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Review] 신자유주의와 권력
연초 구입한 도서 목록 중 '신자유주의의 권력'이란 책이 있습니다.
구입 당일 가볍게 백 여 쪽을 읽어버렸죠.
푸코의 말년 강의록에서 생명 정치와 신자유주의에 대한 설명을 중심으로 풀어나가는
평이한 내용이었습니다.
결국 푸코가 평생 고민해 온 '주체가 어떻게 권력에 저항할 수 있는가?'
전작들에서 꾸준히 논한 규율 권력에서 신자유주의 시대에 한층 진화한 통치성의 양상은 경쟁이라는 시장 논리를 내면화한 주체 스스로가 기업가가 되는 자기-경영 주체를 생성함으로써 더 효율적으로 지배하는 세상이 왔다는 건데요. 그러나 푸코의 저항의 거점은 쾌락에 머물게 됩니다. ('성의 역사' 연작에 보면 그렇죠)
이후 전개되는 내용은 벤야민의 '폭력의 비판을 위하여'에서 따온 데리다의 '법의 힘'과 아감벤의 '예외 상태'를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이 부분도 특별히 어려울 건 없는 내용입니다.
고전적 자유주의와 신자유주의의 차이는 결국 경쟁을 국가가 직접 개입해서 시스템에 인스톨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법의 이름으로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고전적 자유주의는 최소국가, 자유방임이 원칙이죠.
여기서 벤야민의 말하는 법 제정적 폭력과 법 보존적 폭력 구분이 나오는데, 데리다는 오히려 이 두가지는 분리될 수 없고 상호 보완하는 개념으로 보아야 한다는 겁니다. 데리다식의 '차연적 오염' 개념이 등장하죠. 순수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식의. 그러니까 법 제정적 폭력은 언제나 법 보존적 폭력 속에서 반복가능해야 하고, 법 보존적 폭력은 언제나 법 제정적 폭력을 전제한다는 논리 말이죠.
이것을 칼 슈미트의 예외상태에 대한 아감벤의 독특한 독해와 연결 짓습니다. 여기서도 벤야민의 농밀한 통찰력이 돋보이는데, 현 시대 통치를 특징짓는 예외상태의 규칙화를 그는 이미 예견했죠. 예외 상태는 법 적용이 모두 무효되는 상황을 가리키는데, 가령 전쟁이나 천재지변 같은 위급 상황에서요. 지금의 검찰이나 경찰은 언제나 정부 명령을 선포함으로써 헌법 위에 군림하는 경향이 지배적이라는 겁니다. 지금도 의회가 의결한 사항을 주권자가 비토할 수 있는 권한이 있잖습니까? 국회를 해산하고 법(심지어 헌법)의 효력을 정지시킬 수 있는 상황이 예외 상태일텐데, 그것을 '결정'하는 자가 주권자죠. 그런데 현재 신자유주의 통치에서는 예외상태가 일상다반사가 되었다는 겁니다. 주권자가 예외상태라는 결정을 내리면, 경찰은 그 결정에 힘입어 새로운 법을 제정하고, 적용한다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저자는 저항의 전략이 푸코에게서는 쾌락이었는데, 쾌락은 정신분석적 관점에서는 욕망의 충족을 의미하죠. 충족된 욕망은 별도의 계기가 없는 한 다시 활성화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들뢰즈/가타리 이론에 기대어 저항의 가능성을 논합니다. 이 부분은 프로이트, 멜라니 클라인 그리고 무엇보다 라깡에 대한 독해가 전제 되어야 하므로 일반 독자에겐 굉장히 추상적 내용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주된 논거는 '의미의 논리'에서 제시된 클라인과 라깡의 논의, 특히 부분 대상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결국 죽음 본능으로 귀결됩니다. (물론 프로이트의 타나토스, 죽음 충동과는 상이한 개념이죠.) 라깡이 말하는 주체 형성의 이론에서 팔루스의 독재를 비판하고, 정신분석은 모든 것을 인칭이나 주체 개념으로 환원하는 해석인데, 이것이 문제라고 강변합니다. 왜냐하면 주체는 어쨌든 복종의 주체니까요. (주체subject의 사전적 의미를 참고하면 쉽게 알 수 있죠)
그래서 비-주체, 비-인칭으로 나아갑니다. 주체라는 프레임에서 아무리 논해 본 들, 답은 없다. 주체를 벗어나야 한다. 그래서 생성devenir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겁니다. 동물이 되거나, 닌자(식별 불가능한)가 되거나, 여성이 되거나, 분자가 되거나, 즉 사회적 프레임에 통합될 수 없는 소수자가 되어야 한다는 겁니다.
사토 요시유키, 70년대 생으로 일본 '뉴아카'를 이끄는 대표 주자 중 하나이고, 프랑스 현대철학 4인방 푸코, 들뢰즈, 알튀세르, 데리다에 대한 논의는 주목할 만하지만 라깡에 대한 이해는 아직 빈약한 것 같습니다. 지나치게 들뢰즈/가타리적 주장들에 경도되고, 동조하는 모습이 보인달까요. 라깡이 그렇게 쉽게 재단할 수 있는 간단한 사람이 아니거든요.
라깡에 대한 여러 주석자들 중 브루스 핑크처럼 교과서적인 인물도 있고, 지젝 같은 창조적 오해를 하는 이도 있고. 로렌초 키에자 같은 철학적 독해도 훌륭하지만 아직도 라깡은 충분히 이해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임상 분석가들은 이론이 좀 부족하고, 이론가들은 임상이 부족하기 때문에 말이죠. 오죽하면 그의 애제자 라플랑슈 마저도 라깡이 나무랐을까요. 자신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고!
마지막으로 책 읽으면서 인상적 문구를 남기고 글 마무리하겠습니다.
경찰(검찰)은 수치스러운데, ... 법을 공포하지는 않지만 입법가로 자처한다. 경찰이 존재하는 곳에서 우리는 법 정립적 폭력과 법 보존적 폭력을 분간할 수 없으며, 바로 여기에 수치스럽고, 모욕적이며, 참을 수 없는 애매성이 존재한다. (괄호는 제가 첨가한 것입니다)
첨언하자면 위의 경찰은 벤야민 시대에 활동한 비밀경찰 같은 조직을 말하는데, 오해가 없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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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에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은 본문의 내용과 많이 일치하는 좋은 예였습니다. 영제가 Society of the Snow(원제:La sociedad de la nieve)인데요. 45명에서 16명만 살아남을 때까지 나름의 불문법체계가 유지되죠. 럭비팀, 젊은이들이라는 예외적인 조건이어서 가능했겠다는 생각과 함께 토론과 수렴, 소수의견의 보장, 희생과 함께 소소한 유희까지 일반 사회의 탈지분유 버전이라고 봤습니다. 그렇다면 실제 세상에서의 모두가 행복한 사회에 필요한 체계 이외의 군더더기나 불합리들은 결국 폭력과 억압으로 작용한다는 것는데요. 말씀하신 '쾌락'이 그것을 잊게 하죠. 리퀴드 모더니티를 읽은 지 오래될 수록 의미가 선명해지는데 지그문트 바우만은 현대사회 결속의 '상태'가 느슨해질 것이라고 예상했으며 우리는 '민주주의의 퇴행'으로 목격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론을 따로 배우지 않았으면서 본문이 재미있게 읽힌다는 것은 관심 때문이겠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