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한잔] 일요일 저녁 식사를 망쳤습니다
일하는 곳 근처에 괜찮은 고기집이 있습니다.
고기가 좋은데 제법 비싸서
일년에 두 어번, 큰 맘 먹고 가는 집이죠.
12월도 됐고, 해 넘기기 전에 한번 먹자 싶어서
같이 일하는 친구랑 오늘 갔습니다.
고기는 여전히 맛있고, 반주도 한 병 기분좋게 비웠죠.
마무리로 볶음밥을 시켰습니다.
무쇠 철판에 김치 조각이랑 국물을 붓고 졸인 뒤
밥이랑 쪽파를 넣고 볶다가 김을 뿌리면 완성되는,
다들 아시는 그 패턴입니다.
종업원이 김치랑 국물 부은 뒤 다른 테이블로 갔습니다.
기다렸습니다.
계속 졸아드는데 종업원이 안오네요.
가스불을 줄이고 기다렸습니다.
체감 시간이 꽤 지난 다음, 종업원이 와서 뚜껑을 엽니다.
탄 냄새가 확 올라오면서 김치였을 거라 추측되는 쪼가리만 남았더군요.
다시 해주겠지... 생각했는데
거기다 밥을 넣고 볶기 시작하는 종업원.
어이가 없어서 종업원을 봤다가 밥을 봅니다.
이미 타버린 김치 파편에 밥이 섞이니까
군데군데 시커멓게 변합니다.
종업원은 볶아진 밥을 넓게 펴서 바른 뒤 김을 뿌리고 갑니다.
이걸... 먹으라고...?
그 식당 종업원은 모두 연배가 있는 여성들입니다.
스무 살 언저리 알바가 없어요.
늘 적당한 굽기, 센스있는 서빙에 만족했던 곳이죠.
그래서 10년 가까이 즐겨찾던 식당인데
오늘같은 경우는 처음 봤습니다.
밥을 볶을 때 한마디 할 수도 있었지만
사실 좀 당황스럽고 얼이 빠졌어요.
도저히 먹을 마음이 안나서 저랑 친구는
한 술도 안뜨고 그냥 일어났습니다.
지나가던 종업원이 손도 안댄 볶음밥을 보더니
아차 싶었는지 '죄송합니다'라고 하네요.
죄송하긴요. 앞으로 안오면 그만이죠...
라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정신 못차릴 만큼 손님이 많았던 것도 아닌데
무신경한 일처리에 빈정이 상했거든요.
둘이 먹고 14만원 넘게 나왔습니다.
볶음밥도 그냥 계산했어요.
사장한테는 '볶음밥을 하나도 먹지 않았습니다'라고
한마디만 했습니다.
사장은 영문도 모른 채 죄송하다고 하더군요.
돌아오는 길에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치가 탔을 때 다시 만들어달라고 하면 될 것을
그걸 지켜보다가 그대로 일어난 건 무슨 옹졸함인지...
비싼 고기 먹고, 스스로 반성하게 된 저녁이었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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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살면 살수록 후회만 느는게....나이먹으면 사고의 순발력이 떨어져서 그런가 생각도 들더라구요. 마라톤맨님은 위트와 센스를 겸비하신 분이라...왜 그 자리에서 기분좋게 상황을 해결할 말을 하지 못했을까하는 후회가 더 크긴할거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