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알베르토 망겔이 옳았습니다
인터뷰에서 3만 5천권의 장서를 보유했던 망겔에게 종이책에 대해 질문합니다.
- 당신과는 대조적으로 보르헤스는 생전에 개인 서재에 수백 권 정도만 가지고 있었다고 쓰셨더군요. 두 사람의 그런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한다고 보세요?
보르헤스가 애착을 느낀 것은 책이라는 대상이 아니라 텍스트였습니다. 저는 책이 말해야 하는 것 못지않게 책의 물리적 현존을 좋아합니다.
- 왜지요?
저는 물신숭배자입니다. 종이의 촉감, 제본과 잉크 특유의 향, 책을 제 손에 들었을 때 느껴지는 묵직함 같은 것들을 사랑합니다. 우리가 책에 관해 이야기할 때 육체적인 사랑을 뜻하는 어휘(amorous vocabulary)를 사용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것을 침상(잠자리)으로 가져가서, 표지(겉옷)에 손을 얹고, 책장(얇은 천) 사이로 손가락을 미끄러지듯 밀어넣습니다.
프랑스인들은 'jouir de la lecture'라는 표현을 씁니다. 독서에서 쾌락을 찾는다는 뜻으로, 오르가즘에 이르렀을 때 사용하는 것과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요.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작가 베르고트의 죽음을 회상하면서, 작가의 책들이 서재 윗칸에 3-4권씩 줄지어 꽂혀 있는 것을 두고, 그가 깨어있는 동안 긴 밤 내내 날개를 펼친 천사들이 그들의 독자(베르고트)의 몸 위에서 지켜보는 장면처럼 묘사했습니다. 저도 그렇다고 믿습니다. 제가 침상에서 죽을 때도 아마 저의 많은 책들이 빚어내는 어두운 형체들의 호위를 받고 있을 겁니다.
https://www.fn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8326
애정하는 책은 분명히 있습니다. 무명용사가 남긴 지갑 속에서 고향 여자친구의 사진이 나오는 장면은 영화에서 많이 봤었죠, 그런 것입니다. 더 이상 읽지 않아도 가지고 있기만 해도 그 책을 읽을 때 느낌과 이후의 삶에 이정표나 가로등이 되고 내 생각의 주춧돌과 바람벽이 되어주는 그런 책들은 부정할 수 없는 애착이 남아 있습니다.
이북(ebook)으로 전향한다 해도 있는 책을 추려서 버린다고 해도 절대로 버린다는 것은 고려조차도 안 하는 그런 책들이 몇 권이나마 남아 있습니다. 오늘 댓글 쓰려고 찾아본 책을 보니 3만 5천 장서를 상자에 넣는 망겔의 마음을 이해하게 됐고 죽을 때도 애정하는 책들의 호위를 받을 거라고 말하는 심정을 알 것 같습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56525941
https://www.goodreads.com/book/show/36004727-packing-my-library
- Krishnamur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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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고만 있어도 마음이 위안을 받는.. 그런 책이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