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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뉴스]  그들도 우리처럼(1990) 회고 - 문성근, 심혜진, 박중훈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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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at 2020-04-01 04:36:09

박광수 감독의 두 번째 연출작 [그들도 우리처럼]의 회고를 모아봤다. 사북 탄광촌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이다.

 

 

1990년 11월 10일 개봉

 

서울관객수 : 48,851명

 - 당시 한국영화가 서울에서 5만명 가까이 동원한거면 본전치기는 한거다. 흥행에 성공했다고 보긴 어렵지만 개봉 기간에 맞물린 심혜진의 낭뜨영화제 여우주연상 수상, 방화 시절에 연이은 국제영화제 진출 소식, 작품을 향한 찬사에 힘입어 운동권 냄새 풍기는 작가주의 영화치곤 제법 많은 관객이 몰렸다.

 

 

비디오 

 

비디오 출시 : 1991년 9월 24일(동아)  

 

시나리오집. 한국시나리오걸작선 51번으로 출간됐다.  

 

최인석이 1988년 발표한 [새떼]를 박광수, 윤대성, 김성수가 각색했다.

 

최인석 원작 [새떼]

 

원작은 1988년 12월 10일자로 현암사 출판사에서 발간됐으며 지금은 절판됐다. 신국판으로 378쪽 분량의 장편소설이다. 방송계나 영화계나 소설 원작에 의존하던 당시 흐름대로 [그들도 우리처럼]도 원작 발간 직후 바로 영화화가 진행된 것 같다. KMDB 등록 자료를 보면 1989년부터 촬영 준비에 들어갔음을 알 수 있다. 강원도 탄광지대 물색에만 1년이 걸리면서 지역 주민들하고도 친해져 본 촬영 때 많은 협조를 받았다. 영화 각색 과정에서 내용이 많이 바뀌었다. 공동 각색이었지만 주로 박광수 감독의 구상이 많이 들어갔다고 한다.  

 

 

 

 

 

 

문성근▼

 

1997년 2월호 프리미어 문성근 인터뷰▲

 

고뇌하는 지식인 뿐 아니라 뒤틀린 지식인도 했다.(웃음) ‘그들도 우리처럼’이란 영화를 찍었을 때 어떤 기자분이 ‘회색빛 도시의 창백한 지식인’이란 표현을 쓰셨는데 그것도 인상적이었고. 그 때는 제가 얼굴이 좀 하얗긴 했다.(웃음)

 - 매일경제 2010년 4월 10일

 

"한 사람이 평생 한 번 겪기도 힘든 극적 상황을 배우들은 여러번 경험한다. 그러다보면 누구든 당연히 내상이 생길 수밖에 없다. 나 역시 그로 인한 힘든 시간을 겪어봤다"며 "<그들도 우리처럼>(1990)을 찍은 당시 김기영이란 인물에서 빠져나오는 데는 정말 꽤 긴 시간이 필요했고, <경마장 가는 길> 출연 때도 길진 않았지만 인물에서 빠져나오기 못하고 헤매는 시간이 좀 있었다"

 - 데일리안 2009년 3월 28일

 

 

 

 

박중훈▼

1996년 5월호 프리미어 박중훈 인터뷰▲

 

...<우묵배미의 사랑>을 끝내고 <그들도 우리처럼>을 계약했다. 탄광촌 사장의 아들이자, 동네의 망나니 같은 ‘성철’이라는 역할이었는데 사실 당시 최재성에게 먼저 갔던 역할이었다. 그런데 최재성이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를 하게 되면서 어긋날 수밖에 없었고 내가 대신 들어가게 됐다.

 

나 역시 KBS 라디오 <박중훈의 인기가요>를 매일 밤 10시부터 12시까지 생방송으로 할 때라(월∼목 생방송, 금∼일 녹음방송) 스케줄이 빠듯했지만 조연급 역할이었고, 영화사와 내 상황을 충분히 서로 논의한 다음이라 서울과 강원도를 오가면서 촬영을 하기로 했다.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가 서울예대 다니던 학생이었는데 상황이 그러다보니 자주 만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그래도 <칠수와 만수>를 함께했던 박광수 감독에 대한 믿음이 있었으니까 시작할 수 있었다.


촬영은 강원도 고환, 사북 지역에서 이뤄졌는데 포장된 길이 제대로 있던 때가 아니라서 이동하는 데 무지 애를 먹었다. 매니저는 없었지만 내가 그때 처음으로 따로 운전기사를 두고 일했을 때다. 차에서 잠자는 시간이 중요했으니까. 그런데 이쯤에서 박광수 형에 대한 안 좋은 추억 얘기를 좀 하자면, 형이 참 호방한 성품의 신사이고 예술가로서의 직관도 뛰어난 사람이지만 종종 술에 취하면 평소와 달리 좀 과격해질 때가 있다.

 

한번은 다들 술에 취한 채로 여관방에서 연출부들과 함께 작품 얘기를 했는데, <그들도 우리처럼>에서 내가 문성근 형과 싸우는 장면 얘기를 하면서, 액션신을 찍을 때 이렇게 해야 한다며 시범을 보인 적이 있다. 그런데 진짜로 나를 몇번씩이나 유도 엎어치기로 세게 넘기는 거다. 좀 기분이 나쁠 정도로. 그때 연출부들이 다 여균동, 이현승, 김성수 감독 같은 사람들이었다.

 

또 한번은 <그들도 우리처럼>이 개봉하고 난 다음 광수 형, 성근이 형 그렇게 퇴계로 근처의 선술집에서 술을 마셨는데, 광수 형이 술이 좀 얼큰하게 취해서는 나더러 “너는 서울까지 왔다갔다하느라고 연기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거다. 내 스케줄 문제는 이미 사전에 합의를 했던 거 아니냐고 따졌지만 얘기는 잘 통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연기도 아주 못했다고 그러는 거다. 그래서 미안하다고 했더니, 미안하다고 끝나는 문제가 아니라 그 미안함을 보여주려면 여기서 가위로 발가락을 자르라는 거다.

 

워낙 작품에 대한 생각, 예술가로서의 자의식이 강한 형이라 술김에 그런 얘기들을 했던 것 같은데 그때 내가 받은 충격은 굉장히 컸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 광수 형과 공식적인 여러 자리에서 만나면 반갑게 인사는 하긴 하는데 좀 서먹서먹해진 느낌이 있다.

 

다시 한번 생각해도 내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만, 난 정말 당시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고 싶다. 성철은 영화 속에서 내내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데 내 돈 들여 알아서 오토바이 능숙하게 탈 때까지 배웠고, 한번은 250cc 오토바이에 카메라 매달고 내 모습을 담는 장면에서 당시 레커차도 없는 상황이라 카메라 셔터를 내가 누르면서 오토바이를 몰았다. 넘어지면 끝장이었다. 그렇게 비 맞으면서 산맥 하나를 넘었는데 그럴 때 맞는 비는 차라리 돌이다.

 

그래도 눈 부라리면서 찍으며 나로서는 연기 투혼을 다한 영화였고, 주변에서도 당시로선 첫 악역 변신이 인상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던 영화라 그 충격은 컸다. 그렇게 감독과 배우의 의견을 조율하고, 모두가 만족하는 답을 얻기 힘든 게 바로 영화 현장이다. 그래서 더 큰 희열을 주기도 하는 것이겠지만.

 - 씨네21 연재 '박중훈 스토리6'에서(2009년 4월 3일)

 

심혜진▼

 

 

 

1996년 3월호 프리미어 심혜진 인터뷰▲

 

[그들도 우리처럼] 할 때 문성근씨가 귀찮을 정도로 많은 걸 가르쳐줬어요. 그 땐 '왜 저렇게 날 귀찮게 쫓아다니면서 선생님처럼 잔소리를 하지?'라는 생각도 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저에겐 다 피가 되고 살이 됐어요.

 - 노컷뉴스 2006년 4월 9일

 

...우연히 CF를 찍었다. 그게 TV에 나갔더니 충무로에 있는 <지미필름>의 제작부장이란 분이 늦은 밤에 전속계약서 들고 우리 집으로 찾아왔다. 연기가 뭔줄도 모르고 [추억의 이름으로]라는 영화로 데뷔 한거다. 근데 너무 재미없었다. 사람 불러놓고 아무 말도 안 시키고 하루 종일 기다리게 하다가 한 두 컷트 찍고 집에 가라 그러고... 그렇게 [물의 나라]까지 그 회사 영화 두 작품을 했는데 너무 약이 올라서 절대로 다시는 연기 안한다고 다짐 했었다.

 
나중에 [그대 안에 블루][시월애]만들었던 이현승 감독이 날 찾아왔다. 그때 박광수 감독의 조감독이었는데 [그들도 우리처럼]에 출연하라고 해서 영화 절대 안한다고 했더니...자기들은 촬영장에서 하루 종일 기다리게 안하겠다고 약속해서 또 하게 된거다. 그 작품을 하면서 굉장히 쇼크를 많이 받았다. 같이 공연한 문성근, 박중훈이라는 배우들에게도 그렇고, 정말 시커먼 강물이 흐르는 촬영지인 사북탄광촌을 보면서 아... 내가 이제껏 몰랐던 것을 영화를 하니까 알 수 있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 거다. 그러면서 영화를 진지하게 대하기 시작한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문성근, 박중훈씨가 원체 강하니까 ‘그들에게 밀리면 끝장’이라는 심정으로 완전히 악에 받쳐서 했던 것 같다. 흥행은 크게 안됐지만 그 작품으로 ‘낭뜨영화제’,‘춘사영화제’,‘백상예술대상’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되게 신기했지. 아 내가 정말 배우가 된 거구나 싶었고.
 - 인터뷰 365 2008년 2월 21일

 

 

연출부 여균동▼

 

박광수 감독한테 “내가 충무로 가서 영화를 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가 “잘됐다. 연출부로 와라” 해서 간 게 <그들도 우리처럼>이었다. 그때는 그런 영화를 동아수출공사, 지금으로 치자면 CJ 같은 메이저에서 만들던 시대였다. 내가 영화판에 들어올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건 그 때문이다. 80년대, 90년대는 핵분열 직전이었다. 90년대 중반부터 대기업에서 투자를 시작하고 회사도 생기면서 불과 10여년 사이에 몇 세대가 급격히 지나간 것 같다.
 - 씨네21 2006년 6월 19일 여균동 인터뷰 중
(박광수 감독은 서울대 얄라셩 출신이다. 여균동도 서울대 출신)

 

 

여주인공 물망에 올랐던 이혜영▼

[그들도 우리처럼]은 이혜영한테도 제안이 갔지만 당시 창녀 역에 지쳐있던 이혜영이 거절하면서 최종적으로 심혜진에게 돌아갔다.

 

"나는 항상 사회 밑바닥에 소외된 여성들 역할을 맣이 했다"

 

“...박광수 감독이었다. 드디어 내게도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는데 탄광촌 창녀 역할이었다. 내 기분이 어땠겠나? 파리에서 오신 분(박광수는 파리에서 영화특수교육학교(ESEC)를 다녔다.)도 날 이렇게 알고 있구나 싶었다. 그래서 거절했는데 나중에 심혜진이 이 영화로 낭트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그들도 우리처럼]이었다.

 

2011년 6월 7일 방영된 KBS2 '승승장구'에 출연한 이혜영의 회고

 

* 2005년 2월 9일 지병인 당뇨로 83세에 별세한 원로 배우 황해의 유작이다.

 

* 감독 박광수는 강원도 속초 출신이다. 사북 탄광촌이 배경인 [그들도 우리처럼]에 관심을 가진데는 출생지의 영향도 컸을 것이다.

 

* 박광수 감독의 부인은 '키노' 전 편집장인 이연호. 결혼 당시 작품 연출에 따른 계약금을 갖다 주지 못하겠다고 했다. 이유는 무보수로 일하는거나 다름없었던 연출부 급여를 자신이 받은 감독 계약금에서 나눠 주기 위해서. 박광수 감독의 연출부로 김성수, 여균동, 허진호, 이현승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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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2020-04-01 04:47:31

인생작 중 하나예요 모든 장면이 생생하네요
무엇 하나 뺄 수 없는 수작이었죠
김수철의 음악도 좋았구요
심혜진이 이상형이 되게 했던 영화기도
오랜만애 회상하게 해주셔서 감사하네요

2020-04-01 09:11:14

 못봤던 영화인데..

이번에 dvd 출시된 표지를 보고...

정말 실력없는 디자이너가 일하기 싫어서 대충 만든티가 확연히 보이더군요.

 

여담이지만,

예전 신문광고 영화홍보 디자인담당들은 정말 대단한듯 합니다.

남녀주인공을 3등분으로 나타낸 저 디자인..멋지지 않나요?

WR
2020-04-01 11:40:02

전 비디오 표지가 제일 마음에 들더군요. dvd구입 후 쓰레기로 처리했는데 표지만 빼서 가지고 있을걸 그랬어요.

2020-04-01 09:22:30

운동권 영화로 분류하기에는 상당히 재미있었고, 오락영화로 분류하기에는 묵직한 메시지였죠. 박중훈 연기가 아주 좋았습니다.

2020-04-01 09:56:14

 예전에 정말 재미있게 봤던 영화 입니다.제가 좋아했던 배우 다나오네요.문성근,박중훈,심혜진

 

2020-04-01 16:19:08

 저도 무척 좋아하는 영화인데 반갑네요.

얼마 전 유튜브 한국 고전 영화 자료실에 

복원판으로 올라왔길래 다시 봤습니다.

탄광촌 특유의 무채색한 황량함을 멋지게 담아낸 수작입니다!

2020-04-02 15:40:25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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