽고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이데아를 꿈꿨던 굴드의 음악의 반영이 아니었나 싶다. 굴드는 사진이나 녹음처럼, 순간을 흘려보내지 않고 가장 이상적인 모습으로 영원히 기록하기를 원했다. 굴드에게 지금 이 순간의 생생한 생명력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는 자신의 음반을 짜집기하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아했다. 가장 완벽한 음악을 잡을 수만 있다면. 

 

 

 

 

 

 

 

 

 

 

 

 이런 에피소드들을 지배하는 분위기는 굴드가 항상 이야기하든 북쪽 풍경에 대한 명상이다. 횡목 도화지에 번진 어두운 색조의 물감은 진눈깨비가 흩날리는 지저분한, 그러나 굴드의 연주와 같이 자신이 만들어내는 온갖 잡스러운 소음들 속에서 피어나는 이데아의 풍경이다. 단순하고 고독한, 그리고 현란한 색조들이 자신을 괴롭히지 않는 북쪽에서 굴드는, 진눈깨비의 질척함과 흐릿함 같은 것에 방해받지 않았다. 남들이 내는 숨소리마저도 견디지 못했지만 자신이 만들어내는 허밍과 발소리에는 전혀 방해받지 않고 순수한 음악을 마음속에서 듣고 지상에 구현할 수 있었던 것처럼. 

 

 

 

 

 

 이런 낮은 명도의 겨울 빛 색채 외에 이 그래픽 평전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기능하는 색채는 6~70년대의 분위기를 떠올리게 하는 강렬한 진홍색이다. 이 색채는 예민한 굴드가 느꼈을 흥분감을 표현하는 듯하다. 굴드의 기념비적인 연주와 녹음의 순간 외에도, 굴드가 피하고 싶었을 범속한 외부의 자극 또한 이 진홍 빛 색채로 묘사된다.  이러한 색채들을 통해 독자들은 아마도 굴드와 조금은 공감하고, 굴드를 이해할 수 있는 기분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짧은 독서의 시간이 지나고, 책 속에서 굴드가 무덤에 눞고 나면, 여전히 우리는 굴드가 이해할 수 없는 기묘한 경이, 혹은 경이로운 기묘함으로 남는 모습을 지켜볼 도리 밖에 없을 것이다. 굴드의 음악과 삶은 분리될 수 없는 통합된 예술로서, 끊임없이 후대의 감상자들을 풀리지 않는 신비로움으로 매혹시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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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2021-07-03 13:44:44

굴드 팬이인가 보네요
피아노는 잘 모르지만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잘 듣습니다.
도서관에서 몇장보다말았는데 일독해야겠네요:)

WR
2021-07-03 14:05:25

네, 충분히 읽을만 합니다.

1
2021-07-03 17:59:27

님께서 전에 소개해주셨던 물질의 물리학은 구매했습니다, 곧 읽어야지 하면서도요^^;; 늘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WR
1
Updated at 2021-07-04 01:06:23

오 물질 물리학 구하셨군요. 헬름홀츠의 순환수 발견 부터 정말 재미있으실 겁니다. 글 올린 보람이 있네요. 저도 감사합니다.^^

1
2021-07-03 22:12:46

 죠지 오웰 관련 비슷한 구성의 책이 있어 읽고 있는데 

생각보다 상당히 많은 정보와 일화를 제공하더군요.

굴드의 저 책에도 기대가 갑니다.

WR
1
Updated at 2021-07-04 01:08:27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22131017

 

이 책이군요. 이것도 프랑스 작가들이 쓰고 그렸네요. 소개 감사합니다.!

1
2021-07-05 05:53:09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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