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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미분과 적분, 그래서 '우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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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4-01-29 07:02:50

의 블루스.

 

노희경 작가의 우리들의 블루스가 끝났습니다. 옴니버스라서 끝난 듯 이어지는 듯 연결되었었지만 이제 정말 끝났습니다.

 

이 드라마를 보며 드는 의구심은 당연히 노희경 작가에 대한 의구심으로 연결됩니다. 왜 구태여 계몽적인 스탠스를 견지했을까요,

 

팽팽한 긴장과 대비를 위했다지만 왜 드라마에 과도한 설정들을 끌어들여 부자연스럽게 만들었을까요?

 

저는 모두가 의도된 바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쓰다 보니 작가적 한계가 그 정도인 것이 아니고 적절한 반향을 일으킬 결과를 위한 장치들로 부자연스럽지만 눈물 한 바가지 쏟게 만들 장치들을 작가적 판단으로 사용했겠다는 생각입니다.

 

이런 다소 부정적 시각을 떨치고 마지막회를 시청했습니다. 아니, 사실 '미친 년' 대사까지만 보다가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이 글을 올리고 다시 한 시간 남짓 시청하려고 합니다.

 

부정적 시각을 떨쳐버렸으니 긍정적으로 바라봐야겠죠. 우블에 나오는 상황들, 대사들 하나 하나 떼어보면 모두 예쁜 모래알입니다. 좋은 소리의 음표입니다. 그것들이 모이면 멋진 황혼을 볼 수 있는 해변이 되기도 하고 감미로운 야상곡이 됩니다. 의구심으로 시작된 우블 탐구는 미분을 대입한 예쁜 입자들의 발견에 이어 그것을 다시 적분하기에 이릅니다. 적분의 결과 원래의 모습이지만 느낌은 달라졌습니다.

 

보통 우리들이 드라마 내용과 비슷한 상황에 처했을 때 혼자 했을 고민들, 이리저리 모색할 해결책들, 그 결과로 말미암을 주변에 대한 걱정들이 우블에서는 집단지성으로 이루어집니다. 온 동네사람들이 같이 궁리하는 그런 개인 고민은 우블에서나 가능합니다. 심지어 시청자도 어느새 같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이 드라마의 쓸데 없이 밝은 분위기는 서로 배려하는 집단의 대화 때문입니다. 혼자의 머릿 속에서는 자기배려가 필요가 없지만 우블에서는 개인의 고난을 집단이 함께 고민하는데 그 관계 속의 대화들을 이끌기 위한 filler들이 채워져야만 관계가 있고 고민을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독하고 슬플 수 있는 모노드라마 같을 주제들이 모여 제주 한 마을의 군락이 동고동락하는 드라마가 되고 시청자마저도 내용의 향방을 마치 내 일처럼 우려하고 조바심내며 좋은 결과를 소망하고 기대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뻔한 결과가 예상되도 뻔한 드라마로 남지 않게 된 우블의 저력은 미상불 시청자 참여 드라마가 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쯤 되면 이것을 계몽이라고 해야 할까요, 우린 모두 정답을 알고 있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옳은 방향으로 작가와 배우와 연출과 함께 시청자는 완결로 성취했습니다. 계몽이 아니라 나눈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마치 천주교 미사 후에 영성체를 함께 받아 먹는 것처럼요.

 

우정과 돈, 자식과 우울증, 청소년의 사랑, 장애인을 보는 시각과 장애인 가족의 삶, 생활의 무게, 엄마와 아들(오이디푸스, 엘렉트라 컴플렉스) 등 주제를 먼저 정해놓고 썼기 때문에 해변을 걸어도 모래알이 낱알로 밟히고 야상곡을 들어도 음표가 따로 보이지만,

 

결국 '우리들의 블루스'임을 전제했기에 노희경 작가가 이를 의도했고 불편한 설정의 이음새가 눈에 뜨이더라도 우리들이라는 '산'을 보되 각각의 블루스인 '나무들' 하나 하나를 관조하고 음미하며 각자가 스스로의 생활을 돌이켜보자는 다소 계몽적 느낌이지만 강권하지 않으면서 펼쳐보이는 방법을 선택했다고 봤습니다.

님의 서명
인생의 한 부분만이 아니라 전체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서를 해야 하고, 하늘을 바라보아야 하며, 노래하고 춤추고 시를 써야 하고, 고통 받고 이해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 Krishnamur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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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022-06-15 07:18:58

어제 밤 현수와 은희 에피소드를 끝냈습니다
그간 소제목들도 일부러 확인 안하고 시작했기에 어제 소제목들의 구성을 보며 하나의 에피소드?가 끝남을 보며 드라마 전반의 구조가 그려지는듯 하더군요

집단지성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은 함께보는 해방일지의 작가의 전작에서의 후계초등학교 동창들의 시끌벅적 모임이 생각나더군요 어쩌면 해방일지에서 남매가 퇴근하고 만나 술 마시며 나누는 대화도 집단지성의 일종이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우연치않게 두 드라마의 바탕화면의 색감도 극명히 대조되는것 같아 짬짜면 먹듯 흥미롭게 보고 있습니다

WR
2022-06-15 07:24:33

짬짜면 말씀하시니,
된장국 끊었다는 동석의 말에
'그럼 짜장'이라는 옥동의 대사가 연상되네요.

자식의 애증어린 음식인 된장국과
자신이 남편사랑의 징표로 기억하는 짜장에
거듭해서 순번을 상기시킨 작가의 세심함과
김혜자의 '그럼 짜장'이라 말하는

구덩이처럼 깊은 눈자위가 생각납니다.

2022-06-15 07:40:31

해방일지와 블루스를 하루 한편씩 함께 보면서 짬짜면 생각을 했는데.. 블루스 안에서도 짬짜면이 연상되는 장면이 있나봅니다

WR
2022-06-15 07:42:35

예쁜 모래알 또는 청아한 음표 하나 미리 누설해드린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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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2-06-15 09:06:58

우블에 나오는 상황들, 대사들 하나 하나 떼어보면 모두 예쁜 모래알입니다.

좋은 소리의 음표입니다. 그것들이 모이면 멋진 황혼을 볼 수 있는 해변이 되기도 하고

감미로운 야상곡이 됩니다. 의구심으로 시작된 우블 탐구는

미분을 대입한 예쁜 입자들의 발견에 이어

그것을 다시 적분하기에 이릅니다.

 

적분의 결과 원래의 모습이지만 느낌은 달라졌습니다.

 

이 드라마의 쓸데 없이 밝은 분위기는 서로 배려하는 집단의 대화 때문입니다.

혼자의 머릿 속에서는 자기배려가 필요가 없지만

우블에서는 개인의 고난을 집단이 함께 고민하는데

그 관계 속의 대화들을 이끌기 위한 filler들이 채워져야만

관계가 있고 고민을 함께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혹시 글쓰는 일이나

관련 업계에 오래 몸담고 계신 분처럼

글을 서술해 나가시니.

 

어찌 이런 표현들이 서슴없이 나오는 건지,

부럽기만 할 따름입니다.

 

여담이지만,

한때 작가, 뭐 참.

그거 펜대만 잡을 줄 알면 다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하는

매우 오만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아주 라이트한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시리즈로 유명한

정은궐 작가의 소설을 차례대로 탐독하여 읽은 적이 있습니다.

 

아, 나 같은 무지렁이는

작가 발 뒤꿈치도 못만지는

범인 이구나 싶었습니다.

 

돌아보니 작가는,

이야기가 온천물 솟듯

콸콸 터져 나와야 함과 동시에

단어와 문장, 절과 구절을 절묘하게 꿰어 낼 줄 아는

창조자 이면서 장인 이어야 하니까요.

 

그럼 면에서 저는,

제가 서 있는 위치를 봐버린 거죠.

마치 학력고사 전국석차의 내 등수를 확인 했을 때 같은

그 처연함과 좌절감이 동시에 밀려드는, ㅋ, 자괴감요.

 

짧은 글은 어찌 흉내도 내 보지만,

장편은 참, 존경과 경이를 '올려 드릴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글이 쏭알쏭알, 이쁩니다. ㅋ.


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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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2-06-15 09:14:17

https://dvdprime.com/g2/bbs/board.php?bo_table=comm&wr_id=23587897
일단 과한 칭찬 감사드립니다.
링크의 책을 지금 읽고 있는데요.

말씀하신 경험과 생각 모두 저 책에 나옵니다.
작가의 문턱이 어떻게 생겼고
그 미로 혹은 덫을 어떻게 빠져나올 수 있는지
정말 감탄하며 읽으실 수 있으실 겁니다.

작가 지망생이든 작가든 보통 사람이든
모두 자기 생의 원작자임은 분명하니
일독 권해드립니다.

2022-06-15 10:01:56

전 아주 긍정적으로 보고 재밌게 봤습니다. 

주말을 기대하게 만든 2편의 드라마가 끝났고, 축구도 안하고 좀 심심할듯 싶어요. ^^

WR
2022-06-15 10:06:21

기묘한 이야기, 피키블라인더 등 정신 없이 쏟아지고 있어요.^^

2022-06-15 11:16:01

저는 드라마 보다는 예능 파인데 이 드라마는 아내가 그러더라구요. '이 드라마는 당신에게 맞지 않을 거예요. 당신은 명랑하고 밝으며 모두가 행복해지는 스토리를 좋아하니까요.'  

 

하지만 작가가 노희경입니다.  그래서 시작했는데 아직 다섯편 밖에 못 보았음에도 '대박이다!' 라는 소리를 혼잣말로 하고 있는 중입니다. ^^ 고백하자면 혹시 스포가 있을까봐 위에 써주신 그랬군요님의 글도 자세히 읽지 않았습니다 (우리들의 블루스 마치면 꼼꼼히 다시 읽겠습니다).

 

저는 매년 한편씩 저만의 '올해의 드라마'를 뽑는데 올해는 이 작품이 강력한 후보가 될 것 같습니다. 아직 다보지 않았는데도 말이죠. ^^

WR
2022-06-15 11:58:56

ㅎㅎ 딱히 스포랄 것은 없지만 다 보시고 감상의 여운을 즐기며 읽으시면 될 것 같아요.

오랜 창작 생활 끝에 자투리들로 남아있는 문제의식들을 이어붙여 아름다운 조각보를 만들어냈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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