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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시청자도 작가도 결말에서 해방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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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4-01-29 07:03:45

식구끼리 동료끼리 친구끼리 연인끼리 유독 밥 먹는 장면이 많이 나오는 것은 우리가 영원히 밥 먹는 것에서 해방되지 못하는 '먹고 살아야 하는 존재여서'가 아니었을까요.

 

해방클럽이 재개되면서 드라마가 막을 내립니다. 해방클럽이 시작되기 전후의 모습들과는 자못 다른 모습들입니다. 입가에는 미소들이 눈빛들은 신뢰가 - 스스로에 대한 상대방에 대한 닥쳐올 미래를 두려움 없게 살리라는 - 충만해 있습니다.

 

나의 아저씨는 모두가 평안에 이르는 길을 보여주는 드라마였습니다. 지안이 평안에 이르는 동안 교차해서 나오는 다른 출연진 모두 '평안'을 갈구하지 않았어도 평안치 못했던 마음끓음들이 하나씩 정리됐었죠.

 

완벽한 결말에 대한 기대에서 해방되지 못하는 것은 시청자가 아니었을까요, 마지막회를 보면서 작가가 일을 너무 벌여서 줏어담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해방, 추앙, 환대 등 한글세대들에게 잘 쓰이지 않는 고대어들을 끌고와서 너무 개념적인 환상을 부각시킨 것은 아닌지, 드라마가 시작도 느리고 밋밋하게 진행하더니 뭐야 결말이 짜릿한 것 없이 가슴 터지는 해방 따윈 불가능한 것인가라는 약간 불만에 차서 마지막회를 봤습니다.

 

새벽 5시에 눈이 떠졌습니다.

바깥은 벌써 환하고 좀 있다 일어나면 또 밥을 먹을 것입니다. 밥 먹는 것으로부터 해방되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밥 먹을 걱정에서 해방된 지도 오래 됐지만 아직 우린 '먹거리'에서 해방되지 않았죠.

 

나의 아저씨는 평안을 가져와서 나의 아저씨가 스스로 인간답게 서로에게 인간답게 살아갈 삻에 대한 '태도'를 말하는 드라마였다면

 

나의 해방일지는 해방과 추앙과 환대를 말합니다.

 

해방은 놓여나는 것이 아니라 해방되고 싶어하는 감정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추앙은 추앙받을 자존감을 높히고 선택에 후회하지 말라는 것이며

환대란 시련을 응시하고 반가와하며 꿋꿋하게 대처하란 뜻이죠. 사람에 대한 미움을 걷고 그 사람이 처한 상황에서 해방되도록 마음으로 '환대'한다는 뜻은 공감과 용서를 내포한다 하겠습니다.

 

해방클럽은 다시 모임을 시작하고

사랑을 확인한 사람들 앞에 역경은 다름없이 그대로여도 입가의 미소를 마주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나고

 

해방되고 싶은 마음을 잊은 그들에게 해방은 그들의 한 발 씩의 걸음걸음마다 되잧아지고 있었습니다.

 

후련한 해방을 원했었던 갇힌 마음에서 벗어나 작가가 그려준 좀 답답한 해방에 대한 불만에서 해방됐습니다. 

 

인생은 밥상머리에서 꾸역꾸역 밥을 먹어가는 것 그 자체입니다.

가끔 고구마 줄거리에 어려있는 분주한 정성을 기억하면서 

 

서울에서 당미까지, 당미에서 산포까지 긴 귀가길이라는 것은 인생의 굴레였죠. 어떤 형태로든 삶을 힘겹게 느끼는 것들 하나씩 지금 가지고 계시지 않나요? 그것들에 대한 관조를 권하는 드라마입니다. 

모두들 스스로의 마음의 감옥에서 해방되시길 바랍니다.

 

해방 속에서 살면 해방을 꿈꾸지 않게 되는 것이지 무지개 같은 찬란한 해방이란 원래 없었다는 생각입니다.

 

나의 아저씨의 평안이란 한 끼 밥과 눈 붙이고 누울자리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 한다면

나의 해방일지의 해방이란 권태와 불만과 기우와 의심과 상투적 윤리로부터 벗어나란 뜻으로 보였습니다.

 

싱겁게도 열심히 즐겁게 살라는 인생 별 것 없다는 작가의 환기를 새벽 부옇게 밝아오는 천정을 바라보며 느꼈습니다. 

 

 

님의 서명
인생의 한 부분만이 아니라 전체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서를 해야 하고, 하늘을 바라보아야 하며, 노래하고 춤추고 시를 써야 하고, 고통 받고 이해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 Krishnamur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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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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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6-04 22:39:14

잔잔하고 답답해 보이는 전개 속에서도 소소한 일상의 발견들로 작은 해방이었습니다.

WR
2
2022-06-04 22:40:56

문득 작가가 PPL과 멋진 결말의 부담에서 해방된 것은 아니었을까 반문했더니 본문과 같은 생각들이 줄줄이 떠올랐습니다. 우모래님도 해방되세요^^

1
2022-06-04 22:45:16

며칠전 산에는 잘 다녀오셨나요?

드라마 끝나기를 기다리다 잠시 한눈 파는 겸 해서 다른 드라마 시작했다가 아직 그거 다 못봐서 '해방일지'는 대기중입니다. '로맨스'도 대기중~

 

막간을 이용해 고현정 누님과 신현빈 누나의 매력에 빠져있는 중입니다만... 워낙 스릴러류는 안보던 쟝르라 꾸역꾸역 보고는 있습니다. 그 와중에 번개처럼 치고들어온 '공각기동대 2045 시즌2'

공각기동대는 점점 실망감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건 다른 글로 올릴 예정이구요)

 

'또 오해영'과 '나의 아저씨' 의 작가라는 말을 듣고 심쿵 했었습니다. 두 편 모두 제 평생 2번 본 유일 아니 유이한 드라마 였거든요. 이런 인연이...

한동안 워낙 빠져들었었던 박연선 작가의 작품들에 대한 기억이 거의 다 휘발되어 희미해진 지금, '또 오해영'과 '나의 아저씨'는 전혀 접점이 없이 만났지만 역시나 그 속에 무언가의 공통점이 느껴졌었을까요?

'연애시대' '못말리는 흥신소' '청춘시대 1/2'의 공통점... 그걸 찾던 재미를 이번에는 '해방일지'에서 찾을 수 있을지... 더욱 기대가 됩니다.


WR
1
2022-06-04 22:55:45

정적인 진행에서 배우들의 표정연기가 돋보이고

배우들의 표정 사이를 메우는 카메라 웍이 배경의 표정을 만들고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그저 담담한 듯 써낸 작가의 본뜻을 헤아리게 하고

 

드라마에 대한 불만과 약점을 찾지 않고 시청자 스스로에 대한 관조와 질문과 해방에 이르게 하는 

그런 시청과정(to 해방)이었습니다.

WR
2022-06-04 22:56:22

잘 다녀왔습니다. 감사합니다^^

2022-06-04 23:57:26

해방일지다운 결말이였죠..전 아직 해방못하고 다시보기 하고 있거든요..// 본방때 놓친 미정~구씨 감정선 보니 나름 격정적이였드라구요 ㅎㅎㅎ

WR
Updated at 2022-06-05 00:12:23

뜨거웠잖아요 ㅎㅎ
추앙하란 요구도
시도때도 없이 불쑥 찾아가는 것도
미정이는 숯불처럼 온돌처럼 조용히 열기를 뿜는 스타일이죠.

구씨의 열정은 도랑창 점프에서 보여줬죠.

2022-06-05 07:13:15

위에 ppl 리플보면서 갑자기 생각났는데 제가 드라마볼때 저게 ppl이네~라고 자꾸 찾다보니 집중못하는것도 있는데 해방보면서 딱히 ppl이라고 느낄만한게 없었고 그래서 더 집중된듯 한데 해방은 ppl이 없었나요?

WR
2022-06-05 08:34:26

많았죠. 뭔가 같이 먹는 장면이 많고 대사도 딱히 광고같은 게 없다보니 정말 티 안나게 잘 처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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