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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알베르토 망겔이 옳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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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4-02-23 02:54:29

인터뷰에서 3만 5천권의 장서를 보유했던 망겔에게 종이책에 대해 질문합니다.

- 당신과는 대조적으로 보르헤스는 생전에 개인 서재에 수백 권 정도만 가지고 있었다고 쓰셨더군요. 두 사람의 그런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한다고 보세요?


보르헤스가 애착을 느낀 것은 책이라는 대상이 아니라 텍스트였습니다. 저는 책이 말해야 하는 것 못지않게 책의 물리적 현존을 좋아합니다.


- 왜지요?


저는 물신숭배자입니다. 종이의 촉감, 제본과 잉크 특유의 향, 책을 제 손에 들었을 때 느껴지는 묵직함 같은 것들을 사랑합니다. 우리가 책에 관해 이야기할 때 육체적인 사랑을 뜻하는 어휘(amorous vocabulary)를 사용하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것을 침상(잠자리)으로 가져가서, 표지(겉옷)에 손을 얹고, 책장(얇은 천) 사이로 손가락을 미끄러지듯 밀어넣습니다.


프랑스인들은 'jouir de la lecture'라는 표현을 씁니다. 독서에서 쾌락을 찾는다는 뜻으로, 오르가즘에 이르렀을 때 사용하는 것과 같은 단어를 사용하지요.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작가 베르고트의 죽음을 회상하면서, 작가의 책들이 서재 윗칸에 3-4권씩 줄지어 꽂혀 있는 것을 두고, 그가 깨어있는 동안 긴 밤 내내 날개를 펼친 천사들이 그들의 독자(베르고트)의 몸 위에서 지켜보는 장면처럼 묘사했습니다. 저도 그렇다고 믿습니다. 제가 침상에서 죽을 때도 아마 저의 많은 책들이 빚어내는 어두운 형체들의 호위를 받고 있을 겁니다.

https://www.fn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168326

애정하는 책은 분명히 있습니다. 무명용사가 남긴 지갑 속에서 고향 여자친구의 사진이 나오는 장면은 영화에서 많이 봤었죠, 그런 것입니다. 더 이상 읽지 않아도 가지고 있기만 해도 그 책을 읽을 때 느낌과 이후의 삶에 이정표나 가로등이 되고 내 생각의 주춧돌과 바람벽이 되어주는 그런 책들은 부정할 수 없는 애착이 남아 있습니다.

 

이북(ebook)으로 전향한다 해도 있는 책을 추려서 버린다고 해도 절대로 버린다는 것은 고려조차도 안 하는 그런 책들이 몇 권이나마 남아 있습니다. 오늘 댓글 쓰려고 찾아본 책을 보니 3만 5천 장서를 상자에 넣는 망겔의 마음을 이해하게 됐고 죽을 때도 애정하는 책들의 호위를 받을 거라고 말하는 심정을 알 것 같습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56525941

https://www.goodreads.com/book/show/36004727-packing-my-library

 

 

님의 서명
인생의 한 부분만이 아니라 전체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독서를 해야 하고, 하늘을 바라보아야 하며, 노래하고 춤추고 시를 써야 하고, 고통 받고 이해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인생입니다.
- Krishnamurt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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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
2024-02-23 08:11:47

가지고만 있어도 마음이 위안을 받는.. 그런 책이 있지요

1
Updated at 2024-02-23 08:34:11

서양 부자가 나오는 영화에서, 금액 휘갈겨쓰고 북~~~ 소리나게 찢어 건네주는 수표책(Checkbook) 정도면 충분히 위안을 받을 수 있습니다...

WR
2024-02-23 08:45:19

수표는 통장번호같은 개인정보 때문에 사용이 꺼려지는 추세예요.

2024-02-23 08:49:28

그래도 마음의 위안을 받고 싶은 것이 보통 사람의 마음이라서...

2024-02-23 08:53:00

Running9님 이야기하신 수표책 쓰일때에는 수표에 통장번호 없었을지두요
은행에서는 자기네 수표인지, 지불자 싸인이 맞는지, 그리고 일련번호 몇번인지 정도 보고나서 돈을 내어줬다죠

WR
2024-02-23 09:01:28

수표책을 쓰더라도 은행잔고가 없으면 바로 (수표가 )돌아옵니다. 바운스 백이라고 합니다.

1
2024-02-23 09:34:28

그렇죠 저도 어릴때 영화 등에 그런 장면 나오면 통장잔고가 얼마나 되길래 저렇게 아무렇게나 싸인 해주나 싶더라구요

1
Updated at 2024-02-23 08:43:47

 다시 아나톨 프랑스의 말을 인용해 보자. 어느날 그는 그의 서재를 보고 감탄하고는 의례 의무적으로 하는 물음, 즉 『당신은 이 책을 모두 읽었읍니까?』라는 어느 속물의 물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아닙니다. 십분의 일도 읽지 못했읍니다. 혹시 당신은 매일같이 세브르 도자기로 식사를 합니까?』

발터 벤야민, 「나의 서재 공개」

 

 

 클래식 FM에서 '명연주 명음반'을 진행하는 정만섭이 '행복한 클라시쿠스'라는 책에 남겨두었던 일화를 다시 떠올려보자. 그가 음반점을 할 때, 우연히 글렌 굴드를 무지 좋아하는 스님을 알게 되었고, 그는 그 스님에게 '스굴드'란 별명을 붙여준다. 어느날 찾아갔던 스굴드의 암자에는 엄청난 오디오 세트가 구비되어 있었고, 스굴드는 그에게 늘 새로 나온 굴드의 음반이 있는지를 묻곤 했다. 하지만 몇년 동안 스굴드가 그의 음반점을 찾아오지 않았고, 주변 사람들을 통해 스굴드가 암으로 투병했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암투병 후 다시 만난 스굴드는 그 엄청난 오디오 세트와 음반들을 다 처분해버렸고, 이제 그는 단지 작은 포터블 라디오로 음악을 듣는다고 그에게 말한다. 그냥 음악을 듣는 자체가 '행복'하다고.

 

 

음악이란 '시간' 속의 경험일 것입니다, 악보를 소장한다고 해서 내가 그 '음악'을 소장할 수 있는 건 아니겠죠. 어떠한 '시간' 속에서 연주가 되어야 내가 그 음악 속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음악' 조차도 'to have'가 되어 버렸죠, 실황을 듣지 못했는데 실황 음반을 소장하고 있는 게 과연 의미가 있을까. 어떠한 곡의 idea를 악보로 재현(represent)한다면 연주는 구현(embody)가 될 것이고, 음반은 그 재현의 다시 재현이 되겠죠. 맞습니다, 알고 계신 것처럼 우린 시뮬라시옹의 세계에서 살고 있나 봅니다.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기도수의 음악실이 부럽더군요^^ 만약 강남 아파트에 서재가 있다면 책이나 음반의 총 구매비용보다 그것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의 임대료가 더 높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쩌면 미니멀리즘이라고 소유를 버린 듯, '쿨'하게 보이지만 결국은 현실적으로 지대가 점점 높아지면서 내 소유물들 때문에 부담해야 하는 임대료가 내 소유물의 가치보다 더 높아지기 때문은 아닐까 싶습니다. 

 

학교 도서관의 희랍인 조르바 책에서 풍기는 향기가 좋다던 여성이 있었습니다, 그녀가 플로베르의 감정교육을 읽던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찾아봤을 때 녹색당의 당원으로서 여전히 운동(movement)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어떤 포지션에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피천득옹께서 쓰신 '아사코와 나는 세번 만났다. 세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란 구절은 늘 곱씹어도 좋은 듯 합니다.

WR
1
2024-02-23 08:59:28

언제 펼쳐봤는지도 모를 책들인데 오늘 만지니 그대로 '역사'가 실체적 증거(책)로 상기되더군요. 곡학아세가 나쁘지만 곡학과 아세는 구분해야 하고 곡학만 아니 해도 괜찮은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늙는 거죠. 망겔의 경우가 그렇네요. 그의 책 내용이나 천착들을 폄하하고 던져버렸던 때가 몇 년 전이었습니다. 오늘 망겔의 글과 바우만의 글을 교차해서 읽으니 - 아사코를 달리 느끼는 것은 아사코가 변했을 수도, 자신이 달라졌을 수도 있는데 어느 쪽이든 '자신'을 바라보고 있으므로 괜찮다는 생각입니다. - 그들은 그들의 삶을 살았고 그들을 만나는 제가 변한 것이죠. 오늘 이곳 바깥 날씨가 좋습니다.

1
2024-02-23 10:00:59

세번째까지 다시 만나면 그만큼 더 늙었을테니까, 피천득 옹의 말씀이 이해됩니다^^ 운동과 시간 속에서 나 자신이 지속된다는 것은 실제일까 믿음일까가 가끔 궁금해집니다.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는 없으니까 말이죠 ㅎㅎ 

2
2024-02-23 09:00:36

음악 이야기가 함께 어우러지니 이해가 팍팍 됩니다

브루크너에 빠져 지내며 누구의 연주가 최고일까를 고민해 보기도 하다가 몇년전부터 부르크너사이트에 올라와있는 무명?악단과 지휘자의 무료음원의 그 투박한 연주와 음색에 마음이 가더군요 중간중간 들리는 금관이나 바이올린의 삑사리 음에 반가워하는 제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죠

1
2024-02-23 09:51:26

하지만 전 최근 틸레만과 빈필의 브루크너 교향곡 전집 블루레이를 사놓고서 거의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ㅠㅠ 음악의 속성이란 연주되면서 동시에 사라져버리는 것일텐데 그걸 고정시켜 놓으니 비교 평가도 가능해지는 듯 합니다, (마치 시간을 공간화해서 계산하는 것처럼) 질(quality)을 양(quantity)으로 바꿔서 비교하려고 하는 과학적(?)인 현 시대의 단면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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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4-02-23 10:52:27

리영희 옹, 백기완 옹을 보니 학부시절 이진경 사사방과 정운영 책들 읽었던 순간이 문득 겹쳐 떠오르네요.  3만 5천권이면 이 나라 아파트 경우 하중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릴 수도 있겠네요. 저도 3500권 정도 소장 하다가 공간의 압박으로 좀 정리했지요. 이사할 때마다 포장 비용이 너무 많이 나오니 더 줄여야 할 것 같습니다. 다만 내칠 책은 신중하게 골라야겠지요. 감히 생각해보지 못했지만 죽어도 버리지 못할 책이 있다면 박상륭의 글과 포크너의 글일 것 같네요. 아! 도스토옙스키 추가요. ㅎ

WR
2024-02-24 00:39:55

맞습니다. 독서행태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죽기 전까지 보관할 책을 돌이키는 것보다 죽기 전까지 읽는 것을 계속하는 것을 상상했고요. 보르헤스는 들었고, 파디만은 오디오북을 애용했었죠. 구술로 작곡/저술했다는 이야기야 흔한데 입력 없이 출력이 가능하다면 신화나 전설이겠죠. 망겔이 코엘료를 읽지 않는다 했죠, 제가 비교하기에 코엘료의 문장은 망겔 2프로^^^였습니다.(코엘료 팬에겐 미안하지만 망겔의 설명은 확 다가오는 게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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