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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한잔]  일요일 저녁 식사를 망쳤습니다

마라톤맨
24
  4149
2023-12-10 19:10:03

 

일하는 곳 근처에 괜찮은 고기집이 있습니다.

고기가 좋은데 제법 비싸서 

일년에 두 어번, 큰 맘 먹고 가는 집이죠.

 

12월도 됐고, 해 넘기기 전에 한번 먹자 싶어서

같이 일하는 친구랑 오늘 갔습니다.

고기는 여전히 맛있고, 반주도 한 병 기분좋게 비웠죠.

 

마무리로 볶음밥을 시켰습니다.

무쇠 철판에 김치 조각이랑 국물을 붓고 졸인 뒤

밥이랑 쪽파를 넣고 볶다가 김을 뿌리면 완성되는,

다들 아시는 그 패턴입니다.

 

종업원이 김치랑 국물 부은 뒤 다른 테이블로 갔습니다.

기다렸습니다.

계속 졸아드는데 종업원이 안오네요.

가스불을 줄이고 기다렸습니다.

체감 시간이 꽤 지난 다음, 종업원이 와서 뚜껑을 엽니다.

탄 냄새가 확 올라오면서 김치였을 거라 추측되는 쪼가리만 남았더군요.

다시 해주겠지... 생각했는데

거기다 밥을 넣고 볶기 시작하는 종업원.

 

어이가 없어서 종업원을 봤다가 밥을 봅니다.

이미 타버린 김치 파편에 밥이 섞이니까

군데군데 시커멓게 변합니다.

종업원은 볶아진 밥을 넓게 펴서 바른 뒤 김을 뿌리고 갑니다.

이걸... 먹으라고...?

 

그 식당 종업원은 모두 연배가 있는 여성들입니다.

스무 살 언저리 알바가 없어요.

늘 적당한 굽기, 센스있는 서빙에 만족했던 곳이죠.

그래서 10년 가까이 즐겨찾던 식당인데

오늘같은 경우는 처음 봤습니다.

 

밥을 볶을 때 한마디 할 수도 있었지만

사실 좀 당황스럽고 얼이 빠졌어요.

도저히 먹을 마음이 안나서 저랑 친구는

한 술도 안뜨고 그냥 일어났습니다.

지나가던 종업원이 손도 안댄 볶음밥을 보더니

아차 싶었는지 '죄송합니다'라고 하네요.

 

죄송하긴요. 앞으로 안오면 그만이죠...

라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정신 못차릴 만큼 손님이 많았던 것도 아닌데

무신경한 일처리에 빈정이 상했거든요.

 

둘이 먹고 14만원 넘게 나왔습니다.

볶음밥도 그냥 계산했어요.

사장한테는 '볶음밥을 하나도 먹지 않았습니다'라고

한마디만 했습니다.

사장은 영문도 모른 채 죄송하다고 하더군요.

 

돌아오는 길에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치가 탔을 때 다시 만들어달라고 하면 될 것을

그걸 지켜보다가 그대로 일어난 건 무슨 옹졸함인지...

비싼 고기 먹고, 스스로 반성하게 된 저녁이었습니다. ㅠㅠ 


24
댓글
연수현우아범
8
2023-12-10 10:20:08

인생은 살면 살수록 후회만 느는게....나이먹으면 사고의 순발력이 떨어져서 그런가 생각도 들더라구요. 마라톤맨님은 위트와 센스를 겸비하신 분이라...왜 그 자리에서 기분좋게 상황을 해결할 말을 하지 못했을까하는 후회가 더 크긴할거 같아요.

WR
마라톤맨
2023-12-10 10:27:04

크흑... 뼈 때리지 마십쇼!

이미 반성하고 있다구요!

매일잘되자
1
2023-12-10 10:20:49

완성을 못시킨 미완의 식사 이셨네요

WR
마라톤맨
2023-12-10 10:27:29

고기 맛을 까먹었어요. ㅠㅠ

병호아빠
1
2023-12-10 10:22:51

마무리가 중요한데....ㅠ

WR
마라톤맨
2023-12-10 10:27:55

그렇죠. 끝이 좋으면 다 좋은 법인데...

바라던
4
2023-12-10 10:30:02

지나고보면 별거 아닌데 닥쳐있을땐 쉬운 말한마디 하는 쪽으로 머리가 안돌아갈때가 많죠. 그래도 고기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해요. 사람을 놓치는게 아니면

WR
마라톤맨
2023-12-10 10:32:48

그럴 때가 종종 있죠

gilsunza
1
2023-12-10 10:31:48

대도식당 스타일이군요. 깍두기 국물에 볶음밥 맛있는데... -.-

WR
마라톤맨
2023-12-10 10:33:30

날카로우시군요!

대도식당은 아닙니다만... ^^ 

mAriAchi
6
2023-12-10 10:33:08

후배들에게도 자주 얘기하는데.. 평소에 일은 누구나 어느정도 한다..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대처하느냐가 진짜 실력이다. 볶음밥도 잠깐 딴 테이블 보면 실수 할 수 있지만 잘못 만든 볶음밥에 컴플레인 안 하니 괜찮다고 넘기는 게 문제겠지요. 그에 기분 상하신 거고.. 저도 그러면 화가 많이 났을 거 같네요.

WR
마라톤맨
2
2023-12-10 10:34:40

아아... 딱 그 말씀이 제 마음입니다.

믿고 찾은 식당에서 문득 뺨 맞은 기분!

일곱살꼬마
2
2023-12-10 10:56:02

"죄송하긴요. 앞으로 안오면 그만이죠..."

라고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 이게 마라톤님이 성격이 좋으신게... 

전 그냥 그 자리에서 말합니다.

"됐어요. 앞으로 안 오면 되죠"

이러고서 나중에 후회한 적이 ㅜㅜ

WR
마라톤맨
2023-12-10 11:29:54

제가 소심해서 그렇습니다 ㅋㅋ

에스군
1
2023-12-10 13:22:50

말하는게 맞죠. 말안할거면 왜 안먹은지도 모를테고, 피드백은 해주는게 맞아요.
후회할 필요가 없습니다!! ㅎㅎ

WR
마라톤맨
1
2023-12-10 23:54:49

네, 다음부턴 그래야겠어요

조지 클루니
5
2023-12-10 11:44:29

서빙을 잘못한 종업원의 잘못이기는 하지만,  김치가 탈 것 같으면 그냥 가스 불을 끄면 어땠을까요?

 

WR
마라톤맨
2023-12-10 23:55:19

뚜껑이 덮여 있어서 정확히 몰랐어요.
불을 줄이긴 했는데... 

몽몽구리
1
2023-12-10 12:22:50

유령눈팅회원이긴한데 너무 반가운 회원분이라 일단 추천했습니다;; 볶음밥은 많이 아쉽네요 고기 맛있게 먹어도 후식이 중요한데

WR
마라톤맨
2023-12-10 23:55:38

마무리가 아쉬운 저녁이었습니다.

짹빠우어
4
2023-12-10 12:30:14

당연히 종업원 잘못이 맞는 것 같습니다. 다만 불만에 대해 정확히 의사 표명을 해야 '내'가 스트레스를 안받게 되고 뒤에 후회하는 생각이 들지 않지요. 저도 대체로 소심한 성격인데 이런 상황에서는 그냥 이야기를 합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이게 서로를 위하는 길이고 맞는 것 같더라고요.

WR
마라톤맨
2023-12-10 23:56:21

어? 하다가 타이밍을 놓쳤고 그게 좀 후회스럽네요

마음의양식
1
2023-12-10 13:44:56

상황이 벌어졌을 때 바로 이야기하시지 안타깝네요. 요즘은 배려가 없더라구요. 한 마디 들어야 잘못을 인정합니다. 

WR
마라톤맨
2023-12-10 23:57:06

워낙 접객이 좋던 식당이라 당황스러워하다가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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