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5년은 결코 잊을 수 없는 해이다. 문뜩 TV를 켰던 나를 순간 꼼짝없이 묶었던 그 불멸의 뮤직 비디오..Take on me 20~30대의 나이라면 이 노래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마이클잭슨의 빌리진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내게 노르웨이의 낯선 3남자는 나를 흥분시키기에 몇 분의 시간도 소요되지 않았다.. 더욱이 영어라면 알파벳도 외우길 싫어했던 내게...이 그룹의 이름은 왜 그리 친근하게 다가오던지..a-ha라구? 아하! 나는 POP이라는 음악에 심취하게 되었고...아하를 절대적인 내 우상으로 받아 드리기로 결심 하기에 까지 이른다 잠시 a-ha를 소개 하자면 아하는 노르웨이 남성 3인조 그룹이다. 보컬을 맡고 잇는 모튼하켓Morten Harket(우리에게 Can't take my eyes off you로 더 잘 알려져 있다.) 4옥타브에 이르는 미성의 음색은 신비롭고 웅장한 아하의 사운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Paull Waaktaar는 베이스와 기타 대부분의 작곡을 맡고 있다 .Magne Furuholmen은 건반을 맡고 있으며, 음악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화가로도 인정을 받고 있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a-ha의 공백기 동안 베이찡에서 파리를 순회하는 전시회를 개최하는 등 화가로서의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아하 의 앨범 자켓도 디자인 하곤 한다.) 80년대 후반은 아이돌 스타의 전성기였다. 뉴키즈온더블럭이 나오기까지..대한민국은 아하,듀란듀란, 보이조지, 빌리아이돌,런던보이,JOY등의 아이돌 스타의 싸움이었다. 그 중에서 거대한 참 대단했다..지금의 HOT나 서태지 팬클럽에 필적 할 만한 대규모의 팬클럽이 운영되기 시작 했던 게 아하와 듀란듀란이 그 시발점이 아니었나 생각 하게 된다. 나 역시 아하 팬클럽에 가입을 하기 위해..무수히 신청엽서를 보냈지만..공식 회원 수 초과라는 명목으로 거부를 당했던 기억이 있다. 아하냐?, 듀란듀란이냐? 가 그 시절 팝계의 가장 큰 이슈라 할 만큼..음악잡지 대부분의 표지를 장식 했던 게 그들 이었다..결국 아하와 듀란듀란의 싸움은 음악세계 과? 월호의 투표로 아하가 듀란듀란보다 인지도가 월등이 높았다는 걸로 대한민국에서 아하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 높은 인기를 등에 지고도 이해가 가지 않았던 가장 기나긴 싸움은 아하의 대한민국 콘서트엿다. 몇 년도였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콘서트 매치에서는 듀란듀란이 완승 최고의 보이 밴드 공연으로 대한민국 소녀들을 녹다운 시키면서 그들의 인지를 확고히 한다 (이 공연은 당시 토토즐 시간 때에 MBC를 통해서 방송이 되었다) 그러나 정작...그렇게 염원하던 아하의 공연은 아이러니 하게도 지금까지 열리지 못하고야 말았는데...당시 대모의 과열로 인해 성사 직전에 시국 불안정!!!이라는 이유로 한국땅에 왔다가. 다시 본국으로 돌아갔다는 소문만을 남기고 수많은 소녀 팬들의 억장을 그렇게 무너트리고야 말았다. 그 원망 역시 오래가지 못하였고..뉴키즈온더 블럭이라는 새로운 아이돌 스타의 출현으로 그렇게 수절하던 아하의 어여쁜 소녀 팬들을 한 순간에 빼앗아 가며 소리 소문 없이 아하는 그렇게 잊혀져 가고 말았다.
해제 후 공식적인 활동은 1998년 12월 11일 a-ha 해체 상태에서 노벨 평화상 시상식 콘서트 공연이 내가 볼 수 있었던 TV에서의 마지막 모습이 되었다. 아하의 반세기를 평가하는 a-ha 힛트퍼레이드 Headline & Deadline !!! 그 시절로 돌아가 본다 참으로 뮤직 비디오가 귀하던 시절 이었다. 아하의 뮤직비디오가 나오면 밥 먹던 숫 가락을 내던지고...TV앞에 입을 벌린 체 지켜 봐야 했다. 그 만큼 아하의 뮤직비디오는 센세이션했다. 그러나 특정 프로그램이 끝나고 보여주는 맛 뵈기 형식의 비디오는 허무함. 한숨 깊은 괴리감뿐이었다. 아하의 뮤비 풀 버전을 본다는 것 그것 만큼 기쁜 일이 없었다. 그래서 그 당시는 뮤직비디오감상회라는 행사가 잦았는데 또 그렇게 인기가 많았다. 참고로 아하와 관련해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DJ 김광한씨이다. 늘 이분은 아하를 알리는데 앞장을 선 걸로 기억한다. 수 많은 뮤직비디오 감상회를 주관 하며 여러 팝 가수의 뮤직비디오를 대중화 시키는 기여를 하였다. 그 분이 주관했던 롯데 백화점 지하에서 열렸던 뮤직비디오 감상회 때는 아하 뮤비를 보기 위해(신작이 공개) 백화점은 그야말로 장사진을 이루었다. 떠나갈 듯 외쳐 되는 악! 소리에. 1,2층에서 쇼핑을 보던 쇼핑객들이 아연실색했던 해프닝도 있었고...도벽과 기타 여러 정황을 우려 뮤직비디오 감상회에 경찰들이 진을 쳤던 웃지 못할 일도 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니 얼마나 라이브 공연에 목말라하며, 뮤직비디오에 목 메였던 시절 이었겠는가? 감상회가 끝이 나면 김광한씨가 팬들을 의식하여..한정판 복사 아하 뮤직비디오가 판매 되었으니..돈이 있어도 집에 비디오가 없어서 볼 수 없었던 시절인 만큼 나는 결심하듯 이를 갈았다 꼭 돈 많이 벌어 이 영상회처럼 프로젝트도 사고 비디오도 사서 내방을 뮤직비디오 감상실로 꾸미고 말리라고 다짐 또 다짐을 했다. ★★꿈은 이루어진다!★★. 이제 아하 뮤직비오를 내방에서 그것도 고 음질, 고 화질, 대 화면으로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이 얼마나 감계무량한 일인가?.
DVD로 다시돌아온 a-ha Headline & Deadline !!!
제목에서 짐작되듯이 신문의 첫 포문을 장식하는 Headlin과 신문 원고 마지막을 장식하는 Deadline에서 짐작 할 수 있는 아하의 성공적인 데뷔작 Takeon me를 필두로 해체 직전의 만들어진 Move To Memphis까지의 아하의 중간 해체후의 히트곡들이 총 망라 되어있다. 아하의 뮤직비디오가 주목 받는 데는 이유가 있는데. 당시로써는 영화에서 조차 보기 힘든 특수한 촬영기법과 우수한 영상미를 두루 갖춘 퀄리티 높은 영상이 음악과 함께 담아져 있기 때문이다. 몇 편의 비디오는 지금 봐도 세월의 느낌을 알 수 없을 정도로 센세이션하다. a-ha Headline & Deadline !!! dvd는 1년 전 코드2번으로 유럽에서 발매가 되었는데. 코드2의PAL방식 이였던 것이 이번에 코드 3,4,6의 NTSC로 워너뮤직에서 발매가 되었다.
화질:★★ ★((어느 분이 예전에 코드2의 화질을 평가 해주셨는데. 코드3 역시 좋지 못한 화질을 보여준다. 어쩔 수 없다고 본다..비디오 포맷 이였던 마이클젝슨의 근작도 좋은 화질이 아니었던걸 보면… 다만 a-ha의뮤비를 영구히 변질되지 않는 DVD 매체로 볼 수 있다는 자체 만으로도 감계무량한 일이다)
음질:★★ ★ 2ch PCM STEREO이다 기존에 가지고 있던 비디오버전 (허접스테레오 정본)에 비하면 가히 눈물 흘릴만한 고 음질의 소리라 할 수 있다. 참고로 Headline & Deadline 뮤비는 우리나라에 1992년도에 정식 발매가 되었었다.) 서플: ★ 딸랑 가사 on/off이 전부이다. 그래도 좋다. 뮤비를 보며 따라부를 수 있다는 그것 만으로도.. 노르웨이 촌놈들을 일약 셰계 아이돌 스타로 급부상하게 만든 화제의 뮤직비디오 Take on me!!!
1985가 Alan tarney의 재produciing과 Steve barren(Michael Jackson의'Billie Jean'제작자)의 환상적인 애니메이션 뮤직 비디오에 힘입어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 1위를 기록하게 된다. 또한 영국 차트 2위를 포함 세계 9개국에서 넘버원 기록하는 등 전세계 10대의 우상으로 등극 하게 되는 결정적인 빌미를 제공 하게 된다. 이후 데뷔앨범 Hunting high and low 가 발매, 빌보드 앨범 차트 15위. 영국 앨범 차트 2위 기록하는 귀염을 토한다.두 번째 싱글 The sun always shines on TV 영국 싱글차트 NO.1 기록한다.1986MTV비디오 뮤직 어워즈에서 8개부문 후보에 올라 7개 부문 석권 (최우수 비디오상,최우수감독상, 혁신적인 비디오상,최우수 컨셉트비디오상,특수효과상,최우수신인상,최우수편집상)수상,그래미어워즈 신인상(BEST NEW ARTIST)에 노미네이트하며 전세계 감탄사 a-ha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세계인의 입에서 터져 나오게 된다.
지금 보아도 너무나 멋진 Take on me의 장면들을 캡쳐해 보았습니다.
| 아직 끝나지 않은 감탄사!!!~~~
1999년모튼의 솔로 활동으로 위안을 삼던 아하 팬들에게 희소식이 들렷다.Waner broders와 2장의 앨범 계약 체결한 것이다, 그들이 다시 돌아 왔다. 그 시절 그 멤버 그대로.2000년7월 통산 7번째 앨범 발표 하며 공식적인 A-HA의 새로운 역사가 다시 시작이 된 것이다 .그 시절 아하의 음악을 듣던 10대의 소년들은 지금 한 아이의 엄마와 아빠가 되어있다. 그렇게 세월이 변하듯 A-HA의 음악 역시 원숙미 있는 음악으로 우리에게 다시 찾아온 것이다.’언제나 젊음을 대변했던 나의 우상이여...영원하여라!!! 200112월 11일 100회 노벨 평화상 콘서트에서 와 를 연주. 2002년 4월 2일 single 발표 4월 29일 통산 8번째 앨범 발표 | | |
![[감상기] 전세계의 공통된 감탄사 a-ha](http://dvdprime.dreamwiz.com/files/upload/200607/20060713174336382.b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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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대단한 리뷰이십니다!!! 전율이 쫘악~~!!! 저도 85년 라디오 채널 돌리다가 'Take on me' 키보드 반주에 넋이 나갔던 기억이 나네요. 콘서트는 지금이라도 했으면 좋겠습니다. T^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